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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문대할망과 우도 등대
    탐라의 재발견 2021. 9. 7. 07:47

     

    오래전 남원 실상사 가는 길에서 만난 달을 보며 감탄을 거듭한 적이 있다. 필시 인월리라는 지명이 아름다움을 배가시켰을 것이다. '인월'(引月)이란 달을 끌어당긴다는 뜻이다. 그런 곳에서 보는 달이 범상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터이다. 또 하나의 행운이었던 실상사 3층석탑에 걸린 만월은 아직까지 최고의 '인생 뷰'로 남아 있다. 

     

    지리(산) 8경이라는 '벽소령의 달'도 그에 못지않다. 벽소령은 하동 화개면과 함양 마천면을 이어주는 고개 이름으로 '벽소'(碧宵)는 '푸른 밤'이란 뜻이다. 벽소령은 어감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 뜻으로 인해 달은 더욱 빛난다. 다만 이름값을 하려 함인지 매양 볼 수는 없다. 벽소령 일대의 다변하는 날씨 탓인데, 어쩌면 그래서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보석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흔한 돌이 아니기 때문인 것처럼.  

     

    한라산의 은하수를 만나게 된다면 그야말로 운수대통한 날일게다. 한라(漢拏)는 '은하수를 끌어당긴다'는 뜻이나 자주 볼 수는 없다. 보통 사람이 잘 모르는 한라산의 아름다운 의미를 '와인 1950' 홈피에서는 다음과 같이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한라산 정상은 1950m로 한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한라산이란 이름은, 한(漢)은 은하수를 뜻하며 라(拏)는 맞당김(相牽引)을 의미한다. 산이 높으므로 산정에서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다는 의미이다."

     

     

    '와인 1950' 사진
    감귤와인 1950은 내가 근래 마셔본 와인 중 최고다!

     

    효종 때의 제주목사 이원진의 글도 멋지다. 그는 자신이 쓴 <탐라지>에 "한라라 운(云)함은 운한(雲漢: 은하수)을 가(可)히 라인(拏引: 붙잡아 끌어당김)할 수 있다는 숭고한 그 웅자(雄姿)를 표현하는 형용사"라는 설명을 달았는데, 이상은 모두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아래 내용에 기인한 것이리라. 

     

    "한라산은 제주 남쪽 20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한라(漢拏)라고 말하는 것은 운한(雲漢)을 라인(拏引)할 만하기 때문이다. 한라는 두무악(頭無岳)이라고도 하니 봉우리가 평평하기 때문이요, 원산(圓山)이라고도 하니 높고 둥글기 때문이다. 그 산꼭대기에 큰 못이 있는데 매양 볼 수 있는 게 아니니 사람이 오르면 구름과 안개가 일어 지척을 분별할 수 없게 된다....."

     

    필시 그만큼 신령스럽다는 뜻일 게다. 꼭대기의 큰 못, 백록담(白鹿潭)이 '흰 사슴이 물을 마시는 연못'이라는 뜻임은 이제 잘 알려졌다. 하지만 그곳의 흰 사슴은 진작에 사라졌고 큰 연못의 물은 점점 줄어들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태풍이 지난 뒤 백록담이 만수일 때의 항공사진이다/연합뉴스

     

    삼성혈 삼신(三神) 설화와 더불어 병존하는 제주도 설화가 설문대할망이다. 설문대할망은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여신으로 지역마다 발음이 달라 선문대할망, 설명두할망, 세명뒤할망 등으로도 불려지지만 전체적으로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설문대할망 설화가 언제, 어디서 유래됐는지 확실치 않으나 이원진의 <탐라지>에 설만두할망(雪慢頭姑)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적어도 조선 중기 이전에도 설문대할망이 존재했다.

     

    설화는 그 할머니가 제주도와 한라산을 만들었고, 옥황상제의 딸이며 거인이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제주도의 360여 개 오름들도 설문대할망의 솜씨로서 제주도를 만들기 위해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를 때 터진 치마 구멍으로 조금씩 새나가 쌓인 것이 오름이며, 마지막으로 날라다 부은 흙덩이가 바로 한라산이다.

     

    오늘 말하려는 우도 역시 설문대할망이 만들었다. 하지만 한라산처럼 의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생리작용 중 우연히 탄생했다. 일을 끝난 할망은 한쪽 발은 성산 일출봉에, 다른 발은 성산읍 오조리 석산봉에 디디고 소변을 보았고, 우도는 그때 소변 줄기에 땅이 패이며 끄트러미가 떨어져 나가 생겨났다. 등대가 있는 우도봉 옛 등대 옆에는 전설의 설문대 할머니를 돌로 만들어 놓았는데 할망이 아니라 소녀같이 매끈한 모습이라 오히려 안습이다. 

     

     

    우도봉 옛 등대와 설문대할망
    우도봉에서 바라본 성산 일출봉
    우도봉에서 바라본 성산읍 석산봉
    우도봉에서 내려다 본 마을과 해변
    우도 등대 오르는 길

     

    하지만 그곳 우도봉에서 바라본 바다는 누구든 '인생 뷰'가 될 만큼 아름답다. 일제가 발간한 <조선항로표식 편람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등대는 1903년 6월 점등한 팔미도 등대와 소월미도 등대가 최초이며, 우도 등대는 1906년 3월 제주도 최초로 점등했다고 돼 있는데, 우도에 복원된 등간(燈竿) 건물을 보면 최초의 등대는 요즘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 쇠둥에 석유등을 매달아 비추는 형식이었던 것 같다.

     

     

    복원된 우도 등간(燈竿). 가운데 쇠기둥이 등을 매달았던 곳으로 안에서 도르레를 이용해 오르내렸다.
    우도 등간 안내문

    ▲ 안내문 내용 : 제주도 최초의 등대인 우도 등간은 우도등대 점등 100년을 기념하여 2005년 12월 원형대로 복원한 것으로, 1906년 3월 점등하였으며 그 후에 전면에 있는 벽돌을 쌓아 만든 조적조 등대(구 등탑)로 변경되었다. 

     

     

    등간에 이어 1919년 건립된 등탑(燈塔)은 요즘과 같은 첨탑 형식으로 스타일이 미려하다. 그러나 이면에는 제주도민의 노고가 숨어 있으니 건설에 동원된 사람들은 벽돌 등짐에 지고 우도봉을 오르내리고 시멘트를 타설하는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워러뷰(Water view)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 소름이 끼칠 정도이나 한편으로는 그저 망망대해로, 정식 지명대로 말하자면 '태평양'의 한 구석이다. 제주도 최초로 설치된 등대라면 일제에 의해 처음 시공된 제주시 산지항이 여러 가지로 적합했을 법한데 외딴 바다를 비추는 등대라니 왠지 미스터리하다.

     

     

    우도 등탑
    우도 등탑 안내문

    ▲ 안내문 내용 : 이 등탑은 우도 부근해역을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해 1906년에 설치하여 97년간 운영하였으나 노후되어 2003년 11월에 폐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 등탑은 항로표지에 대한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원형대로 영구히 보존하게 되었습니다.  

     

     

    고양이의 눈을 갖지 않는 한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한치도 나아갈 수도 없다. 그런 깜깜한 망망대해에서 항로를 표지해주는 등대는 그 얼마나 고마운 존재이며 귀중한 존재인가? 그래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한 것일까? 나는 그런 사람일까? 그런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할 즈음 새로운 등대에 불이 밝혀졌다. 아, 밝다! 저기 저 고기잡이 배의 사람들은 얼마나 안도감이 클까....?

     

     

    우도 등대불
    새 등대 안내문

    ▲ 안내문 내용 : 이 등탑은 동중국해 및 우도 부근 해역을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하여 2003년 11월 10일 새로이 건립하였습니다. 

     

    어둠이 깃드는 우도 해변
    수평선 가득한 고깃배 불빛
    옛 등대에서 보는 밤바다
    마을에서 보이는 등대불

    ▼ 추억의 '등대지기' 

     

    등대지기(은희, 이선희), 灯台守(白鳥英美子)

    1.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비치면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2.바람소리 울부짖는 어두운 바다에 깜박

    youtu.be

    스코틀랜드 민요, 혹은 아일랜드 민요로 소개됐던 '등대지기'의 원곡은 1846년 미국 교회음악교본에 실린 'Golden Rule'이라는 가스펠 송으로 성경 마태복음 7:12의 내용을 주제로 했다. 이 노래가 일본에 들어온 후 시인 카츠 요시오(勝承夫)가 '등대지기'(灯台守, とうだいもり)라는 제목으로 작사를 했고 그 내용이 거의 그대로 번역되어 한국에서 불려졌다. 노래는 아름답지만 굳이 따지자면 왜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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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