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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시위의 역사적 타당성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9. 8. 18. 02:09

    홍콩 시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듯하다. 홍콩의 역사, 그리고 탄압의 부당성을 반추해보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7월 1일 저녁, 나는 힘들게 술자리를 빠져나왔다.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해서인지 꼬치꼬치 따져묻는 동료에게 하마터면 홍콩 반환식 행사를 봐야 한다는 솔직한 고백이 나올 뻔했다. 밖은 이미 짙은 어둠이 내려져 있어 시간이 상당히 흘렀음을 알 수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10시가 넘었다. 아무래도 늦은 것 같아 택시를 탈까 하다가 버스가 와 그냥 올라탔다. 잘못하면 버스 덕도 택시 덕도 모두 못보게 되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인데, 막상 버스를 타니 역시 느렸다.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다급한 사정과 차의 속도는 언제나 반비례한다.


    '그게 무슨 대단한 거라고..... 못 보면 말지 뭐.' 위안을 했지만 마음 한쪽에서 이는 조바심은 다스려지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내가 무슨 홍콩 번화가 침사추이 쯤에서 술을 마시다 컨벤션 센터에서 진행되는 홍콩 반환식 행사에 가려는 듯 보이지만 당시 그곳은 대한민국 수도서울의 조금은 붐볐던 버스 안일 뿐이었고, 나는 아편전쟁 후 156년만에 중국으로 반환되는 홍콩의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하고픈 일개 서울시민에 불과했다. 어쩌면 별나게 여겨질는지도 모르겠으나 그와 같은 역사적 순간과 마주하는 일은 절대 자주 오는 행운이 아니었다. 다시 시계를 봤다. 홍콩과는 정확히 1시간 차이가 나니 지금 밤 9시가 넘었을 터였다.


    집에 도착하니 역시 행사는 끝나 있었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패튼 총리와 그의 가족들이 배를 타러 항구로 향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울상이던 막내 딸은 배에 오르자 급기야 눈물을 쏟았다. 물론 영토를 잃는 것에 대한 슬픔은 아닐 테고 정들었던 홍콩 땅과 헤어지는 데 대한 슬픔일 것이겠는데, 그녀가 울자 갑자기 모두들 울컥하는 얼굴이 됐다. 영국 대표 찰스 황태자는 애써 못본 척 손만 흔드는데, 이에 따라 손을 흔들면서도 계속 눈물을 흘리던 막내의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애처롭던지...... 이어 배는 빅토리아 항을 출발했고 그것으로 156년 간의 브리티시 홍콩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반환 행사장인 홍콩 컨벤션 센터. 맨 앞줄에 강택민 주석과 찰스 황태자가 서 있다. 

     

    총독 관저에서 내려지는 유니온 잭


    열병식을 받는 크리스 패튼 총독(많이 경직된 얼굴이다)



    국기를 받는 패튼 총독. 위대했던 대영제국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듯.


    관저에서 나오는 총독 가족


    계속 울상이던 막내 딸은

    결국 배 위에서 울음을 터뜨렸고


    그래서 분위기가 슬퍼졌지만


    그와 상관없이 배는 떠나고


    브리티시 홍콩 깃발을 든 홍콩 여인이 서글피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있으니, 사실 이때 영국은 중국의 신천과 접경해 있는 '신계지역'만 넘겨주면 되고 홍콩섬과 구룡반도, 그리고 인근의 4개 부속 도서는 안 돌려줘도 상관없었다. 영국은 1842년 1차 아편전쟁에서 이긴 후 홍콩섬을, 1860년 2차 아편전쟁에서 이긴 후에는 구룡반도와 인근 4개 부속 도서를 할양받았는데, 이때는 영구 조차(租借)이지 얼마 후에 반환하겠다는 약속 따위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며 더욱 힘이 약화되자 1898년 '경계확장 조약'을 맺어 신계지역을 99년간 빌려쓰겠다고 어거지로 떼갔는데, 지난 1997년이 99년이 되는 해였던 것이었다. 지도로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홍콩은 단계적으로 할양되었던 바, 1차 아편전쟁 후 1842년의 '남경조약'으로 홍콩섬이,(파란 색) 

    그리고 2차 아편전쟁 후 1860년의 '북경조약'으로 구룡반도 및 부속 4개 섬이,(짙은 보라색) 

    그리고 청일전쟁 후 1898년 '경계확장전문조약'으로 '신계'지역 및 235개 도서가 99년간 조차된다.(옅은 보라색)



    즉 위의 지도 중 가운데 파란 색의 홍콩섬과 짙은 보라색의 구룡반도는 돌려주지 않아도 무방한 지역이었다.(이곳에 홍콩의 주요 시설과 건물이 밀집돼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돌려주면서 이곳만 남겨놓는 것도 옹색한 일이고,(사실은 미안한 감도 좀 있고) 반환이 가까워 옴에 떵샤오핑(등소평)도 '한꺼번에 돌려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우리가 무력으로 뺏아가면 된다'고 으름장도 놓고 해서 모양 좋게 일괄적으로 돌려주게 된 것이었다. 만일 영국이 그걸 지키겠다고 하면 결국 3차 아편전쟁이 일어나게 될 터, 하지만 이제는 영국이 중국을 꺾을 힘이 없었던 것이었다.


    영국이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돌려주기는 했으되 당시 하나의 조건을 걸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향후 50년 간은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실시하여 홍콩이 곧바로 대륙 공산주의의 통치를 받는 것을 막아달라는 조건이었다. 말하자면 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리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중국도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홍콩은 세계 무역의 중요 거점 도시인 만큼 있는 기존의 것 그대로를 활용하는 편이 중국의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국양제는 오랫동안 잘 지켜졌다.


    그런데 중국이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홍콩과의 격차를 좁히고 나라 자체도 힘이 생기자 '양제'는 이제 그만하고 '일국'으로 통합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때는 2003년 후진타오가 권력을 잡으면서부터였다. 그리하여 국가보안법 제정을 기하려는 본토에 맞서는 큰 소요가 2003년 일어났고, 2012년에는 친중 정신교육을 하려는 본토 정권에 맞서 또 한번의  항거가 일어났다. 이에 본토에서도 찔끔해 한동안 양제에 대해 별 말이 없었으나 2013년 시진핑이 권력을 잡으면서 다시 양제가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발발한 것이 이른바 '우산혁명'으로, 홍콩 행정수반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는 그들은 시위는 2014년 9월부터 무려 79일간 지속되었다. 그래서 중국정부에서 이번에 들고 나온 것이 문제의 '범법자 송환법'이었다. 시위를 주동하거나 적극 참여하는 놈들은 본토로 끌고가 아예 시위가 일어나지 못하게끔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속이 뻔이 들여다 뵈는 법제정을 홍콩인들이 묵과할 수는 없는 노릇일 터, 작금의 사태는 점점 극점을 향해 치닫게 되었다.


    내가 볼 때, 잘못은 영국과의 합의 사항이었던 50년 일국양제 실시의 약속을 위반한 중국정부에 있는 것 같은데, 중국인들은 한사코 홍콩을 매도하고 있는 바,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누가 뺏아갈 것도 아닌데, 그리고 50년의 반도 흘러가고 절반만 남았는데, 앞으로 통합 후의 감정만 나빠지게 왜 자꾸 무력을 쓰려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남 일에 끼어들기 좋아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왜 또 갑자기 점잔을 빼는 건지 그 이유 또한 잘 모르겠다.


    지금 홍콩 사람들이 시위를 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1997년의 양국 합의 사항을 지키라는 것이다. 또 어제 EU 회의에서 반환 때의 협정을 강조하며 홍콩 인권 탄압을 규탄한 것 역시 1997년의 양국 합의 사항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이딴 거 다 무시하고 싶은 모양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무장경찰들이 본토의 진압군이 코앞에 와 있다는데, 이러다 조만간 자유 홍콩 최후의 날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홍콩 시위가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인민해방국 소속 무장경찰들을 태운 트럭이 홍콩에서 10분 거리인 선전시에 도착했다.


    아아, 이제 홍콩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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