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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과 우도 등대탐라의 재발견 2021. 9. 9. 12:33
1904년 2월 8일, 제물포항에서 벌어진 러일전쟁의 첫 해전을 서구에서는 제물포해전(The Battle of Chemulpo), 일본에서는 인천충해전(仁川沖海戰)이라고 부른다. 러일전쟁은 만주와 조선 땅을 차지하기 위해 러시아와 일본이 1904년 2월 8일부터 1905년 9월 5일까지 벌인 전쟁으로, 일본은 그 서막을 승리로 장식했다. 선전포고 없이 방심하고 있는 적을 먼저 갈기는, 비겁하지만 유용한 전매특허을 써먹은 결과였다.
기습공격으로 수세에 몰린 러시아 해군은 포격을 당한 바랴그함과 코레이츠함을 자침시켰다. 나포당하느니 자침을 선택한 것인데, 이로써 일본군은 완승을 거두게 되었다. 이어 벌어진 뤼순(旅順)항 전투에서도 일본군은 기습공격으로 승리했고,(☞ '대한제국 최후의 날') 1905년의 봉천 전투(2월 20일~3월 10일)에서 신승을 거두며 일본 쪽으로 추가 기울었다.(☞ '서울의 노기·乃木 신사')
그에 앞선 1904년 10월, 전황의 불리함을 인지한 러시아 정부가 전쟁을 한방에 끝내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유럽 발트항에 주둔하고 있는 발트함대를 아시아의 동해로 보내 일전을 벌이겠다는 것이었다. 발트함대는 스웨덴과 북방전쟁을 치르던 1703년 표트르 대제에 의해 창립된 러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해군 함대로서, 이후 계속 함정과 군대가 보강되며 여러 전투에서 전과를 쌓은, 그야말로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함대였다.
1904년 10월 15일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이끄는 49척의 함선이 러시아 발트해의 리예파야항을 출발하였다. 이후 발트함대는 지구 둘레의 ¾에 해당하는 2만9천km의 거리를 220일 간 항해하는 대장정을 감행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일본은 내내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전력이 발트함대에 비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었으니, 무엇보다 이른바 세계 최강이라는 발트함대의 이름값에 눌렸다.
쉽게 말하자면, 동네 주먹이 나와바리를 지키려 타지에서 온 조폭 똘마니를 팼는데 이에 열 받은 전국구 조폭 두목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동네로 쳐들어오고 있는 셈이었다. 그 동네 주먹은 앞서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청(淸)이라고 하는 거구의 깡패를 쓰러뜨린 적도 있었지만 전국구 조폭을 상대한 적은 없었던 바, 지금까지의 전과가 무색할 정도로 추위를 탔다.
그리하여 그 무렵 일본 연합함대의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는 고금도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사당 충무사(忠武祠)를 찾아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기도 했는데, 그가 이때 "황국의 부흥과 몰락이 이 한 번의 전투에 달렸다"고 했다는 말은 당시 일본이 가지고 있던 극도의 불안감을 대변한다.
훗날 통영군 송진포에 세워진 러일전쟁 승전기념탑의 도고 글씨 역시 역(逆)으로 그가 가졌던 공포심을 증거한다. 1905년 5월 27일 새벽, 발트함대는 드디어 동해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 사실을 보고받은 도고 헤이하치로는 붓을 들어 '적을 발견했으니 격멸시켜야 한다'고 썼다. 스스로 떨리는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해방 후 그 승전탑은 당연히 훼철되었으나 그의 글씨는 살아 거제시청 창고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로서 보관돼 있다. 비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接敵艦見之警報聯合艦隊欲直出動擊滅之 本日天氣晴朗波高 平八郞
(적 함대를 발견했기에 연합함대에 알리노니, 즉시 출동하여 적을 격멸시키고자 한다. 오늘의 날씨는 맑으며 파도는 높다. 헤이하치로)당시 일본이 가졌던 공포심이 제주 우도에도 남아 있다. 영국정부를 통해 발트함대의 아프리카 기항장 도착 소식을 들은 일본해군은 1904년 12월 일본세관 공사부에 우도 등대를 시급히 건립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1905년 1월 24일 우도에 자재가 도착했고 곧바로 하역과 측량과 건설이 이루어졌다. 등대는 우도에서 가장 높은 우도봉(해발 123m)에 지어져 2월 26일에 완성되었는데, 예년보다 추운 0~5도의 날씨 속에 진행되어 본국에서 온 일본인 기술자들이 상당한 고생을 했다고 한다.
등대는 오늘날의 첨탑 형태가 아닌 등간(燈竿)으로서 글자 그대로 등을 건 장대에 지나지 않았다. 일반적 형태의 등탑(燈塔)을 축조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여겼던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1914년 8월 5일자 조선총독부 고시 제 305호에는 1914년 당시의 등간 조도가 100촉광으로 낮고 가시거리도 짧아 불빛이 센 아세틸렌 가스등으로 교체했다고 적혀 있는 바, 최초 설치 당시의 등간 조도는 100촉광에도 못 미쳤을 게 뻔하다.
하지만 그거라도 고마워 해야 할 일본의 처지였다. 더불어 우도에는 필요 병력이 주둔할 초소가 지어졌다. 등간 석유등의 기름은 50일을 쓸 수 있었는데 육지로부터 등의 기름을 조달하고 관리하는 것이 주둔 군인들의 임무였다. 그 이유가 일반 고기잡이배의 안전운행을 위해서는 일 리는 없을 터, 동해로 향하는 발트함대를 찾아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의 입항을 차단하려는 것이 우도에 등대를 세운 목적이자 군인들의 임무였다.
* 앞서 '설문대할망과 우도 등대'를 쓰며 '최초로 설치된 등대라면 일제에 의해 처음 시공된 제주시 산지항이 여러 가지로 적합했을 법한데 외딴 바다를 비추는 등대라니 왠지 미스터리하다'고 했는데, 스스로 답을 찾은 셈이다. 그리고 우도에 복원된 우도 등간 옆의 안내문에는 등간이 1906년 3월에 점등했다고 돼 있는데, 사실과는 다르다.
* 발트함대의 처음 목적지는 조차지 뤼순항으로, 그곳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후 일대의 제해권을 확보하고 일본열도를 포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1월 뤼순항 해군기지가 완전 함락됐다는 타전에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항로를 변경했는데, 일본해군도 그것을 예상하고 통과지점으로 예상되는 우도에 등대를 건립한 것이었다. 실제로 발트함대는 제주도 앞바다를 경유해 동해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더불어 구 등대 앞 안내문의 오류도 발견했다. 구 등대 안내문과 표석에는 1906년 설치하여 97년간 운영한 후 2003년 폐지했다고 돼 있으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도의 조적식 등대는 1919년에 건립되어 2003년 11월까지 운영되었던 바, 안내문과 표석 내용이 고쳐져야 될 것 같다.
발트함대와 일본함대와의 싸움은 뜻밖에도 일본의 대승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전쟁도 종식되었다.(☞ '제1차 영일동맹과 러일전쟁 동해 해전') 그 당시의 해군 초소 유허비가 우도봉에 세워져 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찾지 못하고 우도봉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거리 원표만을 확인하고 돌아서야 했는데, 이 또한 최초의 것은 왜놈들이 설치했으리라 여겨지는 바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일본군의 해군초소는 우도 동쪽 끝, 영화 '화엄경' 촬영지 안내문이 세워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어이없는 것은 이 때는 분명 대한제국의 주권이 살아 있는 시기였음에도 왜놈들이 우도를 제 땅처럼 썼다는 것이다. 아무튼 전쟁이 끝난 후 왜놈들은 이곳에서 철수했고 이후 등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1908년부터 대한제국의 관리 하에 놓인 듯하니 1908년 대한제국 세관공사부 등대국장이 작성한 공문을 보면 우도에 직원 1명과 급사 1명의 등대지기가 파견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우도봉 꼭대기에서 바다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만일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아닌 러시아가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되었다면 물론 우리나라가 일본에 병합되는 비극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36년 간의 식민지 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신 러시아의 식민지가 됐을 것이니 한국의 독립은 구소련이 붕괴되고 USSR 국가들의 독립 러시가 일어난 1992년 이후에나 가능했을 터이다.
독립은 늦어졌겠지만 한편으로는 그쪽이 더 낫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한반도의 분단은 없었을 것 같기에..... 분단으로써 발생하는 비극과 에너지 소비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다 부질없다. 역사의 가정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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