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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조각품
    미학(美學) 2018. 2. 19. 07:47


    그리스의 군신(軍神) 아레스는 로마 신화에서의 마르스와 동일시된다. 그런데 우리의 귀에 익은 마르스와 달리 아레스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듯 존재감이 없었던 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는지 올림푸스의 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집단 내에서 이런 식의 왕따를 당하면 정말 열받는다. 이에 자존심이 잔뜩 상한 아레스는 신들 간의 불화를 조장해 싸움을 불러 일으킬 궁리를 하는데,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질투의 사과였다. 그가 결혼 피로연장에 던져놓고 간 사과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써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사과는 공교롭게도 신들 중에서도 예쁘다는 헤라와 아테나와 아프로디테 사이에 떨어졌다. 아무 것도 아닌 이 사과 한 알은 그들 여신들 간에 묘한 경쟁심을 불러 일으켰던 바, 아레스가 원한 대로 긴장된 분위기로 젖어들었다. 그러자 여신들 간에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을 염려한 제우스가 끼어들었고, 그 판결을 마침 그리스에 외교사절로 와 있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겼다. 신들 간의 이해타산에서 자유로운 3국의 인간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이에 세 여신은 파리스를 향한 로비에 들어갔다. 


    먼저 제우스의 부인 헤라는 파리스에게 '지상 최고의 부와 권력'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이어 승리의 여신 아테나는 '어떤 전쟁에도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약속했으며,

    마지막으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약속했다. 

    파리스는 이 3가지 제안을 놓고 장고에 들어갔는데..... 



    "으음. 누굴 고른다....?"    



    최종적으로 그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주었다. '뭐니 뭐니 해도 이쁜 여자가 최고여'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아프로디테는 약속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그리스 스파르타 왕국의 헬레네라는 여인이었는데, 그런데 아뿔사! 약속을 지키려다보니 처녀와 유부녀를 가릴 수 없었던 바, 그녀 헬레네는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던 것이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 연회장에서 만난 그녀와 파리스 왕자는 신의 조화로써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뿅~!!



    파리스는 일을 마치고 배를 타고 트로이로 돌아오는데, 배 안에는 당연히 헬레네가 숨어 있었다. 배신감과 분노로 범벅이 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는 당장에 트로이를 쳐들어가고 싶었지만 힘이 딸리는 터, 미케네의 왕인 자신의 형 아가멤논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그렇잖아도 몸이 근질거리던 아가멤논은 기다렸다는 듯 이를 수락한다. 그리고 그리스 동맹국들의 군사들까지 싸그리 긁어모아 에게해의 스키로스 섬을 경유, 터키의 트로이로 쳐들어간다. 이때가 지금으로부터 3100년 전으로,고대 동·서양 사이 장장 10년 간의 전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비극의 시작. 트로이로 온 파리스와 헬레네.


    스파르타, 미케네 및 트로이의 위치.



    트로이 성을 공격하는 그리스 연합군.



    트로이 해안에 상륙한 그리스 연합군은 역전의 용장 파트로클로스를 앞세워 물밀 듯이 트로이 성을 공격하지만 의지와는 달리 성은 쉽게 함락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의 장수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와의 결전에서 패해 전사하는데, 이에 그리스 측에서는 무적의 전사 아킬레우스를 긴급히 투입해 헥토르를 죽인다. 아킬레우스는 올림푸스의 신 테티스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자로, 그 어미 테티스가 갓난아기였던 아킬레우스를 저승의 스틱스 강에 담가 상처를 입지 않는 무적의 몸으로 만들었던 바, 그 누구도 상대할 자가 없었다. 



    무적의 아킬레우스



    이에 트로이 군은 연전연패하며 크게 밀리는데, 아킬레우스의 약점(테티스가 잡고 있었던 발목 부분은 강물에 닿지 않았으므로 발목 뒤의 힘줄은 아킬레우스의 약점으로 남았다)을 파악한 파리스 왕자가 활을 쏴 이른바 아킬레스 건을 맞춤으로써 무적의 영웅 아킬레우스도 목숨을 잃는다. 이후 전선은 더욱 교착상태에 이르고, 이에 그리스 군은 오디세우스의 계책에 따라 거대한 목마를 제작한 후 그것만을 남기고 트로이에서 철수한다. 트로이 군은 그리스 군의 철수에 크게 기뻐한다. 그리고 그들이 남기고 간 목마를 신관(神官) 라오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성 안으로 끌어들이는데, 이로써 결국 트로이는 함락되어 멸망하고 만다.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군사들이 밤에 몰래 나와 성문을 열었고, 이에 그리스 군사들이 협공해 성 안의 군사들을 몰살시킨 것이었다.



    위의 사진들은 영화 '트로이'의 스틸 컷


     

    이상 간략하게 소개한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 신화와 전설, 그리고 8세기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장편서사시 '일리아드' 등의 내용이 어우러진 고대의 전쟁 스토리다. 이 트로이 전쟁은 이후 회화를 비롯한 많은 예술 작품의 모티브를 제공했는데, 19세기 말 독일의 고고학연구가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이 터키 트로이 및 그리스 미케네의 유적을 발굴하면서 그것이 전설이 아닌 역사적 사실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전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이며, 또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인지 그 경계는 매우 모호한데, 그럼에도 대충 한데 버무려져 넘어가고 있다. 



    트로이 고대 유적.(트로이 성의 열주)


    미케네 고대 유적.(사자의 문)



    아무튼 말한 바와 같이 트로이 전쟁은 이후 그것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을 낳았는데, 그중에는 실체없이 떠도는 '라오콘 군상(群像)'이라고 하는 조각품도 있었다. 기원전 1세기 중엽, 그리스의 유명한 조각가 아게산드로스, 폴리도로스, 아테노도로스 3인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이 조각품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헬레니즘 시대의 최고 조각품으로서 회자되고 있었던 바, 그 가장 큰 이유는 로마 역사가 플리니우스가 자신의 책 '박물지'에 이 '라오콘 군상'을 당대 최고의 작품이라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로마에는 그토록 많은 조각품이 있거늘 최고의 조각이라 칭송받는 그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사람들의 궁금증은 이런 것이었는데, 이와 같은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플리니우스가 그것이 묻혀 있는 장소를 로마 에스킬리노 언덕이라고 했던 바, 언젠가는 그것이 발견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506년 1월14일 로마 에스킬리노 언덕에 있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근처의 포도밭에서 정말로 이 라오콘 상이 발견되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포도밭의 농부로, 그는 그 즉시 당대의 최고 화가이지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에게 달려왔고, 서둘러 땅을 파헤쳐 본 미켈란젤로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 한다. 


      "오, 신이시여. 이 위대한 걸작이 햇빛을 보게 해주심에 감사드리옵니다. 이에 비하면 저의 재주는 발가락의 때만도 못한 것이옵니다."


     

          112x163x208cm



    조각상의 주인공은 트로이 전쟁 당시 트로이의 신관이었던 라오콘과 그의 쌍둥이 아들인 안티파스와 팀브라이우스였다. 그때 라오콘은 트로이 성 내에서 오디세우스의 계략을 눈치 챈 유일한 사람이었던 바, 한사코 목마가 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었다. 그러자 이 전쟁에서 그리스 편에 섰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두 마리의 바다뱀을 보내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죽게 만드는데, 바로 그와 같은 신화의 내용을 조각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이 조각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당대의 그리스 로마의 조각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극한 고통의 표정이 고스란히 살아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몸을 휘감아 부러뜨리려는 듯한 뱀의 힘, 그리고 그것을 빠져나오려는 몸부림의 역동성 또한 소름끼치게 사실적인 것이었다. 인간의 고통이란 게 무엇인가를 알리고 싶었을까, 이것이 종교적인 작품이 아님에도 로마의 교황이던 율리우스 2세는 라오콘 상을 사들였고, 서둘러 이를 전시할 전시실을 마련하였다. 이후 레싱이나 괴테도 이 작품을 보고 격찬해 마지 않았는데, 독일의 미술사가 요한 요아킴 빈켈만은 이 군상을 대해 이렇게 말했다. 


      "라오콘은 가장 강렬한 고통의 이미지이며 절제의 이미지다. 그 고통은 근육과 관절, 그리고 혈관에 드러난다. 독사의 치명적인 독은 혈관으로 퍼지고 극도의 괴로움을 주기에 신체의 모든 부분은 고통으로 뒤틀리고 있다. 하지만 그 얼굴은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도 절규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방식으로서 조각가는 움직임에 대한 자연의 근본적인 힘을 부여하며 동시에 기술적인 테크닉을 보여주고 있다. 강렬한 고통을 표현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의 소리를 제어하고 억눌러야 하는 그 표현의 최고 경지를 작가는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라오콘의 머리 부분

     


    이후 이 작품은 고전주의가 아닌 신고전주의 작품으로 불리었다. 그런데, 더불어 이후 이 작품은 헬레니즘 시대의 것이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솜씨라는 소문 또한 계속 뒤를 이었다. 자신이 제작한 라오콘 상을 몰래 묻어놓고 마치 발견한 양 쇼를 했는데, 이는 로마 교황청에 자신이 발견한 조각상을 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미켈란젤는 자신의 다른 작품을 위해서 돈을 마련해야 했는데, 당시는 로마 교황청에 소속된 월급장이 같은 신세였던지라 이와 같은 사기 행각이 필요했다는 설명이었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교황청이 사들인 이 조각상은 바티칸 성당 내에 박물관을 마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도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굳이 묻는다면 나는 이것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는 데 한 표 던지고 싶다. 그 이유는 물어볼 것도 없이 그것이 워낙에 미켈란젤로의 조각 수법과 흡사한 양상을 띄고 있기 때문인데, 어찌됐든 저 라오콘 상은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조각품임에는 분명하다. 과거의 어떤 조각품도,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어떤 조각품도 저 라오콘 상을 능가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작품의 부분


    전시 중인 라오콘 상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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