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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한 폐렴 찜쪄먹을 역대급 전염병(IV) - 천연두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0. 2. 4. 23:31

     

    천연두는 '우한 폐렴 찜 쪄먹을 역대급 전염병' 중 앞서 말한 흑사병, 스페인 독감, 콜레라에 이어 4위쯤에 랭크될 수 있는 질병이자 마지막 질병이 될 것 같다. 우한 발(發) 폐렴, 즉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비롯된 질병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아니 지금부터 시작일는지 모르지만) 역사상의 큰 질병은 대개 이 4개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 굳이 추가하자면 신성로마제국과 1918년 러시아에서 발생한 티푸스 정도로서, 1618~1648년의 신성로마제국의 티푸스는 다른 질병과 함께 발생해 따로 집계를 내기 힘들지만, 1918~1922년 발생한 러시아 티푸스는 300만 명의 사망자를 내었다.

     

    아울러 천연두는 이 지구상에서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질병이 되었으니 지난 1976년 퇴치되었다. 이는 제2차세계대전 후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을 줄이고자 노력해왔던 세계보건기구(WHO)의 최대 성과라 할 만한 일로서, WHO는 1999년 6월 30일 공식적으로 천연두의 사망 선고를 내렸다. 가히 질병에 대한 인류의 승리라 부를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상처는 컸다.

     

    이 천연두란 질병의 공식 명칭은 '두창(痘瘡, smallpox)'으로 민간에서는 '마마' 또는 '손님'으로 불렸다. 질병에 마마라는 최상급 존칭을 붙인 것은 병을 옮기는 신에 대한 외경심의 표현이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관용을 베풀지 않았으니 고대 이집트 시대 이래로 수억 명의 인류에게 죽음을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 죽음의 신은 20세기 들어와서도 극성을 부렸으니 지난 1967년 전 세계 1500만 명에 천연두가 발병해 2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1만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학자들의 의견을 따르자면 이 죽음의 신은 거의 현생인류의 탄생과 함께 한 최고(最古)의 질병이다. 천연두는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전염병으로 발열과 발진으로서 병이 시작되는데, 치사율이 30 ~ 35%에 달했고, 생존하더라도 65 ~ 85%는 곰보가 되었으며 그 외도 실명, 관절염, 골수염, 사지변형 등을 일으키는 무섭고도 끈질긴 질병이었다.

     

    ~ 역사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천연두의 위력은 잉카제국과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킨 일이 되겠으니 거대했던 이들 중남미 제국들이 허무하게 무너진 이유도 바로 그들 침입자들에게 묻혀온 천연두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이에 대한 면역력이 전무했던 중남미 원주민들은 그야말로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서기 165~180년 로마제국을 강타해 5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던 안토니우스 역병(혹은 갈레노스 역병/당대의 황제와 의학자 이름이다)도 천연두일 가능성이 크다.

     

     

    피렌체 코덱스의 그림

    1540-1585년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그려진 그림으로 천연두에 걸려 죽어가는 아즈텍인을 묘사했다. 코르테스가 멕시코 정복을 감행한 지 50년도 되지 않은 1568년 멕시코 인구는 상륙 당시의 10분의 1에 불과한 3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인류는 이 무서운 질병을 물리치기 위해 오랜 전부터 노력해 왔는데, 고대 인도에서는 천연두가 걸린 사람으로부터 채취한 딱지를 약화시켜 사람에게 접종시키는 인두술(人痘術)이 시행됐고,(다만 고대 산스크리트 의학서적에서 인두술을 설명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인도 기원설은 문제가 있는 편이다) 300년 전의 터키에서도 소에서 추출한 백신을 접종하는 현대 의학과 흡사한 우두술(牛痘術) 치료법이 개발되어 유럽으로 건너왔다. 18세기 후반 영국의 농촌에서 일하던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소젖을 짜는 여인들에게는 천연두가 걸리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낸 건 우연일 수도 있고 터키 치료법의 커닝일 수도 있다.

     

    아무튼 소의 피부병에 감염된 목자(牧子)들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한 에드워드 제너는 1798년 소의 고름(우두·牛痘)을 사람에게 접종해 예방에 성공한다. 예방약을 뜻하는 백신(vaccine)이라는 말도 암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vacca’에서 유래했다. 최초의 접종자는 농장 관리인의 아들인 제임스 핍스라는 8세 소년이었다.(제너가 자신의 아들에게 최초 접종을 했다는 것 역시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백신 접종을 하는 에드워드 제너(E. Jenner, 1749-1823)

    1798년 우두 백신의 치료효과를 확신한 제너는 공짜로 사람들에게 접종해주었던 바, 사실 이것만으로도 존경받을 만하다.(영국의 안철수?)

     

    미담의 진짜 주인공 메리 워틀리 몬태규(Mary Wortley Montagu, 1689-1762)

    주(駐) 오스만 제국 대사의 부인이었던 메리는 오스만 제국에 머물면서 천연두 접종법을 관찰하고 이를 상세히 기록했다. 그녀가 영국으로 귀환한 1718년 이후 이 우두법을 대대적으로 시술했는데 그녀는 망설이는 대사관 의사 찰스 메이틀랜드에게 자신의 아들을 최초로 접종시켰다.

     

    메리 워틀리 몬태규의 초상화 한 점 더.

    뛰어난 미모와 지성으로 유명했던 메리는 천연두 치료와 백신 보급에 앞장서다 본인이 감염되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녀는 저명한 작가이기도 했지만, 불루머라는 아랍풍의 헐렁한 여성용 바지와 터키풍의 모자를 유럽 사회에 보급시킨 패셔니스트이기도 했는데 천연두에 걸림으로써 모든 행보가 중단되었다.

     

    천연두 백신 접종 기념우표

    터키 정부가 1967년 최초로 국가 접종을 한 것을 기념해 발행한 우표다. 1717년부터 시행되었다는 날짜를 써 넣었다. 


     

    하지만 이 같은 우두접종법은 도시에서는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으니 백신을 맞으면 소가 된다는 헛소문이나, 결국은 정부가 안을 수밖에 없는 도시 빈민에 대한 접종 비용 등이 접종의 대중화를 막았다. 기독교 교회에서는 우두접종이 신의 뜻에 개입하는 불경스러운 행위일 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에게 오히려 천연두를 걸리게 할 수 있다는 비난전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1774년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가 천연두로 사망하자 사정이 달라졌으니 이제껏 기피하던 성직자들부터 병원으로 달려와 어깨를 걷어붙였다. 루이 15세가 사망할 때의 처참했던 모습이 입소문을 탄 결과였다.

     

     

     

    천연두로 사망한 루이 15세(재위 1715-1774)

    이에 19살이었던 루이 오귀스트와 18살이었던 황태자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국왕과 왕비가 되며 왕실과 개인, 나아가 프랑스 및 유럽 전체의 운명이 바뀐다.


    「holy roman empire joseph I」の画像検索結果

    유럽의 운명을 바꾼 또 한 명의 왕, 요제프 1세(재위 1705-1711)

    영국 앤 여왕의 계승자였던 황태자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요제프 1세가 천연두로 죽으며 유럽 국가는 신·구교 전쟁과 함께 왕위계승전쟁이 벌어지며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든다.

     


    関連画像

    천연두에 걸리면.....

     

     

    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나 프랑스 식민지에서 기승을 부리던 천연두 역시 1774년을 기점으로 수그러졌으니 이 역시 루이 15세의 죽음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스페인 역시 본국에서 공인된 예방법을 들여와 원주민들을 천연두로부터 보호하려는 공식적인 노력을 시작했다. 또 1807년에는 스페인 제국의 머나먼 식민지 필리핀에서도 같은 작업이 이루어졌다. 후진국이었던 러시아 또한 접종의 필요성을 인식하였으니 1768년 영국 의사 한 명을 초빙해 자신과 황태자에게 접종함으로써 우두접종의 막을 열었다.(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시술은 왕실에 국한되었다)

     

    1775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우두접종을 대대적으로 장려해 왕실 뿐 아니라 군대와 민간에게도 접종을 시켰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질병 천연두의 위력은 흔들리지 않았으니, 이후로도 간헐적으로 발생하다 지난 1967년 전 세계 1500만 명 이상이 전염되며 200만 명 이상이 희생당했다.(금세기에 발생한 이 대규모 발병에 세계는 현재의 코로나 바이러스 이상으로 경악하며 경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죽기 직전의 최후의 발악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77년 소말리아 메르카에서 23세의 요리사 청년이 천연두에 걸렸다는 보고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발생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던 바, WHO는 1999년 공식적으로 천연두의 소멸을 선언한다. 이때  WHO는 이것을 달착륙에 버금가는 인류의 쾌거라고 말했는데, 내 생각에는 그 이상의 성과로 보인다. 앞서 말했듯 이 천연두는 현생인류의 출현과 함께 질병의 시원을 열었으며, 이후 지금까지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인류 최악의 질병이었다.(1억~3억 명으로 추정)


    우리나라의 천연두는 실록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질병이다.(두창 또는 두역으로 기록됨) 이에 치료의 노력도 뒤따랐으니 환자의 고름, 혹은 딱지를 가루로 만들어 흡입시키거나 환자의 옷을 입히는 등의 인두법이 사용되어졌다. 서양식 치료법은 19세기 말 수신사 김홍집을 수행해 일본에 갔던 지석영이 우두법을 배워 와 접종을 실시한 것이 최초였으나 구한말의 혼란과 식민사회가 도래하며 널리 시행되지는 못했다. 천연두는 해방 이후로도 꾸준히 한국민을 괴롭혔으니 한국전쟁 중인 1951년, 43,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해 11,000여 명이 숨지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천연두는 1960 3명의 환자를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마마 자국이 완연한 오명항의 초상화

    조선시대 초상화 가운데 천연두를  앓은 흔적이 있는 사람은 쉬 볼 수 있다. 오명항은 이인좌의 난을 분쇄한 영조 때의 문신으로 우의정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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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