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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대회 교수의 미치광이 나라 이야기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2020. 7. 6. 21:07

     

    날  어떤 나라에 미치광이 샘이란 이름의 우물이 있었다. 그 우물물을 마신 사람들 중에서 미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오로지 임금만이 다른 우물을 파서 마셨기에 홀로 미치지 않았다. 그러자 그 나라 사람들이 되레 임금이 미쳤다며 모두들 임금을 붙잡고 병을 고치려 하였다. 뜸을 뜨고 침을 놓고 약을 들이대자 고통을 견디지 못한 임금은 미치광이 샘으로 달려가 물을 떠 마시고 함께 미쳐버렸다. 그러자 나라 사람들이 왁자하게 모두 좋아하였다.

     

    중국 역사책 <남사(南史)>에 등장하는 미치광이 나라, 광국(狂國)의 사연이다. 미치광이 나라에서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미치광이다. 모두들 제정신을 놓아갈 때 저 혼자서 정신을 차리고 있다면 따돌림과 질시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미치광이 나라의 임금은 세상에 동화되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럼으로써 미치광이들로부터 당하는 따돌림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끝까지 버티거나 남들을 제정신으로 돌려놓을 수는 없었을까?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회는 어떤 종류건 저 미치광이 나라와 다름이 없다. 상상 속에나 있는 나라이니 설마 저런 세상이 있겠는가마는 내가 사는 사회가 그런 곳이라고 동감을 표한 식자들이 있다.

     

    조선 영조 시절의 문인 심익운(沈翼雲)은 천재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소론 명문가 자제로 태어나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세인의 주목을 받는 문사로 성장하였으나 파벌 싸움과 집안의 재앙에 연루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어 관직에 임용될 자격을 영구히 빼앗겼다. 그는 한평생 양반 사회와 관료 사회에 대한 불평과 독설을 쏟아놓았는데, 그 가운데 이런 짤막한 글이 있다.

     

    "도철(饕餮, 대 전설에 나오는, 탐욕스럽고 흉악한 성질을 가진 동물)의 세상에서 청렴한 사람이 벼락을 맞아 죽었다. 먼 옛날 천제(天帝)가 뇌사(雷師)에게 명을 내려 천하 사람 중에서 악인 한 명을 골라 벼락을 쳐 죽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뇌사가 살펴보니 천하의 모든 사람이 다 탐욕스러웠다. 그렇다고 사람을 다 죽일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뇌사는 청렴한 사람을 악인이라 하여 벼락을 쳐 죽였다. 미친 사람이 사는 나라에서는 미치지 않은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진리다. 참으로 심하다! 자기 홀로 고고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천제는 일벌백계(一罰百戒)를 통해 깨끗한 세상을 꿈꾸었을 게다. 그러나 탐욕이 만연한 세상에서 과연 누구를 벌할 것인가? 차라리 청렴한 자를 없애서 선과 악, 탐욕과 청렴함의 구별이 없도록 하는 것이 낫다. 뇌사는 악과 탐욕의 인간들끼리 다툼을 통해 세상이 굴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길을 택했다. 미치광이 나라의 임금처럼 청렴한 사람도 일찌감치 도철 세상의 질서를 받아들였다면 벼락을 맞지 않았을지 모른다. 저 홀로 고고하게 버티다가 그런 비극을 맞이하였다.

     

    심익운은 자신이 벼락을 맞은 청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다 하여 미치광이로 몰아 옥죄는 타락한 세상을 향하여 쏘아대는 분노와 암울함을 풍자하는 그의 독설에서는 벼락을 맞을지언정 부화뇌동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가 내뱉듯이 세상이 그렇게 암울하거나, 선하고 올바르고 윤리적인 사람이 적은 것은 결코 아니다. 선과 악, 옳음과 그름, 윤리와 비윤리가 뒤죽박죽이다. 정직하게 저 홀로 양심을 지켜 살아서 벼락을 맞을 것인가, 미친 나라의 샘물을 떠서 나눠 마시고 희희낙락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기가 망설여질 때가 없지 않다.

     

                             

    은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도철 문양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도철 문양

     

     

    * 윗 글은 오래 전 어느 지면을 통해서 읽은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의 글이다. 읽고 난 후 임택트가 너무 강렬해 그의 글을 죄다 찾아 읽고 책도 다 사 보았다. 아래의 책도 그 중의 하나인데 오히려 숙제를 하나 얻었다. 독야청청하려다가 먼저 죽은 윗 글의 예시처럼 혹 떼려다 혹 붙인 셈인데, 역시 선비답게 산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봐도 내가 흉내낼 수 있는 것은 팔도유람밖에 없다.(그거라도 비슷한게 있어 다행이다)

     

     

    '잘 정돈된 서가와 원목탁자가 있는 방에 고요히 앉아있다 온 기분'(@maymaybook님의 글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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