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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자왕 비운의 스토리 2 - 진(陳) 마지막 황제 진숙보
    우리역사 비운의 현장을 가다 2019. 9. 19. 01:11

    * 1편에서 이어짐.

     

    이상 말한 바와 같이 중국의 삼국시대는 서기 280년 오의 멸망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된다. 위·촉·오 삼국 쟁패의 승자는 뜻하지 않은 진(晉)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군웅할거 시대에 대한 교훈이었을까, 진나라의 제왕들은 무(武)를 핍박하고 문(文)을 숭상했던 바, 팔왕(八王)의 난[각주:1]으로 나라가 흔들리게 되고 결국 흉노족의 침입으로 멸망하고 만다.(361년) 그런데 다행히 황족인 사마예가 남쪽으로 내려와 나라의 명백을 이으니 곧 동진(東晉)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오래 가지 못했으니 남쪽에서는 589년까지 동진,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의 다섯 왕조가 명멸하게 된다. 그리고 북쪽에서는 5호16국[각주:2]의 혼란을 종식시킨 북위(北魏)에 이어 동위(東魏), 서위, 북제(北齊), 북주(北周) 등의 나라가 명멸했다. 당시의 중국은 이처럼 한족의 남조(南朝)와 선비(鮮卑)족 오랑캐의 북조(北朝)가 대치하며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던 바, 이름하여 남북조 시대였다.(386~589년)

     

     

    북위(北魏) · 송(宋) 대의 남북조 시대

     

    오늘의 주인공 진숙보(陳叔寶)는 남조 마지막 왕조 진(陳)의 마지막 황제로서, 그 허망한 최후에 비하자면 제위는 눈물날 만큼 힘겹게 오른 사람이었다. 그는 진나라 4대 황제였던 선제(宣帝) 진욱의 맏아들로 어린 시절은 어미 유황후와 함께 서위(西魏)에 억류되었고, 장성해서는 선제 진욱의 병상(病床)에서 제위를 탐낸 이복동생 진숙릉의 칼을 맞기도 했다. 

     

    이때 그는 또 다른 이복동생 진숙견의 도움으로 다행히 목숨을 건지지만 목의 자상(刺傷)이 너무 심해 정무를 보기 힘들었던 바, 동생인 진숙견이 대부분을 처리했다. 이에 자연히 진숙견의 세도가 황제를 능가했고, 이를 밉게 본 도관상서(都官尙書)[각주:3] 공범과 중서서인(中書舍人)[각주:4] 시문경 등이 그를 몰아냈다.(그 다음의 힘의 향배가 어찌됐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래저래 정사에 흥미를 잃은 진숙보는 자연히 주색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터, 수도 건강(建康)에 호화로운 궁궐을 짓고 후궁들을 잔뜩 늘렸다. 그런데 그즈음 황제 진숙보를 매료시킨 자가 있었으니 '머리카락이 7자가 되고 기름을 바른 듯 빛나는' 장려화(張麗華)라는 이름 여인이었다. 이후 진숙보는 장려화를 끼고 살았던 바, 먹고 잘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조정의 중대사를 논의할 때도 장려화는 황제의 품 안에 있었다.

     

     

    드라마 '수당영웅'(隋唐英雄) 속의 진숙보와 장려화
    우리나라 배우 장서희가 장려화 역을 맡았다.

     

    그나마 조용히 있으면 좋으련만 어느듯 귀비(貴妃)가 된 장려화는 정비(正妃)인 심씨를 폐하고 정사를 쥐고 흔들었는데, 황제의 또 다른 애첩 공귀빈(孔貴賓)도 지지 않았던 바, 오로지 같은 공(孔)씨라는 이유만으로 의남매를 맺은 도관상서 공범과 함께 국정을 농단했다. 보다못한 비서감 부재(傅縡)가 목숨을 걸고 충언을 고했다.

     

    "주(북주)나라가 제(북제)나라를 멸망시키고 양나라 또한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나라의 외척 양견(楊堅, 수문제)이 제위를 찬탈해 수(隋)라는 나라를 세웠던 바, 머잖아 천하통일을 노려 남진해올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정신을 차려도 모자란 마당에 매일 황음(荒淫)에 빠져 소인배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충신과 양신(良臣)은 멀리 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마음을 돌이켜 나라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필시 동남(東南)의 왕기(王氣)가 여기서 끝날 것입니다."

     

     

    남북조 시대 말기 지도(560년). 북주는 577년 북제를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한다. 이어 북주에서 나온 수(隋) 나라가 598년 진을 정복해 중국을 통일한다. 

     

    이에 부재는 여지없이 목숨을 잃었으니 이후로는 아무도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하 한 명이 겨우 입을 뗐다.

     

    "지금 양견의 아들 양광(훗날의 수양제)이 이끄는 수나라의 50만 대군이 장강(양자강)의 북안에 도달했다 합니다. 폐하께서 조처를 내리셔야 될 줄로 압니다." 

     

    수나라가 드디어 남침을 감행한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진숙보는 천하태평이었다.

     

    "장강은 역대로 천하의 요새였다. 누구든 쉽게 넘지 못할 것이니라. 그리고 짐은 지금 꽃 감상을 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라."

     

    그러는 사이 수나라의 군사는 양자강을 도강해 4개월 만에 수도인 건강에 육박했다. 급보를 받은 진숙보는 우왕좌왕하다가 들려오는 적의 함성에 겁을 먹고 우물 속에 숨었는데, 그 와중에도 장려화와 손귀인(孫貴人)이라는 후궁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나 곧 건강 성에 입성한 수나라 군사들에 의해 체포됐고 다른 후궁, 황족, 대소신료들과 함께 수나라의 장안으로 끌려갔다. 이에 진나라는 5대 32년 만에 멸망하고 수나라는 천하를 통일했다.(589년)

     

    장안으로 끌려간 장귀인, 공귀빈, 공범, 시문경은 그곳에서 모두 주살당하고 진숙보는 수문제가 내린 미관말직을 지내다 52세로 죽어 북망산에 묻힌다.(604년) 그는 장안에서도 시와 음악을 즐기는 속 편한 삶을 영위하였으니 오죽하면 양견이 그를 전무심간(全無心肝, 간 쓸개도 없는) 자라 불렀을까. 역대의 암군(暗君, 우둔한 임금)의 꼽히는 그의 무덤은 공교롭게도 또 다른 암군 오나라 손호의 무덤 곁이었다. 그는 황제도 왕도 아닌 그저 후주(後主)라는 시호를 얻었다. 

     

     

     

    낙양 북망산 진숙보의 묘와 후주(後主) 진숙보

     

    천하를 통일한 수나라는 이후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 두 번이나 대군을 동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오히려 국력이 피폐해져 태원유수(太原留守, 태원을 다스리는 지방관) 이연(李淵, 당태조), 이세민(李世民, 당태종) 부자에 멸망당한다.(618년) 겨우 2대 37년 만이었다. 이후 이세민도 어김없이 고구려를 공격하지만 역시 실패했고, 그러자 그 아들 이치(李治, 당고종)는 작전을 변경해 나당연합군으로써 백제부터 침공하는 바,(660년) 창졸간에 공격을 당한 의자왕은 급히 웅진성(熊津城, 공산성)으로 피한다. 수도 사비성(泗沘城)보다는 웅진성이 수성(守城)에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3편으로 이어짐

     

     

     

    공주 공산성 전경

     

     

    1. 팔왕의 난(八王-亂)은 서기 291년부터 306년까지 이어진 중국 서진의 내란으로, 서진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주요 황족 제후왕이 8명인 데서 유래하였다. 팔왕의 난으로 인해 계속된 오랜 혼란의 결과 서진의 통치기반은 급격히 악화하여, 흉노족 침입(영가의 난)으로 서진이 멸망하였다. 관련된 8명의 왕은 다음과 같다. 여남왕(汝南王) 사마량(司馬亮). 초왕(楚王) 사마위(司馬瑋).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 장사왕(長沙王) 사마애(司馬乂).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穎).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 동해왕(東海王) 사마월(司馬越). * '위키백과' 참조 [본문으로]
    2. 오호 십육국 시대(五胡十六國時代: 304년 ~ 439년)는 삼국을 통일한 서진(西晉)이 멸망한 후, 5개의 오랑캐 민족이 회수(淮水) 이북에 16개 나라를 세우며 난립하던 시대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전조(前趙: 304 ~ 329)가 건국된 304년부터 북위(北魏: 386 ~ 534)가 화북을 통일한 439년까지를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5호(五胡)는 흉노(匈奴), 선비(鮮卑), 저(氐), 갈(羯), 강(羌) 등 5개 이민족을 가리키며, 16국이란 말은 북위 말엽의 사관 최홍(崔鴻)이 쓴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에서 유래하였으나, 실제로 이 시기에 세워진 나라의 숫자는 16개가 넘는다. [본문으로]
    3. 일반 행정을 처리하는 정3품의 관리. [본문으로]

    황제의 칙령과 조서를 맡아보던 관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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