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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돌하르방의 미스터리
    탐라의 재발견 2021. 8. 4. 22:26

     

    지난 2015년 제주도 조천읍 교래리에 '제주돌문화공원'이 조성됐다. 십여 년에 걸쳐 총 사업비 1,549억원이 투입된 국책사업이다. 제주돌문화공원의 성격은 이른바 돌 박물관으로서, 오백장군갤러리, 설문대할망 전시관 등을 포함되었지만 주된 전시물은 역시 돌하르방이다. 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이곳의 돌하르방은 무척이나 많고 다양해 과연 제주의 아이콘답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진짜 돌하르방도 있다. 그래서 그 진짜를 찾는 일은 흡사 숨은그림찾기처럼 흥미롭다.

     

     

    제주돌문화공원의 돌하르방 열상(列像). 필시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을 흉내낸듯. (제주도청 사진)

     

    아울러 제주시에도 '제주 돌하르방공원'이라 하여 다양한 형태와 표정의 돌하르방을 복각해 놓은 곳이 있으며,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카카오 본사 앞에는 회사와 지역의 특색을 아우른 노트북 두드리는 돌하르방이 눈길을 끈다. 이처럼 제주도는 곳곳이 돌하르방으로, 공항에서부터 우리를 맞는다. 까닭에 사람들은 본래부터 그것이 제주도에 지천이었을 것으로 생각하나 사실 진짜 돌하르방은 그리 많지 않다.(여기서 진짜라 함은 해방 이전부터 전해오던 고유의 석상을 말한다)

     

    그래서 1971년 8월 25일 그 진짜들은 지방민속자료로 일괄 지정되었는데 그러면서 '돌할아버지'라는 의미의 돌하르방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그 전에는 명칭도 제각각이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본래 돌하르방의 명칭은 무엇이었으며 제주도의 돌하르방은 모두 몇 기나 될까? 제주시 관덕정 돌하르방 곁에 있는 안내문이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관덕정 앞, 좌우의 돌하르방
    관덕정 뒤, 좌우의 돌하르방
    안내문

     

    안내문에 따르면 돌하르방은 옹중석, 우석목, 박수머리 등으로 불렸으며 오리지널 돌하르방은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의 성문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즉 제주읍성 동·서·남 세 개의 문 밖에 각 8기씩 총 24기, 대정현과 정의현에 각 12씩 모두 48기가 전해졌으나 현재는 45기만이 남아 있다. 위의 관덕정 돌하르방 4기는 제주읍성 서문 밖에 있던 것을 옮겨 세운 것이며, 아래 제주시청 본관 앞 2기는 동문 밖에 있던 것이다.

     

    그밖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동문의 것은 제주시청, 제주 KBS, 제주대 박물관과 서울 경복궁 민속박물관으로, 서문의 것은 삼성혈 건시문 앞과 관덕정 및 제주대 박물관으로, 남문의 것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목 관아(←제주공항), 삼성혈 입구, 제주돌문화공원으로 옮겨졌으며 1기는 행방불명되었다. (※ 안타깝게도 국립제주박물관의 것은 진짜가 아니다. 서문 것이나 남문 것 한쌍이 전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도 명색이 국립박물관인데.....) 

     

     

    제주시청 돌하르방
    삼성혈 건시문 돌하르방. 마스크 착용으로 표정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아래 사진은 1914년 제주읍성 동문 밖에 있던  돌하르방을 찍은 것으로 일제가 토지측량을 실시할 때의 기록 사진 중의 하나이다. 이 사진을 보면 이때까지도 잘 남아 있던 제주읍성의 모습과,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돌하르방의 형태를 살필 수 있는데, 제주읍성뿐 아니라 다른 곳(정의현과 대정현)의 돌하르방도 원래의 위치는 성문 입구였다. 즉 돌하르방은 읍성 어귀에서 마을을 지키던 수호신이었으나 지금은 자리와 용도를 비켜난 강제이주자(?)의 신세로써 관람용 상품처럼 되어버렸다.  

     

     

     제주읍성 동문 밖에 있던 돌하르방

     

    정리해서 말하자면, 돌하르방은 제주의 토속신앙에서 비롯된 석장승과 같은 수호신으로 모두 48기가 만들어졌다. 그것이 지금은 제 자리를 벗어나 있는데, 그래도 대정현과 정의현의 돌하르방은 흩어진 것을 모아 동·서·남문 입구에 세워놓았던 바, 어느 정도는 본래의 위치를 되찾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대정현과 정의현의 돌하르방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돌하르방과 그 모양이 다르니, 우선 대정현의 것을 보자. 

     

     

    대정읍성 동문지의 돌하르방
    제주도 돌하르방 중 제작 연대가 가장 오래된 대정현 돌하르방. 서문지와 남문지에도 같은 스타일의 석상이 존재한다. 

     

    정의현은 것은 동·서·남문 입구 양쪽으로 4기씩 모두 12기로 제주도 돌하르방 중 가장 원위치를 지키고 있는 케이스다. 그런데 그 모양을 보면 정의현 돌하르방 역시 다른 곳의 그것과 다르니 언뜻 아프리카의 토속품을 연상케 할 정도로 원시적이나 16세기 전반에 제작된 대정현 것보다 오히려 후대에 제작되었다 한다.

     

    따지자면 대정현,(16세기 전반) 정의현,(16세기 후반) 제주목(18세기)의 순으로 돌 하르방이 제작되었다는 것인데, 이중 제주목의 것은 '영조 30년(1754년) 제주목사 김몽규가 옹중석(翁仲石)을 성문밖에 세웠다'는 기록이 전한다.(1918년에 펴낸 김석익의 <탐라기년>)  

     

     

    제주도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된 정의현 돌하르방의 예전 사진
    정의읍성 동문(안쪽)
     동문밖 좌우의  돌하르방
    동문 돌하르방 설명문
    정의읍성 남문과 돌하르방
     남문 좌우의  돌하르방  
    정의읍성 서문과 돌하르방
     서문 좌우의  돌하르방
    조선시대 제주도는 이렇게 행정구역이 나뉘었는데 각 지역 돌 하르방의 모습이 달랐다는 야그

     

    설명이 늦었지만, 아직까지 돌하르방의 기원에 대한 정설은 없다. 그래서 그동안 학계에서는 몽골의 제주 지배와 관련됐다는 '북방설', 폴리네시아 일대에서 유사한 석인상들이 발견된다는 점에 기인한 '남방설', 조선시대 때 자체적으로 세웠다는 '자생설' 등이 팽팽히 맞서 왔다. 그러다 지난 2014년 10월, 제주목 돌하르방과 매우 흡사하게 생긴 중국 요(遼) 나라(907~1125년) 시대 석인이 발견돼 학계와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제주목 돌하르방과 중국 중국 랴오닝(遼寧)성 차오양(朝陽)시 젠핑(建坪)현 젠핑박물관 요나라 석인상(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 제공)

     

    2011년 12월 젠핑현 헤이수이(黑水)진에서 발굴된 이 사암(砂巖) 석상은 제주 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유사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던 바, 제주 돌하르방의 기원으로 주목받았다. 그래서 사진의 제공자인 우실하 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 교수는 이것을 돌하르방 북방설의 증거로 제시함과 함께, "제주 돌하르방이 몽골을 통해 왔다고 할지라도 그 외형은 최소한 요대부터 시작됐고, 요대 석인상의 외형이 몽골시대로 이어져 몽골 지배기에 제주까지 전해졌다고 봐야 한다"고 그 기원을 상향시켰다. 

     

    하지만 대정현과 정의현의 돌하르방은 제주목의 것보다 앞서 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인 바, 시대를 역행하는 우 교수의 주장에 공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요나라 석인상이 18세기 제작된 제주목 돌하르방의 모델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16세기 이전 제작된 정의현과 대정현 돌하르방 생김새와는 판연히 다른 까닭이다. 한마디로, 제주 돌하르방의 기원인즉 아직까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제주도 돌하르방의 기원이 되기도 하는 칠레 이스터 섬의 모아이
    하지만 그 거리가 너무 멀어보인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의 모아이와 돌하르방
    남근석과 돌하르방. 우스꽝스러울지 모르나 남근석도 돌하르방 기원설 중의 하나이다. 이 사진은 정의현 남문 곁 농가에서 찍은 것으로 남근석은 자연석이며 돌하르방은 2m가 넘는 복각품이다. 그런데 정의현임에도 돌하르방은 어김없이 제주목의 것이 복각됐다.  
    심지어 정의현 민속촌에도 제주목의 것이 서 있다. 
    제주시 외도동의 돌하르방 복각품
    우도의 돌하르방 복각품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제주도의 돌하르방은 지역 3곳이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지역을 막론하고 천편일률적으로 제주목 돌하르방이 복제되고 있으나 오직 우도의 돌하르방 1기만이 지역색을 살렸다. 
    표현력 및 보존상태가 좋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의 돌하르방
    제주대 박물관 앞의 돌할망. 여성으로 짐작되는(돌출 가슴으로 인해)  유일한 오리지널 돌하르방이다.
    카카오 본사 앞의 노트북 두드리는 돌하르방. 표정과 질감이 제주 고유의 형태를 잘 살린 명품임에도 요즘은 웬지 심통스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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