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전설과 실제가 혼재된 예루살렘(II) - 올드 시티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0. 10. 10. 23:06

     

    1편에서 다룬 '미래의 화약고' 예루살렘 올드 시티는 사실 유대인하고는 큰 연고가 없다. 굳이 연고를 따지자면 유대인들이 뇌동해 예수를 죽게 만든 장소로서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유대인에게 있어서 예수는 Nobody이므로 올드 시티에 특별히 연연할 것이 없다. 물론 여기에는 지금의 성전산이 과거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드리려 했던 그 장소가 아니라는 전제가 필요하나, 말했다시피 헤롯의 성전이 세워졌던 그곳이 과거 모리아 산이라는 가정은 그저 구전(口傳)상의 것일 뿐이다.

     

     

    제 자식을 번제물로 바치는 넋빠진 아버지
    아브라함의 충성심을 100% 신뢰할 수 없던 여호와는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어이상실의 명령을 내리는데, 이때 지정된 장소가 모리아 산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예루살렘 올드 시티 역시 예수 시대(BC 5~AD 31)와는 무관하니 올드 시티를 구획한 성벽과 성문들은 모두 오스만제국 슐레이만 1세 시절(재위 1520-1566년/☞ '슐레이만 대제가 경험한 우문현답')에 만들어진 것들로서 황금문(Golden Gate)과 새문(New Gate)을 제외하고는 1538~154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세워졌다. 예수가 빌라도 총독에게 재판받은 안토니우스 요새, 형장까지의 길인 비아돌로로사, 형장인 해골산 등은 로마시대에는 모두 예루살렘 성곽 밖에 있었으나 오스만제국 시절에 우연찮게 성 안, 즉 지금의 올드 시티 구획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황금문은 AD 520년 로마 황제 유스티아누스 1세(AD483-565) 통치 기간 중에 건립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후 문은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이슬람 왕조인 우마이야조가 예루살렘을 통치하던 AD 700년쯤 다시 세워졌는데, 오스만제국 슐레이만 대제가 예루살렘 성벽을 두를 때 이 문을 봉쇄했다. 그 이유에 대해 많은 책과 웹 사이트들이 구약성서 에스겔서(44:1-3)에 의거, 메시아가 이 문으로 들어온다고 믿고 있는 유대인의 염원을 억압하기 위해(혹은 두려워 하여) 문을 막았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슐레이만 대제는 예루살렘을 요새도시로 만들기 위해 성벽을 두르고 그 위에 34개의 탑과 24개 망루를 세웠는데, 동쪽으로는 예루살렘 주(主)도로 하라예트로 이어지는 사자문(Lion Gate)만을 방비하는 편이 효과적이라 여겼으므로 필요없는 문을 봉쇄시킨 것이다. 메시아가 존재한다면 그는 분명 초월적인 존재일 터, 겨우 문을 돌로 막았다고 들어오지 못할손가. 또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나귀를 타고 이 문을 통과했다고 기술된 곳도 있으나 이 역시 엉터리다. 예수 시대에 이 문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예루살렘 황금문(Golden Gate)

    유대교와 이슬람에서는 마지막 심판의 날이 이곳에서 일어나며 황금문 가까이에있는 무덤부터 죽었던 영혼이 부활한다고 믿고 있다. 더불어 재림 예수가 이 문으로 입성할 것이라 주장하는 기독교인들까지 혼재한다.

     

    예루살렘 새문(New Gate)

    1899년 예루살렘 구 시가지 기독교인 거주지역과의 교통을 위해 유럽 강대국들이 문을 내줄 것을 요구했고 이에 오스만제국의 압둘 하미드 왕이 성벽을 헐고 건립했다.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성벽과 성문

    황금문과 새문(New Gate)을 제외한 6개는 모두 슐레이만 대제 시절 건립된 것이다.

     

    오스만제국 시대와 로마시대의 예루살렘 성

    말했다시피 지금의 올드시티 성벽과 문은 오스만제국 시대의 것이고 로마시대의 흔적은 성전산 서쪽 성벽인 '통곡의 벽'만 남아 있다. 

     

     

    지금의 성전산이 과거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 산이라는 것도 전혀 근거 없는 얘기다. 우리나라로 보자면 하나님(환인)의 아들 환웅이 세 천사(삼부인)와 3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와 신시(神市)를 개창한 태백산이 강원도 태백산이라는 식이다. 그곳 정상에는 정말로 하늘에 제사지내는 천제단도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祭)를 올리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뭐라 그러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신화임을 모두가 알고 있는 까닭이다.  

     

    ~ 알다시피 위 개천(開天)과 단군 신화는 <삼국유사> 등에 전하는 전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사람들은 자신들이 천제(天帝)의 자손이라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고조선의 후손인 우리는 개천절을 두고 국경일로 삼아 그것을 기리고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이것이 불만이다. 그래서 애꿎은 단군상의 목을 절단해댄다. 그들에게는 오직 아담과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만이 선민이기 때문인데, 그 또한 전설임을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천지 분간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天祭壇)

    신화에 따르면 천제(天帝)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정상 신단수 아래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고, 이후 웅녀와 혼인해 단군을 낳았다.(사진과 글: 연합뉴스) 이 천제단은 2008년 기독교인에 의해 훼손된 것을 보수했다.



    예루살렘 올드 시티는 전체 둘레가 4,018m, 1㎢에 불과한 구획으로 지금 예루살렘 면적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좁은 곳에 전설과 실제, 신앙과 역사, 유대교와 이슬람과 기독교 등의 종교가 마구 뒤엉켜 있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 우리는 흔히 이스라엘 공화국의 수도가 내내 예루살렘이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곳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지는 겨우 3년에 불과하니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그곳을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전격 선언을 하고부터였다.(☞ '하나님이 장난친 도시 예루살렘 I')  필시 유대교도인 그의 딸 이방카와 유대인 사위 쿠쉬너의 막후 농간일 터인데, 트럼프 퇴임 후의 사정은 또 어찌 돌아갈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예루살렘 올드 시티에서 다윗과 솔로몬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당시의 통일왕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은 지금의 올드 시티와 같은 장소가 아니기 때문인데, 솔직히 예수 시대의 흔적을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의 흔적들은 모두 땅 속 10m 아래 묻혔기 때문이니 재림한 예수가 혹시 옛 일이 그리워 예루살렘에 와도 옛 흔적을 못 찾을 것 같은데, 그 같은 예루살렘으로 이른바 성지순례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줄을 잇는다. 그리고 일부는 종교적 감동과 희열에 눈밑까지 젖어 번질 거리는데, 도대체 무얼 보고 그리 감동을 받는지 그 또한 궁금하기 짝이 없다. 

    댓글

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