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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국에 나타난 중국 인민해방군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11. 7. 20:51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과거 6.25전쟁 때 참전한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대한민국의 한반도 통일을 저지하고 수십만의 국민을 죽게 만든 일이다. (중국은 수교 후에도 그에 대한 한마디 사과도 없었다) 그 전쟁은 오랫동안 휴전 중이지만 지금도 진행 중인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을 연상케 하는 군복을 입고 군대식 행진을 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여주의 한 지역 축제장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의 붉은 깃발과 군인들의 행진 동영상이 등장했고 중국인들로 보이는 많은 사람이 중국 인민해방군가에 맞춰 단체 군무를 추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은 여주 관광공사가 초청한 중국의 단체라고 하는데, 사전 리허설이 없어 막지 못했다는 변명을 들어야 했다.


지난 31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최근 군복과 유사한 복장을 입은 중국인 단체가 기념사진을 찍고 행진하고 있다. 
놀리운 광경이다. 
25년 10월 31부터 11월 2일까지 개최된 '여주 오곡나루 축제'에 출현한 중국인민해방군의 깃발과 행진 영상 
<나무위키>에서 조명한 중국인민해방군 깃발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망언을 소개한 바 있지만, 그의 망언 중 잊지 말아야 할 말이 또 있다. 2020년 11월 9일, 인민혁명군사박물관의 '항미원조(抗米援朝) 작전 70주년 전시'를 참관하며 "(항미원조 전쟁은) 중국 인민지원군이 참전하여 이룩한 정의와 평화의 승리"라고 주장한 발언이다. '항미원조'란 중국이 6.25 전쟁을 이르는 말로, '침략자 미국에 대항해 조선(북한)을 도와준 전쟁'이란 뜻이다.
시진핑은 이어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군 항미원조 참전 70주년 행사' 연설에서 "미국 정부는 국제 전략과 냉전 사고에서 출발해 한국 내전에 무력 간섭키로 결정했으며 중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38선을 넘어 전쟁의 불길을 북중 접경까지 끌고 왔다"며 6.25가 북침으로 비롯된 전쟁임을 천명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25일, 한국전쟁 참전 노병들을 초청해 열린 '항미원조전쟁 참전 좌담회'에서 "위대한 항미원조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재차 피력했다.
이는 한국과 미국이 연합해 북침했다는 북한의 주장과 다를 게 없는 언급이었는데, 나아가 그는 "중·조(중국·북한) 양국 인민과 군대가 흘린 피로서 맺어진 위대한 우정"을 언급하는 등 북·중 혈맹 관계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자 곧 중국 공산당의 청년조직인 공산주의청년단(共産主義靑年團, 약칭 공천단)은 이상의 내용을 일반인에게 알렸다. 조선전쟁(한국전쟁)은 내전(內戰)에서 비화된 북침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으로, 지금까지 교과서 등에서 명확한 표현을 피하던 관례와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항미원조 7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는 시진핑 
한국전쟁은 남침이 아니라고 말하는 공청단 / 공청단은 단원이 8000만명이 넘는 중국 공산당 내 최대 조직 중 하나이다. 공청단은 25일 중국의 트위터 격인 웨이보(微博)에 올린 글에서 "한국전쟁은 북한이 한국을 침략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아니다"(不)라고 강하게 부정했다. 이어 "당시 북한과 한국은 서로 한반도 전체에 대한 주권이 있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된 한 국가의 내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진 "항미원조 전쟁에서 이겼느냐"는 물음에는 "이겼다"고 답했고, "항미원조의 기점은 압록강이었는데 세계 1강국(미국)을 압록강에서 38선으로 물리쳤으며, 미국의 북한 전역에 대한 무력 점령 시도를 송두리째 부숴버렸다"라고 덧붙였다.
중국 정부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날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6.25전쟁이 남침이 아니라는 공청단의 주장에 동의하는가"라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6.25 전쟁은 본래 한반도에서 남북 쌍방간에 발생한 것으로 내전에 속한다"고 전제하며, "한국전쟁은 그 내전으로 시작됐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의 성질이 (국제전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6.25는 남북한 간의 내전이었음에도 미국이 개입해 북침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여기에 시진핑 주석의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발언을 덧붙이면 "(남북한 내전 중) 북한을 침범한 미국 전투기는 중국 동북 지역을 여러 차례 폭격했다" 이에 "중국 지원군은 북한 전장에 들어갔고 이는 정의로운 행위 중의 정의로운 행동"이었으며 "전쟁 기간 중국 공산당은 북한군과 힘을 합쳐 다섯 차례 전투를 치렀고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했다. (점입가경으로, 우첸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29일 월례 브리핑에서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은 반드시 영원히 전승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상은 모두 궤변이다. 1949년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뚱의 공산당이 이기자 북한의 김일성은 크게 고무되어 남침을 계획했다. 이어 1950년 1월 미국의 태평양방위선인 이른바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가 제외되자 6월 25일 4시 김일성은 7개 사단 9만 명의 병력으로 대대적인 남침을 개시했다. 그 선봉에 섰던 부대가 조선인으로 구성된 전투 경험이 풍부했던 중공군 2개 사단이다. 하지만 그들 중공군과 북한군은 전세가 역전되며 궤멸되었고, 한국군과 UN군이 북상하여 평안북도에 이르자 드디어 진짜 중공군이 출현했다. 10월 19일의 일이었다.

압록강을 건너는 중공군 / 중공군은 1950년 10월에 18개 사단 26만여 명이, 11월 초에는 12개 사단 12만여 명이 도강했다. 중공군은 10월 25일 평안북도 운산에서 백선엽 장군이 지휘하는 국군 1사단 제15연대를 기습공격했다. 뜻밖의 일격을 당한 국군은 크게 당황하여 패퇴했는데, 중국은 한국군에 첫 승리를 한 이 날을 항미원조기념일로 지정해 기리고 있다. 그 공격이 있고 얼마 후 두꺼운 흰색 솜 옷을 입고 광동어를 쓰는 적군 한 명이 생포됐다. 중국계 조선인이냐고 묻자 그는 중국인이라고 답했다.

전쟁 중 붙잡힌 중공군 포로 중국의 개입이 드러나는 순간이자 목전에 이르렀던 남북통일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중공군은 팽덕회의 명령에 따라 강한 유엔군은 피하고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국군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했다. 이것이 국군의 피해가 컸던 이유였다. 강한 자는 피하고 약한 고리를 집중 공격하는 것이 장정(長征) 이래로의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전략이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진행 중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위의 여의도 광장에서처럼, 그리고 여주 오곡나루 축제에서처럼 슬쩍 간을 보듯 접근하여 반응을 살핀 후 진퇴전략을 짠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회색지대 전술'이라고 부르는데, 대한민국은 이를 저지조차 안 하겠다니 불가사의가 따로 없다.
아니 저지를 안하는 것은 물론이요 오히려 반중 시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특정국가와 국민을 모욕하거나 명예훼손하면 징역형에 처하는 법안이라고 한다. 시진핑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아직도 우리 대한민국이 중국의 일부거나 속국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식민지에서의 꼭두각시 정권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민주당 의원들은 언제 깨어나려나.

'혐중'으로 경찰에 의해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앙우체국 부근까지 말려난 반중 시위대. 
미대사관 바로 앞에서도 아무런 저지를 받지 않는 반미시위대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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