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우한 폐렴 찜쪄먹을 역대급 전염병(II) - 스페인 독감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0. 2. 3. 06:30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추가 확진자가 급격히 늘자 중국 눈치를 보며 뜨뜻미지근한 방역정책을 취하던 문재인 정부도 조금은 방제의 끈을 조이는 듯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발효할 의향은 없는 듯해 걱정이다. 정부당국자들이 몰라서 그런 것 같은데, 지금 우리 주위에서 학교, 요식 · 숙박 · 건설업 현장 등 사람 많은 곳에는 중국인들 천지다. 방금 말한 곳 중 한 군데라도 뚫린다면 한 마디로 난리난다.


    북한은 일찌감치 국경을 봉쇄했고, 먼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일본까지 입국금지 조치를 내린 마당에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만이 오히려 국경을 개방하고 있다. 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로서는, 중국에 아부하고 싶어 그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 괜히 뭐라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마스크를 잔뜩 갖다준 탓에 당장 우리 국민들 쓸 것도 없기에 하는 말이다.


    감염에 대한 걱정은 나중이고, 솔직히 다른 사람 눈치 보여서라도 마스크를 해야 할 판인데, 편의점과 약국에 마스크가 없더라, 이 말씀이다. 전에, 마스크 하나 3천원이라니 꽤 비싸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사실 일회용이지 않은가) 지금은 그 10배가 올랐다 하고, 그마저 구입할 길이 없다.(이런 걸 300만 개나 중국에 공짜로.....) 이러다가 아래 같은 일이 정말로 현실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사진은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세계적으로 유행할 때 미국 시애틀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전차 탑승을 거부당하는 광경을 찍은 것이다. 사실 오늘 얘기하려는 것이 바로 이 스페인 독감으로, 언뜻 스페인이 발생원(area source)인 듯하지만 스페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독감 발생원은 1918년 3월 미국 시카고였다는 설과, 1918년 8월 15일 아프리카 서해안의 영국 식민지인 시에라리온 프리타운 전선(戰線)이었다는 설이 겹친다.(당시는 제1차세계대전 중이었다)



    시에라리온 프리타운 위치



    미국에서 발생한 인플루엔자 병원균이 시에라리온 프리타운 전선으로 옮겨갔다고 설명된 지면도 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당시의 독감은 걸리면 바로 쓰러졌으며 빠르면 다음 날, 대개는 2~3일 안에 사망할 정도로 반응이 속성이었다. 이 독감의 병원균은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의 변형인 H1N1 바이러스로 알려졌는데, 다름아닌 조류 인플루엔자 AI 다.


    스페인 독감 역시 전파속도가 빠르고 면역기간이 짧으며 병원 바이러스가 불안정하다는 AI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났는데, 병사들이 키우던 식용조류에서 기인됐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병사들의 야생 조류 수렵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14~2016년 중국에서 발생한 야생 조류에서 기인된 조류독감처럼, 조류 바이러스가 식용돼지와 같은 2차 매개물에 전이되어 면역력이 떨어진 병사들에게 옮겨진 것이었다. 


    독감이 스페인 독감으로 불린 것은 당시 스페인 신문에서 이에 대한 보도를 가장 자세히 다뤘기 때문이다. 당시 스페인은 제1차세계대전의 참전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시 보도 검열이 이뤄지지 않아 스페인의 각 언론에서는 오히려 경쟁하듯 전선에 불어닥친 독감 열풍을 취재했는데, 대량사망의 첫 사례는 1918년 가을 서부전선에 주둔했던 미군부대로, 4만 4천 명이 희생됐다. 이후 프랑스, 영국부대에서도 대량사망이 발생하자 이에 놀란 전쟁 당사국들은 서둘러 제1차세계대전을 매듭짖는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미국 캔자스 포트 라일리 응급병원에 모여든 독감 환자


    샌프란시스코 미해군국 임시 병상(1918년)


    임시 병원으로 사용되어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시립 강당


    영국 데본에 마련된 인플루엔자 사망 미군의 묘지(1919년)



    하지만 감염은 멈추지 않고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되었던 바, 불과 몇 개월 사이에 2,000만 명가량이 죽었다. 이에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은 1편에서 말한 유럽 흑사병과 함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전염병으로 기록되었으니 인도에서만 1,25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미국에서는 55만 명가량이 죽는 등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였다.(최종적으로 집계된 사망자는 5,000만 명이다)


    ~ 이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조선총독부 통계 연감에 따르면 무려 14만 명이 사망했다. 당시 조선의 인구는 759만으로 그 38%인 288만4000명이 '서반아(스페인) 감기'에 걸렸고 그중의 14만 명이 사망한 것이다. 이는 전체 인구의 0.8%로, 100명 중 거의 1명 꼴로 죽은 셈이었으니 당시 신문이 전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유행 감기로 인하여 창궐되는 악성 감기는 아직도 감퇴되는 모양이 없어서 인천 같은 데는 요사이 날마다 20명의 사망자가 생기어 날마다 발인이 없는 날이 없고, 각 절에는 불시에 대번망(大繁忙, 크게 번성하고 분주함)을 이루는데, 이 감기에 대한 예방책은 전혀 없고 다만 감기에 걸리지 않기만 바라는 바이다."(<매일신보> 1918년 11월 3일)


    사정이 이와 같은즉 공사(公私)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던 바, 철도국에서는 7500명이 결근하여 운송에 차질을 빚었고, 우편업무 등은 아예 중단되었다. 병원과 약국이 문전성시를 이뤘을 것임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인인데, 그 와중에 폭리를 취하던 충남 삼중현의 야시키약국(矢織藥店)이 분노한 군중들에 의해 습격을 당하는 일도 생겨났다. 이러한 가운데 <매일신보>는 1918년 12월 27일, 다음과 같은 세계 동향을 실었다.


    "런던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런던 타임즈의 기자는, 이 유행성 감기로 3개월간의 사망자가 600만 명이고, 5년간의 대전쟁(제1차세계대전)에는 2,000만 명이 사망했으므로 이번 감기가 전쟁보다 다섯 곱절이나 맹렬하다고 했다. 이에 감기에 전염되는 분수로 사년 석달을 치면 1억800만 명의 사망자를 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 보도의 내용은 오류가 있었으니 제1차세계대전으로 죽은 사람은 1,500만 명이었고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자는 5,000만 명이었다. 이 스페인 독감에 걸린 자는 처음에는 감기에 걸린 듯한 증상을 보이다가 폐렴으로 발전하는 듯하다 피부에서 산소가 빠져나가 피부가 쪼그라지고 변색되어 죽었다고 하는데, 이는 섬나라 일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일본에서는 1918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길게 유행하여 전국적으로 2100만 명이 감염되었고 26만 명이 죽었다. 초반에는 주로 하층민이 희생되었으나 아래 기사를 보면 1919년 스페인 독감이 다시 기승을 부렸을 때는 고하(高下)를 가리지 않고 침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돌림감기는 요사이 다시 동경지방에 창궐, 상류가정까지 침로(侵路)하여 원(元) 총리대신, 내전외무대신, 대장(大藏)대신 등도 병에 걸려 치료 중이며 이번에는 증세가 더욱 험악하다."(<매일신보> 1919년 2월 4일)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사회학자 막스 베버,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도 이때 사망했다. 훗날 희생자가 많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초기에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종사자가 많이 감염되며 의료체계가 마비된 탓'이라 분석되어져 예방 접종이 강조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미국 시애틀의 경찰(1918년)


    호주 시드니 응급병원의 간호사(1919년/예나 지금이나 호주의 방역은 철저한 듯)


    마스크로 무장한 뉴욕의 타이피스트(1918년)


    마스크를 착용한 일본 여학생들


    2013년 영화 '감기'의 포스터





    진짜 재난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방제가 무너졌을 때의 혼란이다. "방제는 반 발자국 앞서지 않으면 그냥 실패거든요."

    댓글

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