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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저히 파괴된 성서의 도시 하솔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9. 2. 7. 01:48


    일반 사람들에게는 귀에 익숙하지 않은 지명이지만 소위 성지순례라고 하는 여행 코스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이스라엘 북쪽의 도시가 있다. 그 도시의 이름은 하솔(Tel Hazor, )로 2005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기원전 18~9세기까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여리고의 25배) 하솔의 고대 도시 유적에 인류 문화사적 가치를 부여한 것이었다.(뿐만 아니라 하솔은 위 기간 동안 바빌로니아와 시리아 지역을 연결하는 상업로 상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다. 하솔은 지금 하초르로 불린다) 



    하솔의 위치



    그렇지만 그곳이 성지순례 코스에 들게 된 건 그 고대 도시의 유적을 보자 함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의 활동 무대였던 갈릴리 호수 지근 지역에의 덤으로서,(북쪽으로 약 20km) 여기에 굳이 하나를 더하자면 이집트에서 탈출한 고대 이스라엘 족속들이 가나안 땅, 즉 지금의 이스라엘을 차지하기 위해 공격했던 도시에의 관광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이곳 하솔은 1990년부터 히브리대학 고고학 발굴팀에 의한 발굴과 조사가 진행 중인데, 2000년 무렵 이곳에서 가나안 시대(BC 3000~2000년 경)의 왕족이 살던 대규모 유적이 발굴되었다. 그 유적이 조명을 받은 것은 무엇보다 고대 이스라엘 족속이 하솔을 점령한 시기로 여겨지는 13세기의 유적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즉 구약성서 여호수아기 11장에 기록된 여호수아의 하솔 점령 기록이 역사적으로 증명되게 된 것이었다.(이는 19세기부터 찾아 헤멘 여리고 성의 유적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못한 점에 비견돼 더욱 그 가치가 빛났다.(* [성서와 UFO] - 아브라함이 만난 UFO와 가나안 이주의 진실 II' 참조)




    발굴된 왕궁 추정 유적과 주변 유적

    남아 있는 입구의 길이가 40m에 이르며 무너진 벽의 높이만도 2.5m에 달하는 방대한 유적이다. 


    2013년에 나온 발굴보고서



    * 하솔에 관한 고고학적 관심도 여리고 성에 못지 않았던 바, 1926년부터 영국인 존 가스탕에 의한 발굴이 시작되었고, 1955~58, 1968년에도 히브리 대학 이가엘 야딘에 의한 발굴이 있었다. 특히 야딘의 2차 발굴에서는 고대 도시의 대강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이 정리·보고되었다. 하지만 야딘의 유적 발굴보고서는 민족주의적 색채가 농후해 세계 학계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는데,(야딘은 이스라엘 건국 전쟁의 영웅으로 부수상을 역임했다) 무엇보다 왕궁 유적이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문서가 발견되지 않은 것이 취약점이었다. 그것을 지금 발굴팀의 암논 벤-토르 교수가 발견한 것으로, 이 왕궁 유적에서는 탄화미와 함께 당시의 왕의 이름이 기록된 다수의 설형문자 점토편도 출토되었다. 





    하솔 유적과 이가엘 야딘의 발굴보고서



    그 유적 중에서도 가장 눈길 사로잡은 것은 불에 탄 밀 씨앗이 담겨진 파손된 14개의 진흙항아리들이었다. 이 탄화밀은 탄소 연대측정법의 더없는 시료로써의 가치가 있었지만, 불에 타 철저히 파괴되었다는 성서 기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로서의 가치도 컸다. 탄화밀 씨앗이 진흙항아리 속에서 발견된 것은 불에 탄 씨앗을 항아리 속에 담았던 것이 아니라 씨앗이 담겨진 항아리가 불에 태워졌을, 그러면서 그릇도 깨졌을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발굴 당시의 사진과 항아리 속의 탄화미


    여호수아 공격 당시의 야빈 왕으로 추정되는 입니 아디(ibni Addi)의 이름이 새겨진 법전 토판



    성서에 기록된 여호수아의 하솔 점령 기록은 다음과 같다.(사실 그 기록이 오늘 내가 문제 삼고자 하는 내용이다)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및 북쪽 산지와 긴네롯 남쪽 아라바와 평지와 서쪽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동쪽과 서쪽의 가나안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산지의 여부스 족속과 미스바 땅 헤르몬 산 아래 히위 족속에게 사람을 보내매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백성이 많아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이 왕들이 모두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 가에 함께 진쳤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 하시니라. 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 가로 가서 갑자기 습격할 때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추격하고, 동쪽으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추격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이고,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로 살랐더라.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 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죽이고,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하솔을 불로 살랐고, 여호수아가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붙잡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바쳤으니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랐고 산 위에 세운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불사르지 아니하였으며, 이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고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여호수아 11:1-15)

     

    위 여호수아기(記)의 기록을 대강 정리하자면,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의 북상 소식을 들은 하솔 왕 야빈은 주변국의 왕들과 연합, 대군을 이끌고 메롬 강가에 진을 치게 된다. 이에 그들 하솔 연합군에 비해 소수였던 이스라엘 군은 크게 겁을 먹는다. 그러자 여호와는 여호수아를 독려하여 자신이 도와 적들을 몰살시킬 테니 너희들은 그저 말 뒷발의 힘줄이나 끊고 병거에 불이나 질러 재기할 수 없도록 하라 명령한다. 


    정말로 그들 하솔 연합군은 대패하였는데, 이스라엘 군은 그들을 추격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쳐죽이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병거에 불을 지른다. 싸움에서 승리한 여호수아는 하솔을 점령한 후 왕을 비롯한 모든 거주민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죽여버린 후 온 도시를 불태운다. 이어 하솔과 동맹한 산 위의 도시국가들을 징벌하는데, 다만 방화만 없었다 뿐 모든 재물과 가축은 약탈당하고 그곳 백성들 역시 한 명도 남김없이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기록은 이 모든 것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명령을 어김없이 완수했노라며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말한다. 


    여기서 잠깐 나의 고민(?)을 말하자면, 나는 처음에 이 글을 '성서와 UFO'의 카테고리에 실을까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쪽을 택했는데,(그 역사성 때문에) 그러한 만큼 여기서는 앞서 게재한 '소돔과 고모라를 폭격한 UFO등에서처럼 UFO를 앞세운 하나님의 조력을 강조하기는 힘들다. 


     * 그러나 이에 앞서 싸웠던 전투인 기브온 전투에서는 하나님이 우박과 같은 물리적인 힘으로써 기브온 공격군들을 살상시켰던 바,(여호수아 10:1-27) 하솔 전투에서도 이와 같은 물리력이 사용돼졌을 가정을 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하솔 연합군은 기브온 공격군에 비길 수 없는 대군이었다) 


    대신 말하고 싶은 사항은 위 여호수아기에 실린 여호와 하나님의 극악한 잔인성이다. 


    역사학자 제프리 버튼 러셀(앞서 인용한 '데블'의 저자)은 이렇게 무자비한 신은 이집트, 바빌로니아, 가나안 자체에도 없었다고 혀를 차며,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여호수아기의 대목을 더도 덜도 아닌 그저 야만적 집단 학살 행위일 뿐이라고 통탄한다.(그 야만적 행위가 종교적 포장이 씌워져 희석되어졌다는, 그리하여 그것이 우리의 지각까지 마비시킬 수 있다는 조지 타마린의 실험 결과를 앞세워)


    * 조지 타마린은 이스라엘의 심리학자로, 그가 설문조사 및 반응실험을 한 대목은 위 내용의 전(前) 사건인 여호수아의 여리고 성 약탈과 학살이었다. 그는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점령한 뒤에 벌인 악마적 행동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는데, 이때 '여호수아' 대신 다른 이름을 넣었을 때(이를테면 3000년 전의 중국왕조 같은) 설문대상자의 반응은 급격히 '야만적 학살과 약탈' 쪽으로 기울어졌다. 타마린이 이런 실험을 한 것, 그리고 도킨스가 그 실험 결과를 자신의 저서에 인용한 것은 당연히 여호수아의 행동이 도덕적이지 못했음을 강조하고자 한 것일 터였다. 


    그가 설문대상자에게 읽어준 대목은 예리코(여리고) 전투 장면이었다.(출처: '만들어진 신')


    여호수아가 사람들에게 외쳤다. 

    "고함을 쳐라, 주께서 저 도시를 너희에게 주셨다. 

    저 도시와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여 주께 바쳐라….

    하지만 은이나 금, 동이나 철로 만든 집기들은 모두 주께 바칠 것이다. 

    그것들은 주의 금고에 넣을 것이다.…

    그들은 남녀노소, 소, 양, 나귀 등 도시의 모든 것을 칼로 모조리 없앴다…. 

    그리고 도시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을 불태웠다. 

    오직 은과 금, 동이나 철로 된 집기들만 모아, 주의 집에 있는 금고에 넣었다.


    그렇지만 나는 조지 타마린의 실험 자료였던 여리고 성 이야기는 거론하고 싶지 않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리고 성은 아직 미발견되었고, 따라서 그와 같은 학살이 실제 있었는를 규명하는 것 자체가 여의치 않은 까닭이다. 사실 여러 발굴 결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말한 히브리인의 하솔 점령조차 일부 학자들은 부정하고 있어서 이집트인, 혹은 다른 해양민족(예를 들면 블레셋인 같은)에 의한 파괴라는 주장이 사그러지지 않고 있다. 


    * 이집트 설의 대표적 인물은 텔아비브 대학의 이스라엘 핀켈스타인 교수로, 그는 하솔의 파괴가 BC 1300년 가나안 땅 깊숙한 곳까지 쳐들어왔던 세티 1세의 이집트 군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며, 그외에도 BC 1275년 카데쉬 전투를 치른 람세스 2세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핀켈스타인 교수와 카데쉬 전투에 대해서는 '외계인이 지어준 국호 이스라엘' 참조')


    * 예전 핀켈스타인 교수의 공개강의에서 그와 논쟁을 벌였던 민족주의적 사고의 여학생이 있었다. 그 이쁘장하게 생긴 여학생은 핀켈스타인의 주장에 비분강개하여 급기야는 눈물을 쏟아내며 열변을 토했다.(위의 주장 뿐만 아니라 다윗 왕의 정복전쟁, 나아가 다윗 왕의 존재까지도 의심한 데 대해) 반면 끝까지 냉정하게 답하던 핀켈스타인의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는데, 지금 그 동영상 자료를 찾을 수 없어  매우 안타깝다.(혹 자료를 가지고 계신 분이나 출처를 알고 계신 분은 연락주십시오. 이에 상응하는 자료로 보답하겠습니다)

     

    아무튼 하솔이 실재했던 곳이라는 것은 유적의 발굴로써 사실로 밝혀졌고, 이곳이 가나안 정복군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것도 믿을수 있는 사실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죽은 하솔 사람들의 영혼은 그 어디에서 위무받을 수 있을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어쭙잖은 사후 세계를 믿어 하는 소리가 아니라 성서에서조차 하찮고 당연한 학살로 취급되는 그들의 죽음을 원통히 여겨 하는 말이다. 



    하솔의 구글 맵 사진

    하솔은 40m 언덕 위의 상부 도시(Upper city)와 그 아래의 하부 도시(Lower City)로 나뉘어지는데, 훗날 건축된 솔로몬 시대의 건물이 혼재돼 있어 어느 지역이 가나안 시대의 것인지 정확히 구분하기는 힘들다. 



    하솔의 급수 시설

    유적 남쪽에서는 예루살렘 히스기야 수로와 같은 급수 시설이 발견되었다. 관광객이 걸어가는 계단은 나선형 계단을 지나 지하 25m까지 이어지는데, 그 끝에 이르면 깊은 물 웅덩이가 나탄나다. 가나안 시대의 것은 아니고 솔로몬 왕 한 세대 후인 아합 왕 때의 것이다.  



    빛 바랜 안내문

    급수 시설의 구조가 간단히 설명돼 있는데, 물 웅덩이의 깊이는 40m로 돼 있다. 



    망루 혹은 제단으로 추정되는 유적

    정확한 시대와 용도를 알 수 없음에도 하솔의 간판 유적으로 활용돼지는 이곳에 왕궁지에서 발견된 청동상을 확대 재현해놨다.



    바알 신상의 발로 추정되는 가나안 시대의 유물



    세련된 이미지의 가나안 시대 사자 조각상




    마리-에칼라툼 타블렛

    1698년 왕궁지에서 출토된 이 서간문 점토판에는 메소포타미아 마리, 에칼라툼 지역과 거래한 의복, 청동제품 등에 관한 교역 내용이 설형문자로 기록돼 있다. 



    텔 엘 아마루나 타블렛

    1997년 이집트 텔 엘 아마루나에서 밭을 갈던 여인이 발견한 석판들 중의 하나로, 나중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그중 82개가 대영박물관에, 나머지는 베를린 박물관과 카이로 박물관에 소장되었다. 기원전 14세기 하솔을 비롯한 가나안 북부 도시국가의 왕들과 이집트 왕족 사이에 오간 서간문이다.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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