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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으로 가는 길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0. 2. 11. 00:32
2005년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은 이슬람에 의해 점령된 성도(聖都) 예루살렘 탈환하려는 십자군의 싸움을 그린 영화로서, '킹덤 오브 헤븐'의 제목은 번역되지 않고 그대로 개봉됐다. 하지만 러닝타임이 워낙에 긴 영화였기 때문인지 내용을 제멋대로 축약시켜 상영해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십자군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없는 사람은 무슨 얘기인지 몰라서 재미없었고, 반대로 지식이 있는 사람은 제멋대로 건너뛰는 스토리에 재미가 반감된 그런 영화였다.
이에 리들리 스콧이라는 유명 감독이 만든 이 대작 영화는 적어도 국내에서는 흥행에 실패했는데,(국내에서 에픽무비는 웬만하면 다 먹어줌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감독판 DVD를 보니 예전에 느끼지 못한 감동이 있었다.(차라리 영화관에서 감독판을 상영했다면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이 블로그에서도 십자군 전쟁과 관련하여 '킹덤 오브 헤븐'에 대한 몇 차례 언급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 제목만을 빌려 논해 보겠다. 십자군 지휘관 발리안이 "이곳 예루살렘이 '하늘의 왕국'이면 신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라스트 신의 멘트가 특히 인상 깊던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오늘날 '킹덤 오브 가드(Kingdom of God)'라는 말과 거의 같게 쓰이는 것 같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나라'로 통칭되고 있는 것인데, 원래 이 두 말은 분리되어 사용되었다. '킹덤 오브 헤븐'이라는 말이 처음 쓰인 곳은 1611년의 흠정영역성서(King James Bible)일 것이러니, 거기서의 '킹덤 오브 헤븐'은 아마도 아래 다니엘서(書)의 해석에 가장 잘 부합되는 말이리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다니엘 2:44)
세례자 요한은 그 '킹덤 오브 헤븐'을 설파한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계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In those days Jhon the Baptist came, preaching in the Desert of Judae and saying. "Repen,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마태복음 3:1)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And this gospel of the kingdom will be preached in the whole world as a testimony to all nations, and then the end will come./마태복음 24:14)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의지와 달리 그 하나님의 왕국은 지상에 도래하지 않았고, 또 오려면 아직도 한참 있어야 될 듯싶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가장 열심히 염원하고 있는 곳은 당연히 교회다. 세례자 요한의 말을 인용해 천국이 곧 도래할 것이니 회개하라고도 하고, 학개, 스가랴, 말라기의 말을 인용해 협박하기도 한다.(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면 심판을 받게 되고 그 심판에서 탈락된 자는 지옥불로 직행함) 결론은 대개 돈을 내놓으라는 소리로 귀결되니, 과거 휴거를 외치던 목사 중의 한 놈은 약속어음과 같은 환매조건부채권을 받기도 했다.
휴거는 예수의 공중 재림 시 선택받은 자는 공중으로 들어올려진다는 헛소리로, 약 30년 전 유·무명의 목사들이 떠들어대던 시한부 종말론이었다. 그 날짜는 1992년 10월 28일, 어차피 하늘나라에 갈 것이라며 재산을 교회에 헌납한 사람도 실제로 생겨나던 마당이었다. 이때의 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른바 휴거일에 전국 166개 교회에서 8,200여 명의 신자들이 흰 옷을 입고 광란의 기도를 드렸다는데, 가장 웃겼던 일은 앞서 말한 목사 새끼가 받아 쥔 그 채권의 환금 날짜가 휴거일 이후였다는 거..... - -;;
휴거 상상도
그때 나는, 아무리 돈에 미쳤다한들 소위 목사라는 자가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분개했는데, 좀 더 교회라는 세계에 접근해보니 목사라는 놈들은 거의가 이렇듯 돈에 미쳐 있었다. 그래서 앞서 '교회가 곧 성전이라는 착각'에서 말한 것처럼 교회에 전 재산을 바치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는다. 이빨 한마디로 타인이 평생 피땀 흘려 벌은 재산을 꿀꺽하겠다는 것인데, 그 돈은 과연 어디로 가는가? 그것이 하나님에게 가긴 가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왜 그렇게 늘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가? 하는 질문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뱉지는 못하니 다음과 같은 기발한 발상이 넘친다.
"요셉의 가난, 이는 하나님이 따라해야 할 힘든 행동이다"
요셉 역시 예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들어 교회의 과도한 헌금 요구를 비꼬았다.
이렇게 말하는 목사님은 당연히 없다. 그러나 돈 때문에 감옥에 가는 목사는 미투(me too) 목사보다 훨씬 많다. 돈을 목적으로 사기를 친 목사를 말하라면 한도 끝도 없다. 뉴스에서처럼 TV 고발프로에서처럼 대놓고 말은 못 하겠지만, 그들은 헌금으로 교회를 짓고, 일가를 위한 사업을 하고, 그것들을 제 자식에게 물려준다. 말은 늘 이웃 사랑을 외치지만 정작 이웃을 위해 하는 일은 별로 없다.(참고로 휴거를 외치던 목사들은 여전히 강대상에 서 있고, 심지어 어음 목사도 출소 후 개명하여 본업에 충실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개중에는 아래와 같은 목회자도 있다.
나는 오래도록 가난해지기를 기도했고 마침내 가난해졌다. 평생 편하게 살던 책상물림이 가난 속에 빠지니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삶이 일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 안에서 새롭게 깨닫게 된 복음의 진리들이 땅에 떨어져 나와 함께 무시당하는 걸 견디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복음이 왜 가난한 자에게 전해지고 하나님 나라가 왜 작은 자들의 나라인지를 몸으로 알게 되었다. 몸소 하나님 나라이셨던 예수님을 내 몸으로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가난의 신비를 알게 되었다.기독교 신앙에서 가난은 단순한 선택사항이 아니라 오직 유일한 길이다. 그 사실은 오직 그 길에 들어선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다. 두렵고 떨리는 길이다. 뉘라서 무명함과 무력함을 선택하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 길에 들어설 때만이 온전히 하나님을 의탁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을 지나서 들어서게 된 길이 바로 이 길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괜히 하신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이야말로 복음의 중핵이며 하나님 나라의 알짬이다. 돈이 없어야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수 있다. 돈이 없어야 생명의 역사가 나타날 수가 있다. 나는 내가 가는 이 길이 좁고 험한 길임을 잘 안다. 함께 이 길을 걷기로 결단하는 용기 있는 분들을 보고 싶다. 하나님 나라는 결국 돈이 아니라 하나님인 나라이다.(출처: www.newsm.com)
하지만 매우 드물고, 그외 대부분의 목사들은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해야 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교묘히 선동해댄다. 나는 그런 목사들도 싫지만 그런 목사들에 속아 헌금을 하는 넋빠진 교인들도 싫어한다. 그래서 이래저래 교회와는 담을 쌓고 사는데, 천국에 갈 생각일랑 물론 진작에 접었다.(과거 교회 다닐 때 갖다 바친 헌금을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상한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와 같은 멍청한 짓을 한 자신이 생각할수록 한심스럽기 때문이다)그런데 얼마 전 '라디오스타'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다 문득 천국에 가는 길을 발견했다. 천국 가는 길은 천로역정(天路歷程)이 아니라 선행(善行)이라는 쉬운 일을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션이라는 연예인이 아내 정혜영과 함께 선행을 해온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 부부가 기부한 돈이 지금까지 무려 45억으로, 여러 선행·기부 행사에 앞장 서서 모금한 돈인데, 액수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 부부가 아직 집이 없다는 고백이었다. 자신들의 집은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짓기로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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