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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의 '미라보 다리'미학(美學) 2020. 2. 29. 06:06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특히 우리나라를 강타하고 있다. 앞서 '우한 폐렴 찜쪄먹을 역대급 전염병 II- 스페인 독감 (2월 3일 작성)'을 쓸 때만 해도 이와 같은 지경이 올지 몰랐는데 지금은 팬데믹(세계 대유행)이라는 용어가 그리 낯설지 않다. 앞서 윗 글에서도 말했지만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은 전세계 2억 명을 감염시키고 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나라에서도 14만 명이 희생됐다.
윗 글의 말미에 한 줄 적은대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사회학자 막스 베버,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도 이 팬데믹에 휩쓸려 사망했다. 기욤은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간다"는 싯구로 유명한 '미라보 다리'라는 시의 저자로서, 그 이름은 몰라도 싯구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하다. 기욤은 시인임에도 회화사적으로도 이름이 가끔 돌출되니, 27살 때인 1907년 피카소의 소개로 만난 프랑스의 여류 화가 마리 로랑생과의 열애와 '모나리자' 절도 사건 때문이다.
기욤과 마리, 두 사람은 첫 눈에 사랑에 빠졌고 서로의 예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미라보 다리'라는 시는 기욤이 마리 로랑생과 이별한 후 미라보 다리를 건너며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5년 열애가 종막을 고한 이유는 기욤이 저 유명한 '모나리자' 도난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기 때문인데, 대강의 스토리는 이러하다.
문학가임에도 그림에 조예가 깊었던 기욤에게 어느날 밤 낯선 이탈리아 사내 한 명이 찾아와 그림의 진위 여부에 대한 감정을 의뢰한다. 아마도 같은 이탈리아인이라 찾아온 듯싶었다. 그런데 그 그림은 다름아닌 '모나리자'였던 바, 대번에 절도품임을 감지한 기욤은 사내를 꾸짖어 보낸다. 하지만 그 얼마 후 경찰이 들이닥쳤고 기욤은 꼼짝없이 절도범으로 몰린다. '모나리자'는 여전히 행방불명인 상태.....
기욤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가난한 외국인(이탈리아) 무명 작가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기욤은 1911년 결국 절도범으로 투옥되고 마는데, 그때 마리 로랑생이 찾아와 결별을 선언한다. 다행히도 기욤은 무혐의로 풀려나지만 실연의 아픔은 풀어지지 않았으니, 친구 마르크 샤갈의 아뜰리에를 찾아 밤새 넋두리를 하며 술을 마시던 그는 해뜰 무렵 미라보 다리를 건너 돌아오다 이 시를 짓는다.
기욤은 말한대로 1918년의 '스페인 독감'에 걸려 38살의 나이로 죽고, 로랑생은 1914년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군 미남 장교와 결혼했지만 남편의 음주와 여성 편력 등, 끊임없는 방탕과 외도에 시달리다 결국 이혼하고 만다. '미라보 다리'라는 시가 특별한 내용이 아닌 것 같은 데도 특별하게 다가 옴은 기욤 아폴리네르의 절망감이 은유로써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앙리 루소가 그린 두 사람의 그림과 함께 시를 소개한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간다네
내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보자
우리의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한 눈길의 나른한 물결이
흘러가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사랑은 지나가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가버리네
이처럼 인생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나날이 지나가고 주일이 지나가고
흘러간 시간도
옛 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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