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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관동 중앙정보부와 의릉 & 한예종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6. 4. 28. 23:49
서울 성북구 석관동(石串洞) 동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그중 지하철 돌곶이역 유래비에 쓰여 있는 내용이 가장 사실에 근접할 듯싶다. 천장산 지맥에 돌출된 돌들이 마치 수수팥떡이나 경단을 꿰어놓은 듯하다고 하여 부근 동네이름을 '돌곶이 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석관동은 돌곶이를 한자로 옮긴 것이니 돌 석(石)자와 꿸 관(串)자를 써 석관동이라고 한 것이다.

돌곶이역 7번 출구와 8번 출구 사이에 있는 돌곶이 유래비 석관동의 이름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1661년(헌종 2)으로, 헌종이 동구릉에 배알하고 오는 길에 석관에 이르러 금군(禁軍)의 활 솜씨를 시험하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처음이고, 이어 1747년(영조 23) 영조가 동구릉과 의릉(懿陵)을 배알하고 돌아오다 석관현(峴)에서 열병식을 구경한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의릉은 조선 20대 왕 경종(景宗, 1688~1724)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묘이다.
경종은 45년간이나 집권했던 아버지 숙종과 52년간을 집권했던 이복동생 영조 사이에서 단 4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재위에 있다 37세의 나이로 승하했다. 덕을 본 사람은 동생 연잉군으로 그는 아버지 숙종을 2위로 밀어내고 왕권 장기집권자 명단의 1위에 등극했다. 반면 경종은 겨우 4년 집권에 후사도 없이 죽었는데, 거기에는 어머니 희빈 장씨(장희빈)의 공이 크다.
<수문록/隨聞錄> 등 당대 노론 측 인사들이 남긴 것으로 여겨지는 야사에는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기 직전,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게 해달라고 청하여 세자를 만났을 때, 조선의 씨를 아예 없애버리겠다며 갑자기 세자의 불알을 꽉 쥐어 당기는 바람에 세자가 혼절했고 그 후유증으로 후사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아들이 바로 훗날의 경종이다.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 어씨가 잠든 의릉 
정자각과 능원 풍경 / 정자각은 정전 양 옆에 익랑(翼廊)을 추가한 이색적 형태이다. 
의릉은 좌우로 봉분을 조성한 다른 능과 달리 왕과 왕비의 봉분을 앞뒤로 배치한 동원상하릉이다. 의릉은 1962년부터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능역 내에 들어서면서 보안 구역으로 지정 되어 민간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다가 중앙정보부가 서초구 내곡동 헌인릉 옆으로 청사를 이전하면서 군사보호시설에서 해제되었다. 이후 2000년대 중반 국정원 이전이 완료된 후 개방되어

7·4남북공동성명 발표가 있었던 구 중앙정보부 강당 
건축가 나상진이 설계한 건물이다. 위 건물은 분단 이래 남북 당국자간의 첫 대화로 역사에 기록된 7·4남북공동성명 발표가 있었던 이문동 중앙정보부 종합청사 강당으로, 원래 철거될 예정이었지만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문화재 제92호로 지정하여 보존되고 있다. 당시에는 조만간 남북이 통일될 것 같은 들뜬 분위기를 불러온 1972년의 7·4남북공동성명이지만 지금 생각하니 남북 정치가들에게 놀아난 한바탕의 유희에 불과한 것이었던 바, 건물이고 뭐고 의미가 없다. 다만 건축가 나상진이 설계한 건물이라는 게 딜레머이다. 나상진에 대해서는 '광진구 능동의 유릉과 건축가 나상진의 클럽하우스'에서 언급한 바 있다.

평양에 가 김일성을 만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그러고 보니 어제 2018년 판문점 선언일이라며 문재인이 국회에 와서 기념촬영을 한 것 같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사실 그 또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다. 4.28 판문점 선언의 실적이라고 하는 450억 들어간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는 이미 냅다 폭파됐고, 연결시켰다는 경의선도 폭파됐으며, GP는 같이 없애겠다 합의했지만 우리 것만 철거되고 북한은 철거하는 척만 하고 그냥 냅둬 지금껏 그대로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이후로도 북한은 미사일을 미친 듯이 쏘아댔고, 김여정 그 젊은 처자는 '삶은 소대가리' 등을 읊어댔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파괴 전 모습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파괴되는 모습 / 북한은 2020년 6월 17일 오후 2시49분 개성공단 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인근 15층 높이 개성공단 지원센터도 폭파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쓰레기들과 이를 묵인한 자들의 죄값을 받아내야 한다는 격노한 민심에 부응해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차단해버린 데 이어 개성공업지구에 있던 북남 공동연락사무소를 완전 파괴시키는 조치를 실행하였다"고 전했다. 의릉의 '소나무 숲'은 비교적 최근인 2020년 10월 23일 개방됐다. 당시 와보니 한국종합예술학교(이하 한예종)가 교사(校舍)로 이용하던 구 중앙정보부 건물들이 모두 철거되고(2009년 10월 철거했다고 한다) 훼손된 지형을 복원해 그곳에 소나무 숲을 조성해 놓았는데, 과거 무시무시한 고문이 자행되던 악명 높던 장소여서인지 낮임에도 으스스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여서, 바람이 센 날씨 탓인지 평소보다 기온이 낮고 으스스하다.

지금도 부분적으로 개방되는 의릉 천장산 숲길 
한예종 미술원으로 쓰이던 중정 건물 / 1974년 울릉도 간첩단 조작사건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일반대학보다 입학 정원이 적은 소수정예를 표방하고 있으며, 남다른 입시 전형과 차별화된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정규대학이 아닌 4년제 각종학교이다)
한예종은 개교한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현재 졸업생은 한예종 출신답게 예술계 각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바,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이다. 그런데 이 같은 한예종이 최근 날벼락을 맞았다.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2일 '한예종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기 때문으로, 광주 지역구 의원 8명이 동참했다. 법안에는 한예종을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이전하고, 예술전문사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석·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대학원을 설치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의원들은 한예종이 '예향의 도시' 광주에 유치되면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 인프라가 분산되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의 거점 기관이 될 것이라는 취지를 밝혔다. 학생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겠는데,(내 추정이다) 우연찮게도 의릉에서 한예종을 경유해 정류장으로 가다 한예종 총학생회에서 이전 반대 집회 회견을 열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잠시 그 광경을 지켜보는데, 또 우연찮게도 언론사 팬앤드마이크의 선우윤호 기자가 학생 대표에게 "한예종 이전에 관한 총학생회 측의 입장은 무엇인가"와 "한예종 이전에 관한 선배들의 의견 표명이 있었는가"를 묻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학생 대표는 이전 반대'라는 총학의 입장을 분명히 했고, 이전 반대를 지지하는 선배님들의 의사 표명이 있었다고 답했다. 문화예술계를 좌파가 점령한지 오래인지라 조금은 의외로 여겨지는 답변이었다. 학내 분위기도 성토가 아닌 뜨뜨미지근한 분위기다.

이전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학생 대표와 
모인 청중들 / 의외로 청중이 적다. 한예종은 28일 1차 입장문을 내고 "예술 교육은 단순히 교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다"라며 "예술적 영감과 실무적 역량은 현장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전문 인프라와의 접근성, 그리고 예술 생태계 전반의 유기적인 결합 속에서 탄생한다. 이런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이전 논의는 대한민국 예술 교육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고 했다.
이어 반대 이유로서, 예술 교육의 핵심인 '현장성'과 '네트워크'가 위축될 수 있다 / 대학의 주체인 학생과 구성원들의 충분한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 '학위 과정 설치'와 '학교 이전'은 본질적으로 별개의 사안으로 분리되어야 할 문제이다 / 예술계와 시민 사회의 우려 섞인 목소리를 무겁게 살펴봐 달라 / 지역 균형 발전의 취지가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 등의 다섯 가지를 들었다.
현재 한예종은 석관동 캠퍼스(본원), 서초동 캠퍼스(음악원/무용원), 대학로 캠퍼스(연극원 일부)의 3개 지역으로 특성에 맞게 나뉘어 운영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훌륭한 인프라를 버리고 굳이 지방으로 옮기겠다는 이유를 모르겠다. 학생들의 뜨뜨미지근한 분위기도 이해하기 힘들다. 남들은 'In Seoul' 하지 못해서 난리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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