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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안(全視眼, All seeing eyes)을 가진 편작전설 따라 삼백만리 2020. 3. 18. 20:54
신의(神醫) 화타에 어깨를 견주는 의사는 편작(扁鵲)이다. 그래서 흔히 '화타와 편작'으로 불려 동시대의 사람 같지만, 화타는 후한(後漢) 말의 사람이고 편작은 전국시대 사람이니 최대 620년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그런 시간차를 가짐에도 두 사람이 같이 거론되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불세출의 인물이었다는 방증이다. <삼국지> 조조와의 일화로 유명한 화타의 뇌수술 가능성에 관해서는 앞서 설명을 마쳤던 바, 이번에는 편작의 전시안(全視眼, All seeing eyes)에 관한 가능성을 논해보기로 하겠다.
CT나 MRI 같은 의료기기가 없던 옛날, 의사들은 진료를 모두 사진(四診)에 의존했다. 그 사진이란
첫째는 망진(望診)으로, 보고 진단을 하는 것이요,
둘째는 문진(聞診)으로, 들어서 진단을 하는 것이다. 즉 목소리, 숨소리, 기침 소리 등을 듣고 장기의 상태를 판단했다.
셋째는 물을 문 자 문진(問診)으로, 환자에게 몸 상태나 아픈 곳을 물어 아는 것이요,
넷째는 절진(切診)으로, 환자의 몸을 만져 상태를 아는 것이니 맥을 짚는 맥진(脈診)이나 배를 눌러 살피는 복진(腹診)도 절진에 속한다.
바람직한 경우는 아니지만 민간에서는 이 사진의 순서를 명의의 척도로 삼았다. 즉 많은 진료 단계를 거치지 않고 그저 척 보면 아는 의사를 최고로 쳤던 것이다. 그런데 그중의 첫번 째인 망진만으로 환자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놀랍게도 그와 같은 의사가 2500년 전에 존재했었다. 그 사람이 바로 편작(扁鵲)으로 <사기>에 전하는 그의 신통력은 다음과 같다.
편작이 제(齊)나라에 갔다. 그가 제나라 환후(桓侯)를 조정에서 예방(禮訪)하며 말했다.
"군주께서는 피부와 근육 사이에 작은 병이 있습니다.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장차 손 보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아픈 데가 없던 환후가 냉소했다.
"과인은 병이 없소이다."
편작이 문을 나가자 환후가 신하들에게 흉을 보았다.
"의사들은 큰 공을 세워 자신의 이름을 떨치기를 원하지. 그렇다고 아프지도 않은 사람을 아프다고 하면 되나?"
그 닷새 후, 환후를 만난 편작이 다시 말했다.
"군주의 병은 이미 혈맥까지 침투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치료하지 않으면 장기(臟器)에까지 번질 것입니다."
환후의 대답은 전과 같았다.
"과인은 병이 없소."
편작의 초상
그 닷새 후, 환후를 만난 편작이 이번에는 병이 장기까지 번졌다고 말하고 치료를 권했으나 환후는 마찬가지로 듣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닷새 후, 편작이 환후를 보게 되었으나 이번에는 먼 발치에서 보자마자 등을 돌려 황급히 달아났다. 의아히 여긴 환후가 사람을 보내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편작이 이유를 밝혔다.
"질병이 피부와 근육 사이에 있으면 탕약으로 치료할 수 있으며, 혈맥에 있으면 침을 놓아 치료할 수 있고, 장기에 있으면 약주(藥酒)로 치료할 수 있소. 하지만 질병이 골수에 이르면 생사를 관장하는 신(神)조차 어찌 할 수 없소이다. 군주의 질병은 골수에 침입했으므로 지금이라도 고쳐달라고 하면 내가 곤란해질 터, 그래서 도망간 것이오."
며칠 후 크게 앓아 눕게 된 환후는 편작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제나라를 뜬 후였다. 환후는 곧 사망했다.
이상, <사기>의 내용은 두 가지 면에서 의심 받는다. 첫째는 아무리 망진에 능해도 그토록 세세하게 인체를 들여다 보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것이고, 둘째로 장기까지 침투한 질병을 약주로써 치료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편력의(遍曆醫,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니며 병을 치료하는 의사)를 강조한 아래의 글을 보면 그것이 아주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그의 이름 편작의 '편' 자는 아마도 편력의에서 기인했으리라 본다. 적어도 독음은 같다)
전국시대 제나라의 청동기
편작은 한단(邯鄲, 조나라의 수도)에 가서는 부녀자를 존중하는 지역 풍속에 따라 부인병 전문의가 되었고, 낙양(洛陽, 주나라의 수도)에서는 노인을 공경하는 지역 풍속을 좇아 안과와 이과(耳科) 및 사지마비 전문의가 되었으며, 함양(咸陽, 진나라 수도)에서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진나라 사람들의 풍속을 좇아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그는 이렇듯 지역에 따라 진료 분야를 바꿨지만 그렇다고 특정 병의 환자들만을 치료하지는 않았을 터이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내·외과적인 수술도 뒤따랐을 것인데 이럴 경우에는 약주로 마취를 시키고 수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많은 환자들을 살피는 가운데, 특정 병은 망진만으로도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경지에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득의(得意)의 과정을 글로 설명하기는 힘들었을지니 <사기>는 그가 신의(神醫)에 이른 과정을 다음과 같은 전설적 일화로써 퉁친다.
'편작'은 발해군 막읍(鄚邑) 사람으로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젊은 시절 한 객사(客舍)의 관리자로 있었다. 장상군(長桑君)이라는 손님이 자주 객사에 왔었는데 오직 편작만이 늘 그를 정중히 대하였다. 그가 오고 간 지 10년이 되는 날, 그가 어느 날 조용히 편작을 불러 말했다. "내가 은밀히 소장한 비방이 있네. 나는 늙었으므로 이것을 자네에게 주려는데, 단 자네는 이것을 절대 누설해서는 아니 되네."
편작이 그러마 하자 그가 품속에서 약 하나를 꺼내 주며 말했다.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은 이슬로 이 약을 먹으면 한 달 후 전시안(全視眼,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될 걸세."
이어 그는 자신의 비방 전부를 편작에게 전수했는데, 일을 마치자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편작은 그가 말한대로 30일 동안 약을 먹었고 그러자 담장 저쪽의 사람을 볼 수 있는 신통력이 발휘됐다. 그는 이런 재주로써 사람들을 진료했던 바, 오장 내의 모든 질병을 볼 수 있었음에도 단지 표면적으로 진맥을 보는 것처럼 가장했다. 그는 어떤 때에는 제나라에서 진료를 했고 어떤 때에는 조나라에서 진료를 했는데 조나라에 있을 때 이름을 '편작'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편작의 일화는 아마도 불로장생을 추구한 노장사상가들에 의해 윤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사기>가 전하는 이 명의의 신묘한 이야기들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춘추전국시대의 신의(神醫)급의 명의들 이야기가 종합된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사기>가 전하는 그의 죽음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진나라의 태의령(太醫令) 이혜(李醯)는 자신의 의술이 편작에 미치지 못함을 알고 사람을 보내 찔러 죽였다.
편작의 고향 허베이성 런추시(任丘市)의 막주성(鄚州城)
까치(鵲) 형상의 편작(扁鵲)이 침으로 치료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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