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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벨탑과 이스라엘의 언어
    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0. 2. 6. 07:42

     

    1948년 이스라엘 공화국이 건국되고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을 받아들일 때, 어디까지를 유대인으로 인정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유대인이 나라를 잃고 떠돈 지가 무려 2000년, 혼혈이 이루어져도 한참이 이루어졌을 터, 그 기준을 마련하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이를테면, 부계 모계가 모두 유대인이라야 유대인인가, 그 한쪽만 유대인이면 유대인인가, 아니면 (증명할 수 없더라도) 조상 중에 유대인이 있으면 유대인인가,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쿨하게 이 모두를 유대인으로 인정했다.(일단은 국민을 만드는 게 급선무였을 터. 다만 유대교를 믿어야 한다는 조건은 붙었다)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인은 피부색이 없다. 서유럽 계통의 백인이 있는가 하면 러시아 쪽에서 온 슬라브 계통의 백인들도 있고, 흑인들도 있으며, 심지어는 우리와 같은 모습의 극동 아시아계의 사람들도 있었다. 아랍계 형상의 유대인들 또한 당연히 있었다.(근본을 따지자면 이들 유대인이야말로 원조 유대인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곧 피부색의 여하를 불문하고 주권을 위한 '건국전쟁', 이른바 1차 중동전쟁에 투입되어진다.(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운 국가의 3요소에 영토, 국민, 주권이 있었음이 기억난다)

     

     

    이들은 모두 유대인이다.

     

    시오니스트들이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타협으로 만든 영토, 개방적 이주정책으로 만든 국민, 그리고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주권..... 이렇게 국가를 만들었지만 그에 앞서 선결되어야 할 요건이 있었다. '우리는 어떤 언어를 써야 할 것인가'였다. 유대인들이 과거 사용하는 언어가 없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던 히브리어와 문자는 진작에 사어(死語)가 되었으니, 기원전 280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서 만들어진 히브리어의 희랍어 번역판성서 '셉투아긴트'(Septuagint, '70인역 성서')는 이민자들의 모국어가 얼마나 빨리 사어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과 70인역 성서')

     

     

     

     

     

    초기 이주자들의 모습

     

    그와 같은 고민을 벤 야후다(1858-1922)라는 인물이 해결했다. 당시 러시아 땅 벨라루스에서 태어난 유대인 벤 예후다(본명은 레이제르 이츠호크 페를만)는 세살 때부터 종교의식 등에만 남겨져 사용되는 히브리어를 접했고 이후 엄격한 유대인 가정환경 속에서 고대 히브리어와 토라(유대교 경전)를 공부하였던 바, 대학 진학 전(前) 성서와 탈무드, 미슈나, 토라 등의 여러 유대교 경전과 히브리어에 해박하였다. 그는 고교 졸업 후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 진학해 그곳에서 현대 히브리어를 만들었고, 이것을 이산(離散)된 유대사회를 결집시킬 수 있는 언어, 즉 유대인의 공용어로 만들 것을 결심했다.

     

    더불어 그는 당시의 유대인 국가 건립 운동, 이른바 시오니즘 운동에 뛰어들었던 바, 오스만 제국령이던 팔레스타인으로 일찌감치 이주해(1881) 고대 유대인의 언어를 현지에 되살리려는 노력을 했다. 없던 언어(혹은 문자)를 만들어 통용시키려는 일은 일국의 왕(세종대왕)도 하기 힘들이었지만,(사실 다른 시오니시트는 언어에 대한 관심이 없었으니 대충 현지어인 터키어나 영어를 쓰면 되지 않겠나 하는 분위기였다) 점차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여러 곳에서 이주해온 유대인 사이의 공용어 문제가 부상하면서 벤 예후다의 염원은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놀라운 것은 벤 예후다가 복원시킨 히브리어가 1948년 이스라엘 공화국 건국 후 공용어가 된 것이 아니라 1922년 11월, 오스만 투르크에 뒤이어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던 영국 정부에 의해 지역의 공식 언어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평생을 괴롭혀 온 폐결핵으로 사망하기 꼭 한 달 전이었다.(그가 죽고 난 뒤 미완성의 16권의 히브리어 대사전이 그의 부인과 아들 예후다에 의해 발간된다)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이 자신의 당대에 실현되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언어의 복원이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를 복원시키는 대역사(大役事)가 되었다.

     

    초기 이스라엘 공화국에 이주해온 사람들의 언어는 당연히 제각각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각 언어권에서 온 사람들이 제각각의 권역을 형성할 수도 있었지만, '단일 언어를 쓰는 단일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시대의 애국적 분위기에 편승해 그동안 자신들이 사용해온 언어를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히브리어를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그들은 서로 불편했지만 소통을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독일어와 히브리어의 중간 언어로서 유럽계 유대인이 사용하던 이디시어마저도 축출되었다. 그와 같은 언어의 소멸과 탄생 과정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역사기행>의 작가 오가와 히데키(小川秀樹)는 다음과 같이 논했다.

     

    지금 이스라엘에서 이디시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승려복을 입고 19세기의 동유럽 생활방식을 완고하게 지키고 있는 종교적인 사람들뿐이다.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이디시어로 간행되던 일간지가 폐간되었다는 뉴스를 1995년 프랑스에서 접한 적이 있다. 어찌 되었건 한 민족의 언어가 이만큼 드라마틱한 과정을 겪은 것을 일찍이 보지 못했다.

     

    여기서는 번외적인 것이지만, 음식에 대해서는 이렇게 논했다.

     

    소위 이스라엘 요리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주자들이 가지고 온 러시아 요리와 루마니아 요리, 헝가리 요리와 프랑스 요리 등이 개별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억지로 이스라엘 요리를 든다면 피타라는 빵 속에 튀긴 콩 앙금을 싸서 먹는 파라페르, 빙빙 돌리면서 구운 원통형의 고깃덩이에서 잘라낸 고깃 조각을 빵에 싸서 먹는 슈와르마 등을 들 수 있지만, 이것은 오히려 중동지역 요리로 그 지역 일대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요리의 미(美)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그 기원은 외국에 있고, 이스라엘 향토요리를 고집한다면 그것은 지중해 일대에 퍼져 있는 무국적 요리가 되어 버린다. 2천년 간의 방랑(디아스포라)을 계속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내가 오늘 벤 야후다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처럼 지상의 한 인간이 이룩한 일을 왜 하나님은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니, 오히려 왜 그와 같은 일을 훼방 놓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다름 아닌 구약성서 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바벨탑에 관한 이야기이다. 거두절미하고 우선 그 대목을 살펴보자.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세기 11:1-9)

     

    창세기의 이 유명한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시날 평원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이주자들의 건국 의지를 언어를 혼잡케 함으로써 분쇄시킨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걸로 끝나고, 이어서는 노아의 장자(長子) 셈의 족보가 이어지는 바, 하나님이 왜 이주자의 도시 건설을 훼방놓았는가에 대한 여타의 짐작도 허용하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임팩트 강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섬처럼 독립적인 이야기로서 떠돈다. 갑자기 (얼토당토 않게) 이 이야기를 끼워놓은 성서는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흔히 말하는 것처럼, 미천한 인간이 하늘에 도전함을 노여워 한 신이 인간들의 교만을 징벌한 내용이었을까? 그래서 '누구든 감히 신에게 도전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픈 것일까?

     

    하지만 앞서 '바벨탑과 언어혼란의 진실'에서도 말해듯 이 이야기의 핵심은 '신의 인간 대한 징벌'이 아니다. 오히려 핵심을 찾자면 '튼튼한 도시를 건설하여 유리되지 않고 공생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건전한 의지'라고 볼 수 있다. 탑의 건설은 그 의지에의 실천이었다. 그런데 그 같은 의지를 하나님은 불쾌히 여기고 있는 것이다. 다음 2편에서는 그런 하나님의 오해를 풀어보고자 하는데, '바벨탑'에 관한 이야기는 좀 진전된 게 있지만 '언어혼란'에 대서는 별 달라진 것이 없다. 기존의 독자라면 그저 진실이 밀려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해하시고 읽어주셨으면 한다.

     

     
     
     

     

     

     

    추억의 만화 '바벨 2세' 속의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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