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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조대에 관한 진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8. 5. 15. 06:17


    앞에서 말한 마패와 같은 가품은 서양에서도 넘쳐난다. 또 그와 같은 가품은 이러저러한 경로로써 세계 유명 박물관에 침투되어 버젓이 전시되기도 하는데, 일단 그렇게 되면 그것을 끌어내리기는 매우 어렵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미학적으로 이름 높은 아래의 두 유물은 현재 박물관에 전시 중이지만 진품과 가품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물론 박물관 측의 입장은 진품이 아닐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시각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하고 있다.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

    아가멤논은 호머의 일리아드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BC 3100년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군의 총사령관이었으나 실존인물인지는 불분명하다. 이 유물은 1876년 미케네 유적을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발견됐고 지금은 아테네 국립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이 황금 마스크는 20세기 후반 가품 논란에 휩싸였는데, 우선은 발굴자인 슐리만이 가짜 유물을 만드는 데 선수였고, 이 마스크의 제작기법이 동시대의 것과 크게 다르다는 점이 부각됐다.(* 트로이 전쟁에 관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조각품' 참조)



    네페르티티의 흉상

    역사상 최고의 미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네페르티티는 이집트의 종교개혁으로 유명한 18왕조 파라오 아크나톤의 부인이다. 그의 흉상으로 알려진 이 유물은 1921년 나일강변에서 독일 고고학자 루드비히 보르하르트에 의해 발견된 후 독일로 밀반출됐고, 복원된 이후 베를린 박물관의 대표적 유물이 됐다. 이 흉상은 지금 두 개의 시비에 휘말려 있는데 하나는 이집트 정부로부터의 반환요구이고 다른 하나는 가품이라는 것이다. 가품에의 이유는 간단 명료하다. 인물 자체와 조각기법이 너무 세련됐기 때문이다.



    반면, 유명한 유물은 아니지만 박물관 측에서 가품임을 인정하고 전시품을 전량 폐기한 사례도 있다. 중세의 유물 전시를 목적으로 설립된 파리 클뤼니 박물관의 정조대(chastity belt)가 그것이다. 나는 아직 클뤼니 박물관에 가보지 못했기에 가끔 관광객이 인터넷에 사진을 올릴 때면 반가운 마음으로 구경하는데, 얼마 전 어느 분께서 그곳의 정조대를 보고 글을 올렸다. 민망했는지 사진은 올리지 않았는데, 다른 경로로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유물이었다. 다 폐기시킨 줄 알았더니 1개를 남겨둔 모양이었다. 



    17세기 초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정조대라는 설명이 써 있다.



    클뤼니 박물관의 설립 목적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중세 유물의 전시이지만, 특히 '암흑기(Dark age)'라 불리던 암울해던 시기의 유물을 강조하고자 함이었던 바, 정조대는 설립 목적과 꽤 잘 어울리는 유물인 셈이었다. 알다시피 정조대는 전쟁의 참전 등을 이유로써 오랜 기간 집을 떠나 있어야 하는 남자가 부인의 정조를 단속하기 위해 채운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도 적절한 유물이었기에 전시 유물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이에 박물관 측에서는 1900년대 초 박물관의 설립과 더불어 시중에 나도는 중세시대의 정조대를 수집했는데,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그 유물은 한도 끝도 없이 나왔다. 이에 사람들은 중세 암흑기의 시대상을 새삼 절감하기도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그중 진품이라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시중에 나도는 정조대들은 모두 20세기 들어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의 기이한 취미에 부응하기 위한 가품이었던 바, 그것이 얼마나 많이 쏟아져나왔는지 대표적 수집가였던 미국의 백만장자 네드 그린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것만 사들이겠다는 발표까지 할 지경이었다. 


    15세기 초 이탈리아 귀족이 처음 만들어 썼다는 정조대는 기실 생각만큼 많이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은 있었다. 또 그 '생각만큼'이란 것도 아래 그림 등과 같은 변태적 상상력에 기인된 생각이었고, 이에 북 이탈리아 벨가모의 대장장이는 정조대를 풀 수 있는 열쇠를 만들어 떼돈을 벌었다는 블랙 코미디 같은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는 알 수는 노릇이었다. 그저 믿을 수 있는 사실은 19세기 파리 생 제르망 거리에 아래와 같이 생긴 싸구려 정조대를 파는 장신구점이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어찌됐건 클뤼니 박물관이 수많은 정조대를 수집할 수 있었던 건, 그리하여 한때는 정조대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가 됐다는 건 누군가가 수요를 노려 대량 공급을 했단 얘기일 텐데, 그 누군가가 금전을 목적으로 한 위조범들이었을 것은 보나마나한 일이었다.(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 시기에 로마시대의 조각품, 중국의 화병, 유명 화가의 그림 등을 닥치는대로 만들어 신흥 갑부들에게 공급했다) 


    이 끝도 없이 나오는 정조대를 처음 의심한 건 박물관 측 인사가 아닌 1920년대 미국 심령과학협회 조사부장을 지낸 심리학자요, 심령학자인 에릭 존 딩월이었다. 그는 그전부터 이와 같은 요상한 세태를 주목해왔던 바, 마침내 1922년 '순결의 거들(The Girdle of Chastity)'이란 책을 발표해 정조대에 관한 과장되고 왜곡된 시각과 이에 호응하려는 불건전한 심리, 저급한 상상력 등을 질타함과 동시에, 지금껏 시중에 나온 중세 시대의 정조대는 거의가 가짜란 사실을 확인시켰다. 그것이 가짜라는 증거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중세시대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군인, 동방무역으로 장기 외유 중인 상인들이 아내의 순결을 위해 정조대를 만들어 채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조대는 전쟁이 끝난 15세기에 처음 등장했다. 


    14세기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은 당시 가장 에로틱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정조대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다. 따라서 정조대에 관한 여타의 이야기는 훗날의 호사가들이나 문인들이 지어낸 픽션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중의 정조대를 화학적으로 분석해본 결과 대부분이 19세기에 만들어 진 것들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파리의 클뤼니 박물관을 비롯해 런던의 브리티시 박물관, 독일 뉘른베르크의 국립 게르만 박물관 등에 있던 정조대 전시물은 하나 둘 폐기되기 시작했으니, 지금  클뤼니 박물관에 남아 있는 유물도 존 딩월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초 영국에서 정조대를 착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인의 정절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귀족집의 하녀들이 주인의 성폭행을 피하기 위해 착용한 것이며, 혹간 보이는 남성용은 젊은 남자들이 자신들의 과도한 자위행위를 스스로 막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1922년 발행된 '순결의 거들' 초간본 



    당연히 클뤼니 박물관의 애장품이던 프랑스 왕비 카트린느 메디시스와 루이 13세의 부인이 착용했다는 화려한 장식의 정조대도 사라졌다. 그리고 위의 하나 남은 정조대도 그 진위보다는 아마도 거기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문양의 예술적 가치 때문이 아니런가 여겨진다. 


     

    폐기되는 클뤼니 수도원의 정조대


    정조대의 문양(복제품)


    클뤼니 박물관 전경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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