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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네는 왜 '풀밭 위의 식사'를 고집했을까?
    미학(美學) 2020. 3. 7. 20:08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그림 '풀밭 위의 식사'(Le Dejeuner sur l'herbe)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꾸준히 실린 까닭인데 그와 같은 친숙함을 노린 배달 앱 운영업체의 패러디 광고 하나가 최근 사람들을 웃겼다. 그에 앞서 크리스천 디오르의 광고도 우리를 스쳐갔는데 그 광고에서 느끼지 못한 전달력이 배달 앱 광고에서는 담뿍하다.



    '풀밭 위의 식사' 

    208x265.5cm의 큰 그림으로 그림 속의 사람들은 거의 등신대(等身大)에 가깝다. 1863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배달의 기수 패러디 물


    디오르의 패러디 물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긴 했지만 사실 이 그림이 그렇게 휘둘릴 직품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할 말이 없을 것이 이 그림 자체가 일종의 패러디이기 때문이니, '풀밭 위의 식사'가 16세기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파리스의 심판'의 모방 내지는 패러디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렇지만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역시 할 말이 없을 터, 그 또한 라파엘로의 그림 '파리스의 심판'을 모방했기 때문이다.(라파엘로의 것은 지금 전해지지 않는다)


    ~ 파리스의 심판에 대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조각품' 참조



    '파리스의 심판'

    마르칸토니오의 동판화. 오른쪽 3명의 신(神) 참조. 1515, 44.2x29.8cm, 브리티시 박물관



    마네는 위의 그림을 1863년 살롱전(Le Salon)에 출품하지만 낙선한다. 마네는 다른 젊은 화가들과 함께 주체측의 보수적인 시각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던 바, 결국 이슈화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하여 황제의 명령으로서 이른바 '낙선자전(Salon des Refuses)'이 열리게 되었으니 이것을 보러 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게 된다. '낙선자전'은 대성공인 듯싶었다. 하지만 이 전시회에 온 사람들은 모두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때문이었다.


    황제 나폴레옹 3세 역시 같은 경험을 하였는데, 갤러리들이 가장 먼저 경험하게 되는 것은 그림 속의 두 여자에게서 받는 모욕감이다. 우선, 홀딱 벗은 여자는 벗은 이유를 알 수 없을 뿐더러 몸매도 지금까지 보아온 여신의 나신(裸身) 같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굵은 허리와 처진 배를 가졌다. 다른 물 속의 여자 역시 매우 불경스러우니 그녀는 자신의 발을 씻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시선 또한 매우 못마땅하니, 발을 씻고 있는 여자는 '내가 팔을 씻든 발을 씻든 무슨 상관이냐'는 투이고, 벌거벗은 여자는 "뭘 봐? 여자 벗은 거 첨 봐?"하는 눈으로 갤러리들과 시선을 마주치고 있다.


    반면 남자들은 정장을 차려 입은 것이 적어도 먹고 사는 데는 아무 지장 없는 부르주아였다. 그래서 여자들을 끼고 피크닉을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니, 그들의 늘어진 자세와 점심으로 먹은 식사가 한쪽에 밀려 나뒹굴어져 있는 모양새는 흡사 식사 후 '한 따가리' 한 것도 같다. 그래도 겉으로는 체면을 지키겠다는 듯 매무새는 깔끔히 챙겼다. 갤러리들은 자신들의 자화상과 같은 이 그림으로부터 조롱당했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분노했다. "이건 예술이 아니라 외설이야!" 갤러리들이 어디서 많이 들어봤음직한 소리를 내뱉았다.


    평론가들 역시 분노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반 관객들과 달리 평론가답게 작가를 공격했다. 평론가들은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이 그림이 낙선된 작품들 가운데 가장 후지다고 했으며, 마네 또한 화가의 자격이 없다고 혹평했다.


    ― 마네의 그림은 '파리스의 심판'의 구도를 빌려왔을 뿐 아니라 조르주내의 '전원 음악회'를 모방했다.



    조르주네의 '전원 음악회'

    1508년, 105x137cm, 루브르 박물관



    ― 마네는 원근법조차 모르는 화가다. 뒤에 목욕하는 여인을 보라. 그 여인은 동일선상에 놓여 있는 오른쪽의 배보다도 크게 그려졌다.


    ― 마네는 가장 기초적인 명암법도 모르는 화가다. 모든 화가들은 색의 농담으로 명암을 조절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를 구사하지만 마네는 그저 중간 색조로써 그림을 평면화로 만들었다. 이 앞에 앉은 여인을 보라. 마치 색종이를 오려 붙인 듯 납작하지 않은가.


    하지만 마네는 이와 같은 악평에도 불구하고 이후 파리 화단의 유명인이 되었으니 드가, 모네, 르누아르, 세잔, 피카소 등 젊은 아방가르드 화가의 선두에 서게 되었고, 그의 그림 '풀밭 위의 식사'는 인상주의의 서막을 장식하는 그림이 되었다. 모네는 그 그림을 흉내낸 또 다른 그림을 그렸으며, 피카소는 '풀밭 위의 식사'의 오마주로 무려 27점의 유화와 150점의 드로잉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피카소의 '풀밭 위의 식사'  



    그럼에도 마네는 왜 평론가에게 혹평을 받았을까? 그것은 당연히 그림의 주제가 외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외설적이라기보다는 선구적이라는 편이 옳을 것이니 그렇게 보자면 아래 쿠르베의 그림은 '풀밭 위의 식사'의 전초전과 같은 작품이다. 그림 속에는 보다시피 파리 센 강변에 두 여자가 편안히 드러누워 있으며 달리 트집잡을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광경은 당대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감히 여자가 어디서....?"



    구스타브 쿠르베의 '센 강변의 아가씨들'

    1856년, 206x174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마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외설이 아니라 시대의 위선이었다. 그래서 그는 '풀밭 위의 식사'를 고집했던 것인데, 낙선은 했을 지언정 어찌됐든 그것이 먹혔다. 그런 면에 볼 때 그는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다.(더불어 매우 강단 있는 사람이다) 마네는 평론가의 말 그대로 그림의 구도를 '전원 음악회'와 '파리스의 심판'에서 가져 왔노라고 자신의 친구인 에르네스트 시에노에게 고백했지만, 그리고 에르네스트는 그 사실을 자신의 책에 힘겹게 공표했지만,(<프랑스와 영국의 근대미술과 미술가> 1864년 간행) 사건의 이팩트에 묻혀 별 이슈가 되지 못했다.

     

    정말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평론가들이 혹평했던 원근법이나 명암법도 착시나 '시선의 사실주의'에 묻혔다. 우리가 실제로 햇빛 속에서 대상을 볼 때는 아카데미 화가들이 정확하게 그려내는 은근한 명암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저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대립만을 보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리하여 자연광이 강하게 내리쬐는 빛 속에서 벗은 여인을 본다면 대부분 마네가 그린 것처럼 빛에 훤하게 드러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만 대조적으로 볼 수 있게 되어 평면적으로 표현되는 게 오히려 더 사실에 가깝다 한다.(마지막 문장은 김영숙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에서 옮겨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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