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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풍과 신풍(神風)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9. 10. 15. 07:47


    엊그제 일본 동부 지방을 초토화시킨 태풍 하기비스의 위력이 실로 무시무시하다. 일본열도에 상륙하기 전부터 1958년의 아이다에 맞먹는 초강력 태풍이라며 설레발치더니 과연 그러했다.(아이다에 의한 사망·실종자 1,269명, 재산피해 5,000만 달러) 일본은 워낙에 태풍이 많은 곳이라 웬만한 태풍에는 눈깜짝 않는 데 방송국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그 위력이 실감났다.(참고로 다음 해인 1959년, 우리나라에도 역대급 태풍 사라가 지나갔는데, 사망·실종자 849명, 재산피해 1,878억원이었다)


    ~ 사라호 태풍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는 부산 오륙도 등대섬 등대 앞에 쇠사슬로 묶여져 있는 2m 너비의 바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게 태풍 때 묻어 온 거란다.(그 사진을 아무리 찾아도 없다. 아래 차바 태풍 때의 사진으로 대신할란다)




    2016년 태풍 차바가 왔을 때 오륙도 등대섬을 덮치는 파도(출처: 연합뉴스)


    일본 나가노현의 피해 상황


    도쿄 에도가와구의 피해 상황(오른쪽 도로표지판이 거의 물에 잠겼다)


    지바현은 19만 호가 정전 단수 되었다.  



    위의 지바현의 피해 지역은 예전에 내가 2년 가까이 살던 곳이라 솔직히 안타까운 마음이 남달랐다. 진도 5.7의 지진이 함께 닥쳤으니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그러면서 다른 곳의 피해상황도 살펴보았는데, 문득 아래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라면을 비롯한 모든 대체 비상식량이 동이 난 매대에 덩그라니 남겨진 한국 라면..... 그 이유를 일본 네티즌들은 이렇게 말했단다.(아래 사진 밑 글) '비상시에 먹을 것이 못됨', '소중한 수분을 쓸데없이 소비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 내 짧은 식견으로는 '매운 라면을 먹으면 귀한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는 뜻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데, 그렇다면 일본 라면은 심심한가 하면 사실 또 그렇지도 않다.


    관련 기사를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답은 역시 혐한(嫌韓)으로, 台風 19號被害狂喜亂舞! 韓國 ネット「永遠被害つづき天罰ける民族 「反省のない惡質戰犯國天罰(태풍 19호에 미친 즐거움이 난무. 한국 네티즌, '영원히 피해가 계속될 천벌을 받은 민족', '반성 없는 악질 전범국가에 천벌')이란 제목 아래, 이번 태풍을 쌤통으로 여기는 한국 네티즌들의 원색적인 비난의 목소리를 길게 소개하고 있었다. 반면 마켓의 매대에 한국 라면이 남은 것은 반한(反韓) 감정 때문이 아니라 기호가 달라서 라는 의미였다.(글쎄, 절묘한 중의법이랄까....?)



    【国内】台風19号 買い込みの中、残った韓国製ラーメンが話題に ネット「非常時に喰うもんじゃ無い」「大切な水分を無駄に消費する可能性があるのに」



    이상에 대한 나의 생각은 한일 양국민 모두 일본 정치가들의 정치 놀음에 너무 휘둘린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한국 네티즌들의 대인배적인 글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런 댓글은 별로 찾아보기 힘들었고 거의가 비난일색이었다.(대인배적인 글에는 저들도 느끼는 것이 일을 터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일본을 편들거나 두둔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나 또한 일본의 태풍은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유는 그들이 태풍을 신풍(神風)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아주 오래 전 '마르코폴로'라는 대작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13세기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대원(大元)제국을 찾아와 보고 느낀 것을 쓴 '동방경문록'을 토대로 제작된 미·일 합작 드라마인데, 거기서 마르코 폴로가 어쩌다 원나라에 흘러온 일본의 맹인 도공(陶工)과 만나는 장면이 길게 소개됐었다. 그때 그 도공은 일본은 신풍, 즉 신의 바람이 부는 신의 나라이기에 세계를 정복한 몽골제국도 일본에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며 앞으로도 그 신의 바람으로 인해 정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모르긴 하지만 '동방경문록'에는 필시 이와 같은 대목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말한대로 그것이 미·일 합작 드라마이기에 그와 같은 쓸데없는 장면이 삽입됐던 것이었다. 물론 그 신풍, 즉 태풍으로 인해 2차례의 여몽연합군(1274년, 1281년)이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그로 인해 일본이 안전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정확히 말하자면 여몽연합군이 북 규슈를 잠시 스쳐간 것만으로도 가마쿠라 막부가 무너졌다) 하지만 당시 일본인들은 여몽연합군이 물러난 것은 자신들이 응전을 잘한 때문이라 믿었고, 이후로도 그와 같은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몽고습래회사(蒙古襲來繪詞)

    일본 가마쿠라 막부 말기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그림으로 여몽연합군과 일본군과의 전투를 그렸다. 가운데 활을 쏘고 창을 겨누는 군인들이 고려군이고 화살을 맞고 도망가는 왼쪽 군인들이 몽고군이다.



    조금은 놀랍게도 이와 같은 바람이 신의 가호라는 소리는 1910년까지도 등장하지 않는다.(1910년 '심상소학일본역사'는 몽골의 침입을 막은 것은 일본 무사들이 분전한 결과라고 기술됐다) 그러다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인 1943년(쇼와 18년) 일본 국정교과서에 비로소 신풍, 즉 가미가제가 등장한다. 몽골의 침입을 막은 것은 일본을 지키는 신이 큰 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니 곧 태풍은 신풍이 되었고, 오히려 무사의 분전은 교과서에서 사라져버렸다. 일본인들에게 '신국사상(神國思想, 일본은 신이 다스리고 보호하는 나라라는 생각)을 고취시켜 패망의 분위기를 어떻게든 반전시켜보자는 몸부림에의 반영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몸부림은 저 악명 높은 가미가제 특공대를 만들어내기까지 이르는데, 그 잔혹한 희생에 우리 조선인들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억울하고 또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미가제 특공대를 포함해 중국 전선과 태평양 전선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이 아직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데, 오래 전 그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을 때 내가 정작으로 놀란 것은 가미가제 특공대의 비행기가 아니라 가이텐(回天)이라는 인간 어뢰였다.



    야스쿠니 신사

    일본 관료들의 참배로 해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이곳에는 2차세계대전의 전범들을 비롯한 250만 명의 참전 군인들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하늘로 돌아간다는 뜻을 지닌 그 인간 어뢰는 일본인들도 차마 민망했는지 다른 무기들과 달리 신사 마당 한 구석에 청색 비닐로 덮여 있었다. 용도는 물어보나마나 그것을 운전해 미군 함정의 배 밑바닥에 충돌시키는 것이었겠는데, 그 비좁은 운전석에 갇혀 뚜껑이 닫혀진 그들은 가미가제 특공대보다 훨씬 비참한 경우였다. 아무튼 그런 비행기와 어뢰를 만들어내 운용한 일본인이다. 그들이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면 태풍을 탓할 자격도, 이웃 나라의 네티즌을 비난한 자격도 없다. 아니, 따지자면 오히려 그들은 그런 태풍을 사랑스러워 해야 한다. 자신들 나라를 지켜준 고마운 바람이었지 않은가.


    ~ 웃기는 일은 가미가제나 가이텐에 고관이나 귀족의 자제가 탑승한 예는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거..... 슬픈 일은 결국은 없는 집 자식이나 남의 나라 아들들이 그 희생물이 되었다는 거.....




    야마구치현 슈난시 '회천기념관'의 가이텐


    가이텐 단면도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 잠망경을 보면서 돌격 앞으로.


    바다에 내려지는 가이텐


    '회천기념관'은 개인 박물관으로, 2017년 10월 27일 30만명의 방문객을 달성했다고.....















    규슈 가고시마현 '가미가제특공대 박물관'과 전시물들

    이곳 가고시마에서 80여 명의 특공대가 출격했다.(그런데 위의 웃는 또라이는 뭐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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