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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봉산 불상도 아육왕(아소카왕)이 보낸 것일까?
    전설 따라 삼백만리 2023. 4. 1. 16:12

    앞서 신라 황룡사의 장육존상이 근엄한 얼굴의 부처가 아니라 아래와 같은 온화한 얼굴에 따뜻한 미소를 지닌 부처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나름대로의 근거로 피력한 바 있다. (☞ '황룡사 장육존상은 어떻게 생겼었을까?')

    황룡사지 출토 금동사유상의 미소

     

    그런데 <삼국유사>를 보면 장육존상이 인도의 아육왕(阿育王, 아소카왕)이 보낸 금과 철의 재료로써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약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새로 대궐을 용궁 남쪽에 세울 때, 황룡이 나타나서 절로 고쳐 황룡사라 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 남해로부터 거대한 배가 떠 와서 지금의 울주시 곡포에 이르렀다. 안을 조사해 보니 편지가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서 천축의 아육왕이  황철(黃鐵) 5만 7천근과 황금 3만 푼(分)을 모아서 석가삼존상을 주조하려다가 이루지 못하자 배에 실으면서 인연 있는 나라에 도착하여 장육존상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축원하였다. 아울러 이 편지와 함께 1존의 불상과 2존의 보살상의 모형을 보내왔다..... 이것을 경주로 가지고 와서 574년 3월 장육존상을 주조하였는데..... 거듭된 실패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진흥왕이 문잉림(文仍林)에서 그것을 주조하여 완성하니 (소문을 들은) 아육왕이 이제야 근심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또 얼마 민큼의 근거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 사람이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고대 인도 마가다국 마우리아왕조의 아육왕, 즉 아소카왕(BC273~232)은 고대 인도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고 불교를 융성시킨 왕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흔히 대왕, 혹은 대제(大帝)로 불리는데 그가 불교의 장려를 위해 세웠다는 수많은 석주(石柱) 중에서 놀랍게도 7개는 지금도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정치가 도덕성에 입각한 최고의 이상적인 정치 형태를 구현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미화된 전설이 아니라면 그가 다스리던 마가다국은 불교의 이상국가임에 틀림없다.

     

     

    인도 화폐 속의 이소카왕 석주의 사자상
    아소카왕의 영토와 그가 세운 석주(▲)
    아소카왕의 석주 /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는 당(幢)으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삼국유사>에 써 있는 내용은 사실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완벽한 전설이다. 아소카왕이 불교를 장려하고 융성시킨 왕임에는 분명하나 아소카왕 때에는 아직 불상이 만들어지지 않던 이른바 무불상(無佛像) 시기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인도의 불상은 BC 326년 동방으로 진출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향으로 탄생된 것이다. 그가 가져온 헬레니즘 문명이 석가모니 사후 600년간의 무불상 시대를 깨고 부처의 형상을 만든 것이니,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아래의 간다라 미륵은 그리스 신상이 불상으로 가는 전환기의 작품쯤이 될 것이다.

     

     

    간다라 미륵보살입상 / 국립중앙박물관

     

    인도의 불상은 헬레니즘 문화권(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쿠샨왕조가 기원후 1세기 인도 서북부 지방으로 내려와 페샤와르, 마투라, 간다라 지방을 지배하며 만들어졌다. 즉 그곳에서 헬레니즘 문화와 불교문화가 융합되며 비로소 불상이 조성된 것이니 마우리아왕조의 아소카왕 때 불상을 만들려 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아육왕의 명성에 기대 만들어진 허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불가의 이런 허구가 익숙해져서일까? 사찰 안내문 중에는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이 쓰여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예를 들면, 앞서 말한 파주 보광사 안내문의 비로자나삼존불이 모셔져 있다는 내용 등인데,(보광사 대웅보전에는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불과 협시불이 모셔져 있다 / 지금은 고쳐졌는지 모르겠다) 최근 다녀온 도봉산 중턱의 도봉사 안내문에서는 이보다 더욱 황당한 내용이 발견됐다. 먼저 안내문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도봉사 철불좌상 안내문

     

    절 입구에 서 있는 이 철불좌상 안내문에는 "대웅전 정중앙에 있는 철불은 서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높이 118cm의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항마촉지인(부처가 악마를 누르고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의 손 모양)과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대의(설법을 할 때 입는 겉옷)를 입은 형상 등을 갖춘 고려 초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이 잘 드러나 있어, 고려시대 철불의 형식적 특징과 그 변천과정을 알려주는 중요한 문화재"라고 설명되어 있다.  

     

    도봉산에 118cm의 고려 철불이라니, 우선 신기했다. 이에 그 철불좌상을 보러 올라갔으나, 대웅전 정중앙에 앉아 있는 부처님은 한눈으로 보아도 그동안 보아온 나말여초(신라 말 고려 초) 형식이 아니었다. (그저 크기만 비슷해 보였다) 불상도 철불이 아닌 FRP 느낌이었는데, 무엇보다 대웅전 정중앙의 부처님은 두 손의 손가락을 마주한 선정인(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상념에 잠겼을 때의 손 모양)의 수인(手印)을 하고 있었으며 옷도 통견의를 입은, 안내문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부처님이었다. 그래서 내가 혹시 다른 법당의 불상을 본 것이 아닌가 해 다시 나와 보았지만 역시 대웅전이었다.

     

    결론인즉슨,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대웅전 안의 철불은 사라진 것이고, 현재의 불상은 이후 새로 마련된 것이었다. 그리고 입구의 안내문은 옛 것을 치우지 않은 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셈이었다. (고려시대 철불이 존재한다는 것은 팩트가 아니니 하루빨리 철거되어야 마땅하다)

     

     

    도봉사 대웅전 삼존불
    도봉사 대웅전
    대웅전 뒤로 보이는 도봉산 선인봉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 하여 하산 후 여러 경로로써 사라진 철불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도봉사의 철불좌상은 2016년 3월 16일 종로 평창동 서울옥션 본사에서 열린 서울옥션의 정규 경매(139회)에서 「고려 철조석가여래좌상(문화재청 검색명 ’도봉사 철불좌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151호)」으로 출품돼 팔리었다. (22억원을 호가했던 이 불상은 18억원으로 경매가 시작되어 20억원에 낙찰됐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이번에는 우째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아보았더니 경로가 몹시 복잡했다. 문제의 철조석가여래좌상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일본인이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가 해방 후 놓고 가는 바람에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자명사가 봉안하게 되었다. 그러다 도시계획으로 자명사가 철거되자 철불좌상을 도봉사로 모셔왔는데, 그 과정에서 도봉사 측이 절 터 무단점유 등에 대한 소송에 휩싸이게 되었고 이후 (그에 대한 보상책 마련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철불은 2007년 한 사립 박물관으로 매매되며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그런데 그 박물관의 관장은 2015년 기타 여러 문화재를 매입과 은닉한 혐의로서 문화재관리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박물관도 경영난에 시달렸던 바, 철불이 다시 매물로 나오게 된 것이었다. '빚 문제'로 인해 불과 10년 안 되는 기간에 주인이 3번이나 바뀐 것이니 참으로 기구한 팔자의 불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듯하다.

     

    지금 그 철불의 소재에 대해서는 종로 한국미술박물관(구 한국불교미술박물관)에 보관돼 있다고도 하고 아니라고도 하는데, 차제에 예전 2020년 전시회 때의 사진을 게재하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고려초기 철불들을 함께 실어본다. 박물관에서 만난 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가장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대불(大佛)이다.   

     

     

    도봉사 시절의 사진 / 문화재청 사진
    한국불교미술박물관의 도봉사 철불
    하남시 하사창동 출토 고려초기 철불
    경기 포천 출토 고려초기 철불
    출토지가 불분명한 신라말-고려초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

     

    ▼ 주변의 다른 절들

    광륜사
    능원사
    금강사
    영국사지 / 조선시대 이 자리에 도봉서원이 세워졌다.

     

    ▼ 영국사지 출토 각자 석편

    명필의 해서가 돋보이는 영국사지 출토 혜거국사비 탁본 / 말로만 전해오던 혜거국사비와 영국사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2017년 출토 당시 잘 쓴 글씨에 모두가 놀란 석각 천자문 편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 시대 천자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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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