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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의 국기 해시태그
    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0. 9. 9. 00:34

    I, II편에서 이어짐.

     

    이상을 정리하자면 해시태그는 고구려의 국기나 군기(軍旗), 혹은 국장(國章)임에 틀림없다. 국기의 사전적 정의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깃발'인데, 당시의 천조각이 남아 있는 게 없으므로 해시태그 자체를 국기나 국장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의 비밀을 좇아 간 심광주 박사의 3만리 탐사여행 결과 장군총 석침(石枕, 돌베게) 방향이 가리키는 곳이 백두산 천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 부호는 '하늘의 우물', 곧 천지(天池)를 의미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장군총은 중국이나 일본 학계에서 주장하는 장수왕이나 광개토대왕의 무덤이 아니라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의 무덤인 바, 해시태그의 연혁도 소급되어야 마땅하다.

     

    앞서 '해시태그는 광개토대왕의 상징부호였을까?'에서 말했듯 환도산성은 AD 3년 고구려 유리왕이 국내성으로 천도하며 축조한 성으로 유사시 임시 수도의 역할을 하기도 한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발견된 해시태그 문양의 역사는 AD 3년까지 소급할 수 있으며, 적게 잡아도 환도산성이 중수된 고국원왕 12년인 342년이 제작연도가 된다. 이렇게 보면 고구려의 국기, 혹은 국장의 역사는 길게는 2000년이 넘으며, 짧게 잡아도 1600년을 상회하게 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 엠블럼에 속하게 된다.

     

     

    환도산성 출토 해시태그 기와편

     

     

    경주 호우총 출토 호우의 해시태그

     

     

    국가나 군대를 가리키는 엠블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단연 로마군의 깃발인 'SPQR'이다. 로마군이 언제부터 그 깃발을 군기로 사용해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것이 로마 공화정 시절부터 사용돼 온 것은 분명하다. 'SPQR'의 의미가 '로마원로원과 시민'을 뜻하는 'Senatus Populusque Romanus'이기 때문이다. 로마군은 그 이니셜 휘장에 독수리 장식을 매달아 군기로 사용했다. 이 깃발은 로마시대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다.(특히 이 깃발은 야만인들과의 전투에서 촌놈들의 기를 죽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로마의 군기 'SPQR'

     

    'SPQR' 기치 아래 이룩한 로마제국

     

     

    이 'SPQR'기는 제정로마시대에도 그대로 사용되었으나 언제부턴가 아래의 'Chai Rho'심볼(일명 '라바룸'기)로 바뀌었다. 크리스트(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희랍어 'Χριστος'에서 X(카이)와 P(로)를 조합해 만든 모노그램으로, 그 역사는 아무리 빨라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화한 380년 이후가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고구려의 국기를 상한선인 AD 3년(유리왕 22년)으로 잡으면 'SPQR'기와 맞먹고, 하한선인 342년(고국원왕 12년)으로 잡아도 'Chai Rho' 심볼보다 앞선다.

     

     

       로마의 군기 'Chai Rho'심볼

     

     

    'Chai Rho'심볼로 인해 로마 'SPQR'기의 독수리는 사실 그 명맥이 끊겼으나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왕조 팔레올로고스가 쌍두독수리 문장을 채용함으로써 명맥을 이었으며, 서유럽의 신성로마제국 또한 쌍두독수리를 국장(國章)으로 채택하며 소유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1453년 지구상에서 동로마제국이 사라진 이후,(☞ '드라큘라 백작과 동로마제국 최후의 날') 이 쌍두독수리는 사실상 신성로마제국이 소유권을 굳히게 되었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의 힘이 약화된 이후로는 저마다 이 쌍두독수리를 탐내기 시작했던 바, 합스부르크 왕조 로트링겐가(家), 스페인 트라스타마라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그문트가 등 유럽의 내로라는 명문거족의 문장으로도 쓰이고 기타 군소 귀족가문들까지도 저마다 쌍두독수리를 갖다 썼다.(일부 이슬람 제국에서도 쌍두독수리를 국장으로 썼으나 여기서는 예외로 하겠다) 

     

    이와 같은 남용으로 정통성과 희소성이 희석되었기 때문일까,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 1제국을 지나면서부터는 단두독수리 문양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던 바, 빌헬름 왕가의 독일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나찌 독일의 문장 등으로 쓰이다 지금은 이 독수리 머리를 미국이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제정 러시아도 독수리 머리를 황실의 문장으로 사용했으나 러시아 혁명의 에블럼 낫과 망치가 국기에 장식되며 명맥이 끊기었다)

     

     

    동로마제국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문장

     

    신성로마제국의 국장

      

    합스부르크 로트링겐 가문의 문장

     

     스페인 트라스타마라 가문의 문장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그문트 가문의 문장

     

    독일제국의 국장

     

    나찌 독일의 문장

     

    미국의 국장

     

    미국 CIA의 심볼마크

     

     

    로마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의 패권을 꿈꾸는 유럽 제국의 독수리 문장을 나열하자면 사실 한도 끝도 없다. 그 욕심을 근대 미국이 이었던 바, 미국은 흰머리 독수리 문양을 심볼로 삼아 힘의 계승을 증명하려 애썼다. 이에 흰머리 독수리 대가리를 나라의 국장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백악관, 의회, CIA, 해병대 등 각양각색의 기관에서 쓰고 있다. 아무튼 이 독수리 문장의 저작권을 따지자면 로마제국보다는 신성로마제국에 있다. 그것을 국장으로 채택, 널리 상용한 나라가 바로 신성로마제국이기 때문이다.

     

    그 신성로마제국은 지금부터 천여 년 전인 962년에 탄생했다. 독일(동프랑크)의 오토 1세가 이탈리아 왕국을 접수하여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거대제국을 탄생시킨 것이었다. 이후 이 제국은 1806년 나폴레옹이 독일을 침공해 마지막 황제 프란츠 2세를 폐위시킬 때까지 무려 850년을 존속하며, 유럽 유일의 황제국으로서 유럽의 역사를 좌지우지하였다. 그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았던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 정도에 불과하였으니, 과거 대로마제국의 승계를 자처한 그 나라의 역사는 곧 유럽의 역사였다.

     

    하지만 그 말년에 이르러서는 난립하던 어중이떠중이 독일 제후국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영락하였으니 더 이상 신성하거나 로마스럽지 않았으며 제국답지도 않았다. 당연히 나라의 소멸도 충격으로 와닿지 못했으니 제국의 해체 소식을 들은 독일의 괴테는 "내 마부가 언쟁을 벌이는 것보다 더 관심이 없다"며 작가다운 소견을 피력했다. 그렇듯 과거의 넓은 영토와 영화는 사라져 보잘 것 없는 나라가 되었지만 나폴레옹 제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가 탐내는 무엇이 있었다. 바로 신성로마제국의 국장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이 위엄을 갖춰 자랑하던 군기(軍旗)는 스칸디나비아 제국을 위시한 여러 나라들이 이미 모방해 제 나라의 국기를 만들었지만, 감히 어쩌지 못하던 독점적 이미지의 쌍두독수리였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된 이후로는 저마다 다투어 가져가기 바쁜 쌍두독수리였던 바, 멀게는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와 동방 정교회, 심지어는 종교가 다른 이슬람권에서도 그 이미지를 차용해갔다.

     

     

     키프로스 정교회의 문장

     

    셀주크 투르크의 국장

     

     

    신성로마제국의 군기(軍旗)

    참고적으로 말하면, 신성로마제국 시절은 신성로마제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들도 국기의 개념이 없었다. 

     

     

    덴마크 국기 다너브로(Dannebrog)

    빨간색 바탕에 스칸디나비아 십자가가 그려진 덴마크 국기는 기네스북이 인정한 세계 최고(最古)의 국기다. 덴마크에서는 다너브로에 그럴싸한 연혁을 만들어 붙였지만 일찌감치 신성로마제국의 군기를 베낀 결과다.(다너브로는 '덴마크의 힘'이란 뜻이라고 함)

     

     

    그런데 고구려도 이와 같은 경우라면 믿겠는가? 대제국 고구려가 허무하게 멸망한 후, 고구려의 국기, 혹은 군기였던 # 문양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갔다. 그렇지만 나라의 문양, 즉 국장이었던 삼족오(三足烏)는 그 1500년 후 화려하게 부활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일본에서, 일본인의 손에 의해서였다.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 초미의 관심이 모아진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일본을 2:1로 꺾고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했다. 연장전까지 간 이 경기의 후반 시청율은 무려 64.7%를 기록했던 바, 국민적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가 수치로 증명되었는데, 우승의 향배와 더불어 손흥민 선수의 110억짜리 군면제가 이루어지느냐 마느냐의 또 다른 관심사에도 관전 포인트가 주어졌던 경기였다.

     

    그래서였을까? 당시 일본 축구대표팀의 새로운 유니폼 문장에 주목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네티즌 사이에서 뒤늦게 폭발적 관심을 일으켰던 일본 축구대표팀의 유니폼 문장은 삼족오(三足烏)! 고구려 벽화의 태양 속의 불사조이자 고구려 왕관의 문양으로 쓰였던 그 세 발 달린 검은 새가 일본에서 부활한 것이다. 이 새가 고구려의 국조(國鳥)이자 국가의 문양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의심할 필요도 없다. 이에 우리의 드라마(이를테면 '주몽' 같은)에서도 그와 같은 이미지로써 종종 차용되던 그 삼족오가 일본 축구대표팀의 유니폼 문장으로, 또 일본축구협회(JFA) 엠블럼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바로 그 옷

    일본축구협회(JFA) 엠블럼이 그려진 일본축구대표팀의 공식 유니폼으로, 다리 세 개 달린 검은 새가 공을 다루는 문장이 붙어 있다.

     

    그 경기의 한 장면

     

    고구려 각저총의 태양 속 삼족오(三足烏)

    삼족오는 '태양에 살면서 천상의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세 개 달린 상상 속의 검은 새'이지 까마귀가 아니다.

     

    고구려 오회분 4호묘의 태양 속 삼족오

    여기서 오(烏)는 '까마귀 오'가 아니라 '검을 오'이다. 오골계(烏骨鷄)는 까마귀 뼈를 가진 닭이 아니며, 강릉 오죽헌(烏竹軒)은 '까마귀와 대나무가 있는 집'이 아니라 '검은 대나무가 자라는 집'이다.

     

     

    구려 금동관식의 문양이 된 태양 불길 속의 삼족오 

     

     

    우리가 고구려의 후예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몸 속에는 고구려인의 피가 흐른다는 소리다. 국호도 대외적으로는 고구려(KOREA)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구려의 국장 삼족오를 눈 뜨고 빼앗겼다. 어쩌면 앞으로 고구려의 국기인 해시태그마저 빼앗길지 모른다. 그럴 가능성은 사실 다분하다. 코리아인 중 어떤 무리들은 고구려가 '천제지자 하백지손'(天帝之子 河伯之孫, 하나님의 아들이자 물의 신 하백의 손자)'의 후예라고 하면 '천벌받을 소리'라고 길길이 뛰며 부인한다. 하나님의 후손으로 선택된 민족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 고구려인이 기록한 광개토대왕비, 그 돌에 새겨진 불변의 내용은 안 믿고, 고대 이스라엘 땅의 한낱 떠돌이 유목민이 기록한 위변조 가능한 양피지의 내용을 오히려 철석(鐵石) 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삼족오가 어찌되든 해시태그가 어찌되든 전혀 관심도 없고 상관도 없겠지만, 그럴수록 고구려의 국기 해시태그가 더욱 소중히 생각되어 진다. 소망하건대 통일이 되면 이 해시태그를 부디 통일한국의 국기로 삼았으면 좋겠고, '천제지자 하백지손'이라는 자랑스런 민족 자부심은 지금 당장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I Hope so too. 나는 해시태그의 다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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