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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종교 I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1. 1. 8. 23:57
인간이 있는 곳에 종교가 뒤따름은 인간이 그만큼 유약한 존재라는 방증인데, 만일 인류의 가장 오랜 유적인 괴베클리 테페 유적을 신전이라 가정한다면 우리는 인류사(人類史)에 있어 농경보다 종교가 먼저 시작되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물론 나는 아직까지 그 이론에 반대하나 그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 것만도 충격적으로 그에 대해 쓴 '수수께끼 도시 괴베클리 테페' 중의 내용을 다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은 지난 1995년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작년 2017년의 발표에 의하면 최근 발견된 유물들 중에는 14,000년 전인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Epoch, 홍적세) 말기 것도 있다고 하며, 지층의 레이저 탐사 결과로는 15,000년 이전의 것도 존재한다고 한다. 그 시기는 우리 인류문명이 시작되기 1만년 전으로, 지질학적으로 말하는 플라이스토세는 멸종된 매머드(mammoth)가 살던 시기이다. 쉽게 이해하자면 이 유적지는 '옛날 옛적', 'long long ago'로 표현되는 시절에 지어진 것이라 보면 되는데, 덧붙이자면 그 시기가 빙하기 이전이다. 경악스럽지만 세상에는 이 같은 인류 문명 유적지도 존재한다.
한마디로 괴베클리 테페는 인류가 만든 세계 최고(最古)의 유적인데, 말한 바대로 그 건립 연대는 우리를 당황시킨다. 신석기 시대(매머드를 사냥하던 시절?)에 그와 같은 거대 유적지가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그러하거니와, 그것이 신전과 같은 종교 시설이라는 가정은 더욱 놀랍다. 그럴 경우 이 유적은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농경 → 정착 → 종교의 탄생 → 도시의 생성'이라고 인류 문명화의 코스를 일거에 무너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의 탄생은 농경 사회 이후라는 것이 아직은 정설이니, 종교학자인 류상태는 종교의 탄생에 관해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기술했다.(<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종교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그 시기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위험에서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려는 시도에서 종교가 발생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석기, 신석기시대에 이른 인류는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부터 풍요로운 생산력을 지닌 대지에 외경심을 갖게 되었다. 이때부터 모신(母神) 숭배와 해, 달, 별 등의 천체, 돌이나 기둥 등에 대한 자연숭배가 보편적으로 나타났다.
아무튼 종교의 뿌리는 그만큼 깊은데, 위 책의 저자는 수천 년 간 인간 곁에서 명멸해 간 수많은 종교 중 남아 있는 종교들에 대해 서술했다. 그중 20세기 서양에 침투한 불교를 주목한 대목이 흥미롭다. 위 책의 첫머리이기도 한 그 대목은 다음과 같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 교수로 일했던 영국 옥스퍼드대학 학술회의에서 긴 연설을 했다. 수많은 학자와 학생, 언론인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토인비의 연설이 끝난 후 누구가 그에게 질문했다.
"아널드 선생님. 선생님은 오늘날 가장 위대한 역사학자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만약 200~300년 뒤의 역사가들이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으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리라 생각하십니까? 제2차세계대전일까요? 히틀러의 대량학살일까요? 아니면 공산주의의 발흥이나 여성 인권의 신장일까요? 우리 시대 최고의 사건은 과연 무엇일까요?"
토인비는 주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동양의 불교가 서양으로 건너온 일이지요."
의외의 답변에 청중은 할 말을 잃었고 이렇게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군.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야."
그 후 40년이 지난 지금, 토인비가 내다본 미래가 정확하게 지구 마을을 찾아왔다.
21세기 들어 지구는 심각한 '문명의 위기'를 겪고 있다. 서양의 정신세계를 지탱해온 두 종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주기는커녕 심각한 갈등과 불안만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운데 불교가 서양에 상륙한 것이다.
그 후 유럽사회에서는 불교에 귀의하는 사람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프랑스에서는 불교가 가톨릭과 이슬람교에 이어 세번째로 인구가 많은 종교가 되었다. 이는 프랑스가 다음과 같은 국경일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1월 1일 신정
5월 1일 노동절
5월 8일 2차대전 전승 기념일
5월 21일 예수 승천일 (매년 날짜는 달라짐. 부활절 이후 40일째 목요일)
6월 1일 성령 강림일(매년 날짜는 달라짐. 예수 승천일 10일 후 월요일)
7월 14일 프랑스 혁명기념일
8월 15일 성모 승천일
11월 1일 만성절(역대 기독교 성인을 기리는 날)
11월 11일 1차대전 휴전 기념일
12월 25일 성탄절
- 1er janvier : Jour de l’An
- Entre le 22 mars et le 25 avril : Lundi de Pâques
- 1er mai : Fête du Travail
- 8 mai : Victoire 1945
- 20 mai : Ascension
- 30 mai : Lundi de Pentecôte
- 14 juillet : Fête Nationale
- 15 août : Assomption
- 1er novembre : Toussaint
- 11 novembre : Armistice 1918
- 25 décembre : Noël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테러가 빈번한 나라라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2015년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조직 IS의 파리 테러로 무려 130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후 2016년 한 해에만 17번의 테러 계획이 적발됐다. 그리고 파리 IMF 사무소에서는 우편물 폭발 사건이 있었고, 작년 10월 16일 파리 외곽 중학교에서 역사·지리 교사가 참수당했으며, 같은 달 29일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는 이슬람계 청년이 성당 안에서 흉기를 휘둘러 교인과 성당 직원을 무참히 살해했다.
프랑스의 전통적 신앙인 기독교보다 불교가 나은 것은 없다. 같은 위로와 안식을 주는 같은 선상의 종교일 뿐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만 연이어 테러가 발생하는 일과 불교가 유행하는 일은 주목해볼 일이다. 무엇이 가톨릭의 나라 프랑스를 그토록 피폐하게 만들었을까? 프랑스의 그 아름다운 성당들은 정녕 인간의 안식에 별 도움이 안 되었던 걸까?
에드워드 와트(Edward J. Watts)가 <마지막 이교도 세대>라는 책에 인용한 내용을 보면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건물 목록이 적혀 있는 이집트의 파피루스 공문이 소개된다. 문서에는 선술집이 845개, 목욕탕이 1,561개, 가옥이 24,396개, 신전이 2,478개이다.(The Final Generation, UC 버클리 출판부, 2015) 하늘의 뭇별처럼 많았다는 신라 서라벌의 사찰이 이만큼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나라의 개신교회 수는 78,000개로 편의점 수 25,000개보다 3배 이상 많다 하며(2014년 12월 11일 JTBC 뉴스룸) 2019년 목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수는 14만 명이나 됐다. 웬만한 시(市)의 전체 인구수로서, 목사님들만으로 도시 하나를 채울 수 있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거기에 카톨릭의 신부님을 합하면 성직자의 수는 더욱 많아진다. 그렇게 많은 성직자들이 주말마다 복음을 설파하고 지옥불의 공포를 선사함에도 기독교인의 수는 오히려 과거보다 줄었다. 교회는 느는데 교인의 수는 줄어드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올해에는 이와 같은 미스터리를 한번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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