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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람세스 2세의 파리 공항 열병식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9. 8. 5. 06:02


    고대 이집트 제 19왕조의 왕 람세스 2세는 앞서 말한 투탕카멘에 약 100년 정도 후대 사람으로, 그에 대해서는 내가 따로 포스팅할 무엇이 없을 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가 우리에게 친숙한 이유는 자신의 치세에 그만큼 많은 치적을 남겨서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영화 '십계'에서 히브리 민족을 핍박하는 이집트 왕으로 등장한 때문일 것이다.(히브리 민족의 이집트 탈출은 성서에만 나오는 이야기일 뿐 역사적으로 고증된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외에도 유네스코 기금으로 옮겨진 최초의 유적 아부심벨, 뉴욕 UN 건물 로비를 장식한 평화협정서 모뉴먼트 등도 그의 유명세에 관계가 있는 것들이다.



    영화 '십계'에서의 람세스 2세(율 브리너 분)


    영화 '십계'의 한 장면. 왼쪽부터 모세, 람세스 2세, 세티 1세.



    아부심벨 사원의 위치


    1960년 아스완 하이댐의 착공으로 람세스 2세가 세운 나일강변의 두 개 신전이 수몰 위기에 몰리자


    1964년 유네스코에서 세계 50개국의 성금을 모아 신전을 63m 위 안전한 곳에 해체 복원시킴으로써,(한국도 50만불을 기부했다. 당시의 경제규모를 생각하면 거금을 기부한 셈이다)


    아부심벨은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신전 입구의 4개 석상이 모두 람세스 2세의 형상이다.(높이 21m에 이르는 거상이다)


    주신전 옆 오른쪽 신전은 하토르 여신의 신전으로 왕비 네페르타리에게 바쳐졌다. 이 두 개의 신전 12만 5000㎡가 1,035개의 덩이로 분리되어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다.


    주신전 내부에 깊숙이 태양빛이 꽂히는 두 번의 시기(10월 22일, 2월 22일)까지 재현에 성공했다. 그 날이 각각 람세스 2세의 즉위일과 생일로 이집트 천문학의 산물이라는데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부의 깊이는 63m에 달한다.


    아무튼 그날은 이집트 정부에서 경축일로 지정했고 TV 중계까지 해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UN 건물과 카데시 전투 평화협정문 모뉴먼트.

    이집트의 북진정책과 힛타이트의 남진정책이 충돌한 시리아 남부 카데시 전투의 휴전 협정문 모사본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국가간 평화협정기록으로, 전쟁의 중단과 상호 불가침, 상호 원조, 상호 약탈의 금지, 포로의 교환과 처우에 관한 조항 등, 현대의 협정문과 유사한 내용들이 기록돼 있다.


    이스탄불 박물관의 협정문 원본

    협정문은 당시의 국제어인 악카드어로 쓰였으며, 당시 히타이트 왕은 무와탈리 2세였으나 서명은 사령관이었던 동생 하투실리 3세와 람세스 2세 간에 이루어졌다. BC 1279년에 작성된 3,300년 전의 협정문이다.




    카데시 전투에서의 람세스 2세

    테베 신전에 그려진 카데시 전투 묘사도이다. 람세스 2세는 시리아 남부 카데시 평원에서 벌어진 힛타이트와의 전투에서 사실상 패배한 후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이로써 그의 북벌 의지는 꺾이지만 시리아까지 진출한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대신 그는 남쪽으로 진출, 누비아를 정벌해 아부심벨 사원을 세운다.



    수에즈 운하를 지나가는 미 항모 Uss' America CV-66

    믿기 힘든 일이나 람세스 2세는 수에즈 운하를 최초로 시공한 사람이기도 하다. 운하는 그후 정확히 3,000년이 지나 개통된다.


    브리티시 박물관의 람세스 2세 상



    카르낙 신전의 초대형 람세스 2세 상


    멤피스 박물관의 람세스 2세

    스케일 하나는 확실히 짱이다. 하긴 수에즈 운하를 팠던 사람이니.....


    람세스 2세의 테베 장제전(葬祭殿)


    람세스 2세의 미라

    이 미라는 현재 카이로 박물에 안치된 모습이나 발견 당시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 진 것은 없다. 죽어서도 뭔가 있어 뵈는 미라다.


    헌데 이건 또 뭐꼬?

    생년월일에 난에 기원전 1303년이라고 써 있는 람세스 2세의 여권. It's real?



    왠 합성인가 싶겠지만 위 람세스 2세의 여권은 합성이 아닌 이집트 외무부에서 발급한 진짜 여권이다. 카이로 박물관에 있던 그가 갑자기 외국에 나갈 일이 생겨 발급받은 것으로, 여행지는 프랑스 파리였으며 여행 목적은 신병치료였다. 1974년 카이로 박물관의 학자들이 람세스 2세의 미라가 빠른 속도로 부패되고 있음을 인지했던 것인데, 방지 기술이 부족했던 박물관 측에서 미라를 프랑스로 보내기로 결정을 보고 이에 따라 여권을 마련한 것이었다. 이는 죽은 자도 국외로 나갈 때는 여권이 필요하다는 이집트 법에 따른 결정이었지만, 미라의 안전 귀국을 위한 조처이기도 했다. 만일 프랑스 측에서 미라를 억류시킬 경우 국제법에 따른 송환 소송의 근거 역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여권에 기재된 그의 직업은 (서거한) 왕이었다.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된 람세스 2세의 무덤.

    1881년 이 안에서 람세스 2세의 미라가 발견돼 1885년 카이로 박물관에 안치됐다.


    개봉 직전의 람세스 2세의 관

    (설명에는 람세스 2세의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재현 사진이나 다른 자의 관으로 생각됨)


    짠! 관 뚜껑이 열려지는 순간

    시신은 생전의 키가 170cm로 생전의 머리카락은 흰색의 두껍고 부드러운, 이른바 찰랑대는 머릿결이었고, 메부리코에 돌출된 하악골을 가진 의지형의 얼굴이었으며 피부는 갈색이었다. 시신에는 방부제로 사용된 노란색 헤나와 붉은 색의 향신료가 발라져 있었다. 



    1976년 시신을 태운 특별기가 파리 르부르제 공항에 도착했을 때 미라는 여권에 기재된 직업에 걸맞은 환영인사를 받았다. 프랑스 주요 각료의 내외가 공항에 나와 그의 시신을 맞았으며, 예포 속에 군 의장단의 엄숙한 사열 행사가 있었다. 비록 죽은 자이긴 하나 왕의 신분에 따른 예우를 갖춰 세레모니를 해준 것이었으니 문화강국 프랑스의 국격이 돋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이 역사적 장면?의 사진을 소개하려 애썼으나 유감스럽게 아래의 두 장밖에 구하지 못했다. 사진 판권의 소유자인 Getty Images 측에서 관련된 모든 사진에 저작권을 걸어놨기 때문인데, 그나마 아래의 사진도 Getty Images의 출처가 명시된 어떤 글에 삽입된 것을 빌려온 것이다)





    시신은 곧바로 파리 민족학 박물관으로 옮겨져 검사를 받았다. 연구진은 미라의 상태가 악화된 것이 곰팡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탓이라고 밝혔다. 미라에서는 전투에서 비롯된 여러 군데의 상처가 발견됐으며, 골절, 관절염, 빈혈 등의 소견이 제기됐다. 특히 강직성 척수염으로 수십년 동안 허리를 굽히지 못했을 것이라는 소견이 주목을 끌었다. 또 미라의 하악골에서 심각한 구멍이 발견됐는데, 이는 오랫동안 앓은 잇몸 농염의 흔적이지만 이것이 사망의 원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보기 드물게 장수했으며(90~96세) 무려 67년 간을 재위에 있었다.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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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