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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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이 충돌하는 남양주시 풍양궁 터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3. 1. 20:37
앞서 말한 인빈 김씨의 무덤 순강원이 있는 경기도 남양주 진접읍 내각리에서는 또 조선시대 대궐지를 만날 수 있다. 흔히 부르기를 내각리 대궐터라 하는데, 근방에는 대궐터라는 기막힌 명칭을 사용하는 아파트 단지도 있다. 이런 시골에 무슨 대궐터가 있겠냐 싶겠지만 사실이다. ' 내각리 대궐터' 버스 정류장 부근의 동네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를 증명하는 비석 2기가 서 있다. 이름하여 '풍양궁 구궐유지비'(豊壤宮 舊厥遺祉碑)다. 간단히 말하자면 풍양궁지(豊壤宮址)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723-21 일대에 있던 조선 왕조 이궁(離宮)의 터로서, 풍양궁은 1419년(세종 1) 상왕이 된 태종의 명으로 건립됐다. 풍양(豊壤)은 지금의 남양주시 진건읍·진접읍·오남읍 일대를 이르는 지명으로, 조선시대 말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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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빈김씨가 묻힌 순강원과 남양주 봉영사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2. 27. 23:55
앞서 말한 명필 의창군 이광의 어머니는 선조의 후궁이던 인빈 김씨(1555~1613)로, 그녀가 오늘 포스팅할 인물이다. 그녀는 후궁으로서 내명부 내관 최고위인 정1품 빈(嬪)의 지위까지 올랐으며, 남편인 선조와의 사이도 좋아서 첫째 아들인 의안군 이성(李珹)을 비롯한 4남5녀를 두었다. 굳이 열거하자면 의안군 이성, 신성군 이후, 정원군 이부, 의창군 이광, 정신옹주, 정혜옹주, 정숙옹주, 정안옹주, 정휘옹주이다. 인빈 김씨의 장남 의안군은 일찍 죽었다. 그래서 신성군 이후가 장남 역할을 하며 어머니를 보살폈는데, 임금 선조도 인빈 김씨와 신성군을 아껴 임진왜란 때는 정비인 의인왕후 대신 인빈 김씨와 신성군을 데리고 의주로 몽진했다. 선조의 마음이 어디 있는가를 잘 알게 해주는 대목으로, 이대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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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명필의 글씨를 모두 볼 수 없는 행주대첩비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2. 26. 20:39
임진왜란 3대첩 가운데 하나인 행주대첩은 명나라 원군이 벽제관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배함으로부터 비롯됐다. 1593년 음력 1월 평양성 전투에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대를 깬 이여송은 파죽지세로 고양시 벽제관까지 밀고 내려왔으나 여석령(礪石嶺=숫돌고개)에 매복해 있던 고바야카와 다카가게(小早川隆景) 부대에 박살이 났다. 이여송은 코가 빠져 혜음령 너머 멀리 개성까지 후퇴했다.(☞ '벽제관 전투와 용산의 왜·명 강화비') 그런 줄도 모르고 평양성 전투 승리에 고무된 조선군은 한양을 탈환하고자 북상하였다. 이제 명나라 군대가 왔으니 전세가 뒤바뀔 것이라는 다소 급한 생각에서였다. 이렇게 북상한 조선군은 양천에 있던 전라도소모사 변이중, 금천에 있던 전라병사 선거이, 양주에 있던 경기방어사 고언백,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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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품사현과 견줄만한 선조의 아들 의창군 이광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2. 26. 01:50
신품사현(神品四賢)은 신(神)의 작품이라 일컬을 만큼 빼어난 솜씨를 보여준 신라·고려시대의 명필 김생, 유신, 탄연, 최우를 말함이다. 귀하기는 하나 이들의 글씨는 지금도 남아 있으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김생의 글자를 집자(集字)해 만든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를, 순천 송광사에서는 유신의 보조국사비를 볼 수 있으며, 춘천 청평사에서는 탄연이 쓴 문수원기 비석이 복원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안평대군을 비롯해 자암 김구, 봉래 양사언, 석봉 한호가 조선 전기 4대 명필로 불렸고, 그밖에도 유공권, 성세창, 박팽년, 이황, 성자제, 김현성 및 성종 임금 등이 명필로 꼽힌다. 후기에는 원교 이광사, 추사 김정희, 몽인 정학교, 흥선대원군 등을 꼽을 만한데 임금으로서는 숙종이 명필을 자랑했다. 우리에게 재수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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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경의선(I)ㅡ남은 신촌역과 사라진 수색역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2. 23. 22:30
예전 을지로에서 버스를 탔을 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처음 탄 버스 안에서 누가 나를...?'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나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승객도 몇 되지 않아 더욱 의아함이 느껴지는 순간,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야! 여기야, 여기!" 소리 나는 쪽을 보니 운전석 앞 거울에서 머리가 반쯤 벗어진 알 듯 모를 듯한 얼굴의 운전사가 웃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야 그 운전사가 고등학교 동창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름이 바로 생각났는데, 그러고보니 우리는 서로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가까웠던 사이였던 듯하다. 하지만 세월 탓일까? 기억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는 못한 듯했고, 다만 한 가지 분명히 공유하고 있는 것은 신촌역에서 경의선 기차를 타고 백마역 부근에 있는 그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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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와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 총경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2. 21. 00:31
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화개장터는 영호남 화합의 상징으로서, 전통 장터나 관광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에 이 같은 장소가 또 있을까 여겨질 정도로.... 이곳이 2020년 8월 초, 긴 장마와 7일간 지속된 폭우로 인해 완전히 침수된 적이 있다. 폭우에 섬진강 둑이 유실된 탓으로, 완전 침수는 1988년 이후 32년 만이라고 한다. 뉴스를 보며 정말로 걱정했었는데, 이후로 방제에 만전을 기했다 하니 앞으로는 이런 물난리가 반복되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물난리 속에 화개장터 부근 화개면 탑리 옛 화개우체국 자리에 세워졌던 6.06m의 삼층석탑은 무사했다. 탑리라는 지명은 필시 이로부터 유래되었음직하지만, 물난리에 탈이 났어도 별로 관심거리가 안 되지 않았을까 여겨질 정도로 방치돼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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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동 미타사 금보암에서 발견된 국보급 불상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2. 18. 22:30
서울 미타사는 성동구 옥수동 한강변에 위치한 비구니 도량으로 창건연대는 지금으로부터 1,100년 전인 신라 진성여왕 2년(888)까지 올라간다. 이 절을 창건한 사람은 원효나 의상 같은 고승이 아니라 대원(大願)이라는 비구니스님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오히려 창건연대가 미더워지며 아울러 비구니의 오랜 역사에 괜히 놀랜다. 대원스님은 기록으로 전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비구니일 것이다. 이 같은 사적기(寺跡記)가 아니더라도 이곳에 천년고찰이 존재했을 것임은 그 위치 하나로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금의 미타사는 온통 한강뷰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고, 그 때문인지 스스로도 고졸함을 잃어 예스러운 풍치가 없지만, 과거 이 일대는 절승(絶勝)으로 인해 수많은 유·무명의 정자들이 명멸했던 곳이니, 세종 때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