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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 탄생에 관한 성서의 거짓 예언들 (II)
    신 신통기(新 神統記) 2019. 12. 3. 06:38


    앞서 마태복음에서 언급된 예수 탄생에 관한 예언을 실수에 의한 오기(誤記)가 아니라 하면 마태복음의 저자는 대단히 사기성이 농후한 자이다. 1천5백년이 넘은 (이삭의 아내) 라헬 시대의 이야기를 누가 알까 하여, 또한 600년이 넘은 예레미야의 발언 따위를 할 일없이 누가 확인할까 하여 은근슬쩍 집어넣어 혹세무민한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저자의 사기성은 아래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함으로써 절정에 이른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


    이 문장을 마태복음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옮겼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태복음 1:22-23)

     

    먼저 짚어볼 것은, 마태복음의 저자가 인용한 발언을 한 이사야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성서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이사야서에는 최소한 3명의 이사야가 등장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꼭 학자적 시각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적어도 2명은 짐작할 수 있다. 이사야서 1장 서두에는 이 글을 쓴 사람이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살던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라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이사야서 40장부터는 고레스(페르시아 왕 키루스, BC 600?-529)와 바빌론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44장부터는 실제적으로 고레스의 이름이 등장한다)


    위에서 거론된 가장 마지막 왕인 히스기야(유다왕국 14대 왕, BC 719-690)를 기준으로 해봐도 이사야가 살던 시기는 기원전 700년 경이다. 아다시피 히스기야는 앗시리아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왕이었다. 그런데 그 앗시리아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신바빌로니아는 다시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되므로 그 텀이 적어도 100년은 된다. 그런데 이사야서는 그 당시의 일을 한 사람의 이사야가 기록했다고 하고 있는 바,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서술임을 알 수 있다.



    히스기야의 지하수로

    히스기아 왕이 앗시리아의 공격에 대비해 식수를 마련하기 위해 판 지하수로이다.(역대하 32:3-4) 수원지 기혼 샘에서부터 실로암 못까지  525m 정도 된다.


    실로암 명판

    석공들이 서로 맞 파들어가 만나게 되는 감격적인 굴착 광경을 담았다. 관광객이 보고 있는 안내문 아래 것으로 복제품이다.(진품은 이스탄불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실로암 명판 복제품과 고대 히브리어 명문 글씨.

    1890년 그리스인 도굴꾼이 명판을 떼내 팔다 붙잡혔다. 이에 명문은 당시 이곳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에 손에 들어갔고 이스탄불 박물관에 보관되어졌다. 반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중요 문화재 중의 하나다.


         

    라서 이사야서는 누군가 전해오는 전승들을 묶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출처 불분명한 기록을 마태복음의 저자는 과감히 인용한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문장만 보면 과거 바빌로니아에 포수됐던 유대인을 고레스가 해방시켰듯, 하나님이 로마와 이방인 헤롯의 압제에 시달리는 유대 사람들을 위해 메시아를 보내 줄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마태복음 저자의 희망사항일 뿐이니 출저 불분명한 이사야서의 내용마저도 마태복음 저자의 의지와는 거리가 멀다. 먼저 마태복음 저자가 빌려온 문장을 분석해보자.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왕 아하스 때에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혹이 다윗집에 고하여 가로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찌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아람과 에브라임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을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육십 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데서든지 높은데서든지 구하라.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비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의 오는 날이니라.(이사야 7:1-17)


    무척 복잡한 듯 보이지만 위의 내용은 사실 간단하다. 유다 왕국의 아하스 왕 시절 두 적국(북이스라엘과 아람-다마섹 왕국)이 동맹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하자 왕과 백성들이 두려워 떨기 시작하는데, 그러자 선지자 이사야가 나타나 적들이 패해 도망할 것이니 두려워 말고 낙심치 말라 이른다.


    그러나 왕은 이 말을 믿지 못하고 확실한 증거를 보여달라 청하고, 이에 이사야는 어떤 처녀가 임신하여 태어난 아기가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는 사리분별을 알 때가 되기도 전에,(말하자면 철 들기 전에) 적국은 패망할 것이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곧 다가올 앗시리아의 공격이라고 말한다.


     

    분열시대의 북이스라엘·남유다 왕국 및 주변 나라들



    즉 이사야는 벌벌 떠는 아하스 왕을 달래기 위해 간단한 술수를 부린 것이니, 여기서 태어날 임마누엘이란 자는 다름아닌 이사야의 자식이다.(그의 둘째 아들로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그 아이가 철들기 전에 적들이 물러나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이런 막연한 예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신흥제국 앗시라아의 발흥과 침략도 그렇고.....)


    아무튼 이사야의 말에는 메시아 운운의 것들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마태복음의 저자는 그것이 마치 메시아의 탄생을 언급한 양 구라를 치고 있는 것이다. 또 그 구라를 목사나 신부들이 빌려와 떠드는데, 일반 신도들은 설령 모르더라도 그 내막을 알고 있는 목회자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예수 탄생과 연관시켜서는 안 될 터이다.


    하지만 올해도 예외 없이 목회자들은 크리스마스에 즈음해서 위 내용이 예수의 탄생을 예언하는 구약의 문장이라며 신묘한 듯 떠들어댈 것이 뻔하다. 이런 사람들은 적어도 미필적고의를 지닌 양심불량자라 할 수 있겠는데, 다만 모르고 인용하는 무식에 대해서는 어떤 지적을 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아울러 한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때 이사야갸 말한 처녀는 당연히 자신의 와이프나 동네의 여느 처녀일 뿐이리라.(그저 비유를 들기 위한)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이사야서의 동네 처녀가 갑자기 성(聖)처녀 동정녀 마리아로 둔갑을 하는데, 이와 같은 모순에 대해서는 이미 '엘리야와 모세를 태우고 나타난 서기 30년의 UFO'의 섹션에서 다뤘고, 또 '예수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누구인가 II'를 통해서도 부연 설명을 한 바 있으므로 더 이상 언급을 삼가겠다. 다만 읽는 분의 편의를 위해 아래와 같은 다이제스트만을 붙이려 한다.

     

    위 이사야서 문장에서 문제의 대목을 떼어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3-14)


    언뜻 들여다보면 뭔가 있어 뵈는 문장이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착시효과일 뿐이니, 이사야서의 임마누엘은 그야말로 젊은 처녀가 잉태해서 낳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God is with us/Immauel)'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저 이사야의 평범한 둘째 아들에 불과하다. 즉 이사야서의 임마누엘은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난 예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사야서(7:14)에 써 있는 알마(עַלְמָה)는 그저 '젊은 여자'의 의미일 뿐이다. 따라서 젊은 여자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로서 특기(特記)할 만한 것이 전혀 못된다. 히브리어에서 동정녀를 뜻하는 단어는 알마가 아니라 베툴라(בתולה)라는 것 역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내가 전에 '마태복음 저자의 저의가 의심된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인데, 혹 마태복음의 저자가 히브리어를 모르는 데서 기인된 실수일 수는 있겠다.



     

     사해사본 이사야서

     이스라엘 쿰란동굴에서 발견된 세계 최고(最古)의 구약 문서이다.


     사해사본 이사야서 속의 문제의 단어 '알마'                        

     

     

      위 이사야서가 발견된 쿰란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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