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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에서 발견된 광배 글씨와 하타 씨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2. 9. 5. 20:03
1991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부여 부소산성 동문(東門) 터에서 발굴한 백제시대 금동광배는 본체인 불상은 사라졌음에도 아름다운 광배만으로도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연꽃무늬와 인동초 문양을 미려하게 투각(透刻)한 이 광배는 한 눈으로 보아도 수준급 장인의 솜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광배 자체보다 그 뒷면에 새겨진 글씨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 금동광배 뒷면에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 쓴 여섯 글자가 있다는 사실은 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정자(正字)가 아닌 흘림자 글씨인지라 전문가 사이에서도 독법(讀法)이 다양했는데, 대개는 '하다의장 법사'(何多宜藏法師)'로 읽었다. 즉 '하다의장이라는 이름의 승려'라는 해석으로서, 이것은 곧 이 불상을 만든 사람의 이름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다른 해석이 나왔다.이 유물을 보존처리한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의 김선덕 서진문화재연구소장과 중문학자인 김영문 박사가 연차 학술대회에서 기존 판독을 정정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이것을 '하다의장 치불'(何多宜藏治佛)로 읽었고, 그것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기존에 '법사'(法師)로 판독한 것은 초서로 흘려 쓴 글자를 잘못 읽은 결과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판독 결과가 문자학·불교학 등의 인문·종교학 관계자들의 집중 토론과 분석을 거쳐 확정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다의장은 불상을 직접 만든 인물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제작 의뢰한 발원자일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았으며, 아울러 이 백제인의 성씨인 '하다'(何多)는 고대 일본에서 적지 않은 족적을 남긴 한반도계 도래 씨족인 '하타씨'(秦氏)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위의 주장, 즉 하다의장은 불상을 직접 만든 인물이라기보다는 불상 제작의 발원자일 것이라는 데는 나의 생각도 동일하다. 하지만 위의 주장에는 일본의 국뽕과 같은 오류가 실려 있다. 위에서 말한 '하타씨'는 교토 광륭사를 만든 신라인 진하승(秦河勝, 하타노 카와카쓰)을 말함일 게다.(그외는 없으므로) 그 광륭사를 일본인들은 우즈마사고류지(太秦廣隆寺), 혹은 우즈마사데라(太秦寺)라고 부른다.
광륭사가 있는 이 동네의 이름이 우즈마사(太秦)이기 때문인데, 신라에서 온 진(秦)씨들이 모여 살던 집성촌, 혹은 절의 창건자인 진하승의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전한다. 어찌됐든 교토의 유명한 절 광륭사를 신라인 진하승이 세운 것만은 틀림없으니 절 입구에도 '古秦廣隆寺', 즉 '옛 하타씨(秦氏)의 광륭사'라는 비석이 서 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그같은 사실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경내 태자전(太子殿) 앞 광륭사 안내표석에 광륭사를 중국 진시황제의 후손 진하승이 세운 절이라고 했다가 훗날 이 부분을 쪼아내는 해프닝을 벌였다. 진시황제의 성(姓)이 진씨가 아니라 영(嬴)씨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던 것이다. (ㅋㅋ 참고로 진시황의 이름은 영정·嬴政이다)
잘 알려진대로 이곳 광륭사에는 우리나라 금동미륵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과 똑 닳은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일본 국보 1호)이 보존돼 있어 이 일대가 전통적으로 신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위의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의 김선덕 서진문화재연구소장과 중문학자인 김영문 박사는 위의 백제 금동광배의 명문을 해석하며 그 불상의 제작을 의뢰한 하다의장이 일본 내의 한반도계 도래 씨족인 하타씨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하다의장은 백제 사람이 아닌 신라인이 되거나 부소산성에서 발견된 불상의 광배가 신라의 것이 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절대 희박하다. 억지 국뽕은 언제나 그렇듯 뒤가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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