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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세례 때 출현한 UFO와 세례자 요한의 허망한 죽음성서와 UFO 2017. 5. 2. 04:03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예수는 세례자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는다. 성서에 따르면 요한은 그저 '예수의 앞날을 열기 위한 광야의 외침'과 같은 존재(요한복음 1:23)에 지나지 않은 인물이었음에도 예수는 다른 유대 민중들처럼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은 것이다.
신약성서 각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 세례의 장면은 다음과 같다.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태복음 3:13-17)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9-1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누가복음 3:21-22)
예수의 세례 광경은 이처럼 각 복음서의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가 세례를 받자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리고 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목해야 될 것은 무엇? 당연히 '비둘기처럼 내려온 성령'과 '하늘로부터 들린 소리'이다.
사실 이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위에서 말하는 성령이 무엇을 의미함인지는 앞선 챕터인 '성서 속 최초의 UFO'에서 이미 해석을 마친 바 있기 때문이다. 그 해석 그대로, UFO가 마치 비둘기처럼 하강해 그들 머리 위에 머물며 예수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확성기를 통해서였으니 그 옛날 모세에게 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위 복음서의 내용을 읽어보면 이에 더도 덜도 아니니, 적어도 예수나 요한에게 쏟아지는 영롱한 빛 같은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위 세례의 장면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성령'에 과도한 방점을 찍은 나머지 마치 예수의 머리 위로 빛과 같은 무엇이 내려오지 않았나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하늘에는 비둘기처럼 내려온-descending like a dove- UFO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찾을 수가 없다)
~이 같은 착각은 이른바 성화라는 그림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바, 이를 테면 아래와 같은 식이다.
작자 미상의 현대화
~그런데 아래의 그림은 그 빛이 내려오는 곳이 막연한 하늘이 아닌 UFO로 되어 있어 흥미롭다. 그린 이는 18세기 네덜란드 화가 아르트 데 헬데르(Aert de Gelder)로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제자로 알려 있는데, 그래서인지 화풍도 비슷하다. 다만 그의 그림은 사실주의에 입각한 오소독스한 인물화나 풍경화가 대부분인 까닭에 이와 같은 표현의 그림은 조금 낯설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는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세례를 주기 시작하니 급기야 요한의 제자들과 심한 갈등을 빚는다.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서 함께 머물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에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았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있던,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예수)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가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곁에)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그러한 기쁨으로 충만하노라.(요한복음 3:22-30)
예수와 요한이 경쟁적으로 세례를 베풀던 애논은 요단 강 중류지역으로 수량이 다른 곳에 비해 풍부했던 것 같다. 이에 두 사람은 그 일대에서 세례를 행하게 됐는데, 그 세례의 방법에서는 두 사람의 형식이 달랐던 모양이었다. 이에 그 제자들이 정결예식, 즉 침례의 방식을 두고 다투기도 하고, 그러면서 예수 쪽에 사람들을 많이 뺏긴 듯하였다.
이에 열이 받은 요한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와서 따지지만, 요한은 오히려 그런 현실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세례자의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남쪽 페레아 지방으로 와 시민운동가로 변신하여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데, 그 일환으로써 갈릴리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부도덕한 결혼(본부인인 파사엘리스를 버리고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스와 결혼함)을 심하게 질책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요한은 구금이 되고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된다.
그런데 죽기 전, 옥중의 요한은 위급함을 감지하고 예수에게 제자들을 보내 자신의 구명을 요청한다. 당대의 예수가 보여주는 기적이라면 충분히 자신을 구해주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간절한 요구는 예수에 의해 냉정히 묵살당하는 바, 결국은 헤로디아스의 계책에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마태복음 11:2-18/14:3-12)
같은 장의 내용에 따르면 당시의 예수는 대단한 권능을 발휘하여, 맹인이 시력을 회복하고 못 걷던 자가 걷게 되며 나환자가 깨끗히 치료될 뿐더러 죽은 자까지 살린다. 예수는 구명을 요청하러 온 요한의 제자에게 이러한 권능을 스스로 자랑하듯 나열하며 마치 요한을 구해줄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음으로써 요한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왜 그랬을까? 왜 예수는 자신의 앞길을 열어주려 애썼고, 또 자신에게 세례를 베풀고, 나아가 자신을 위해 세례자의 길도 양보한 그 착한 요한의 죽음을 방기하였을까? 백성들의 어려움은 기적까지 행하며 구해내던 예수가 왜 요한의 죽음은 끝내 모른 척하였을까? 게다가 실제로 그 둘은 서로 친족이기도 하였으며,(누가복음 1:36)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요한복음 1:13) 특별한 자들이 아니었는가?
나는 예수의 그 이율배반적인 행태의 이유를 다음 장에서 밝히고자 한다.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고 알려진 곳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 전해지는 요르단 강 하류의 알-마그다스(al-magthas) 유적. 여름철 건기에는 바짝 마르고 겨울철 우기에는 이보다 더 많은 물이 고이긴 하지만, 예수의 세례 장소로서는 어쩐지 옹색하다.
* [나는 왜 UFO를 믿는가] - '세례자 요한의 정체'
-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 국내도서
- 저자 : 김기백
-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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