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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기유첩과 안양 중초사지
    미학(美學) 2024. 7. 22. 00:01

     

    19일 안양박물관이 '안양각색(安養各色): 안양에 이르다'라는 타이틀 하에 '삼성기유첩'(三聖記遊帖)을 공개했다. '삼성기유첩'은 조선후기 화가 운초(雲樵) 박기준(朴基駿, ?~?)이 관악산과 삼성산의 명승을 유람하면서 지은 시와 그린 경치를 담은 서화첩으로서, 올해 2월 28일 고미술품 전문 경매회사 칸옥션 경매에 나왔던 물건을 안양시가 치열한 경합 끝에 낙찰받은 작품이다. 낙찰 가격은 3억9천여만원으로 알려졌다.
     
    운초 박기준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는 아니다. 하지만 도화서 출신의 화공이기에 솜씨는 꽤 훌륭한 편이고, '삼성기유첩' 또한 현전(現傳)하는 서화 중 관악산 일대를 그린 유일한 회화작품으로 알려져 있어 희소적 가치가 높다. 안양시가 경매에 뛰어든 이유도 이 작품이 현재 안양박물관이 위치해 있는 안양예술공원을 비롯한 안양 여러 명소들의 옛 모습을 담고 있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유물감정평가위원회의 진위 여부 심의가 끝나 작품을 인도받게 되었고 신속하게 일반 공개가 이루어졌다. 부연하자면 '삼성기유첩'은 도화서 화원 박기준이 다른 네 명의 일행과 함께 관악산 일대를 유람하면서 지은 시와 그림을 첩(帖)으로 엮은 각 34.5×40.5cm의 30면 서화집으로, 미술사적,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받고 있다. 제작은 1828년(순조 28년)에 이루어졌고, 조선후기 명필 강준흠(姜浚欽, 1768~1833)의 서문에 묵매도(墨梅圖)도 1점 붙었다. 

     
     

    '삼성기유첩' (부분) / 그림은 묵매도 포함 총 12점이다.

     

    '삼성기유첩' 내 11점의 산수도(山水圖)에는 관악산과 삼성산의 절경인 명소인 자하동(紫霞洞), 즉 남자하동, 동자하동, 북자하동 및 염불암, 삼막사, 망월암, 불성사 등의 산사가 시와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그 가운데서 특히 아래 '남자하'(南紫霞, 남쪽 자하동)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에는 현재 '삼성기유첩'이 전시되고 있는 안양박물관 일대가 그려져 있어 흥미로운데, 생각해 보니 매우 기연(奇緣)인 듯싶다. 허! 이런 우연의 일치가...?
     

    * 자하동은 관악산 아래의 승경을 이르는 말로, 따로 북자하(北紫霞)라고도 불린다. 지금의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가 있는 곳이다.  '자하'는 저녁놀이 아름답다는 의미로서, 개성 자하동이 특히 유명하다. 

     

    '삼성기유첩' 중의 남자하도 / 왼쪽 아래에 중초사지 석탑과 당간지주가 보인다.

     

    위 '남자하도'에는 관악산과 삼성산이 모두 그려졌으며 유유히 흐르는 삼성천도 표현돼 있다. 삼성천은 지금도 안양박물관 앞을 흐르나 옛날 수량(水量)에는 턱없는데, 이번에는 장마철에 방문했고 또 나름 기교(?)를 부려 사진에는 물이 많아 보인다. 주목할 것은 안양박물관이 위치한 안양예술공원 내 중초사지(中初寺址) 당간지주(幢竿支柱)로서, 일찍이 보물 제4호로 지정된 유물이다.

     

    안양박물관과 삼성천
    중초사지 당간지주

     
    크게 기울어진 모습으로 표현된 '남자하' 그림과  달리 두 지주는 지금은 반듯하게 세워져 있다. 하지만 조금만 예전 사진을 더듬어도 기울어진 모습을 볼 수 있어 그림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두 지주는 약 85㎝ 가량의 간격으로 동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신라시대 세워진 중초사(中初寺) 때의 자리 그대로라고 알려져 있다.
      
    이 당간지주는 모양새 자체는 평범한 형태이나 희귀하게 글씨가 새겨져 있다. 서쪽 지주 바깥면의 한문·이두 혼용의 여섯 줄 글귀는 지금도 뚜렷하니, 그 명문(銘文)으로써 지주가 신라 흥덕왕 원년인 826년 8월 6일에 채석되어 이듬해인 827년 2월 30일에 세워졌음과  당시의 사찰 이름이 중초사라는 것과 알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조성년대(造成年代)와 사찰명이 새겨진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인 동시에 조성년대가 명확한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이기도 한 것이니, 일찍이 보물 제4호로 지정된 이유도 필시 이 명문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당간지주의 명문
    명문의 내용

     
    그  옆에 서 있는 중초사지 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이다. 하지만 원래는 당간지주에 이어 보물 제5호로 지정됐던 이력이 있다. 그러다 1997년, 과거 지정문화재에 대한 재평가 과정에서 탈락되어 보물지정이 해제되었던 바, 지금도 보물 제5호는 공석이라고 한다. 그 해제의 이유를  <국보도록>에 수록된 아래의 사진 한 장이 말해준다.
     
     

    1957년 발간된 국보도록 속의 중초사지 삼층석탑
    지금의 삼층석탑
    석탑 안내문에 덧붙여진 일제강점기의 모습

     

    사진에서 탑은 본래 탑신과 1층 지붕돌까지만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불확실한 복원 과정을 거쳐 3층석탑이 된 것이 해제의 이유가 된 셈인데, 위 '남자하도'에는 3층석탑 외에 따로 5층석탑으로 보이는 탑도 서 있다.  5층석탑의 부재가 복원과정에서 뒤섞였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고려시대 3층석탑과 5층석탑을 같은 공간에 조성한 사례는 하남 동사지(同寺址)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석탑 안내문에는 '본래 석탑은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현 위치의 동북쪽 약 80미터 지점 (주)유유산업 생산동(현 안양박물관) 뒤편에 붕괴된 채 남아 있던 탑이 옮겨진 것'이라는 설명이 쓰여 있어 위치의 교란도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고려시대의 전형적 석탑 형태라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다.  

     
     

    하남 동사지(同寺址)의 삼층석탑과 오층석탑

     

    이 석탑은 1959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12-1번지 일대에 제약회사 (주)유유산업의 공장이 건립되며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그래서 이후로는 탑과 당간지주를 보려면 입구 경비원을 허락을 받아야 했으나, 2017년 공장 부지에 안양박물관이 세워지며 관람이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주변으로는 발굴된 옛 당우의 흔적을 덤으로 볼 수 있다. 금당지, 강당지, 승방지, 화랑지, 전탑지 등이 그것으로, 과거의 대단했던 사세(寺勢)를 떠올리기 어렵지 않다. (혹자는 경주 황룡사에 비견하기도 한다)
     
     

    안양박물관과 옛 사지의 주춧돌
    안양사지· 중초사지 안내문 / 이곳에는 중초사와 안양사의 흔적이 뒤섞여져 있는데, 고려태조 왕건이 중초사 자리에 새로 안양사를 건립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당지와 승방지
    강당지 / 강당은 남북 14m, 동서 41.4m에 이르는 대규모 당우였다.
    금당지
    표지판

     
    이외에도 이 자리는 이야깃거리가 넘치는 곳으로, 몇 개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위에서 말한 대로 이 자리는 1959년 유유산업 안양공장이 세워졌는데 그 공장을 설계한 사람이 바로 유명한 건축가 김중업이다. 그래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유산업의 생산동과 연구실로 사용되던 건물이 각각 안양박물관과 김중업건축박물관이 되었으며, 그 외에도 교육관 경비실 등이 보존되고 있다. 따로 이유를 말할 필요도 없이 바람직한 경우이다. 


     

    김중업건축박물관 / 과거 유유산업 연구동으로 쓰이던 건물로서 앞 기둥은 철거된 공장건물의 잔재이다.
    김중업건축박물관 앞의 건축가 김중업 기념비
    구 유유산업 교육관
    구 유유산업 경비실
    겅비실 뒤로 계곡물이 흐른다.

     
    또 이 일대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차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안양사'(安養寺)라는 명문 기와가 나왔다. 시(市)의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알려진 '안양사'라는 오랜 절 터가 확인된 것이다. 구전으로, 혹은 옛 문헌 기록에 자주 오르내리는 안양사가 바로 중초사를 이은 절이었던 것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삼성산 절 남쪽 고려 태조가 세운 7층 전탑'의 자리도 2007년 확인된 바 있다. 안양사는 18세기에 폐사됐다.   

     

    '안양사' 명문기와 / 안양박물관
    박물관 경내의 전탑지 / 규모는 남북 9.62m, 동서 5.29m이다.
    전탑지에서 출토된 벽돌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 높이 17m, 너비 7.75m의 대한민국 현존 가장 큰 전탑으로 고려태조가 세운 안양사 전탑도 이와 유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트립어드바이저 사진)
    전에서 출토된 기와장식· 와당· 벽돌 / 전탑 지붕돌에 기와가 얹혀져 있었으며 왼쪽 위 백자연봉형 장식이 기와 끝에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절터에서 출토된 금동용두편
    절터에서 출토된 막새기와


    안양(安養)이란 불가에서 아미타불이 상주하는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한 극락정토를 의미하는 말이다. 즉 '안양=극락'이니 안양시민들은 적어도 이름만큼은 극락정토를 안고 사는 셈이다.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윗길을 걸어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안양사라는 사찰은 옛 안양사와는 무관한 그저 이름만 빌린 절인데, 다만 절 마당의 귀부와 승탑은 옛 안양사, 혹은 중초사의 것임에 분명하다. 
     
    그것들이 언제 이곳으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둘 다 보기 드문 수작(秀作)으로, 비록 일부라도 일견(一見)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안양예술공원 내의 김중업건축박물관은 2014년 3월 28일 개관한 국내 최초의 건축 전문 공립박물관인데, 이에 대해서는 따로 장(章)을 마련하는 것이 선생에 대한 예의일 듯싶다. 
     
     

    안양사 대웅전 앞의 귀부와 승탑
    안양사 안내문
    안양박물관에 재현된 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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