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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사도신경에서 여전히 소명되지 못한 빌라도의 죄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1. 5. 31. 08:39
* 국역 사도신경에서 여전히 소명되지 못한 빌라도의 죄.
이미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예수란 인물은 신약성서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밖의 책에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성서라는 책은 역사서가 아니며 인문학 서적이나 과학 서적도 아닌 기독교라는 종교의 경전인 바, 기독 신앙을 가지지 않은 일반인에게는 예수의 존재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신약성서 외의 책에서 예수의 존재를 인정받는 유일한 책으로 고대 유대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AD 37-100)가 쓴 <유대인 고대사(The Antiquities of the Jews)>가 있다.
"이 무렵 예수라고 하는 한 현자(a wise man)가 있었다."
제18권에 밑도끝도 없이 튀어나온 이 문장은 어찌 됐든 성서 밖에서 예수의 존재를 칭하는 유일한 문장으로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마저 의심받고 있으니, 그 책에 등장하니 요세푸스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가필임이 명백한 예수의 생애를 축약해 놓은 듯한 몇 줄의 문장 때문이다.(☞ '예수의 정체에 관한 4가지 질문 I') 예수에 대한 칭송 일변도의 그 글들이(놀랍게도 거기에는 예수의 부활까지 언급돼 있다) 그간 요세푸스의 기록이라 인정받았던 위의 한 줄 문장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마당에 있어 1961년 6월 이탈리아 고고학자와 히브리대학 공동발굴팀이 이스라엘 북부 카이사레아 로마 유적에서 발견한 석판(石板)은 그 가치가 매우 크다. 당시 공동발굴팀은 옛 로마 행정관의 치소(治所)가 있던 카이사레아에서 관공서 건물 및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사원, 2만 명 수용 규모의 히포드롬(전차 경주장), 수도관, 3천 명 수용 규모의 원형극장 등을 발굴했는데, 그중 원형극장에서 발견된 명문(銘文)이 있는 한 장의 두꺼운 석판이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극장 입구 계단 돌 가운데 하나로 사용된 이 석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DIS AUGUSTI)S TIBERIÉUM
(...PO)NTIUS PILATUS
(...PRAEF)ECTUS IUDA(EA)E
(...FECIT D)E(DICAVIT)괄호 안은 관람객들의 발길에 마모된 부분으로 전체를 번역하면 아래의 내용이 된다.
존엄하고 신성하신 황제 티베리우스께
폰티우스 필라투스
유대 지방관이
(이 건물을) 봉헌했다.이 돌 한 장에 세계는 흥분했다. 이 돌에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재판관으로 등장하는 유대 총독(정확히는 유대지방 행정관)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이 돌은 본디오 빌라도가 당대의 황제였던 티베리우스에게 카이사레아 극장을 헌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서, 고대의 금석문 중 빌라도의 이름이 발견된 첫 케이스였다.(최초 발견자는 이탈리아 고고학자 프로바·Antonio Frova였다고 한다)
이 돌은 '본디오 빌라도 비명'(Pontius Pilate's Inscription)으로 명명되어 예루살렘 박물관에 전시되었지만 이스라엘 당국에 있어서는 그리 중대한 유물로 취급되지 않는다. 알다시피 유대교에 있어 예수는 메시아를 사칭한 사기꾼 유대인 총각에 지나지 않는 까닭인데, 반면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의 존재를 확실히 증명해줄 귀중한 유물로써 대접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역사적 예수에의 기록은 성서의 복음서를 제외하고는 희박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성서에 등장하는 본디오 빌라도라는 인물로써 예수를 역사적 실존인물로 만들어보려는 조금은 애처로운 시도에 이 돌은 더없이 좋은 도구였던 것이었다. 앞서 '빌라도의 흔적에서 찾아본 레알'에서도 말했거니와, 본디오 빌라도는 우리 현대인들이 전혀 모를 인물이었다. 로마 황제도 아니요, 그 황제가 파견한 시리아 속주의 총독도 아니요, 그저 유대라는 작은 지역에서 한시적 지방관(Praefectus Iudaea)을 지낸 사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성서에는 예수 사망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중요 인물로 기록돼 있는 바, (전혀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를 통해 예수의 실재성을 증명하려는 노력이 있게 된 것이었다. 아울러 그는 (전혀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신앙고백서인 사도신경에도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으니,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가 그것이다.
이것은 구 버전에서도 그러하거니와 새로 바뀐 내용에서도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로 다름이 없다. 그런데 이것은 분명한 국역 사도신경의 오역이다. 앞서도 수차례에 걸쳐서 말했거니와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핍박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예수를 구명하고자 노력한 사람이다.(☞'본디오 빌라도의 억울한 누명'/'무엇이 진실인가?' etc) 그렇지만 여기서는 이 내용에 대해 논할 필요가 없겠고, 오역의 부분만을 짚기로 하겠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의 라틴어 원문을 가져오면 'sub Pontio Pilato'가 된다. 여기서 sub는 영어와 마찬가지로 '~의 밑에서', '~의 치하에서'의 뜻으로 활용될 뿐 사람을 지목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가톨릭 새 번역본에서는 '본디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가 되었고 성공회에서도 '본티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가 되었다. 예수가 핍박받은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로되, 빌라도로부터 직접적으로 핍박받은 사실이 없음을 알기에 정정의 수순을 밟은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에서는 과거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썼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똥고집이 아닐런가 한다. 라틴어 원문은 분명히 언제 예수가 핍박을 받았는지 그 시기를 말하고 있을 뿐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는가를 묻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개신교에서는 빌라도로부터의 핍박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이 진실을 밝히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복음서에서 그 책임소재가 뻔히 드러나는 유대인 성직자에게서 찾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유대인 성직자에게서 고난을 받으시고'로 쓸 용기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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