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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디오 빌라도의 억울한 누명
    성서와 UFO 2019. 4. 26. 18:46

     

    앞서도 설명했듯 니케아 공의회는 예수의 인성(人性)을 주장한 아리우스 파가 예수의 신성(神性)을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 파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된 기독교 사상 최초의 공식 종교회의였다.(325년) 부연하자면, 당시는 아직 기독교의 이론이 정립되기 전이라 위의 인성론과 신성론이 박 터지게 싸웠던 것인데, 이에 잘못하면 기독교가 자리잡기도 전 교회가 양분될 지경이었다. 니케아 공의회는 이와 같은 별거를 염려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양파(兩派) 간의 분쟁을 무마하고 예수의 정체를 확립하기 위해 마련한 종교회의였다.(☞ 「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

     

     

    콘스탄티누스 1세의 거대 조각상 / 잘 알려진 대로 콘스탄티누스 1세의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로 자리 잡았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개선문 /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2년 그의 형제이자 또 다른 황제인(당시는 황제가 4명이었다) 막센티우스의 군대와 티베르 강 유역에서 충돌했는데, 그때 밀비우스 다리 위에서 커다란 십자가 환상을 보았다고 전한다. 이후 리키니우스를 패퇴시키고 제국의 전권을 쥐게 된 그는 리키니우스가 수도로 삼았던 밀라노에서 기독교를 공인하지만 정작 자신은 죽을 때까지 세례를 받지 않았던 바, 밀라노의 칙령이 정략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로마 개선문에는 십자가 환상을 보았다는 티베르 강 전투의 부조가 새겨졌다.
    콘스탄티누스 1세 조각상의 발 / 귀한 사진 같아 한번 올려봤다. 크기가 엄청나기도 하거니와 사실적이기도 하다.

     

    이 회의에서 인성론과 신성론은 팽팽히 맞섰다. 그리하여 합일점을 찾지 못한 그 두 파는 결국 투표로서 예수의 정체를 결정짓게 되었다. 그런데 이 회의를 주재한 콘스탄티누스 1세는 예수의 신성을 믿는 쪽이었고(기독교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으려는 콘스탄티누스에게는 신성론이 더 부합됐으므로) 따라서 회의의 결과 역시 그쪽으로 기울어졌던 바, 결국 아리우스 파의 인성론은 패하고 아타나시우스 파의 신성론이 예수의 정체를 대변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예수는 인간들의 투표 결과에 의해 신이 된 것인데, 이 결과를 확실히 굳히기 위해 공표한 글이 니케아 신조로서 기독교인들이 매양 읊조리는 사도신경이 바로 그것이다.


     

    니케아 공의회 묘사도 /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 파가 단죄된 종교회의의 풍경을 그렸다. 뒤에 보이는 성당이 공의회가 열렸던 터키 이즈니크 니케아 성당이며 가운데가 이 회의를 주최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그 앞에 나자빠진 사람이 아리우스 파를 대표해 싸운 니코메니아의 주교 에우세비우스다. 다구리를 당한 그는 결국 KO됐다.(앞서 '예수가 외계인의 자식이 아닐 경우 생겨날 문제점들'에 게재했던 글과 그림을 다시 옮겼다)

     

    그 니케아 신조에서는 예수가 신의 아들이며 동정녀 마리에게서 태어난 존재임을 부각해 그간의 인성론을 완전히 축출시켰지만, 다만 그때까지는 삼위일체설이 확립되지 않았던 듯, 성령에 대해서는 '예수가 성령에 의해 태어났다'는 사실과,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라는 구절만이 추가되었다. 따라서 삼위일체설이 확립된 지금에 있어서는 당연히 381년 콘스티노플 공의회에서도 제정된 신조를 사도신경으로 채택해야 옳으련만 여전히 니케아 신조를 읊조리고 있는 바, 나로서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사도신경 내용에 있어서의 또 한 가지 의문은 예수의 사후 2천 년이 지난 오는 날에 이르기까지 복권(復權)되지 않고 있는 당대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라틴어 Pontio Pilato, 그리스어 Pontius Pilatus)에 관한 것이다. 그의 이름은 사실 325년 니케아 신조 제정 당시에는 없었던 것인데, 후대의 어느 날 사도신경으로 불리게 된 내용에 예수에게 악행을 가한 인물로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으며 이후로는 기독교인의 대표적 원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누군가의 구체적 악행이 표시돼야 예수의 고난이 더욱 빛을 발휘할 수 있기에)

     

     

    사도신경(Apostle's Creed)은 '예수의 제자인 사도들이 새겨야 할 신조'라는 의미로서 그 최종 형식은 아비뇽 유수 시절의 교황인 이노첸시오 3세(재위 1198-1216) 때 완성되었다. '본디오 빌라도에 의한 박해(passus sub Pontius Pilato)'라는 말도 그즈음 생겨난 것으로 짐작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는 예수를 구명하기 위해 애썼다. 그와 같은 내용은 성서에도 버젓한데, 지금껏 악행의 대명사로 자리매김된 채 만인에게 읊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도신경의 옛 문구에는 물론 새번역에서도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는 문구는 지워지지 않았다. 다만 천주교와 성공회에서는 이를 수정하였으니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와 '본티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가 됐다.

     

    기독교인들인 사도신경을 읊픔은 그 믿음의 조항을 상기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심을 되새기고 더욱 공고히 하지는 데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반드시 옳아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사도신경의 내용은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그 내용마저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만일 본디오 빌라도가 그 내용을 보았다면 정말로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은 예수의 목숨을 구명하기 위해 애썼지만 사실은 예수 스스로 죽음을 불러들인 것인 바, 이는 마치 화재 현장에 들어간 소방관이 불을 끄지 못하고 나오자 방화범으로 몰리게 된 경우와도 진배없다.

     

    다만 세인들이 그를 방화범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불을 낸 사람이 유대의 성직자들임을 다 알고 있는 까닭이다. 성서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불을 지른 사람은 분명 유대의 성직자들이었고 빌라도 총독은 그 불을 진화하려 애썼다. 그 진화 노력에 예수는 적어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저 지켜보았을 뿐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예수도 그 방조범이지만 그는 여전히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고 본디오는 그를 억울하게 죽인 원흉으로서 사도신경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성서의 여러 복음서에서의 본디오는 분명 예수를 도우려 애쓰고 있었고,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를 무죄로 판정했다.(누가복음서에서의 빌라도 판정이 그렇다는 얘기다)

     

     

    예수의 무죄를 표명하는 빌라도 / '빌라도가 대제사장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 죄가 없도다 하니,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누가복음 23:4-5)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또 다른 복음서인 요한복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유대인 자치 통치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에 의해 혹세무민 죄(나아가 내란·선동죄까지 덧씌워져)로 단죄된 후 로마 관할 법정에 이첩된 예수에 대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결론이었다.(요한복음 18:38) 그러면서 그는 죄인 중의 한 사람을 방면하는 유월절 명절 때의 시혜(施惠) 관례에 따라 예수를 풀어주려고까지 한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한사코 예수가 아닌 강도 바라바의 방면을 요구하였던 바, 결국 예수는 혹세무민 죄로 단죄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누가복음의 내용을 빌리자면 바라바는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였던 바,(23:19) 단순 강도라기보다는 민란의 수괴와 같은 정치범이었다. 따라서 빌라도 총독의 입장에서도 예수를 단죄하기보다는 바라바를 처형시키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무튼 여기서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거듭해 천명한다. 그러나 무리들은 시종일관 높은 목청으로써 예수의 십 가가 형을 요구하였으므로 어쩔 수 없이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처형시키게 된 것이었다. 그 누가복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소서 하니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무려 세 번이다)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하지만 너희들이 죄가 있다고 하니 태형으로는 다스린 후 방면하겠다 하니)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주고 예수는 넘겨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누가복음 23:18-25)

     

    즉, 빌라도는 예수의 구명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했으나 유대인의 자치권 보장 더불어 민란의 발발을 걱정해야 되는 입장이었던 바,(마태복음 27:24) 어쩔 도리 없이 유대인을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잠시 설명을 덧붙이자면, 당시 로마정부는 유대인 지역인 팔레스티나를 통치함에 있어 그들의 자치권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정책을 취했었다. 이에 헤롯대왕의 40년 자치 통치가 허용될 수 있었고, 이후로도 그 아들들에 의한 자치 통치를 허용하였으나 맏아들 아킬레우스의 치정상의 실패로 인해 총독을 파견하는 직접 통치의 형대로 돌아서게 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로마는 그들에게 인신구속권과 같은 주요권한을 주었고 다만 사형권은 주지않았던 바, 유대인들이 예수를 붙잡아 빌라도 총독에게 데려간 이유는 곧 예수의 목숨을 빼앗기 위함이었다.
     

     

    빌라도 총독 앞에 끌려온 예수 /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요한복음 18:29-31)

     

    그 외에도 성서는 발라도의 구명 의지를 어려가지 표명하고 있는 바, 그에 관한 각 복음서의 숨어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마태복음 27:1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마가복음 15:9-10)

     

    빌라도가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헤롯 안티파스가 예수를 조롱하긴 했으되 무죄의 취지로써 빌라도에게 환송하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누가복음 23:6-12)

     

     

    빌라도는 예수를 구명하려 애썼지만 유대인들은 한사코 예수의 십자가 형을 요구해댔고,
    이에 결국 빌라도는 바라바를 방면하고 예수를 십자가 형에 처하게 되는데,
    이때 빌라도 왈, "이 사람(예수)의 피에 대해서는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태복음 27:24)
    그러자 유대인들은 일제히 'OK!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답한다. 모든 것을 후대에까지 책임지겠다는, 역시 무서운 답변이었다.(마태복음 27:25) / 그럼에도 후대인들은 이 성서의 약속들은 무시하고 그 죄를 본디오 빌라도에게 뒤집어씌웠던 바, 성서의 기록을 무시한 이 같은 행위야말로 그 피 값을 치러 마땅할 중죄이다. 굳이 꿰맞추자면 어쩌면 유대인들의 2천 년 방랑이 예수의 피 값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도신경에서의 빌라도의 죄는 아직도 소명되지 않고 있다.

     

    아무튼 예수는 결국 사형수의 몸이 되었고, 가혹한 채찍질을 당하게 되었다. 이 같은 채찍질은 유독 예수에게만 가해졌던 것은 아니었고 사형수들에게 행해지는 형례(刑例)에 따른 것이었으니 가혹은 할지라도 차별적인 처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 씌워준 가시 면류관은 좀 유별난 것이었는데, 이 역시 본디오의 의지라기보다는 예수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빌라도는 예수를 따로 면담하여 목숨을 잃지 않게 해 줄 소명의 기회를 여러 번 주었으나 그는 묵묵부답하였고 대답이라고는 오직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뿐이었다.(마태복음 27:11, 마가복음 15:2, 누가복음 23:3, 요한복음 18:37)

     

     

    예수를 신문하는 빌라도 /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빌라도가 대제사장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누가복음 23:1-3) 빌라도는 이상과 같은 중죄로 고발된 예수를 신문한 후 그 일부를 시인하는 자백을 들었음에도 그를 죄 없다 생각한다. 필시 과대망상증쯤으로 여겼던 듯하다.(그것이 아니고는 이 문장의 해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는 법치주의의 나라 로마의 법례에 따라 십자가에 매달 죄목의 명패를 내린 것이고,(말하자면 죄형법정주의에 따른) 그 죄목은 '유대인의 왕을 사칭한 죄'였다. 이에 로마군인들이 그에게 면류관을 빗댄 가시관을 씌워 조롱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보면 빌라도는 사형 선고를 받은 예수를 위해 다시 마지막으로 구명의 노력을 기울인다.

     

     

    예수의 죄목이 적힌 명패를 들어보이는 빌라도 /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글을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적었다. 유대인의 왕을 칭한 죄, 이것이 예수의 죄목이었다. 이 죄 명패는 티툴루스(titulus)라 불리는데, 요한복음에는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의 3가지 언어로 적었다고 돼 있다.(19:20)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답답히 여겨)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왜)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황제)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그런 말)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요한복음 19:2-16)

     

     

    빌라도의 마지막 호소 / '내가 너를 풀어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음을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은 애원(?)이 오히려 눈물겹다.


    이상 보았듯 빌라도는 최후까지 예수의 구명을 위해 분투한다. 하지만 결국은 황제에 대한 반역 운운하는 유대인들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예수를 형장으로 보내게 되는 바, 사도 신경에 적힌 예수의 고난은 빌라도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천주교 등에서 말하는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았다는 표현도 옳지 않다.(그리되면 아무래도 빌라도가 연루되게 되므로)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고난과 박해를 강조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거듭 말하거니와 말에 설득력이 실리려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성과 진실성이다. 그들이 예수의 고난을 피력코자 한다면 가해자는 의당 '유대인 성직자와 그들을 따르는 군중들'이 되어야 마땅하다.(이를 설명하는 것이 조금은 어려울 듯도 여겨지지만, 말 잘하는 그들인지라 이만한 개역쯤은 능히 해낼 수 있으리라 본다)

     

     

    '아이고. 속통 터져!' / 예수를 보내는 빌라도의 심정은 아마도 이러했을 듯싶다. 예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교의 눈길이 덩달아 애처로워 보인다. '저 자는 왜 저리 죽지 못해 안달일까' 하는 표정이다.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스틸컷.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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