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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Animal Farm) 같은 세상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2026. 4. 25. 18:55

     

    어릴 적 즐겨 읽던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등의 어린이 잡지가 있었다. 대부분 만화 위주로 꾸며졌던 내용 중 가장 인기 있고 재미있었던 만화는 길창덕(1930~2010) 선생의 '꺼벙이'였는데, 하도 많이 그리다 보니 작가도 한계에 부딪힌 듯 자꾸 재탕을 해 나중에는 좀 식상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두세 번 반복해 보면 재미가 반감하는 것은 당연하다.  

     

    꺼벙이와 꺼실이 / 꺼벙이의 인기가 높다 보니 그 동생 꺼실이도 등장했다.

     

    그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만화는 '우주소년 아톰'과 '바벨 2세'인데, 과학적 흥미까지 버무려 당시의 어린이들에게 무척 인기가 높았다. 시기적으로는 '우주소년 아톰'이 훨씬 앞선다. 나중에 이 두 편이 모두 일본만화의 번역본이라는 것을 알고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지만, 당시 어린이의 꿈이 대부분 과학자였을 만큼 한국 아동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만화들이다. 

     

     

    우주소년 아톰 / 일본의 전설적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으로 '철완 아톰'으로 재연재되기도 했다.
    아톰의 양아버지 격인 오챠노미즈 박사
    아톰을 만든 사람을 흔히 오챠노미즈 박사라고 생각하나 실은 전임 과학부장관 텐마 박사이다. (번역본의 고명한 박사) / 그는 과학연구에 바빠 아들 토비오와 놀아주지 못하고 토비어는 교통사고로 죽는다. 텐마는 슬픔과 후회로 고뇌하다가 아들을 대신할 로봇 아톰을 만든다.
    악의 축 요미와 초능력 대결을 벌이는 바벨 2세 / '바벨 2세'는 거장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창작물이다. 수천 년 전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바벨 1세'가 남긴 유산과 초능력을 물려받은 소년 고이치(바벨 2세)가 세계 정복을 꿈꾸는 초능력자 요미에 맞서 인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과정을 그렸다.
    바벨 2세는 바벨 1세가 남긴 로뎀, 로프로스, 포세이돈이라는 강력하고도 충직한 부하 셋을 거느린다.

     

    이상의 만화와 함께 기억에 남아 있는 또 한 편의 작품은 '동물농장'(Animal Farm)이다. 아마도 브라질 작가 오뒤르(Odyr, 오두아르도 펠리치올리)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 만화는 유명한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만화로 옮긴 것으로, 강력하고도 사실적인 묘사와 뭔지 모를 압박감이 지금의 기억을 남긴 듯하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그림만 쫓아갈 뿐 내용은 잘 이해 못 했다. (사실 어린이들에게는 너무 수준 높던 만화였다) 그래도 열심히 보았고, 나중에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따로 소설을 구입해 읽었다. 물론 성인이 된 이후의 일이다. 

     

    '동물농장'의 주인공 나폴레옹

     

    <동물농장>은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이 1945년에 발표한 정치 풍자 소설로, 인간 주인을 쫓아내고 스스로 농장을 운영하게 된 동물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소설은 혁명의 모의와 함께 시작되니, 메이너 농장의 동물들은 늙은 돼지 '올드 메이저'의 영감을 받아 인간 주인을 몰아내고, 모든 동물이 평등한 '동물농장'을 세우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동물들이 인간을 내쫓고 권력을 쟁취하나 곧 권력의 변질을 맛본다. 혁명을 주도했던 돼지들이 지배 계급이 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특히 '나폴레옹'은 경쟁자 '스노볼'을 숙청하고 독재 체제를 구축하니, 돼지들은 과거에 금지했던 인간의 습성을 닮아가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라는 문구로 계명을 바꾼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나 재판을 받지 않는 더 평등한 사람이 있는 대한민국처럼) 결말은 타락이니, 소설은 결국 돼지와 인간의 얼굴을 구분할 수 없게 되며 끝이 난다.

     

    이 소설은 조지 오웰이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 독재를 직접적으로 풍자했다고 한다. 이를 테면 '나폴레옹'은 스탈린이고 '스노볼'은 트로츠키인 셈인데, '스노볼'을 숙청한 '나폴레옹'이 결국은 부패하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특히 혁명이 어떻게 독재로 변질되는지 묘사하는 과정에서 권력자의 선동과 왜곡된 정보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대중(동물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꼬집었는데, 그것이 현 대한민국의 현실과 흡사해 신기하기조차 하다.

     

    동물 혁명의 이론적 토대를 닦고 불씨를 지핀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상가의 역할을 하는 '올드 메이저'는 누군가가 금방 떠오른다. '올드 메이저'는 인간의 착취를 비판하며 모든 동물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동물주의(Animalism)'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다. 아울러 그는 동물들을 모아놓고 "영국의 짐승들(Beasts of England)"이라는 노래를 가르쳐 주며, 그들에게 인간을 몰아내야 한다는 반란의 의지를 심어주는데, 그 연설의 일부를 빌려오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그는 젖을 생산하지도 않고 달걀을 낳지도 않으며 힘이 부쳐 쟁기도 끌지 못하고 토끼를 잡을 만큼 빨리 뛰지도 못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동물의 주인입니다. 그는 동물을 부려먹고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먹이만 주고 나머지는 모두 자기가 챙깁니다. 우리의 노동이 땅을 갈고, 우리의 배설물이 그 땅을 기름지게 하지만 우리는 몸뚱이 하나 빼고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습니다....."

     

    "한쪽의 번영이 다른쪽의 번영이기도 하다 따위의 말을 인간들이 하더라도 믿지 마시오. 그건 모두 거짓말이오. 인간은 인간 말고는 그 어떤 동물의 이익에도 봉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동물에게는 완벽한 단결과 투쟁을 통한 완벽한 동지애가 필요하오. 모든 인간은 우리의 적이며 모든 동물은 우리의 동지입니다."

     

    연설이 이 대목에 이르자 우레 같은 함성이 일었다. '올드 메이저'가 연설하는 동안 커다란 쥐 네 마리가 구멍에서 기어나와 엉덩이를 깔고 앉은 자세로 연설을 듣고 있다가 거기 와 있는 개들의 눈에 띄었다. 재빨리 구멍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쥐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올드 메이저'는 앞발을 들어 좌중을 진정시켰다. 

     

    "동지 여러분, 결정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쥐, 산토끼 같은 동물들은 우리의 동지입니까, 적입니까? 우리 이 문제를 투표에 부칩시다. 오늘 모임에 이 문제를 상정하는 바입니다. 쥐는 우리의 친구입니까?"

     

    당장 투표가 실시되었고 압도적 다수가 쥐도 친구라는 쪽으로 쏠렸다. 반대표는 넷뿐이었는데 그 네 표는 개 세 마리와 고양이가 던진 것이었다. 고양이는 양쪽 모두에 투표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올드 메이저'가 기획한 반란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예상 밖으로 아주 싱겁게 성공을 거두었다. 농장주인 존스 씨는 과거에는 비록 모진 주인이긴 했어도 성실한 주인이었는데, 최근 소송에서 패한 이후 잔뜩 울적해져서 매일 술타령이었다....

     

    그렇게 해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동물들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반란은 성공을 거두었다. 존스는 쫓겨나고 메이너 농장은 동물들의 차지가 되었다. 한동안 동물들은 자기들의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이 먼저 한 것은 농장 어디엔가 아직도 인간 종자가 숨어 있나 없나 확인이라도 하듯 경계선을 따라 농장을 한 바퀴 구보로 뛰는 일이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농장 축사로 돌아와 존스 시대의 가증스러운 통치의 흔적들을 남김없이 제거했다.  

     

     

     

    이상 <농물농장>의 앞부분 몇 줄을 옮겨보았다. 무언가 연상되는 분들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가 여기 반, 저기 반, 발을 걸친 고양이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곧 피부로 다가올 '나폴레옹' 독재 정치를 전혀 감지하는 못하는.... 고양이들은 '나폴레옹'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복서' 만큼도 못될 것이면서....

     

    그들 하수인들은 '나폴레옹'의 명령에 따라 흰색과 검정색 페인트통을 들고 큰길 쪽을 향해 있는 동물농장 정문으로 가서 정문 맨 꼭대기 빗장에 쓰여진 '메이너 농장'이라는 글자를 지운 다음 '동물농장'이라고 고쳐 써넣었다. 이제부터 그게 농장의 새 이름이었는데, 그때까지도 동물들 중에서 앞으로 닥쳐올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 일족의 독재를 예견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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