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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형도의 '안개'
    작가의 고향 2022. 5. 4. 06:51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醉客) 하나가 얼어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銃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들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기아자동차 공장이 있는 광명시 소하동의 안개가 연상되는 사진
    기형도는 소하동의 안개와 함께 오래 살았으나 태어난 곳은 연평도이다.

     

    위 시는 기형도의 등단작으로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이다. 당시의 유행을 보여주듯 음습한 노동의 현장을 주제로 했다. 이후로도 그는 이런 식의 음습한 분위기의 시를 몇 편 썼으며, 그 때문인지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은 그 일련의 시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표현했다. 필시 '안개'는 그가 오랫동안 살았던 광명시 소하리 공장지대를 배경으로 삼았을 것이며,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끼는 샛강'은 안양천이리라. (기형도는 대연평도 새마을리에서 태어났으나 5살 때 광명시 소하동으로 이사 온 이후 내내 그곳에서 살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를 심사한 사람이 바로 마광수 교수라는 점이다. 마광수는 당시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였고 문필가이자 시인이었다. 내가 흥미롭다고 하는 것은 '안개'는 마광수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시가 아니라는 점이다. (마광수는 1984년에는 안도현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뽑아 그를 세상에 나오게 만들기도 하였는데, 그건 그런대로 이해가 간다. / 훗날 안도현은 '너에게 묻는다'로 일약 스타가 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일갈로 인해)

     

    그래서 알아봤더니 기형도의 당선에는 '연줄' 같은 것이 있었다. 기형도는 이미 그전에(1983년)  '식목제'라는 시로 연세춘추(연세대학보)가 시상하는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따라서 과는 달랐어도 (기형도는 정외과) 그를 몰랐을 리 없었을 터인데, 아니나 다를까, "기형도는 별로 시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그가 낸 작품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오로지 친구와의 의가 틀어질 것을 염려하여 그의 시를 뽑았다"고 고백했다고 한다.(<나무위키>) 그 친구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기형도(1960-1989) /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한 후 윤동주시비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하지만 때가 문제일 뿐, 기형도는 동아일보 신춘문예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라도 등단했을 것이다. 그는 노력하는 천재였기에..... 그리고 또 한 가지, 그의 죽음에 있어 당시 파고다극장에서 상영된 영화가 '뽕2'라는 사실 때문에 뭔가 '저질'의 분위기가 묻는 듯하나, 당시 파고다극장은 영화 두 편을 같이 때려주는 이른바 동시상영관이었으며 그때 같이 상영된 영화는 성룡 주연의 무지 재미있는 영화 '폴리스 스토리'였다. 기형도는 개봉관에서 미처 보지 못한 '폴리스 스토리'를 보러 갔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나무위키> 등에서는 에로영화 '뽕2'만 거론된다)

     

     

    2008년 구본준님이 올린 사진(<구본준의 거리가구 이야기>)에는 파고다 극장 때의 모양새가 아직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극장의 자취가 사라졌다. 하지만 1989년 3월 7일 새벽 어두운 파고다 극장에서 빈 소주 병과 함께 변사체로 발견된 일은 장소와 함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뽕' 1,2,3편을 모두 섭렵한 헐리우드 키드가 평하자면, '뽕1은 나도향 원작 소설을 이두용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으로 수작(秀作)에 속하며, 주연인 이미숙은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었다.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 '씨받이'로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 필름 콘테스트였다. 하지만 강문영 주연의 '뽕2', 가수 유연실 주연 '뽕3'는 눈요기만 강조된 삼류영화였다. 참고로 유연실은 한국 최초로 누드 화보집을 발간한 분이다.

     

    앞서 '기형도의 빈 집'에서 말했듯, 기형도의 시는 제목만으로도 영화화되는 기현상을 보여서 장미빛 인생 / 봄날은 간다 / 빈집 / 질투는 나의 힘 등이 영화로 다시 태어났는데, 이중 김홍준 감독의 '장미빛 인생'은 최명길이 프랑스 낭트영화제 여우주연상 받았으며 영화도 꽤 재미있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인 은사자상을 받았음에도 더럽게 재미없었다. (영화도 아님!/ 김기덕의 이름값으로 상을 받은 영화)

     

     

    최명길 최재성 주연의 '장미빛 인생'

     

    한마디 더 하자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거의 다 보았는데 ('사마리아'는 못 봤음) 데뷰작 '악어'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외에는 작품이라고 여겨진 게 없다. 그리고 그중 '빈 집'은 최악이어서, 왜 남의 시 제목을 가져다가 이 따위 영화를 만들었을까, 분노까지 일었다. 그래서 그가 여배우들을 상습 성폭행했다는 쓰레기 죄목을 달았을 때 더욱 분노했지만, 라트비아에서 코로나 19로 사망했다는 소식에는 그래도 좀 측은했다. 워낙에 고생 고생하며 거기까지 오른 사람이라.....

     

    생각해보니 '해안선'도 좋았다. 지금 병영에서 문제 되고 있는 이른바 관심사병 이야기를 벌써 20년 전에 다뤘다. 김기덕다운 시선으로, 철저한 복수극으로..... 미국에서는 해안경비대의 뜻인 'The Coast Guard'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장동건 주연의 '해안선' 포스터
    광명시 소하동 기형도 문화공원 입구
    기형도 문화공원은 번잡한 조형물들이 없이 그저 시뿐이라 좋다. 다른 데 마냥 기형도의 동상이라도 세웠다면 요즘말로 정말 깼을 것이다.
    위 시비에는 '오래된 서적'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書標)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끔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오래된 서적」 전문(全文)

     

     

    기형도 문화공원에서 본 광명시 소하동
    광명시 소하동 기형도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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