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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심초'의 시인 설도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9. 10. 11. 22:51

     

    설도(薛濤, 768-832)라는 당나라의 여류시인은 중국에서는 꽤 유명한 문인이지만 우리에게 알려지기는 힘들었을 법한데, 김억(김소월의 스승)이 그녀의 시 '춘망사'(春望訶, '봄날의 기다림')를 번역해 소개하고 작곡가 김성태가 이 시에 곡을 붙여 '동심초'란 애절한 노래를 탄생시킴으로써 회자되게 되었다. 나 역시 그 노래 때문에 설도를 알게 되었고 덕분에 당시(唐詩)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또 그러면서 그녀의 인생을 좀 더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역시 가슴을 저미는 애사(哀史)가 있었다. 그 대강은 다음과 같다.

     

    설도는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벼슬아치의 딸로 태어났다. 금수저는 아니더라도 무난한 삶을 살 법한 출생이었다. 하지만 바른말하기를 좋아하던 그녀의 아비 설운()이 조정의 미움을 사 촉(蜀)의 성도(成都, 삼국지 촉나라의 수도였던 곳)로 좌천되면서 인생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아비가 그곳에서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힘들어하더니 풍토병까지 걸려 일찍 죽고만 것이었다. 이에 어미를 봉양하며 생활해야 했던 그녀는 악적(樂籍)에 이름을 올려 악기(樂妓)[각주:1]로서 술자리에 불려다니게 된다. 그녀의 나이 16세 때였다.

     

    설도의 문재(文才)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정원(785-804년) 연간 서천(西川) 절도사를 지낸 위고(韋皐)가 그녀의 시에 반해 널리 홍보를 하면서부터인데, 위고의 뒤를 이은 무원형(武元衡) 역시 그녀의 글재주에 탄복해 마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에게 교서(校書)[각주:2]라는 벼슬을 내려달라고 조정에 주청까지 하게 되는데, 아무리 글솜씨가 뛰어나다 해도 여자인데다 또 악적에도 오른 설도에게 교서의 벼슬이 하사되기는 힘든 일이었다. 결국 그녀는 교서의 벼슬은 받지 못했지만 실력만큼은 교서를 지내고도 남음이 있었던 바, 이후 설도는 여(女)교서로 불리게 된다.

     

    설도는 그 바닥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잘 절제하여 뭇 남자의 유혹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림에도 조예가 있어 설도전(薛濤箋)이라고 하는 밑그림이 밴 분홍색 편지지를 만들어 팔았는데 남녀노소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명품으로서 주문이 쇄도했다. 그녀는 이렇게 번 돈으로 악적에서 이름을 지우고 성도 교외 완화계(浣花溪)라는 명소에 집을 짓고 시작(詩作)에만 몰두했다. 그런데 그녀 또한 여자이기 때문이었을까, 자신의 감정이 절제되지 못한 단 한 사람과 사랑에 빠져 상처받게 되는 바, 소설 '앵앵전'(鶯鶯傳)의 저자로도 유명한 시인 원진(元稹, 779-831)이 바로 그였다.

     

    원진은 백거이(白居易), 두목(杜牧)과 함께 당시 설도가 친교하던 문인으로, 원진이 성도의 지방관으로 발령이 난 이후로는 글동무 이상의 관계를 맺게 된다. 하지만 그가 타지방으로 전근을 간 후로는 영영 소식이 끊어지고 만다. 원진은 원래 바람끼 가득한 그렇고 그런 놈에 불과했던 것이었다.(원진은 설도보다 11살이나 아래였다) 그럼에도 설도는 그를 10년이나 기다린다. 하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완화계에서 은거하며 도교에 귀의해 살다 쓸쓸히 세상과 이별하는 바, 우리 가곡 '동심초'에 실린 그녀의 '춘망사'는 필시 그 기다림의 절창이었을 것이다.

     

     

    花開不同賞 花落不同悲

    欲問相思處 花開花落時 

    攬結草同心 將以遺知音

    春愁正斷絶 春鳥復哀吟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那堪花滿枝 翻作雨相思

    玉箸垂朝鏡 春風知不知

     

     

    피는 꽃 함께 즐길 이 없고

    지는 꽃 함께 슬퍼할 이 없네

    묻고 싶어라, 그리운 님 계신 곳

    꽃 피고 지는 이 시절에 

    한포기 풀을 따서 마음을 묶어

    내 마음 알아줄 님에게 보내려 하네

    봄의 시름을 그렇게 끊고자 하는데

    봄새 한 마리 다시 와 슬피 우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히 멀기만 하네

    마음과 마음은 한데 맺지 못하고

    하릴없이 풀잎만 맺고있네

    어찌 견디리, 꽃 가득한 나뭇가지

    괴로워라, 사모하는 마음이여

    눈물 주르르 아침 거울에 떨어지는데

    봄바람은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설도전'에 쓴 편지
    사천성 성도의 설도 상
    이같은 설도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는 훗날 원나라 잡극(雜劇) '서상기'(西廂記)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는데, 저자(왕실보로 추정됨)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앵앵으로 짓는 짖꿎음을 보인다.
    설도가 살던 완화계
    성도 망강루 공원에 있는 설도의 무덤. 비문에 여교서(女校書)로 추서해 새긴 것이 이채롭다.

     

    신영옥 동심초 동영상 노래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E3PrWlmHnS8

     

     

    그녀의 '님을 보내며'(送友人)라는 시를 한 편 더 소개할까 한다.(이것도 필시 원진과의 이별 노래일 것이며 '수국'은 위의 완화계를 말함이리라)

     

    水國蒹葭夜有霜

    月寒山色空蒼蒼

    誰言千里自今多

    離夢香如關塞長

     

    수국의 갈대에 밤새 서리가 내려

    달빛 차가운 산색과 더불어 창백하다

    누가 말했던가, 천년의 약속이 오늘 밤에 끝이라고

    이별의 꿈은 먼 관문의 요새만큼 아득하구나

     

     

    설도 시집(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전해지는 설도 그림

     

     

    1. 시와 노래로 흥을 돋우는 기녀를 말함인데,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린 기생과 달리 수청은 들지 않았다고 한다. [본문으로]

    2. 관청의 공문서를 작성하고 장서를 관리하는 직책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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