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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 들여다보기 II - 이슬람 공동체의 확장과 '메카'
    성서와 UFO 2021. 1. 13. 06:19


    메카를 사전에서 찾으면 


    <일반명사> 학문이나 예술 등 특정 분야의 중심지로서 사람들의 숭배를 받는 곳.

    <고유명사> 사우디아라비아 남서부에 있는 홍해 연안의 도시. 이슬람교의 교조 무함마드의 탄생지로 이슬람교 최고의 성지이다.

     



    의 두 가지 뜻이 나온다. 그래서 메카(Mecca)라는 단어는 종종 아래 사진의 설명과 같은 용례로 쓰이는데, 아마도 영어의 영향일 것이며 그것은 또 아마도 영미권에 작용한 이슬람의 힘일 것이다. 어찌 됐든 알게 모르게 메카는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IT 산업의 메카 서울 테헤란로 

    이란과 관계가 좋던 시절, 우리나라와 이란은 수도 서울과 테헤란의 지명을 나눠 가졌다. 그런 이란과 지금은 몹시 불편하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바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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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메카답지 않아진 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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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카의 Before & After



    한국 이슬람의 본산 이태원 모스크


    메카를 향한 기도

    무슬림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루에 5번씩 메카를 향해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하는데, 얼굴과 손발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물이 귀하고 사막이 많은 환경 탓에 모래로 씻어도 괜찮으며 국내 무슬림들은 정결의 표시로 신발을 벗었다.  



    앞서 1편에서 말했듯 메카는 이슬람교의 교조 무함마드의 탄생지이자 천사 지브릴(가브리엘)로부터 신의 계시를 받은 곳이다. 무함마드는 당연히 메카에서부터 새로운 신앙 이슬람을 전파했다. 이슬람(al-islām)은 '알라에게 복종하다'라는 뜻이며, "복종·순종"을 의미하는 '아살라마'에서 파생한 말로, 무함마드가 만든 단어라고 한다. 유일신 사상과 만인평등 사상을 기본으로 한 이슬람은 빠른 속도로 메카에 퍼져나갔으나 기득권 귀족들은 당연히 반대했겠으니 무함마드는 622년에 제 2 도시인 메디나로 쫓겨나게 된다. 무슬림은 이 일을 헤지라(هِجْرَة 聖遷)라 부르며 이슬람 원년(元年)으로 삼는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는 쉽게 뿌리를 내려 8년 후인 630년에 메디나의 세력을 몰고 와 메카에 무혈 입성한다. 이때부터 무함마드는 대대적인 정복사업에 나서 아라비아 반도를 점령하였다. 또한 그를 따르던 후예들은  632년 무함마드 사후 그의 유지를 받들어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도 진출하였으니 635년 다마스쿠스 정복을 필두로 638년 예루살렘, 640년 시리아, 639~641년 이집트, 640~649년 페르시아, 나아가 711년에는 지브로올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732년에는 프랑스 파리 부근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러한 이슬람 공동체의 정복 활동에는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꾸란'이라 하여 폭력적인 면이 강조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대체로 관대하였으며 점령지의 민족 중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자에게는 세금을 감면해주는 감세정책 등을 앞세워 포교하였던 바, 순식간에 많은 개종자를 이끌어 낼 수가 있었다. 앞서 말했듯,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꾸란'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은 13세기 십자군 원정 말기 이슬람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기 위해 유명 신학자이자 스콜라 학파의 대부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만들어낸 명언(?)이다. 아울러 이슬람은 전쟁 고아와 미망인들도 적극 보호하였으니 우리에게 일견 미개한 듯 비쳐지는 저들의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도 실은 이와 같은 보호정책의 일환이었다. 

     

    무함마드의 후예들이 세운 이슬람 공동체(일명 사라센 제국)에 대해서는 앞서 '고선지 장군과 종교개혁'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751년 고구려의 유장(遺將) 고선지 장군이 이끈 당나라 군대가 서역을 정복하고 아랍 세계까지 진출해오자 이슬람 제국의 이란 총독 아브 무슬림은 부하 장수 지야드 이븐 살리흐로 하여금 10만 대군으로 고선지 부대와 맞서 싸우게 하는데, 이때 2만 5천 명의 고선지 부대는 탈라스에서 크게 패한다. 이 탈라스 전투는 동서 대군의 최초 격돌이라는 역사적 의미 외에 중국의 제지술이 서양으로 건너가게 된 사건으로 유명하다.(☞ '고선지 장군과 종교개혁 I')

     

    반면 732년 서유럽에 진출한 코르도바 총독 아브드 알 라만은 프랑스 남부 아키텐을 점령하고 파리로 진격했으나 칼 마르텔이 이끄는 프랑크 제국 군대에게 투르시(市) 인근의 푸아티에에서 일격을 당한다. 이후 이슬람 공동체의 내분과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베르베르인의 반란으로 인해 재침(再侵)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에 유럽 대륙은 이슬람화를 면하였지만 현재 스페인과 포르투칼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는 향후 약 800년간 무슬림의 지배를 받다가 기독교도들의 레콩퀴스타(고토 회복운동)가 일어나며 이슬람 세계로부터 벗어난다.(☞ '지브로올터 해협에 관한 이야기, 이름의 유래와 이슬람의 진출')



    이슬람 공동체의 확장


    투르 시를 흐르는 루아르 강 

    푸아티에 전투는 에드워드 기번이 '세계사를 바꾼 조우(遭遇)'라고 칭했을 만큼 역사적인 전투였으나 양군이 격돌한 장소는 확실치 않다. 루아르 강도 후보지 중의 하나로서 대개 투르와 그 남쪽인 푸아티에 사이에서 벌어졌다 보는 까닭에 투르 전투, 혹은 투르-푸아티에 전투라고도 불린다. 


    탈라스 강의 겨울 풍경

    이슬람 역사가 알 아시르의 <완전한 역사>에 의하면 전투는 당나라 군사가 이 강을 건너며 바로 시작되어 주변 벌판에서 5일간 전개됐다.   



    다시 이야기를 메카로 돌리면, 무함마드는 초기 포교인 621년 메카의 하람 사원에서 밤하늘에서 내려온 흰 말을 타고 알 아크사로 이동해 하나님(알라)의 표적들을 목격한다. 알 아크사(Al-Aqsa)는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의미이며 예루살렘을 지칭하는데, 이때부터 무함마드는 예루살렘을 신성시 여겨 그쪽을 향해 기도하게 한다. <꾸란>에서도 이 일을 성스러운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는데,(이스라 17:1)  이는 마치<구약성서>의 에스겔이 BC 597년 야간에 바빌로니아의 니푸르에서 예루살렘으로 UFO를 타고 이동한 사건을 연상케 해준다.(에스겔 8:1-3 & '성서 속의 UFO/여호와라 불린 외계인의 대규모 학살극' 참조) 


    ~ 이슬람 세계에서 예루살렘은 꾸드스(Quds)라고 불리며 '성스러운 곳'이라는 뜻이다. 그곳에서 무함마드가 승천했기 때문으로, 까닭에 무함마드의 무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에서는 이 일을 미라지(Miraji)라 부르는데 알 아크사로 갈 때와 마찬가지로 날개 다린 흰 말을 타고 오른다. 그런데 이 때의 말은 부라끄(Buraaq; 번갯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 흡사 우주선을 연상시킨다. 이 내용은 <꾸란> 70장에 실려 있으며 당연히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로 취급되고 있는 바, 전승(傳承)의 의미의 '쿠라파'(Kurafa) 앞에 정관사인 알리프나 람이 생략된다.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알 아크사' 사원 

    예루살렘 성전산에 있는 이슬람 사원으로,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표적을 목격한 것을 기려 세워졌다. 


    '알 아크사' 사원과 바위 돔 사원

    '알 아크사 사원 뒤에 있는 바위 돔 사원이 무함마드가 승천한 장소로서 이 안에 무함마드가 딛은 바위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유대교에서는 이 바위가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누인 자리이며 이 장소는 솔로몬의 성전이 있던 곳이라고 여기고 있는 바, 이래저래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624년 메디나에서 알라로부터 또 다른 계시를 받은 후로는 예루살렘보다 메카를 강조하기 시작하니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던 방향을 메카로 변경시켰다. 아울러 1월 10일에 국한되었던 금식을 라마단('더운 달'이란 뜻으로 이슬람력의 9월) 한 달 동안으로 바꾸고,(일출에서 일몰까지) 유대인처럼 토요일 안식일에 행하던 예배를 금요일로 바꾸며 기존 유대인의 것을 따르던 종교의식을 크게 변화시킨다.(반면 기독교에서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토요일 안식일을 일요일 태양신의 날·Sunday로 변경시켰던 바, 불멸의 태양신 솔리 인빅투스를 믿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입김이 작용되었다. ☞ '삼위일체의 진실 I - 밀라노 칙령의 진실')


    라마단은 <꾸란>에 직접 언급돼 있는 내용으로, '라마단 달 중에서 천명의 밤(라일라 알까드르)에 기도하는 것이 천 개월 동안 기도하는 것보다 낫다'(수라 97:3)고 명시돼 있는데, 이는 무함마드가 624년 라마단달 27일에 알라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라고 한다. 까닭에 무슬림들은 라마단 달은 용서받는 달이라고 믿으며 중요시여긴다.  <꾸란>은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적은 것이나 그것이 한꺼번에 받은 것이 아니라 띄엄띄엄 전달되었던 바, 나중의 계시가 앞의 계시를 뒤집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를 이슬람에서는 나스크(대체 이론)라고 하며 무함마드가 예루살렘에서 받은 계시 역시 나중에 메카에서 받은 계시로 대부분 대체되는 바, 메카가 제일 중요시되는 이유가 된다. 


    ~ 무슬림들은 라마단 달에 단식을 하면 알라가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이슬람에서 금식은 배고픔을 느끼고 그 배고픔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배고픈 고통을 알라는 취지이다. 라마단은 자연히 자카드라고 불리는 자선행위를 불러온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앞 장에서 말한 '라 일라하 일랄라(La illaha illa'llah, 알라 외에는 존경받을 대상이 없다)'라는 신앙고백을 반복하는 일과 메카 순례인 하즈(Hajj), 위에서 말한 다섯 번의 기도와 더불어 무슬림이 반드시 지키고 행해야 할 다섯 가지 의무(이른바 '이슬람의 다섯 기둥')에 속한다. 

     

    잘 알려진 대로 <꾸란>과 유대교 경전 <미크라>(기독교의 구약성서)는 많은 내용을 공유하는데 <꾸란>에서의 설명은, 하나님(알라)의 말씀이 처음에는 유대인을 향했으나 유대인들이 그 말씀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하였으므로 하나님에게 버림받았다는 식이다. 앞에서도 제기한 문제지만, 여호와는 향후 두 민족의 양립(兩立), 즉 이삭의 후예와 이스마엘의 후예가 큰 반목으로 대립할 것을 예견하고 있었음에도(창세기 16:12) 하갈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비호하며 그 후손들과 영역까지 보호하고 보존시킨다.(창세기 21:13, 25:12-18) 여호와가 이렇듯 제대로 교통정리를 하지 않은 까닭에 무슬림은 무슬림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기독교인들이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그것..... 하지만 그렇다고 이슬람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최소한의 고민거리는 공유하고 있으니 이를테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식을 번제물로 요구한 것 같은 일이다. 이에 관한 <꾸란>과 <구약성서>의 내용은 거의 같다. 


    <꾸란>

    아들의 나이가 그와 함께 일할 나이에 이르렀을 때 그가 말하길, 내 아들아.  너를 제단에 올리라는 명령을 내가 꿈에서 보았노라. 너의 생각이 어떤지 알고 싶구나 라고 하니 아들이 말하길 아버지 당신께서 명령받은 대로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인내하는 종으로부터 원하신다면 당신께서 저를 발견할 것입니다 하였더라. 그 둘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는 그로 하여금 그의 이마를 숙이도록 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불러 이브라힘아, 너는 이미 그 꿈을 이행하였노라. 하나님은 이렇듯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보상을 내리리라. 실로 이것은 분명한 하나의 시험이었나니 하나님은 훌륭한 희생으로 그를 대신하였노라.(꾸란 37:102-107)  


    <성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창세기 22:1-12) 


    보다시피 양 경전의 내용은 판박이이며 자식 대신 하나님이 주신 양을 번제물로 삼는다는 내용도 동일하다. 다만 다른 점은 <구약>에서는 그 자식이 이삭이요, <꾸란>에서는 이스마엘이라는 것 뿐이다. 그럼 <꾸란>에서 이삭은? <꾸란>에서의 이삭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번제로 드리려 함을 보시고 감동하시어 이삭을 주셨다는 것으로 설명돼 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의로운 자 중에 있을 한 예언자 이삭의 소식을 주어"(꾸란 37:112) 


    과연 어느 것이 맞는 걸까? 그리고 하나님의 행동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글이 길어져 그 답을 결국 3편에 실어야겠다. 메카 카바신전 외벽 모서리에 박혀 있는 외계에서 온 무엇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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