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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남자와 결혼한 신라 여인에 관한 이야기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5. 12. 27. 18:44
과거 '미실'이라고 하는 인기 드라마에서 화려했던 신라인의 모습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창작된 것이니, 신라 상류층 복색에 관해서는 인물 그림이나 피륙에 관한 유물이 없어 귀족과 왕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여왕은 좀 특이한 옷을 입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바, 다름 아닌 중국 산시성 리취앤현(縣) 구종산에 있는 당태종의 무덤에서 발견된 신라 진덕여왕상(像)을 보고 나서였다. 진덕여왕 상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1982년 당태종 이세민의 소릉(昭陵) 부근에서의 진덕여왕상 발견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가 왜 거기 서 있을까? 그리고 왜 지금까지 발견이 안 됐을까? 하는 궁금증은 뒤이어진 중국 언론의 보도로 해결되었다. 진덕여왕상은 소릉 부근에 도열한 이웃 나라(번국) 제왕상들 가운데 하나로서, 주위 제단을 정비하던 중 소릉 동북쪽 약 100m 부근에 좌우로 쪼개진 채로 방치됐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하반신, 그것도 무릎 아래 부분뿐이었다.
그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만일 그것이 한국 상황이었다면 주변을 샅샅이 찾아 어쩌면 상반신을 확보할 수도 있었을 터, 그리됐다면 신라 진덕여왕의 얼굴을 볼 뻔했고, 또한 완벽한 신라 여왕의 복색을 살필 수 있을 뻔했다. 그 하반신 돌이 진덕여왕의 것이라는 사실은 부근에서 '신라…군(新羅…郡)', '…덕(德)' 등의 명문이 새겨진 석상 좌대 파편이 추가 발굴됨으로 알게 되었는데, 소릉의 사적을 소개한 중국 후대 저술 중에 '신라낙랑군왕 김진덕'의 기록이 있어 학계에서도 석상을 진덕여왕상으로 단정했다.

당태종의 소릉 / 당나라 황제의 능묘인 당십팔릉(唐十八陵) 가운데 가장 크다. 훗날 후량(後梁)의 군벌인 온도(温韜)에 의해 도굴당했다. 
진덕여왕상의 하반신 
'신라'라고 쓰여 있는 좌대편 
드라마 '미실' 속의 여왕과 귀족 부인의 복색 그 아쉬움을 조금 희석시켜준 것이 1986년 경주 용강동 돌방무덤(석실분)에서 나온 토용(土踊, 흙으로 만든 인형)이었다. 출토된 토용은 남자 15점, 여자 13점으로서, 크기는 작아 남자 13.8~20.5cm, 여자는 11.7~17.2cm에 불과했다. 하지만 표현이 섬세해 등신대 토용 못지않게 복색에 관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 가운데의 서역인 문관 토용은 앞서 소개한 바 있다. 당대의 신라 사회는 코카서스 계통의 서양 외국인들도 들어와 관료로서 입신할 수 있는 개방사회였던 것이다.

용강동 고분 출토 신라 토용 
용강동 고분 출토 서역인 토용 / 머리에 복두를 쓰고 손에는 고위 문관만이 지닐 수 있는 홀을 들었다. 붉은색 옷에 아홀(牙笏)을 들었다고 여겨 6두품 벼슬을 한 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정비되기 전의 용강동 고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1987년에 황성동에서 발견된 토용이 더 놀라웠다. 황성동 무덤은 앞의 용강동 고분보다 더 오래된 돌방무덤이었으나(7세기 중·후반으로 추정) 아파트 건립 도중에 발견됐기에 이를 덮으려는 포클레인 기사에 의해 이미 크게 훼철된 상태였다. (옛 유적이나 유물이 나오면 공사는 무조건 중단되므로) 다행히 인물상과 동물상 등의 다양한 토용들이 수습될 수 있었는데, 이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이 아래 두 개의 토용이었다.

황성동 고분 출토 남자 토용 
황성동 고분 출토 여자 토용 
두 토용의 크기 비교 
교란된 후 수습된 황성동 고분 
복원된 황성동 고분 이 두 명은 부부로 여겨진다. 흥미로운 것은 남편이 서역인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관모와 같은 것을 쓰고 있는 바, 이 서역인은 신라에 들어와 벼슬을 하고, 신라 여인과 결혼해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부인은 가르마를 단정히 타고 머리카락은 뒤로 묶어 왼쪽으로 틀었다. 오른손은 아래로 늘어뜨린 채 병을 쥐고 있고, 소맷자락에 가리운 왼손을 들어 입을 살짝 가리며 웃고 있는데, 초생달 같이 가는 눈은 눈웃음을 표현한 듯하다. 부인은 갸름한 얼굴에 오뚝한 코를 지닌 미인형 얼굴에다 날씬한 몸매를 지니고 있는 바, 서역인 남편은 신라에 와서 횡재를 한 셈이다.
부인은 여미는 형식의 롱 드레스를 입었고 바닥에 닿은 치맛자락의 끝으로는 뾰족한 신발 코가 살짝 보인다. 음각선으로 옷주름을 표현했는데, 뒷모습을 보면 허리 위쪽으로 띠를 둘렀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기품 있는 모양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부인의 성격마저 드러나 보인다는 것이니, 어딘가에서 남편에게 드릴 술을 받아 오는데, 무슨 민망한 모습을 보았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수줍게 배시시 웃는다. 부인의 얌전한 성품이 드러나는 모양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여인네는 대체 뭘 보고 그리 민망해했을까? 짐작은 가지만 쓰기는 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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