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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 탄생에 관한 성서의 거짓 예언들 (I)
    신 신통기(新 神統記) 2019. 11. 30. 00:42


    작년 이맘때 예수의 탄생을 조명하며, 그의 출생은 축복일는지 모르겠지만 동시대에 다른 아기들에 있어서는 불행이라는 취지의 글을 썼었다. 성서의 내용에 의하자면, 예수의 탄생으로 인해  유대 왕 헤롯은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그리하여 인근의 두 살 이하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마태복음 2:16) 아이와 그 부모들로서는 세상의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서에서는 어느 한 줄, 죽은 아기들이나 그 부모들에 대한 미안함을 담지 않았다. 내가 분노하는 것은 그와 같은 성서의 이기주의다.(☞ '예수는 언제 태어났는가II')





    게다가 그것이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말했던 여호와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자찬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분노를 넘어 차라리 어이가 없다. 그리하여 '세상에 이와 같이 뻔뻔스런 종교가 또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인데, 잠시 그 대목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마태복음 2:16-18)


    그런데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와 같은 예언을 한 적이 없었으니 이는 오직 마태복음 저자의 자의적 해석에 불과할 뿐이었다. 우선 그 대목을 살펴보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31:15-16)


    이 두 절의 문장만 보아서는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을 뿐더러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가 알 만한 라헬은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아내 라헬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라마(예루살렘의 북쪽 지방)라는 곳에서 통곡할 이유는 전혀 없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식이 죽거나 실종되었거나 하는 아픔을 겪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야곱과 베냐민의 두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예레미야서에는 사실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시기가 기록돼 있다. 예레미아가 위 예언을 한 시기가 예레미아 '위로의 서'가 쓰여진 해와[각주:1] 유다 시드기야 왕 재위 10년, 느부갓네살 왕 18년 째 되는 해의[각주:2] 사이였다.


    즉 예레미야는 기원전 587년과 588년 사이에 여호와의 예언이라며 위의 말을 한 것이다. 그중 기원전 588년은 신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유다왕국이 완전히 멸망하는 시기인 바, 수도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누란의 위기에 놓였을 때였다. 그 시기는 마땅히 주목할 만하다. 향후 600년 후 쯤에 누가 태어날 것이고, 그 아기로 인해 위협을 느낀 당시의 위정자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기들을 죽일 것이며, 그 때문에 그 부모들이 통곡할 것이라는 한가한 소리를 늘어놓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마태복음의 저자가 어지간한 역사적 지식이 있었다면 절대 이와 같은 말을 곁들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딱하게도 마태복음의 저자는 당시가 얼마나 급박한 상황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다.


    예레미아가 위의 말을 한 그 얼마 후, 예루살렘에서는 시드기야의 두 아들이 아비가 보는 앞서 살해되고 신하들도 참수되며 시드기야 왕 본인은 두 눈이 뽑혀 바빌로니아로 끌려가게 되는 바, 만일 예언이 필요하다면 그와 같은 것을 말해야지 쓸데없이 600년 후을 떠들었다는 것은 그저 어불성설일 뿐이다. 쉽게 말하자면 고려 말의 무학대사가 일제에 의한 조선 합병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무학대사의 한창 때는 당장 고려가 망하게 된 위급 지경이었다)


    기독교는 사실 이 예언을 되도록 거론하지 말고 두루뭉술 넘어가자는 분위기다. 그래도 뭔가는 말해야 했을 터, 위의 라헬은 이스라엘의 어머니를 비유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운다.('고고학 성서' 외) 북왕국 이스라엘의 유력 지파였던 에브라임과 므낫셋의 조모가 라헬이며(창세기 48:1-2) 그녀의 무덤이 있는 에브랏이 곧 라마이므로(정확한 고증인지는 모르겠지만) 라마에 묻힌 라헬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이스라엘의 후손들을 애통에 했는데,(예루살렘 사람들이 바빌로니아로 잡혀갈 때 라마를 통과해야 했으므로) 그때 예레미야는 그 슬픔을 보듬을 예수의 탄생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대체 어디에 그런 말이 있는지....? 아니 그런 의미를 유추할 만한 단어 하나라도 있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것은 없다. 비유나 메타포(Metaphor)도 아니다. 아울러 이같은 기독교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에서도 벗어난다. 라헬이 에브라임과 므낫셋의 조모인 것은 맞으나 그들이 세운 북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133년 전에 앗시리아에 멸망해 그들 10부족(에브라임과 므낫셋 외 북이스라엘을 이루었던 8부족)은 역사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BC 722년)


    따라서 라헬이 애통해 하려면 조손(祖孫)들이 멸망한 그때 했어야지 조손들의 친척인 유다와 시므온 후예들을 133년 뒤에 애곡함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물론 이때 예수가 끼어듦은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끼어들 자리도 없다. 즉, 위 마태복음에서 언급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거짓말이라는 것인데, 마태복음의 저자가 왜 그러한 발상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할 길 없다.



    이스라엘의 12지파


    1910년대의 라헬의 무덤과 베들레헴 마을


    지금 웨스트 뱅크 내에 있는 라헬의 무덤은 신축된 벽에 둘러싸여 있고


    다시 웨스트 뱅크 분리 장벽에 둘러싸였으며


    입구에서는 이스라엘 측의 검문을 받아야 한다.


    성서에 예언은 없었지만 지금 가나안 땅은 이처럼 나뉘어졌으니


    '예수 탄생 교회(Church of the Nativity)에 가기 위해서도 총을 든 팔레스타인인 앞을 지나야 한다. 교회가 웨스트 뱅크, 즉 팔레스타인 공화국 내에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곳은 이스라엘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니 그들에게 예수는 소 닭 보듯 하는 정도.....


    '예수 탄생 교회는 324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전래돼 오는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동굴에 교회를 짓게 한 것이다.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누가복음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화살표는 예수 탄생 동굴의 입구)


    아무튼 동굴 입구의 작은 문을 굽혀 통과해 내려가면,(그래서 일명 '겸손의 문'이다)


    성처녀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는 장소를 볼 수 있는데,


    앞서 말한 바대로 이 은빛 별 판은 예수 탄생 때 뜬 베들레헴의 별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 축복 받은 땅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1. 예레미야 30:2 [본문으로]
    2. 예레미야 32: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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