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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포 경성감옥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2. 9. 16. 23:51
1909년 7월, 대한제국은 일본과 '대한제국 사법 및 감옥사무 위탁에 관한 각서' 이른바 기유각서(己酉覺書)를 작성함으로써 대한제국의 사법권과 죄수 수형에 관한 업무가 일본에게 넘어갔다. 그런데 1905년 을사늑약과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이후 죄수 수형에 관한 업무는 이미 일제에 의해 운용되고 있었으니 1908년 10월 21일 일본인 건축가 시텐노 가즈마(四天王要馬)가 설계한 경성감옥(京城監獄)이 건립되었다. (그해 경성감옥 이외에도 공주, 함흥, 평양, 해주, 대구, 진주, 광주의전국 7개 주요 지역에 감옥이 건립됐다)
이 감옥은 1907년 8월 인왕산 기슭 금계동에 부지 약 13,000㎡(3,934평), 수용능력 500명 정도의 규모로 준공되었으나,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의병전쟁 등의 시국 불안으로 개소하지 못하다가 1908년 10월에 이르러 비로소 운용되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증축되다 1912년 지금의 현저동 자리에 새로운 옥사가 지어지며 서대문감옥이란 이름으로 통합되었는데, 이후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경성감옥의 수형자는 1908년 835명, 1909년 1968명으로 이미 초기부터 포화상태였다. 이는 일제에 대한 저항이 초기부터 대단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수감자들의 대부분은 의병과 의병장들이었다. 의병운동의 절정은 1908년 1월에 벌어진 13도 창의군(十三道 倡義軍)의 서울 진격전으로, 총대장은 이인영(李麟榮)이었고 부대장은 허위(許蔿)였다. 하지만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며 이인영을 비롯하여 허위, 이강년(李康秊) 등이 이곳에서 사형당한다. (☞ '의병전쟁')
일제는 1912년 마포 공덕리 105번지에 새로운 감옥을 개설하고, 여기에 다시 경성감옥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경성감옥은 장기수(長期囚) 위주의 남자 수형자를 수용하였으며 특히 일제에 의해 붙잡힌 이른바 '독종 조선인'들이 이곳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그중에는 1919년 3.1독립선언 사건 때 체포돼 투옥된 최남선, 한용운, 오세창 등 우리가 알만한 이름도 있으나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숨져간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 대한독립군 서로군정서 참모장 김동삼과 독립군(국민부) 군자금 모집 결사대 김형권이 옥사한 곳도 이곳으로, 두 사람은 모진 고문 끝에 결국 사망했다. 김동삼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김형권에게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고,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숙부인 김형권을 기려 그가 활동하다 붙잡힌 함경남도 풍산군을 양강도 김형권군으로 개칭했다.
수형자들은 현재 마포삼성아파트 자리(도화동 7번지)에 있던 마포연와공장(麻浦煉瓦工場)에서 벽돌 만드는 노역을 하며 고된 수감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이 교화가 어려운 항일독립투사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자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니, 2013년 한 시민(정병기)은 독립운동가인 증조부(정용선)께서 1928년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한 사실을 어렵게 입수한 재적등본을 통해 확인하고 경성감옥 역사관의 건립을 마포구청에 탄원하기도 했다.
이곳은 걸어 들어와서 걸어서 못 나간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악명이 높은 형무소였다. 서대문형무소는 일반 사범인 잡범도 수감되었지만 경성감옥은 수형자 대부분이 정치범이던 까닭에 혹독한 고문이 자행됐던 것인데, 아래의 8.15 직후 풀려나 만세를 외치는 사진은 우리 근·현대사의 비중 있는 사건으로써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경성감옥은 1923년(안내판의 1926년은 오기) 5월 경성형무소로 개칭되었다가 해방 이후 마포형무소와 마포교도소(1961년)로 변경되었다.
서울의 도시화에 밀려 마포교도소의 역할은 1963년 9월 안양교도소로 이관되고, 지금은 서부지방법원과 서부검찰청이 들어섰는데, 경성감옥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자료도 귀하니 현재 볼 수 있는 것은 서너 장의 건물 사진과 평면도뿐이다. 경성감옥은 정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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