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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기동 약령시장의 용골(龍骨) & 갑골문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0. 31. 00:44

     

    지난 주말, 지나기만 해도 건강해진다는, 그리고 고양이 뿔만 빼고 다 있다는 소문의 제기동 약령시장을 다녀왔다. 무슨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구경삼아 지난 길이었지만 소문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은 지나기만 해도 건강해진다는 낭설 같은 소문의 지위를 따지자면 확실히 진실이다. 내가 무엇을 따로 증명할 것도 없이 걷기의 효능이야 이미 많은 학자들이 주장한 바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의 실제 임상효과로써 밝혀진 바 있다. 

     

    걷고 나니 처음에는 다리와 무릎이 뻐근했다. 제기동·용두동 일대에 걸친 약령시장의 면적만도 23만5천㎡라 하는데, 아무리 직선거리를 걸었다 해도 청량사→영휘원→부흥주택단지→약령시장→선농단→보제원 터→다시 약령시장→청량리역을 경유해 돌아왔으니 꽤 먼 거리를 걸은 셈이다. 하지만 주중에는 오히려 다리에 힘이 생기며 몸 전체에 활력이 도는 느낌이다. 확실히 걷기가 몸에 좋은 모양이다. 

     

     

    약령시장 거리
    약령시장 거리의 약령장정 모뉴먼트
    서울시에서 설치한 서울경동약령시 표석
    약령시장 내 보제원 유허비
    보제원은 조선시대 여행자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던 역원(驛院)이자, 겸하여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던 구휼기관으로 제기동 약령시장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약령시장 내 서울한방진흥센터
    제기동 선농단 / 조선시대 농업의 신인 신농씨와 후직씨를 제사 지내던 곳이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148-115의 보제원 터 표석 / 본래 보제원이 있던 곳이다.
    보제원 터 표석 앞의 인상적인 건물
    단풍이 든 왕산로 '동의보감 건강백화점' 앞 나무와 노상 쓰레기
    '동의보감 건강백화점' 앞 쇠기둥 / 고층빌딩 앞 의무 설치 미술품으로 보이는 3개의 쇠기둥이 을씨년스러움을 더한다. 나무만이 무심히 단풍 들었다.

     

    위 사진 속 건물인 17층 규모의 '동의보감타워 건강백화점'은 2006년 준공된 이래 분양이 안 돼 20년 가까이 폐건물로 존재한다. 벽에 대형 태극기 벽화가 있는 왕산로의 그 건물이다. 건물 1층 출입구는 자물쇠로 잠겨 있고 그 앞은 늘 쓰레기가 가득하다. 한옥 스타일로 지어진 퇴락한 2개의 출입구 앞에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기를 두고 있고 주변 역시 쓰레기로 지저분함에도 관리인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관리인은 건물에 관심을 보이는 내게 "들어오실 거냐(입주하실 거냐)?"며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장사가 안 돼 폐쇄된 상가에 왜 관심을 보이는가 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얼버무리자 그는 이 건물 '동의보감타워 건강백화점'이나 근방의 '△△△△타워', '□□□□보감 상가' 등의 건물도 다 마찬가지라며 괜한 짓하지 말라는 식의 어드바이스를 해주었다. 그 분은 오피스텔로 사용되는 9~17층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하긴 서울약령시에는 한의원 350여 개를 비롯해 한약도매상, 약국, 탕제원, 한약수출입업체 등 한약 관련 업체가 1000 곳 이상 이른다는데, 1천만 서울시민이 모두 환자가 할지라도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일 듯하다. 양의원과 양약방 또한 넘쳐나는 서울이 아닌가? 서울약령시에는 한약재 및 자연건강식품을 파는 노점, 상가 앞에 한약재를 펼친 노점 형식의 가게 또한 넘쳐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 노점 형식의 가게에서 특이하고 진귀한 약재를 하나 발견했다. 용골(龍骨)이라는 한약재였다. 용골은 원래 공룡뼈를 말하는 것인데, 큰 포유동물의 화석화된 뼈를 모두 지칭한다고 한다. 좀 더 알아보니 용골은 정말로 중국에서 공룡뼈 화석이 자주 발견되는 하남·산서·내몽골 등지에서 수입되며 뼈 화석답게 탄산칼슘과 인산칼슘이 주성분이다. 화병·불면증·우울증·공황장애 치료에 이용되는 신경안정제 역할의 약재라는데, 특이할지는 몰라도 진귀한 약재 축에 들지는 않는다고 한다.

     

    진열된 물건이라 차마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내가 본 용골은 과연 화석화된 뼈로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고, 가히 큰 이빨이 붙어 있었을 육식동물의 하악골로 보이는 뼈도 발견했다. 아래는 내가 본 용골과 비슷한 것을 인터넷에서 찾은 것으로서, 과연 고양이 뿔만 빼고 다 있다는 제기동 약령시가 아닐 수 없었다. 

     

     

    용골의 원석
    용골은 이 정도 크기로 거래되며 이를 뽀아서 쓴다.

     

    잘 알려진 얘기지만 동북아시아의 고대 상형 문자인 갑골문(甲骨文)이 발견된 것도 이 용골 때문이었다. 중국 청조 말엽인 1899년, 하남성 안양현 소둔촌에 살던 금석학자 왕의영(王懿榮)이 달인당(達仁堂)이라는 한약방에서 지어온 첩약 속 동물뼈와 같은 한약재에 글자가 써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이 한자의 고문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왕의영은 달인당에 가서 글자가 쓰여 있는 나머지 용골을 모두 사왔다. 그리고 다시 공급처를 수소문해 용골이 나오는 곳을 찾았다.

     

    용골이 채집된 곳은 옛 은(殷)나라(혹은 상나라, BC 1600~1046년)의 수도였던, 그래서 은허(殷墟)라고 불리던 유적지였다. 용골 중에서도 글자가 새겨진 뼈들은 주로 거북이의 배딱지와 짐승의 견갑골에서 나타났고, 까닭에 왕의영은 거북이 배딱지(腹甲)를 의미하는 갑(甲) 자와 견갑골의 골(骨) 자를 합하여 갑골문(甲骨文)이라고 명명하였다. 고대 은나라의 왕들은 점복(占卜)을 중시해 그 결과를 거북이 배딱지나 동물의 견갑골에 기록했던 바, 이것이 바로 갑골문인 것이었다.  

     

    거북이 배딱지에 새겨진 갑골문
    소의 견갑골에 새겨진 갑골문
    은허박물관에 전시된 갑골문

     

    갑골문은 1928년 등쭤빈(董作賓)이라는 사람의 주도하에 중앙연구원이 세워지며 본격으로 발굴과 조사에 들어갔고, 현재까지 16만 점, 5천 자가 발견되어 그중 1천 자 정도가 완벽히 해독되었다.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로써 밝혀진 내용은 제사·날씨·농사·전쟁·질병·운수 등을 망라했다. 미래를 예견하려는 노력이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인데, 그 은허를 건설한 은나라 민족은 놀랍게도 한족이 아닌 동이족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학자들의 주장이라기보다는 양심적 중국 학자들의 학설로서, 은나라 민족의 뿌리를 따지자면 예족이나 맥족 같은 동이족에 가깝다고 한다. 즉 북쪽 유목민이었던 동이족의 한 부족이 황하 쪽으로 옮겨 가 은허 지방에 정착해 세운 나라가 은나라이고, 그들이 사용한 문자가 한문의 원형인 갑골문이니 한문은 동이족, 곧 한민족이 만든 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
    은허의 위치와 예·맥족의 거주 지역
    하남성 안양시 소둔촌(小屯村)의 은허 유적
    은허박물관의 은나라 유물
    은나라 때의 청동기
    은허에서 발굴된 수저 세트
    동시대의 숟갈(勺子) / 한·중·일 중 숟가락을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뿐으로, 고대 은나라 민족과 한민족은 숟가락과 숟갈이 쓰이는 음식문화를 공유했다.

     

    ▼ 기타 흥미로운 사진들

    내몽골박물관에 전시 중인 내몽골 출토 용각류 화석
    최근 아시아 최대의 공룡 화석이 발견된 중국 허난(河南)성에서 마을 주민들이 20년 이상 공룡 뼈를 용의 뼈로 알고 탕을 끓여먹거나 뼈를 갈아 약으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주민들은 공룡뼈를 진짜 용의 뼈로 알고 있었으며 치료효과가 있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 노컷뉴스 기사
    최근 우리나라 번개장터에 올라온 갑골문 / 박물관급이며 매매 희망가는 백만원이라고 함.
    얼마 전 (2024.10.24) 홍콩에서 최초로 발견된 공룡화석
    갑골문의 복갑(腹甲)을 흔히 바다거북의 배딱지로 오해해 크다고 여기나, 실은 육지거북으로 20cm 정도가 대부분이다.
    갑골문은 발견자 왕의영(왼쪽) 사후 식객이자 친구인 유악(가운데)이 연구를 이어받아 <철운장귀(鐵雲藏龜)>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철운장귀> / 예전 은(殷)이라고 부르던 나라가 바로 상(商)이다. 은(殷)은 도시를 나타내고, 국호는 상(商)라는 것을 밝혀낸 것도 바로 갑골문의 발견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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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