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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고조선에 관한 자충수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8. 6. 14. 22:36
중화인민공화국이 한·중 접경 지역을 비롯한 중국내 여러 지역에 대한 역사 왜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은 앞서 '기록의 중요성'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그들의 '동북공정'에 우리 민족 최초의 고대국가 고조선이 맥없이 당하고 있는 이유를 '자체 기록의 부재(不在)'라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찾았다. 사실 우리의 교과서에 실린 고조선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마저 모두 중국 측 사서(史書)에 의존한 것들이다.
일례로 고조선의 법률이라는 그 유명한 '8조의 법금(法禁)'도 "한서(漢書)" '지리지'에 실린(그나마 3개 뿐인) 법률을 애지중지하고 있는 것이니, 실제로 우리가 고조선의 존재에 관해 '이거요'하고 내놓은 만한 사료는 별로 없다. 게다가 고조선의 표지유물로서 쓰이던 '북방형 고인돌 + 비파형 동검'에 언제부턴가 '미송리식 토기'가 +되었는데, 솔직히 이것은 +가 아니라 ‒로 여겨진다.(솔직히 '환단고기'와 같은 책도 오히려 마이너스다)
평안북도 압록강변 미송리에서 출토된 토기를 대표유물로 하는 미송리식 토기는 기실 북방식 고인돌에서 출토된 예가 없을 뿐더러 그나마 개석식 소형 고인돌이 있는 2~3개 유적에서 출토된 것이 전부이다.
나아가 지금까지 고조선의 영토, 혹은 세력 범위와 필수적으로 연관지어졌던 북방식(탁자식) 고인돌도 그 분포 지역을 보면 요동의 남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그것이 과연 고조선의 세력 범위와 일치하는 것이 맞나 의구심이 든다.(요동 북부 지역과 요서 지역에 북방식 고인돌이 없는 것은 아니나 매우 산발적이며 그 규모도 작다)
해성 석목성의 북방식(탁자식) 고인돌
우리나라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고조선의 세력 범위
자세히 보면 탁자식 고인돌의 분포지역과 비파형 동검 분포지역이 따로 노는 느낌이며, 게다가 지금까지 출토된 비파형 동검은 요서지역의 것이 고인돌이 많이 분포된 요동지역 것보다 훨씬 크고 세련됐다.(따라서 뭔가 맞지 않는다)
요서지역 비파형 동검(위)과 요동지역 비파형 동검(아래)
중국식 동검
하지만 동시대의 중국 동검하고는 완전히 판이하니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의 지표유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KBS 역사스페셜'에서 고증한 고조선의 동검
전쟁기념관의 요서식(요녕식) 비파형 동검
국립중앙박물관의 요동식 비파형 동검
내가 여기서 고조선의 동검을 굳이 세분함은 고조선의 강역에 보다 정확성을 기해 그 중심을 요서 지방으로 이끌자는 데 있다. 즉 고조선의 수도인 왕검성은 지금껏 알려진 요동의 해성이나 평양 일대가 아니라 요서 일원인 조양이나 적봉 지역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아래 'KBS 스페셜 지도 참조')
'KBS 역사스페셜'에서 고증한 고조선의 영역
적봉과 조양의 위치
조양시에서 출토된 비파형 청동검
적봉시 영성현에서 출토된 비파형 청동검
하지만 중국 측에서 말하는 고조선의 지역은 요동 일원과 한반도 북부이니,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의 4개 군현, 즉 한사군(漢四郡)의 위치를 내내 요동과 한반도에 고착시켜왔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불변인데, 동북공정이 시작된 1983년 이후부터는 아예 북위 38도 선 이남까지 치고 내려왔다. 말하자면 지금의 북한 지역은 과거 중국의 영토였다는 것이다.(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를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대부분의 중국측 사서가 말하는 한사군의 영역
그런데 이쯤에서 우리가 주목할 곳이 있다. 중국 요녕성 심양시 남서쪽 혼하(渾河) 북쪽 3㎞ 지점에 위치한 정가와자(鄭家窪子) 마을이다. 마을 이름은 이곳에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오래 전부터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것인데, 이곳에서는 1958년 비파형 동검이 포함된 27점의 청동기가 발견되었는데,(기원전 6~5세기 경) 1963년 또 1점의 비파형 동검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 유골이 있는 목곽묘, 토광묘와 함께 유물이 발견되었던 바, 이에 중국 문화재 당국에서는 정가와자를 중요 청동기 유적이라 여겨 이곳에 진열관을 짓고 2016년 5월 17일 대대적인 개관식을 가졌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날의 개관식에서는 '정가와자 청동단검묘 진열관'이라고 명명된 진열관의 간판을 서둘러 덮는 진풍경이 발생했다.
그 이유는 사실 물어보나마나 한 것이었으니, 이곳이 고조선의 중심지라는 것을 오히려 홍보하는 셈이 돼버린 까닭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개최 측에서는 궁여지책으로 간판을 천으로 덮어버린 것이었으니, 제 발등을 찍는 자충수에 다름 아니었다.
개관식에 몰려든 인파.
위에서 연락을 받았는지 천으로 간판을 가리는 진열관 당국자들.(끝까지 청동단검의 글자를 떼보려 애쓰고 있다)
결국 간판을 덮은 뒤 행사가 시작됐다.
청동거울 등과 함께 매장된 무덤의 주인공은
필시 고조선의 지배층이었으리라.
이 해설사는 그림 속의 청동검을 과연 어떻게 설명했을까?
진열관에 전시된 요서식 비파형 동검
진열관에 전시된 요서식 비파형 동검
기타 청동기들
재현된 고조선 사람들
하지만 이 진열관은 결국 폐관돼버리고 말았으니 이후로 일대에는 외부인이 출입이 차단되었고, 유물들은 심양의 요녕성 박물관으로 옮겨져 제한적으로 전시됐다. 이에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아래의 발굴 표석과, 동경(銅鏡) 및 비파형 동검이 그려진 빈 진열관 뿐이지만, 그 옛날 이 일대가 고조선의 중심지였음을 인식하기에는 하등 부족함이 없다.
(사진출처: 한국교육신문)
심양시 요녕성 박물관
최근 중축된 요녕성 박물관에는 홍산문화 유물과 부여, 고구려 및 발해의 유물들도 일부 전시돼 있는데, 동북공정에서 주장하는 그 나라들은 모두 중국의 지방정권에 불과한 바, 거릴낄 것 없는 전시가 가능할 터이다.
요녕성 박물관에 전시된 비파형 동검
조양시 십이합영자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로, 고조선의 청동검이라는 설명은 물론 없다.
내몽골 홍산문화권에서 발견된 요서식 비파형 동검과 거푸집. 내몽골 일대까지 고조선의 세력이 미쳤음을 말해준다.(내몽골 오한사 전문화 박물관)
중국 태원시 산서성 박물관 '내몽골특별전'에 전시된 고조선의 동검.(사진출처: zum 포털 사이트)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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