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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브뤼겔의 '죽음의 승리'와 코로나 19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0. 3. 26. 01:48
네덜란드의 화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hel, 1525~1569)이 그린 '죽음의 승리(The Triumph of Death)'는 성서의 요한계시록과 전도서를 바탕으로 흑사병이 휩쓸던 14세기 유럽 사회의 모습을 표현했다. 그림에서 페스트를 형상화한 사신(死神)들은 낫과 칼 등을 휘두르며 마구 진격해오고 그들 앞에서 힘없는 백성들은 물론이요, 왕도 성직자도 기사도 귀부인도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이 난리굿에 오직 한쪽 구석에서 노래를 부르는 남녀 한 쌍만이 초연하다. 먼저 그 그림을 감상해보자.
'죽음의 승리'
1562~1563, 117x162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죽음의 승리' 부분
낫과 도끼를 휘두르고 관을 방패 삼아 전진해오는 사신(死神) 앞에서
왕이나
귀부인이나
성직자도 죽음을 면치 못했고
그들이 모아놓은 돈은 사신의 차지가 된다.
(십자가를 들고 열심히 기도한 자도 짤없다)
사신들은 시체를 치우느라 여념 없는데
성가대 같은 곳에서는 십자가를 앞세운 날나리 사신들이 도열해 나팔을 불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그림 오른쪽 한구석에서 노래를 부르는 남녀 한 쌍만이 이 난리굿에 초연하다.(여기서 공포 영화의 법칙을 적용하면 이들은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엊그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에서 교회문을 닫지 않고 예배를 사수하겠다는 공식 입장의 발표 뉴스를 접했다. 뿐만 아니라 예장합동총회에서는 방역수칙을 확인하는 공무원에게 '예배당 출입 확인서'를 요구하기로 했다고 한다. 확인서는 예배 점검을 나오는 공무원이 작성하는 것으로 예배 진행 방해하지 않기, 사진촬영 금지, 종교의 자유 존중 등에 대해 서명하도록 한다는 것이다.(예장 합동총회는 2018년 기준 11,885개 교회 265만여 명의 신자가 속한 국내 최대의 개신교단이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갑자기 말세라도 온 듯 정신이 아득해졌는데, 우선 뉴스가 전하는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는 지난 주일 방역수칙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교회를 방문한 공무원들에게 예배당 출입 확인서를 받으라는 공문을 소속 교회에 보냈다. 예장합동총회가 보낸 공문에 따르면 일부 공무원들이 강제로 예배당에 진입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를 종교탄압과 신성모독으로 규정해 이들의 출입 확인서를 받으라고 강조했다. 다중집회를 열 경우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지 공무원이 확인하기 위한 절차임에도 이를 종교 탄압이라고 반발했던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역시 다중집회 자제 요청을 종교 탄압으로 규정했다. 예장고신총회는 코로나 19 사태 책임은 근본적인 방역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정부와 지자체에 있다며, 구상권 청구는 정부와 지자체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역시 24일 발표한 목회서신에서 공권력과 행정적인 권한으로 교회를 욕보이지 말라며 정부 당국자들에게 경고했다. 예장통합 김태영 총회장은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방역수칙을 지켜달라는 정부의 요청에 방역을 넘어 기독교 신앙을 탄압해서는 안 된다며 어떤 명분으로도 교회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국기독교회협의회와 한국교회총연합 등 연합기구와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대형교회를 지속적으로 방문해 코로나 19 확산 방지에 교회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당부하고 있지만 교회는 이를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앞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무뎃뽀 교회'에서도 말했지만 이럴 경우 현실적으로 코로나 퇴치는 불가능하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지금, 당장에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역법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는 그와 같은 방역법을 걷어차겠다는 것이니 그렇다면 결론은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확산밖에 없지 않겠는가?내가 위의 그림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와 같은 미증유의 공포를 미리 보여주려 함이다. 코로나의 사신이 온 세상을 덮치게 될 그날을 두려워하며..... 혹 이 그림을 그린 피터 브뤼겔의 불순한 사고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피터 브뤼겔의 회화에서는 그런 것이 전혀 없으니 오히려 신앙에 대한 독실함이 읽혀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 '바벨탑'에서는 신앙적인 면을 찾기 힘들지만, 호적신고를 하러 간 요셉과 마리아를 그린 아래 그림에서는 깊은 신앙이 없는 사람은 눈에 띄기 힘든 시대적 모순이 발견된다.
'바벨탑'
1563년, 114x155cm, 오스트리아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무너진 바벨탑과 언어의 혼란으로 흩어지는 사람들을 그렸다.(창세기 11:1-9)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1566년, 163.5x115.5cm, 벨기에 브뤼셀 국립미술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인구조사령에 따라 호적신고를 하러 간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호적신고를 위해 온 여행객들이 여관 앞에서 북새통을 이룬 광경을 그렸는데,(누가복음 2:1-5)
분명 아직 예수가 태어나지 않았음에도(노새를 탄 마리아)
교회와 십자가를 먼저 그려넣는 독실한 신앙심을 표출했다. 브뤼겔이 살던 플랑드르 지방의 교회가 시공을 초월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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