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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도양단의 빌라도(역사)와 우유부단한 빌라도(성서)
    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1. 6. 5. 01:21

     
    앞서도 언급했거니와 역사적 예수에의 기록은 요세푸스의 <유대인 고대사>의 한 줄 글에 매달려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반면, 본디오 빌라도에 관한 기록은 요세푸스, 필로, 타키투스 등의 역사서에 난삽하리만큼 즐비하다. 그들의 기록에서는 빌라도의 평가에 관해 비교적 인색한데 그중 유대인 저술가 필로(Philo, BC10-AD45?)의 평가는 독설에 가깝다.
     
    필로의 태생은 유대인이나 로마의 중요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저술가로 활동했고, 특히 동생 리시마쿠스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어머니 리비아의 재정고문 역할을 했으며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는 티투스가 예루살렘의 유대인 반란을 진압할 때 중간급 장수로서 참전하기도 했던 공신력 있는 집안이었던 바, 그의 기록에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실린다. 
     
    "빌라도는 완고하고 융통성이 없는 자로서 부패하며 폭력과 억압 및 (재판 없이) 불법적 처형을 자행하는 매우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빌라도에의 평가는 그가 직접 겪은 것은 아니고 헤롯 대왕의 손자 아그립파 1세가 칼리귤라 황제에 보낸 서한의 내용을 자신의 저서 <legatio ad gaium>에 옮겨 적은 것이다. 따라서 그 내용의 신뢰성을 100% 담보하기는 어려우며, 편지에서 본디오 빌라도를 비난하고 있는 아그립파 1세 역시 예수의 제자 베드로를 체포 구금시키고 야고보를 처형시키는 등의 업적(?)을 남긴 포악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는 바, 정적 관계에 있던 빌라도에게 절대 좋은 소리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모든 기록은 '나쁜 놈' 쪽에 치우친다. 일설에 따르면 원래 빌라도는 하급장교 출신의 군인으로, 티베리우스 황제 친위대(Praetorian Guard)의 고위 장교였던 세야누스(Sejanus)를 모시다가 그의 천거로 유대 지방 지방관(Praefectus)이 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세야누스는 AD 31년 숙청되어 처형당하는 바,(타키투스의 <연대기(Annals)>) 빌라도 역시 비슷한 몰락의 길을 걸었으리는 짐작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회례(bribery)', '폭력과 폭언', '강탈' 등, 부정적인 면이 두드러진 기록들도 그 짐작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가 유독 성서에는 인도주의자나 박애주의자 같이 기록돼 있어 어리둥절하다. 본디오 빌라도는 신약성서의 4대 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데, 좋게 말해서는 '무고한 자를 구해주려는 인간미 있고 마음씨 여린' 사람으로, 나쁘게 말해서는 '우유부단하고 결단성이 없어 결국 예수를 구명하지 못한' 사람으로 표현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자신 앞에 데려 와 유대인의 왕을 사칭한 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사형)을 원하지만,(마 27:1-2,11; 막 15:1-5; 눅 23:1-2; 요 18:28,33-37) 그는 오히려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며 공정한 재판관의 역할을 하려 애쓴다.(마 27:18; 막 15:10,14; 눅 23:13-16; 요 18:38; 19:4) 
     
    그리고 예수를 방면하려고까지 하니 유월절에 죄인 한 명을 풀어주는 현지의 풍속을 좇아 유대인들에게 강도인 바라바와 예수 중 한 명을 선택하게 한다. 즉 그는 유대인들이 포악한 강도 바라바를 당연히 원치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나,(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예수를 방면하려 했으나) 유대인들이 의외로 바라바를 선택하였던 바, 어쩔 수 없이 유대인의 뜻을 따라 예수를 사형에 처하게 되는데,(마 27:15-26; 막 15:6-15; 눅 23:18-25; 요 18:39-40) 그러면서도 자신은 (물에 손을 씻으며) 판결에서 비켜나려 애쓴다.(마 27:24)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요한복음 18:29-31)
    빌라도가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요한복음 18:38)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요한복음 18:39)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태복음 27:24-25)

     
    그런데 빌라도의 구명 노력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으니 사형판결 전 유치장 안의 예수를 찾아가 죄를 소명할 기회를 준다. 아울러 예수가 언급한 진리에 관해 물으며 그와 대화를 이어가려 애쓴다. 그리고 판결 후에도 다시 예수를 찾아가 자신에게 생사 여탈권이 있음을 주지시키며 재차 무죄를 소명할 기회를 주지만, 예수는 자신에게 주어진 죄를 피하려 하지 않았던 바, 결국 형이 확정돼 십자가에 매달려지게 되는 것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요한복음; 18:37-38)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한복음 19:10)
    참 알 수 없는 자로다.....

     
    또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를 관할지 영주인 헤롯 안티파스에게 보내(예수가 갈릴리 나사렛 사람이므로) 고발자인 유대인의 예봉을 피하게도 만든다. 그러면서 누가복음은 전에는 정적관계로 원수지간이었던 두 사람이 이 일로써 가까워졌노라고 말한다.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누가복음 23:11-12)
     
    여기서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는 문장은 예수의 재판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적이 많았다'는 역사의 빌라도와는 부합됨이 있는데, 이것은 누가복음에 기록돼 있는 예수의 재판과 상관없이 거론된 또 하나의 문장과 함께 눈길을 붙잡는다.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누가복음 13:1)
     
    여기서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었다'는 누가복음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무리 미치광이 정치가라 해도 사람을 죽여 그 피를 제물에 섞는 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니 이것은 빌라도의 잔인한 성격을 대변하는 말일 터이다. 그는 그만큼 포악하고 잔인한 사람이었던 바, 요세푸스의 저술 <유대인 전쟁사>에 실린 빌라도의 성격과도 일치한다.   
     
    빌라도는 코르반(Corban, 성전 안에 보관된 유대인의 공금)을 유용해 수도관 건설에 사용하였는데..... 이에 항의한 유대인들은 급습한 로마 군인에 의해 몽둥이로 무자비하게 살해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이를 본 유대인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에 게거품을 물 지경이었지만, 빌라도는 그 광경을 (마치 감상하듯) 앉아서 지켜보았다.
     
    이와 같은 기록들은 복음서에 나오는 빌라도의 모습과는 천양지차이다. 성서에는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를 확신함에도 혹시나 민란이라도 일어나면 어쩔까 두려워해 유대인 성직자들의 청을 따랐다고 되어 있다. 결론은 그러한 까닭에 예수가 무죄인 줄 알면서도 그를 사형장으로 보냈다는 것인데, 역사서에서 보이는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거나 민란 따위를 두려워하거나 할 위인이 전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본디오 빌라도 비명'(Pontius Pilate's Inscription)이 발견된 카이사레아(성서의 가이샤랴) 유적 발굴 현장에서는 위의 두 문장을 증명할 수 있는 유적 또한 발견되었다. 즉,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섞은 제물을 바친 곳은 로마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사원이고, 빌라도가 코르반을 유용해 건설한 수도관(aqueducts)은 카이사레아 수도교를 지칭했음을 알 수 있게 해주었는데, <위키백과>에서는 또 다음과 같은 내용도 찾을 수 있다. 
     
    "당시 빌라도와 로마 정부 사이에 교환한 서신들이 최근에 발견되었는데, 빌라도는유월절 기간 동안 로마 병사들의 병장기를 천으로 감싸지 않고(유대인 풍속은 유월절에 무기를 내려놓음) 반란을 일으킬 테면 어디 해봐란 식으로 대놓고 어깃장을 놓았다고 되어 있다. 아울러 황제의 요구대로 유대인에게 많은 세금을 때리고 철권통치를 하는 등 성경상의 우유부단함이나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전전긍긍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카이사레아 국립공원 로마유적지 / 카이사레아는 헤롯대왕이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헌정한 도시로서 그 이름도 카이사르에서 유래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사원
    카이사레아 수도교 / 하이파 카르멜 산 수원지로부터 총 16km가 이어진다.
    카이사레아 원형극장 / 요세푸스의 유대인 전쟁사에 따르면 유대 반란을 진압한 로마 티투스 장군은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이곳 카이사레아로 데려와 검투사 경기로써 2500여 명을 살해하였다.
    카이사레아 극장 입구에서 발견된 본디오 빌라도 비명'(Pontius Pilate's Inscription) / 빌라도가 위 극장을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봉헌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역사와 다른 복음서의 기록인즉 누군가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을 빌어 예수의 죽음을 창작했음을 말해준다. 창작의 이유는 자명하니 죄 없는 예수를 핍박받는 자로 만들어야 했으며 그처럼 죄가 없는 데도 인류의 죄를 대신해 죽는, 이른바 '거룩한 대속'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다.
     
    그와 같은 창작을 보다 사실적으로 꾸미기 위해서는 여러 악역이 필요했고 또 좋은 놈도 필요했는데, 앞서 여러 차례 말했듯 그 악역을 유다와 유대인 성직자가 담당했고, 좋은 놈은 실제로는 악한이었던 본디오 빌라도가 담당했다. 빌런인 빌라도가 좋은 놈이 된 이유는 단 하나, 실존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후세 사람들이 믿어 의심치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이와 같은 발군의 창작력이 가끔은 아래와 같은 사족을 만들기도 했다는 것 역시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더라. 그들이 예수께서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그만)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 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와서 그와 함께 하였더라.(마가복음 14:32-43에서 발췌)
     
    재차 상황을 분석하자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은 예수가 딱하게 생각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때문에 예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없었다. 예수는 배신자 유다가 유대 성직자와 창검으로 무장한 로마군들을 몰고 왔을 때 비로소 제자들을 독촉해 깨웠고, 제자들은 이에 화들짝 놀라 깨어 일어났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예수의 행동과 절절한 기도를(누가복음에서는 피땀까지 흘린다) 보고 들었다는 말인가?  
     
    다시 강조하거니와 그때 깨어 있는 자는 오직 예수뿐이었다. 하지만 예수가 복음서를 썼다는 것은 말이 안 될 터, 이 상황을 보고 듣고 기록한 자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확언하거니와 만일 객관적인 눈을 가졌던 사도 바울이 위의 내용을 보았다면 필히 고쳤을 것이다. 물론 예수의 재판 기록 또한 엉터리라는 것을 깨달아 나름대로의 수정을 가했을 것이다. 그는 당대의 관원이었던 바, 신약성서의 저자 중 본디오 빌라도를 겪어본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며, 더불어 본디오 빌라도가 그처럼 선한 짓을 할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기에.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복음서가 쓰일 당시 바울은 없었다. 신약성서의 편집 순서 상 복음서가 가장 먼저 쓰였을 것이라는 착각을 주지만 신약성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책들은 끝부분에 있는 바울의 편지들이다. 복음서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마가복음도 예수가 죽은 지 35~40년 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인데 그때도 바울은 이 세상에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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