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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나'와 '왜'ㅡ 왜 '왜'를 두려워하는가?
    잃어버린 왕국 '왜' 2021. 9. 26. 23:54

     

    임나일본부설(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설)에 이용될 우려로 인해 30년간 공개되지 않았던 삼국시대 ‘신덕 1호분’ 발굴조사 결과가 이달 말 발표된다. 1991년 3월 도굴 흔적이 발견되면서 첫 조사가 시작된 전남 함평 ‘신덕 1호분’. 이 무덤은 일본의 고대 무덤에서 흔히 발견되는 열쇠구멍 모양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앞은 네모지고 뒤는 둥근 봉분을 가진 무덤)'이다.

     

    이 모양 때문에 임나일본부설 근거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조사 결과 영산강 일대 지배세력이 만든 무덤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동아일보가 미리 입수한 발굴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고분 출토 유물에서는 백제와 왜(倭)의 문화가 혼재된 양상이 확인됐다. 조사 결과를 분석한 한일 고고학자들은 20, 3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이 무덤의 주인이 지역 수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한반도에 진출한 왜인이 묻혔을 것으로 보는 임나일본부설의 시각과 배치되는 것이다.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이던 전남 함평 ‘신덕 1호분’ 전경(왼쪽 사진). 위는 둥글고 아래는 각이 진 열쇠고리 모양은 전형적인 전방후원분 형태다. 이곳에서 출토된 금동관(오른쪽 사진)은 다각형의 구획과 꽃무늬가 조합된 양식 등으로 미뤄 볼 때 백제 공인이 제작한 것으로 분석됐다. 유리구슬, 쇠비늘갑옷 등과 더불어 무덤 주인이 지역 수장 신분임을 보여준다.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 동아일보 기사의 전문(全文)   

     

    [단독]30년 만에 임나일본부 망령서 벗어난 신덕 고분

    임나일본부설에 이용될 우려로 인해 30년간 공개되지 않은 삼국시대 ‘신덕 1호분’ 발굴조사 결과가 이달 말 발표된다. 동아일보가 미리 입수한 발굴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고분 출토 …

    www.donga.com

     

    이상은 지난달 10일(2021. 08. 10) 다음 포털 뉴스에 실린 기사와 사진으로, 그 제목이 '일본에 이용당할까봐' 30년간 비공개로 발굴한 신덕고분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일본 학계의 공격을 두려워 해 쉬쉬하며 발굴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 한 이유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이 고분이 전방후원분이기 때문이었다. 전방후원분 형태의 고분은 한국에서는 드물고 일본에서는 흔한 무덤이니 대표적으로는 앞서 '임나일본부의 정체(II) - 나주 옹관 무덤의 주인은?'에서 말했던 오사카의 다이센 고분을 들 수 있다. 

     

     

    다이센 고분. 외관 525m, 봉분 길이 305m, 후원(後圓)의 지름 249m, 높이 34m의 세계 최대 무덤이다. 닌코구(仁德)천황(257-399)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5세기경 축조된 고분으로 실제 주인공은 알 수 없다.
    주변의 다른 고분들. 다이센 고분과 마찬가지로 궁내청에서 발굴을 불허하여 무덤의 주인을 알 길 없다.  
    마구잡이로 추정되는 모즈( 百舌鳥 ) · 후루이치(古市)고분군의 무덤들. 일본에서도 이것을 믿는 사람은 드물다. 2~4세기에 이 같은 거대무덤을 조성할만한 열도 내의 세력이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이 무덤(신덕 1호분)을 1991년부터 2000년까지 네 차례 조사했지만 당시에는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왜곡 해석당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 기사에 따르면 8월 30~31일에는 발굴조사 결과가 발표되어야 했다. 하지만 발표되었다는 소리는 끝내 없었다.(내가 모르는 건지 모르겠지만 신문이나 인터넷에서는 관련 기사를 찾을 수 없다)

     

    이런 예는 사실 1991년 국립광주박물관의 발굴조사 때도 있었다. 조현종 국립광주박물관장의 퇴직 직전 발굴·조사된 이 무덤(신덕 1호분)에서는 은으로 장식된 철모와 칼, 찰갑옷을 비롯한 각종 무구(無具)와 최상급의 그릇 등이 쏟아져 나왔던 바, 발굴 공개를 서둘렀으나 결국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는 전방후원분의 묘제보다 문제가 됐던 것은 파편으로 수습된 관재(棺材, 목관의 재료) 금송(金松)이었다. 

    1991년 신덕 1호분 발굴 당시는 길이 50m, 높이 5m의 무덤 위에 소나무가 빼빽히 자라고 있어 무덤이 전방후원분인지 아닌지도 분간이 어려웠다. 하지만 금송은 일본열도에서만 자라는 '고우야마키'라는 흔한 나무였던 까닭에 덜컥 겁이 났던 것이었으니, 이 사실은 발굴 행정보고서에마저 누락되었다. 물론 고의적으로 그 사실을 은폐시킨 것이었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올 봄(2021.03.18) 해남리 방산리 고분 발굴 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불미스러움이 있었다.   

     

     

    신덕 1호분의 외관
     발굴 전 이미 손을 탄 듯/신덕고분 도굴갱(역사문화라이브러리 사진) 
    1991년 발굴된 신덕 1호분의 내부는
     올해 4월 발굴된 해남 방산리 고분 및
    일본 규수 사이토바루 206호분과 거의 같다. (☞ '또 다시 발견된 한반도 왜왕의 무덤') 

    ▼ 한겨레 신문 관련 기사 : '한반도에서 가장 큰 고대 무덤, 열자마자 덮은 까닭은.....'

     

    한반도서 가장 큰 고대 무덤, 열자마자 덮은 까닭은…

    [노형석의 시사문화재]장고봉 고분 둘러싸고 고고학계 술렁일본 고분 닮은 얼개·제사 흔적 논란“추가 발굴 뒤 일반 공개” 다시 묻어무덤 주인은 백제 통제 받은 왜인?일 우익 임나일본부설

    www.hani.co.kr

     

     

    사실 이번 발표는 기대가 컸다. 앞서 신문 보도에 이르기를, 이번에 발굴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이유를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 교수(김낙중 전북대 교수)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6세기 전엽 영산강 유역의 현지 세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 사실이 밝혀져 임나일본부설에 의해 왜곡 해석될 여지가 줄었습니다. 신덕 1호분 발굴조사 보고서 발간에 일본 학자들까지 참여시킨 건 국내 학계의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6세기 전엽 영산강 유역의 현지 세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 사실이 밝혀져 임나일본부설에 의해 왜곡 해석될 여지가 줄었다고? 나는 이 대목이 여전히 의아하다.(그래서 발표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것과 전방후원분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일본이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는 ‘전방후원분'에 주목하는 것은 이것을 과거 한반도 남부에 진출했던 '임나일본부'의 흔적으로 보고 그 증거로 삼는 까닭이다. 그런데 그들과 영산강 유역의 현지 세력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누차에 걸쳐 주장하고 있지만 광개토대왕비문을 비롯한 한·중·일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왜(倭)'는 한반도 남부에 존재하던 왕국이었다. <삼국지 위지>나 <후한서>는 왜의 위치를 분명 한반도 남쪽으로 적고 있고, <송서>에서 유추해봐도 왜가 있던 곳은 한반도 남부이다. 물론 광개토대왕비문 속에서 설쳐대는 왜 역시 한반도 남부에 있던 세력이니 신묘년(391년)에는 광개토대왕이 신라 땅에 침공한 왜를 내쫓고 그들의 본거지인 종발성까지 쫓아가 박살낸다. 

     

    이들이 바로 '영산강 유역의 현지 세력'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학계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앞서도 말했듯, 임나일본부설을 신봉하는 일본 사학자에게 배운 우리의 선배 사학자들은 당연히 왜가 일본열도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 선배 사학자에게 배운 후배 사학자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본이 주장하는 광개토대왕비 '신묘년 기사'의 해(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해석)에 맥을 못출 수밖에 없고,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는 전방후원분에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그 왜는 5세경 일본 규슈에도 진출해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를 아우르는 해상왕국을 구축하는데, 일본 본토인들은 그들을 '도래인(渡來人)'이라고 불렀다. '바다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 왜인은 한반도 3국(고구려, 신라,  가야)의 공격에 밀려 5세기 말 아예 한반도에서 철수하니 그때부터 열도(列島) 왜(倭)의 시대가 시작된다. (앞으로 다시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왜는 한반도에 끝까지 집착을 보여 AD 541년 백제연합군과 함께 임나 수복을 꾀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전방후원분의 형태가 뚜렷한 신덕 1호분
    신덕고분군 안내문
    신덕고분 발굴 사진
    신덕 1호분의 위치와 주변의 전방후원분/이와 같은 형태의 고분이 전라남도 해안을 거쳐 옛 왜의 영역이 미쳤던 던 경상남도 해안에서도 나타난다.  
    좀 더 확대하자면 이렇다.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을 쓴 장한식 기자는 '한일 고대사의 비극 역사전쟁'라는 소제목을 달아 위와 같은 현실의 답답함을 토로한다. 

     

    "역사기술을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은 뿌리가 깊다. 특히 고대사는 타협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래서 한일 고대사에 관한 글쓰기는 헤어나기 힘든 수렁에 빠져드는 일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해답 없는 역사전쟁에 아예 뛰어들지 않는 것이 좋다. 이 싸움은 답답하고 혼란스럽고 지극히 고통스러운 반면 반대급부는 사실상 없다. '돈이 되는 일'이 아니고, 명예나 권력을 얻는 일은 더더욱 못 된다. 부귀영화와 무관한 영역이니 애당초 관심을 주지 않는 편이 여러모로 이롭다."

     

    그래도 나는 그 길을 계속 걸으려 한다. 인류학적으로 중국의 한족과 우리 한민족과는 DNA가 다르며 언어학적으로도 전혀 다르다. 하지만 일본인과는 DNA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언어도 같은 교착어를 사용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세계에서도 교착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과 터키, 그리고 묘족을 비롯한 몇몇 소수민족뿐이다.(☞ '역사전쟁 중국 동북공정 -고구려어와 만주어')그렇다고 내가 양국 간의 화합이나 공동 번영 같은 거창한 무엇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위 책은 그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총균쇠(Guns Germs Steel)>의 저자인 진화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가 한일 고대사에 관한 논문을 쓴 사실은 특이하고도 교훈적이다. 다이아몬드는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논문을 통해 한일 간의 역사적인 화해를 촉구하였다. 일본인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자의 후손이라고 결론을 내린 다이아몬드는 '한국인과 일본인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이므로 고대에 쌓은 유대관계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할지 여부에 두 나라의 정치적 미래가 달려 있다'고 충고하였다."

     

    더불어 내가 이 블로그에서 피력하고 있는 주제는 '과거에 행했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반성'과 '향후 더욱 심화될 (중국의) 간섭과 압력에 앞으로도 사대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한민족의 미래'에 대한 타파 방안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첫째는 중국의 압력에 겁먹지 않는 일, 두번 째는 체득된 소국(小國) 콤플렉스 벗어나기,(‘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한국은 소국’ 이런 사고는 곤란하다) 세번 째는 현재 중국과 맞서 싸우고 있는 미국, 호주, 인도는 물론이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개념을 공유할 수 일본인과 만주족을 보듬는 일이다. 그러면 중국은 영원히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 반대일 경우는 앞으로도 계속 중국의 속국처럼 살아야 한다. 앞서 누차에 걸쳐 말했지만 중국이 베트남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건 그들의 깡다구를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설사 나라가 망하더라도 그만큼의 피해를 주고 망하겠다 깡다구가 두려운 것이니, 2014년 황사군도에서 감행된 중국의 석유 시추 문제로 양국이 시끄러울 때 베트남 국민들은 겁없이(?) 일어섰고 중국대사관을 공격해 차량까지 불태웠다.

     

    그리고, 작년 다시 영유권 분쟁이 불거지자 이번에는 철천지 원수인 미국의 국방장관을 초대해 회담을 가졌다. 베트남은 그 두 번의 싸움에서 모두 이겼다. 중국은 두 번 다 끽소리도 못했다.(유감이라는 한 마디는 했다)  

     

     

    2021년 7월 29일 베트남을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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