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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천지를 찾아나선 코르테스와 그가 퍼뜨린 전염병
    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0. 2. 22. 23:12


    신천지예수교 어쩌구하는 기독교 관련 종교단체로 인해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모범 방역국이었던 우리나라가 하루아침에 박살이 났다. 교주 이만희는 마땅히 대국민 사과부터 해야 했거늘 개구제일성(開口第一聲)인즉 "금번 병마 사건은 신천지가 급성장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일으킨 마귀의 짓으로 안다. 더욱 더 믿음을 굳게 하자. 우리는 이길 수 있다"는 비상식적인 발언이었다. 그 마귀가 나온 곳은 31번째 '코로나 19'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알려진 대명동 신천지 대구교회이거나 이만희 형 이모씨의 장례식이 있었던 청도 대남병원 둘 중 하나이다.    


    즈음하여 더욱 화가 났던 것은 '코로나 19'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일부 개신교 목사들의 황당 주장이었다. 멋드러진 예복(과거에는 개신교 목사들의 경우 천주교 미사복을 모방한 이와 같은 옷이 없었기에 명칭은 모르겠다)을 차려입은 그들이 강대상 앞에서 내뱉은 말은 모두 귀를 의심하기 충분한 말들이었는데, 보도된 내용을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얼마 전 중국 정부가 하나님을 탄압하고 선교사를 쫓아내고 교회를 폭파했다. 조심스럽지만 전염병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 우리 아빠가 주시는 것이다."


    "중국 시진핑이 하나님 눈에 악한 정책을 만들었다. 성경이 말하는 전염병은 범죄한 백성들과 그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하나님이 지금 중국을 때리고 시진핑을 때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말을 한 목사는 과거 "일본에 쓰나미가 덮친 것은 하나님을 안 믿어 벌을 받은 것"이라는 망언을 한 목사와는 같은 교단 소속으로, 그 목사들의 이름과 얼굴까지 모두 보도되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이 지면에는 올리지 못한다. 경험으로 보자면, 티스토리에서는 신고가 들어올 경우 가차없이 게시중단이라는 임시조치를 내리는데, (어렵사리) 이의신청을 하고나서도 원문을 복원시키려면 천상 목적했던 목사의 실명과 교회의 이름이 제외돼야 한다.(이는 네이버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이미 보도된 내용으로써 세상이 떠들썩한 사건이라 해도 일단 신고를 받으면 블로그 운용자 측에서 게시물을 내린다. 그리고 메일로 알려준다. 이는 매우 불합리하다. 개인이니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아무튼 교회 신도들은 제 교회 목사를 흉보면 가만이 있지 못하니,(1999년에는 방송국에 난입해 송출을 중단시킨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운용자 측에서도 송사 등에 휘말려 번거롭기 싫으면 글을 내리거나 고치라는 식으로 종용한다.


    이에 이번에는 알아서 실명을 피하는 비겁함(?)을 보였다. 솔직히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작금의 혼란을 기다렸다는 듯,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종말론이었다. 요즘 내가 다시 들은 성경 구절, 즉 "(종말의 시기가 오면)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고 한 예수의 언급은, 언제나처럼 그 말을 들어야 될 사람이 오히려 애용하고 있다.


    그들은 그 말로써 혼란을 부추킨다. 그래서 나는 세상 종말론의 대부분의 진원지인 목사들의 주둥이를 꾸짖고 싶었다. 하지만 자칫하면 도리어 내연(內燃)하는 종말론에 풀무질을 하는 꼴이 될는지 모르고, 이에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으로 가는 길'에 언급된, 어음까지 긁어간 어떤 사이비 목사의 생각에 문득 모골이 송연해져 주제를 바꿨다. 기독교와 천연두와 매독을 무기로 신천지를 점령했으나 결국은 패가망신한 정복자 코르테스의 이야기로.(마침 신문에서 코르테스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는데, 우연찮게 '코로나 19'가 극성인지라 접목을 해보았다) 


     

    1992년 발행된 스페인 지폐 속의 코르테스

     


    1519년, 500여 명의 군사와 말 16필, 15문의 캐넌포와 함께 중미 아즈텍 정복에 나섰던 에르나도 코르테스(1485-1547)는 쿠바를 다스리던 스페인 총독 디에고 베라스케스의 주둔 명령을 무시하고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상륙했다. 그리고 타고 온 배를 침수시켜 정복의 결기를 보여준 그는 내륙으로 진군하여 결국 아즈텍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에 입성했다. 아즈텍 제국의 황제 목테수마는 그와 같은 코르테스를 기쁨으로  맞았다.(1519. 11. 8) 이방인 코르데스를 신이라 여겼기 때문인데, 얄궂게도 아즈텍 제국에는 '먼 길을 떠났던 신이 돌아와 다시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는 전설이 있었다.



     코르테스의 정복 루트


    목테수마와 만나는 코르테스



    하지만 돌아온 신은 무자비하고 포악하였으며 또한 탐욕스러웠다. 아즈텍 제국의 황금을 본 코르테스는 머잖아 본성을 드러냈으니, 목테수마 황제를 붙잡아 유폐시켰다. 코르테스로서는 일이 술술 풀리는가 싶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으니, 쿠바 총독 디에고 베라스케스가 군사 1,400명을 보내 코르테스와 그의 군대를 무장해제시키려 든 것이었다. 힘을 얻은 코르테스가 자신의 자리까지 넘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저지른 공격이었다. 하지만 다 된 밥을 밥통채로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인 터, 코르테스는 테노치티틀란에 100명의 군사만을 남긴 채 베라스케스의 군대와 일전을 치르러 나갔다.



    테노치티틀란을 점령한 코르테스



    코르테스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베라스케스의 군사를 제압했다. 누가 봐도 코르테스는 운이 좋은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으니, 그가 베라스케스의 군사와 싸우는 동안 테노치티틀란에 남겨진 100명의 군사가 아즈텍의 귀족들을 처형했고, 이에 분노한 아즈텍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 스페인군을 역으로 공격한 것이었다. 코르테스는 군사를 걷어 급히 테노치티틀란으로 돌아갔으나 백성들이 사른 분노의 불을 끄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코르테스는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그저 목숨을 건져 귀환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병사들도 거의 목숨을 잃었으니 제 몸무게보다도 많은 금을 챙긴 병사들의 몸이 제대로 움직일 리 없었다.



    '비통한 밤'의 풍경


    '비통한 밤'의 풍경



    스페인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비통한 밤'이라고 부른다.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에 패한 최초이자 마지막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아즈텍이 독립하지는 못했다. 스페인에게는 기마병과 총과 대포보다 더 강한 무기를 장착하고 있었으니 바로 천연두와 매독 바이러스였다. 매독은 코르테스도 걸려 있던 상태로서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었지만 천연두는 달랐다. 천연두는 원래 소와 인간이 공유하던 질병이었다. 따라서 소로부터 얻어지는 자연면역력도 존재했지만 중남미 대륙에는 소나 말과 같은 짐승이 애초부터 없었던 바, 면역력의 제로 지대였다. 아즈텍인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나갈 수밖에 없던 이유였다.  


    코르테스가 멕시코 정복을 감행한지 50년도 되지 않은 1568년 멕시코 인구는 상륙 당시의 10분의 1 이상 줄어들었고, 아메리카 대륙 전체는 콜럼부스 상륙 이후 95%의 인구가 감소되었다. 스페인 군에 처형당한 목테수마에 이어 황제에 오른 쿠이틀라우악 역시 천연두로 사망했다. 코르테스는 그 땅에 다시 들어왔고 이번에는 쉽게 테노치티틀란을 점령했다. 이후 그곳은 멕시코 시로 이름이 바뀌었고 아즈텍 제국은 누에바에스파냐(새로운 스페인)가 되었다.



    피렌체 코덱스의 그림

    1540-1585년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그려진 그림으로 천연두에 걸려 죽어가는 아즈텍인을 묘사했다.



    그러나 코르테스의 영화는 그리 길지 못했으니 쿠바 총독을 지낸 디에고 베라스케스 같은 정적들이 그를 내내 음해했고, 결국 5년만에 총독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후 그는 또 다른 전공(戰功)을 찾아 온두라스의 밀림을 헤메고 다녔고 심신이 크게 상했다. 게다가 계속된 탐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거금의 빚을 져야 했으며 이로 인해 갖가지 소송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국왕 카를로스 1세에게 편지를 보내 누에바에스파냐의 총독으로 재임명해줄 것을 끝없이 간청했다. 자신이 개척한 신천지에서 말년을 보내겠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카를로스 1세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그는 코르테스를 수도인 톨레도로 불러 왕궁 정원에서 후작의 작위와 함께 누에바에스파냐 총독의 자리를 하사했다. 하지만 그의 신천지를 향한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출항지인 세비아 항으로 가는 길에 그만 죽고 말았던 것이다. 영원한 콩키스타도르(정복자)의 운명이었다고나 할까.....



    고향 메데인에 세워진 코르테스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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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