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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공원에서 펼쳐진 제2의 6.10 만세운동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2026. 6. 11. 06:03

     
    앞서 '무너진 성을 사수하는 심경으로 지킨 부정선거 투표함'에서 말했지만 나는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6월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7동 제2투표소에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 30분경으로 경찰과 선관위 연합세력의 투표함 빼내기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무렵이었다. 이후로도 잠실 7동 제2투표소인 우성아파트 경로당 주위로 경찰이 얼쩡거리는 것이 2차 반출 시도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분위기였다. 

     

    그날 잠실 7동 제2투표소는 투표용지 부족으로 밤 10시까지도 투표가 종료되지 못했다. 이에 오후 4시 40분(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지된 시각)까지 주민들이 투표한 투표함 2개가 그 시각까지 남아 있게 된 것인데, 선관위에서 그것을 가져가려는 것을 화가 난 지역 주민들이 부정선거의 증거를 보존해야 한다며 반출을 저지하였고, 이 소식이 SNS 등을 타고 빠르게 퍼져 나가 나와 같은 다른 지역 시민들도 합세하여 투표함을 지키게 된 것이다.  

     
    그렇듯 꾸역꾸역 모여든 시민들 때문인지 그날 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6월 4일 역시 아무 일이 없었고, 다만 무슨 용무인지는 몰라도 경찰 몇 명이 인파를 헤치고 투표소를 들락거렸다. 낮부터 조금씩 낌새를 보이던 강우의 조짐은 오후 들어 비가 간헐적으로 반복됐고 어둠이 내릴 무렵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쯤에서 집으로 왔다. 현장에서 나눠주는 물과 김밥, 초코파이를 먹으며 1박 2일을 지냈지만 사실 체력은 바닥을 보인 상태였다. 여기에 비까지 내리자 더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졌다. 

     

     

    잠실 7동 제2투표소를 들어갔다 나오는 경찰
    퇴근 후 잠실 7동 제2투표소로 몰려든 우산 행렬

     
    일은 내가 막 잠에서 깬 6월 5일 오전 7시 30분경 일어났다. 투입된 1천여 명 경찰기동대의 2차 반출시도가 시작된 것이었다. 이후 9시경 나는 지인이 보내준 동영상을 보고 기절할 듯 놀랐다. 경찰기동대의 작전 개시에 그때까지 남아 있던 시민들이 스크럼을 짜고 나름대로의 방어선을 구축했지만 지키는 사람이 적었던 뒷문 쪽이 뚫리며 경찰기동대가 쏟아져 들어왔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장면이 보여졌기 때문이었다.

     

    제압당한 시민들은 질질 끌려가거나 사지가 들려 끌려나갔다. 방패로 찍힌 듯 얼굴이 찢어진 사람도 있었는데 혼절한 것으로 보였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것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이 맞는가 눈을 비비는데, 발버둥 치며 들려나가는 사람 중에 어제 내 앞에 서서 물통을 나눠주는 등 솔선수범을 보였던 젊은 처자도 있어 가슴 아팠다. 내가 현장을 뜨며 다른 사람에게 벗어주고 왔던 우비도 그 처자가 챙겨준 것이었다.


     

    5일 오전 8시10분쯤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후문에서 경찰 기동대와 대치 중인 시민들 / 중앙일보 DB
    분개하는 주민들
    무엇이 겁나는 것일까? 폴리스 펜스가 둘러처진 중앙선관위

     

    나는 분노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몹시 미안했다. 그래서 그날 이후 거의 매일 저녁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찾고 있다. 경찰은 탈취한 투표함을 개표소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으로 이송했다. 이에 시민들도 그곳으로 이동해 집회를 이어갔는데, 이때부터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엄청난 인파가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으로 몰려들었다.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던 6월 6일 토요일 밤에는 올림픽공원 전체가 미어터질 정도였다. 

     

    이곳 올림픽공원에 모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 세대이다. 까닭에 오늘은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장례식)을 기해 일어난 대규모 학생 중심의 민족독립운동인 6·10 만세운동이 재현된 듯했다. 분위기를 전하자면 핸드볼경기장 1-3 게이트 메인 집회 외에, 다른 게이트 쪽에서는 앞으로의 방향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고, 또 다른 쪽에서는 기독학생회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의 커다란 찬송 합창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급진좌파적 행동으로 분위기를 경색시키던 대진연(대학생진보연합) 좌빨들은 다행히 보이지 않았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 인파
    민주주의의 새로운 성지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

     

    시민들이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으로 모이는 이유는 핸드볼경기장 안에 흡사 성궤와도 같은 투표함 2개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투표함이 선관위로 되돌아가게 된다면 부정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어지게 되므로 핸드볼경기장 앞 집회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셈인데, 과연 그 안에 투표함 2개가 온전히 있을는지는 의문이다. 선관위가 그동안 해온 행태로 보면 부정선거의 주요 증거인 투표함을 그냥 놔두었을 리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대로 있을 수도 있다. 법적으로는 투표함과 개표된 투표지는 선거가 끝난 후에도 법적으로 안전하게 보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선거의 공정성을 입증하고 개표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선거 소청이나 소송 등)에 대비하기 위한 필수적인 법적 절차이기도 하니, 구체적으로는 공직선거법 제186조에 구·시·군선관위는 투표지, 투표함, 개표록 등 선거에 관한 모든 서류를 해당 선거 당선인의 임기 중 보관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반면 공직선거법 제219조, 제222조, 제223조의 규정에는, 쟁송이 제기되지 아니하거나 계속되지 아니하게 된 때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보존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돼 있어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법적인 것은 이러하고 더 이상의 것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만일 이재명의 행정부나 선관위가 물리적 힘으로 올림픽공원 내 시민들을 해산하여 들거나 혹는 투표함을 빼내려 든다면 반드시 제2의 4.19 의거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울러 다른 경로나 방법으로써 명확한 부정이 밝혀지게 되면 또한  제2의 4.19 의거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개표소 출입구인 1-3 게이트 앞에서 "부정선거! 재선거!"를 외치고 있다.
    "부정선거 재선거"와 함께 "당일투표 수개표" 구호도 등장했다.
    재선거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
    집회자들의 비정치적 순수성이 강조된 문구
    '수개표 재선거' 벽보와 함께 '현장에서 바로 수개표' 하자는 주장도 등장했다.
    선관위를 비난하는 벽보는 당연히 넘친다.
    회사원으로 보이는 분이 벽보를 촬영하고 있다.
    별개의 주장을 적은 벽보도 있다.
    안내판 게이트 표시는 피해 벽보를 붙였다. / 올림픽공원 집회는 여러가지로 시민 의식이 돋보이다.
    2-3 게이트 쪽은 수는 적지만 밤을 새우는 열성파들이다.
    이재명이 대안으로 전자투표를 제시하자 곧바로 반대 벽보가 붙었다. / 사정이 이러함에도 이재명은 아직 정신을 못차린 듯.
    현장의 열기는 밤 늦도록 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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