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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했던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9. 7. 28. 21:25

     

    '헤파이스테이온 - 가장 불우했던 신에게 남겨진 가장 완전한 신전'에서 이어짐.

     

    헤파이스테이온의 주인 헤파이스토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불의 신, 대장장이 신으로 불립니다. 고대 희랍인은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이 화산 밑에 위치하고 있다고 보았는데, 쇠와 불의 불가분의 관계가 신화에 그렇게 녹아든 듯합니다. 과거 산업입국(産業立國) 시절에 자주 보여지던 포항제철 용광로의 뜨거운 쇳물이 생각나는군요. 그래서 그들은 화산 폭발을 헤파이스토스의 '성질 폭발'로도 여겼습니다. 헤파이스토스는 로마에서는 불카누스(Vulcanus)로서, 이는 '화산'이란 뜻의 영어 볼케이노(volcano)의 어원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헤파이스토스의 성격도 그렇듯 불 같았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매우 온순했습니다. 아니 그보다 의기소침한 성격이었고, 자유분방한 다른 신과는 달리 늘 뭔가에 주눅들어 있는 신처럼도 보였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체적 장애와도 상관이 있을 듯합니다. 그는 태어나서 두 번을 버려졌고, 버려질 때 입은 상해로 평생을 불구의 다리로 살아야 했던 트라우마가 그를 지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태어난 후 버려지게 되었을까요? 혹 사생아였을까요?

     

     

    그리스 도자기에 그려진 헤파이스도스
    왠지 우울하고 힘이 없어 보인다.

     

    아닙니다. 그는 부모가 있었고, 그 부모도 다름아닌 신들의 왕 제우스와 정실부인인 헤라였습니다. 그와 같은 당당한 집안의 적자(嫡子)는 안타깝게도 두 번 버려졌습니다. 처음은 어미 헤라로부터였습니다. 그녀가 제 자식 헤파이스토스를 버린 이유는 신의 자식 답지 않게 너무 못생겨서였는데, 게다가 다리를 저는 선천성 불구도 그녀를 쪽팔리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이에 헤파이스토스는 하늘 아래로 집어던져졌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 다시 올림푸스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얼마 후 이번에는 심한 부부 싸움으로 이성을 잃은 아버지 제우스에 의해 던져져 에게 해의 렘노스 섬에 추락하게 되는데, 그가 평생의 불구가 된 것은 이때 입은 상해가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신화라지만 뭔가 좀 이상하지요? 우선은 신의 아들인 헤파이스토스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못생겼다는 것도 그렇고, 또 그렇다고 버리는 어미도 그렇고 말입니다. 따라서 헤파이스토스의 탄생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버전보다 <신통기(神統記)>의 저자 헤시오도스의 말을 빌리는 게 옳을 듯싶습니다. 그는 <신통기>에 헤파이스토스의 출생에 대한 비밀의 코드를 숨겨 놓았습니다. 그는 헤파이스토스를 헤라가 혼자 낳은 자식이라 말하고, 그 까닭은 제우스가 아테나를 혼자 낳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아테나는 제우스의 머리통에서 태어나지요)

     

    혼자 낳은 자식이 무슨 뜻이냐고요?  말 그대로 입니다. 성서의 마리아가 예수를 혼자 낳은 것처럼 혼자 낳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예수처럼 신성시여겨지기도 합니다. 옛 그리스의 펠리클레스가 세운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나 파르테노스', 즉 '동정녀 아테나'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입니다. 기원전 449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델로스 동맹(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연맹)의 지휘자 펠리클레스는 남는 동맹의 전쟁 기금으로 제 나라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파르테논 신전을 지었는데, 다른 동맹국의 반대를 잠재우기 위해 내세운 것도 전쟁의 여신 아테네의 파르테노스(παρθενσs, 동정성)입니다.  

     

     

    복원 공사가 한창인 파르테논 신전

     

    하지만 ♀♂ 없이 혼자 태어나는 일은 아메바나 진딧물 같은 하등동물에게나 가능하고 고등동물에게는 불가능하지요. 모두들 아테나의 탄생을 단성생식(생물학적으로 혼자 태어나는 일)으로 믿고 싶어하지만 실은 제우스와 지혜의 여신 메티스와의 불륜의 결과입니다. 메티스는 제우스의 전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불륜이 아닌 건 아닙니다. 이에 헤라도 홧김에 누군가와 부정을 저지른 듯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자식이 헤파이스토스입니다) 그 누군가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만, 그렇지 않고서야 미남 미녀인 두 사람 사이에서 그렇듯 못생긴 자식이 나왔을 리 없을 테고 아울러 자신의 부모로부터 내내 구박을 받을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서울에 나들이 온 제우스의 두상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는 지금 '그리스 보물전'이 열리고 있다.(2019년 9월 15일까지) 제우스의 바람기야 알아주는 것이지만 이 두상을 보면 그는 우선 마스크가 훌륭했던 것 같다.
    김태희의 화장품 헤라 광고 / 전성기 때의 김태희가 유명 화장품 회사의 광고 모델로 등장했다. 헤라는 전쟁의 신 아레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라는 글씨를 새긴 사과를 놓고 아테나, 아프로디테와 다투었을 정도로 '한 미모'하던 여신 이었다. 이 사과로 인해 트로이 전쟁이 발발한다. (☞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조각품')
    전지현의 화장품 헤라 광고 / 전성기 때의 전지현 역시 같은 회사의 광고 모델로 등장했다. 도도한 여신 헤라의 이미지와 가장 잘 믹스되는 모델이지 않았나 싶다.
    제우스와 헤라의 상류 생활 모습
    반면 헤파이스도스는 대장간에 쭈그려 앉아 열심히 쇠를 두드리고 있다.

     

    그는 취업 전선도 험난했습니다. 타고난 금수저이니 (다른 신들의 자제처럼) 의당 놀고 먹거나, 아니면 문자 그대로의 '신의 직장'으로 풀려야 했으나, 그가 간 곳은 뜨거운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산 밑바닥의 대장간이었습니다. 역으로, 문자 그대로의 '밑바닥 인생'이 시작된 것인데, 그나마 그것도 그가 어릴 적 지상의 세계로 내던져졌을 때 생계를 위해 배웠던 대장장이 기술 덕분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로열 패밀리가 3D 업종에 취업을 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겨난 셈이지요. 하지만 그는 현실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 밑바닥에서 더욱 기술을 연마해 각종 기구와 무기, 그리고 여러 장신구 등을 만들어냈습니다.

     

    트로이 전쟁에 나가는 아킬레우스에게 갑옷과 방패를 만들어 준 것도 헤파이스토스였습니다. 그는 그리스와 트로이 두 나라 간의 전쟁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가 어릴 적 지상에 던져진 자신을 구해주고 보살펴 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아킬레우스의 무기를 만들어 준 것이지요. 테티스는 신체적 결함이 있고 몸이 약한 헤파이스토스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다른 기술이라도 있어야 한다며 대장장이 일을 가르쳐주었던 바, 그야말로 생명의 은신(恩神)입니다. 여기서 잠시 테티스를 언급하자면, 

     

    그녀는 바다의 신이며 정의의 신입니다. 어린 헤파이스토스가 지상에 던져졌을 때 떨어진 곳도 바다가 섬이었는데, 그것을 본 테티스가 이름답게 행동한 것입니다. 테티스는 또한 뛰어난 미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우스나 포세이돈도 대시를 한 적이 있지만 이루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온 테티스의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하는 영웅이 될 것이라는 예언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남신(男神)이 이를 두려워해 물러났고, 대신 제우스는 그 아들이 아무리 위대해져도 상관없을 듯 보이는 만만한 인간 펠레우스를 골라 테티스와 짝지어 주었습니다.

     

    테티스가 펠레우스와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바로 아킬레우스입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었으니 당연히 용사였는데, 테티스는 트로이 전쟁 전, 제 아들 아킬레우스가 전사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게 되지요. 이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그녀는 무기 제작을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했고, 가뜩이나 무적이던 아킬레우스는 그 무기로써 더욱 강해져 마침내는 상대할 자가 없어지지만 결국 파레스의 화살에 유일한 약점인 아킬레스 건을 맞고 죽습니다.(☞ '미학/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조각품') 아무튼 호메로스가 <일리아드>에서 입에서 침이 튀도록 장황히 설명했던 그 방패를 만든 사람이 바로 헤파이스토스였습니다.

     

     

    영화 '트로이'에서의 테티스 (쥴리 크리스티)
    불길한 신탁을 받은 테티스는 아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아킬레우스는 신탁이 무색하게 천하무적으로 활약하지만.....

     

    좌우지간 그는 묵묵히 땀흘리며 일에만 매진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헤파이스토스에게도 한 가지 떨칠 수 없는 분노가 있었으니 그것은 어릴 적 자신을 지상으로 내던졌던 어미 헤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갈고닦은 기술을 이용해 헤라에게 멋진 황금 의자를 만들어 보냅니다. 속없는 헤라는 제 아들의 선물이라며 좋아라 의자에 앉는데,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덫에 걸려들게 됩니다. 의자의 보이지 않는 그물이 그녀를 옭아매 옴짝달싹을 못하게 만들어버렸던 것이지요. 놀란 헤라는 헤파이스토스에게 다급히 다음과 같은 구미 당기는 제안을 합니다. 자신을 풀어주면 천상+지상 최고의 미인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삼게 만들어주겠노라고 말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장가 못간 노총각이었던 그였으니 옳다구나 이를 받아들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어미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꼭 죽일 마음은 아니더라도 죽을 만큼의 고통은 안겨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죗값을 순순히 받아들일 헤라가 아닐 터, 그녀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구원을 요청합니다. 헤파이스토스를 만취시켜 올림푸스로 끌고 와 맞 결박시킨 후 담판을 지어보자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지요. 디오니소스는 제우스가 인간 세계의 여인 세멜레와 바람을 피워 태어난 자식입니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헤라에게 심한 구박을 받았고 이로 인해 늘 술에 취해 반 미치광이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헤라가 무서워 부탁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헤파이스토스는 평소 연락 한번 없던 디오니소스가 예까지 찾아온 것이 의심스러웠지만 그가 가져온 좋은 술에 KO되고 맙니다. 노동과 술은 그야말로 오랜 친구였던 듯합니다. 결국 결박돼 올림푸스로 끌려온 헤파이스토스는 헤라의 제안을 받아들여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결혼하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주 빼어난 미인은 남자의 외모를 그리 중요시 여기지 않습니다만, 대신 집안(=₩)은 좀 보는 것 같습니다. 직업이 좀 그래서 그렇지 집안이야 워낙에 빵빵한 바, 두 신의 혼인은 무난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미녀와 야수, 가장 아름다운 여신과 신체적 결함을 가진 못난이 신과의 세기의 결혼식이었지요. 어떤 분께서는 이 결혼을 '아름다운 바람둥이 여신이 안고 있는 숙명일지 모른다'고 해석하기도 했는데, 왠지 공감이 갑니다.

     

    그래도 이왕 한 결혼, 행복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두 사람 사이에서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아프로디테는 다시 바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젊어서부터 끼가 넘쳐 상대가 마음에 들면 신과 인간을 가리지않고 관계를 맺었고, 게다가 케스토스 비마스(Kestos bimas)라는 마법을 띠를 지니고 있어 상대방의 마음을 빼앗는 요술을 부릴 수도 있었는데, 이번에 만난 상대인 군신(軍神) 아레스의 경우는 그런 것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호색한이었던 아레스와 궁합이 기가 막히게 맞았던 것이지요.(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는 어느 곳에도 설명이 없습니다. 아마도 선수끼리 알아본 듯합니다) 이에 그들은 헤파이스토스가 출근하면 부부의 침대에서, 때로는 헤파이스토스의 일터에서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짓을 즐겼습니다.

     

     

    '헤파이스토스 대장간에서의 '아프로디테와 큐피트' / 17세기 화가 엔소니 반 딕의 유화 작품으로, 헤파이스토스 대장간에서 스릴의 정사를 즐기는 아프로디테를 그렸다. 왼쪽의 헤파이스토스는 그저 일에만 열중이다.

     

    그러나 불장난이 지속되면 화재가 난다는 건 철칙인 듯하니, 결국 대형 사고가 터지게 됩니다. 벌건 대낮에 벌어지는 질펀한 정사를 지켜보던 태양 신 헬리오스가 마침내 헤파이스토스에게 두 사람의 관계를 슬쩍 흘린 것이요. 자신도 마치 어디서 들은 것처럼. 사정을 눈치 챈 헤파이스토스는 어떻게 했을까요? 분노가 폭발해 쇠 두드리던 해머를 들고 방으로 뛰어들어갔을까요? 그러지 않았습니다. 헤파이스토스는 원래 그럴 만한 성격이 못 되니까요. 대신 그는 자신의 대장간에서 조용히 청동을 녹여 보이지 않는 그물을 짰습니다. 어미 헤라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나노(nano) 기술을 이번에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지요. 그는 그 그물을 제 집 침대에 깔아놓고 며칠 렘노스 섬에 다녀오겠노라며 보란 듯 외출을 합니다.

     

    헤파이스토스가 외출을 하자 아레스는 기다렸다는 듯 아프로디테를 찾아갑니다.(아프로디테가 시종인 히메로스를 보내 아레스를 불러들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히메로스는 '나른한 그리움', '겉잡을 수 없는 욕망'이라는 에로틱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이 난 두 남녀는 밤을 넘겨 새벽까지 광란의 정사를 벌였는데, 동이 틀 무렵 헤파이스토스가 들이닥칩니다. 아프로디테는 방문을 단단히 걸어두었으나 헤파이스토스가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치마자락에 묻어 들어온 것이지요. 놀란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황급히 도망가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나노 기술의 보이지 않는 그물이 그들의 몸을 옭아매었기 때문입니다. 현장을 목격한 헤파이스토스는 곧 올림푸스의 신들을 불러들여 간통의 증인으로 삼습니다.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 침대 위에 쪽팔려 하는 표정의 아프로디테와 투구를 쓴(군신이므로) 아레스가 그물에 갇혀 있고, 그 위로 삼지창을 든 포세이돈, 날개 모자를 쓴 헤르메스, '잘 보시오'하는 몸짓의 헬리오스, 재미있다는 표정의 제우스 등이 보이는데, 등짝을 보이고 있는 헤파이스토스에게서는 그 표정이 정확히 나타나 있지 않지만 이판사판의 절망감이 살짝 배어난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마르텐 반 힘스케르크의 작품이다.

     

    물론 두 사람에게 충분한 망신을 주긴 했지만 헤파이스토스의 행위는 자폭에 가까운 자해행위였습니다. 그 자신에게도 망신이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그는 계획을 감행했던 바, 필시 같이 죽자는 생각이었겠지요. 그가 당시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는 <신통기>에 남겨진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몸"이라는 독백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아프로디테에게는 "나쁜 년!"이라는 한 마디를 뱉었다고 합니다. 짧지만 참으로 처절한 절창(絶唱)입니다. 힘이 장사였던 군신 아레스는 아프로디테의 재촉에 몇 번이나 그물을 찢으려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벗거벗은 몸 그대로를 다른 신들에게 보여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너스와 마르스' / 안토니오 카노바(15757-1822)

     

    흥미로운 것은 이때 보여준 다른 신들의 반응입니다. 이 방면에 이골이 난 또 다른 바람둥이 아폴론은 이때 헬리오스에게 아레스와 헤파이스토스 중 누가 승자인가를 묻습니다. 이때 헬리오스는 (미인 아프로디테를 취했으니) 둘 다 승자라고 말합니다. 내심 헤파이스토스를 동정하던 아폴론이 다시 묻습니다.

     

    "저렇게 그물에 갇혔는데 어찌 승자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에 대한 헬리오스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난 차라리 저 그물 속에 영원히 갇히고 싶은 심정이오."

     

    남편인 헤파이스토스에게 두 사람의 불륜을 귀띔한 헬리오스였지만 그 내심은 미인을 안은 아레스에 대한 질투 내지는 부러움이었던 것이지요.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 8권에서 세상사의 추악한 본질을 이렇듯 리얼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 상(젊었을 때)

     

    그런데 이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여준 반응은 의외로 경탄할 만합니다. 모두들 낄낄대며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를 손가락질하는 가운데서도 포세이돈은 혼자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분개하는 헤파이스토스에게 점잖게 한 마디를 합니다.

     

    "저 두 사람을 그만 풀어주게. 저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헤파이스토스 자네만 더 힘들 뿐이야. 이제 아레스는 더 이상 이 짓을 못할 터, 그건 내가 보증하겠네. 만일 아레스가 자네에게 갚아야 할 몫이 있다면 갚아야 하겠지만, 만일 그가 갚지 않는다면 내가 대신 갚겠네."

     

    여기서는 포세이돈이 성인군자처럼 행동하나 사실 그도 내로라는 난봉꾼이었는데, 처녀 메두사와의 사건 이후 사람이 된 듯, 아니 신다운 신이 된 듯합니다.

     

     

    로마의 아프로디테 비너스 상 (조금 나이 들어)

     

    이에 결국 헤파이스토스는 두 사람을 풀어주고 부부는 이혼의 수순을 밟게 되는데, 헤파이스토스는 아무 조건 없이 아프로디테에게 해준 결혼 예물을 되돌려받는 선에서 매듭짓습니다. 일종의 위자료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자신이 돌려받지 않고 아버지 제우스에게 갖다 주라고 하였던 바,(제우스가 마련해 준 예물이므로)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마지막 선긋기로 보입니다. 이후 그는 대장간에서 꼼짝하지 않으며 제작에만 몰두합니다. 세상을 향한 분노와 원한, 다른 신들의 조롱과 멸시 등, 자신이 짊어져야 할 모든 업보를 오직 창조로 승화시키려는 눈물겨운 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에 의해 마침내 최고의 걸작 판도라가 탄생하게 됩니다.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넙죽 받은 지상의 인간들을 징벌하기 위해 제우스가 하청을 주어 만들게 한 여인으로, 헤파이스토스는 그녀를 진흙으로 빚습니다.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필시 제우스였겠지요. 그런데 이는 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탄생 스토리와도 매우 비슷합니다. 또 대부분의 그리스·로마 신화는 판도라를 인류 최초의 여성으로 서술하는데, 이것은 맞지 않은 듯합니다. 판도라 이전에도 지상에는 여자가 있었으니 이를테면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세멜레 같은 여인입니다. 또 세멜레는 테베 왕국의 공주였으니 이미 지상에는 많은 남녀의 인류가 번성하고 있었던 것이지요.(제 생각은 그렇습니다만 뭘 잘못 안 것인지요?)

     

    또 성서에서는 하와를 최초의 여성으로 서술하는데, 이것 또한 맞지 않습니다. 구약성서 창세가를 보면 아담과 하와의 아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죄로 하나님으로부터 에덴 추방의 명령을 받습니다. 이때 그는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크게 두려워합니다.(창세기 4:14) 그래서 하나님에게 면살(免殺)의 징표를 받게 되고, 이후 이덴의 동쪽인 놋 땅으로 가 아내를 얻고 왕국을 건설합니다.(창세기 4:17)  이미 지상에는 아담과 하와 부부 외에도 많은 남녀의 인류가 번성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성서와 UFO' 카테고리에 자세히 포스팅한 글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참고해 주시길......(☞ 'UFO를 타고 날아 온 하나님의 아들들' / '카인의 왕국을 찾아서')

     

    이번 글은 이만 줄이고 다음 글은 다시 '미학'으로 돌아가 헤파이스토스의 신전 헤파이스테이온에 대해 마저 쓰겠습니다. 아울러 판도라의 상자 역시 조만간 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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