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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도 추천사를 쓰지 않은 <마광수 시선>
    작가의 고향 2022. 4. 20. 05:03

     

    검사는 사라가 자위행위를 할 때

    왜 땅콩을 질(膣) 속에 집어넣었냐고 다그치며

    미풍양속을 해칠 ‘가능성’이 있으므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하고

    재판장은 근엄한 표정을 지어내려고 애쓰며

    피고에게 딸이 있으면 이 소설을 읽힐 수 있겠냐고 따진다

    내가 ‘가능성’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을까

    또 왜 아들 걱정은 안 하고 딸 걱정만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왼쪽 배석판사는 노골적으로 하품을 하고 있고

    오른쪽 배석판사는 재밌다는 듯 사디스틱하게 웃고 있다

    포승줄에 묶인 내 몸의 우스꽝스러움이여

    한국에 태어난 죄로 겪어야 하는 이 희극이여

     

     - 「사라의 법정」 전문

     

     

    구속 당시의 마광수

     

    앞서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에서 말한 것처럼 마광수는 1992년 소설 <즐거운 사라>를 출간한 후 운명이 바뀐다. 나쁜 쪽으로 말이다. 그는 그해 강의 도중 <즐거운 사라>가 외설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1995년 대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먹음으로써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교수 사회에서 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이후 1998년 사면·복권되어 연세대학교로 돌아왔으나 차가운 시선은 회복되지 않았던 바, 해직과 복직을 반복하다 2016년 8월 정년퇴임을 했다. 하지만 '중간에 한 번 잘려서' 명예교수 자격요건을 잃었는데, 이것이 말년의 생활고를 가져온 원인이 됐다고 한다. 찢어질 정도의 가난은 아니었겠지만 분명 자살 요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정년퇴임 이듬해인 2017년 1월, 마광수는 자신의 시작(詩作) 40년을 결산하는 시선집 <마광수 시선: 솔깃하고 솔직한, 아찔하고 찌릿한>을 출간했다. 아래의 자필 시 '나는 천당 가기 싫어'가 서시이고, 1977년 등단작 '배꼽에', 과거 외설 논란 때의 법정 경험을 쓴, 위의 '사라의 법정', 그밖에 '민족주의는 가라', '가을비 감옥 속', '바람에 대하여', '음란한 시' 등 119편을 담았다. 그는 과거에 쓴 것 중 듬성듬성 마음에 드는 것을 뽑았고, 새로 쓴 것도 열 몇 개 있다고 했다.

    그는 <즐거운 사라>를 비롯한 약 40권의 소설을 썼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마광수 문학의 진수는 에세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시인이고 싶었는 듯,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원래 시인을 지망을 했고 시로 데뷔를 했기 때문에 시에 제일 애착이 가죠."

     

    사람들은 마광수 문학 속의 '성적 욕망' 혹은 '사회적 일탈'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망쳤다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평등'과 솔직함을 노래한 시인이라 좋아하다. 아래의 시들은 그것을 증명한다.  

     


    얼마 전에 나는 마당의 잡초를 뽑았습니다
    잡초는 모두 다 뽑는다고 뽑았는데
    몇 주일 후에 보니 또 그만큼 자랐어요
    또 뽑을 생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 어느 누가
    잡초와 화초의 한계를 지어 놓았는가 하는 것이에요

    - 「잡초」 中

     

    내 자서전에서 독자들은

    너무나 고상한 지식인 사회에

    섞여 살며 힘들어 했던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슬퍼하는 사람과

     

    으리으리한 교회 앞에서

    구걸하는 걸인을 보고

    가슴 먹먹해하는 사람과

     

    사람은 누구나 관능적으로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쓸 자서전에는
    나의 글쓰기는 이랬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장면이 담겨있을 것이다

    우선 손톱이 긴 여자가 좋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그리고 야한 여자들은
    못 배운 여자들이거나 방탕 끝의 자살로
    생(生)을 마감하는 여자여야 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라는 즐겁지 않았어야 했다고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는
    소설 속 여자이어야 했다고

     

    나의 고된 삶 속에서

    그나마 한 줌 상상적 휴식이 돼주었던

    그녀와 나의 잠자리가

    타락이었다고 그래서 반성한다고

     

    - 「내가 쓸 자서전에는」 

     

     

    혼혈적(混血的)인 것은 아름답다.

    동양적인 얼굴과

    금발로 염색한 머리는

    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성형수술로

    쌍꺼풀을 만들고 코를 높이고

    광대뼈를 깎고 유방을 부풀려

    동양적인 외모를 억지로 서양적인 외모로

    만든 여성은

    그 어색하고 안쓰러운 조화감 때문에

    한결 야하다. 한결 매력적이다.

    동양도 싫고 서양도 싫다.

    한국도 싫고 미국도 싫다.

    동서양을 한데 섞어 잡탕을 만드는 게

    훨씬 더 낫다. 훨씬 더

    아름답다. 훨씬 더

    평화롭다.

    어서 빨리 돈을 벌어야지

    어서 빨리 애인을 구해야지

    그래서 그녀를 왕창 왕창 성형수술시켜 줘야지

    그녀에게 수백가지 색깔의 가발도 사줘야지

     

    - 민족주의는 가라」  전문

     

     

    그는 윤동주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시가 쉽고 솔직해요. 어렵게 비비 꼬지 않아요. 제 시도 윤동주처럼 비비 꼬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썼죠."

     

    아래 시 '내가 죽은 뒤에는'은 정말로 솔직하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내가「윤동주 연구」로 박사가 되었지만
    윤동주처럼 훌륭한 시인으로 기억되긴 어렵겠고

    아예 잊혀져 버리고 말든지
    아니면 조롱섞인 비아냥 받으며
    변태, 색마, 미친 말 등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칭송을 받든 욕을 얻어먹든
    죽어 없어진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저 나는 윤회하지 않고 꺼저버리기를 바랄뿐

     

    - 「내가 죽은 뒤에는」  전문

     

     

    2017년 그는 <마광수 시선>을 출간하면서 시평이나 추천사를 동료 교수와 문학가들에게 의뢰했으나 대다수가 거부했고 나머지는 회신이 없었다. 혹시라도 똥물이 튈까 두려웠던 것이다. 애초부터 싫었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라도 "어, 그래. 당연히 내가 써야지" 했다거나, "저에게 의뢰해주시니 영광입니다'라는 요식적 멘트로서, 틀에 박힌 서평이라도 써 주었다면 (대부분 그러하니까) 최소한 그는 죽음 만큼은 면했을 것이다. 

     

     

    <마광수 시선>

     

    솔깃하고 솔직한, 아찔하고 찌릿한 <마광수 시선>이었으나 그 책에는 아무도 추천사를 쓰지 않았다. 그래서 분개한 것일까, 그는 어느 지면에인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는데, 이때는 이미 심신에 이상 신호가 켜졌다고 봐야 한다. (아마도 이것이 그의 직접적인 자살 요인이었을 것이다)

     

    나는 대학시절에 '애정'보다 '우정'에 더 정성을 기울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K라는 친구는 정말 자주 만나 술도 마시고 같이 여행도 많이 다녔다. 그리고 나는 그를 힘자라는 대로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그가 나보다 늦게나마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가 되었을 때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성의를 쏟아부었다. 그렇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그의 돌연한 '배신'이었다.

     

    그는 윤번제로 하는 학과장이 되자 나를 교수직에서 내쫓으려고 혈안이 되어 덤벼들었다. 그래서 나는 너무나 심한 배신감 때문에 지독한 외상성 우울증에 걸려 병원에 입원도 하고 자살을 시도해보기도 하는 등 3년간을 고생하며 학교를 휴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어느 누구도 안 믿는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나 아니면 모두 적이다. 원만한 인생을 살아가려면 친구 없이 혼자 지내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그가 죽은 뒤 한 지식인은 이렇게 말했다. "언제가 될는지 미리 점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별로 멀지 않은 시기에 마광수와 그가 남긴 불온한 유산들은 시대를 앞질러간 혁명적인 사건으로 우리의 문화 예술사에 등재될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그날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라도 표출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억눌린 성은 왜곡되어 내연(內燃)하였던 바, 조주빈 사건 같은 상상도 못한 성범죄가 출현하기도 했다.

     

    마광수를 최고의 윤동주 시인 전문가라고 평하고 있는 연세대 남형두 교수는 최근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과연 그를 단죄한 결과, 법원과 검찰이 원한대로 우리 사회에서 음란물이 없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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