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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능력과 신앙, 그 믿음의 허실(II) ㅡ 바넘 효과
    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1. 10. 8. 08:32

     

    피니어스 바넘(Phineas T. Barnum)이 서커스단의 마술사를 넘어 초능력자로 변신하게 된 데는 오랜 직업으로써 터득하게 된 엔터테이너로서의 능력 외에 강한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다. 그는 누구와 상대하든 주눅 들지 않고 제 주특기인 독심술을 선 보였다. 물론 그것은 초능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트릭도 아니었으니, 그의 독심술에는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아래와 같은 속임수도 없었다.

     

    정말 감쪽같이 속이는 대단한 마술사를 본 적이 있는가? 예컨대 데런 브라운, 제이미 이언 스위스, 데이비드 코퍼필드, 제임스 랜디, 펜 & 텔러 같은? 너무 감쪽같아서 여러분은 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저건 기적임이 틀림없어.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면 설명이 안 돼." 하지만 그 마술사가 정직하다면 여러분에게 침착하고 부드럽게 진실을 말해줄 것이다. "아닙니다. 이건 그냥 속임수일 뿐이에요. 어떻게 한 것인지 말할 수는 없어요. 그랬다가는 마술계에서 쫓겨날 테니까요. 하지만 단언컨대 이건 그냥 속임수일 뿐이에요."

     

     

    데런 브라운은 유심론(誘心論) 전문 마술사로 불린다. 그의 주특기는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암시와 최면 등의 방법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상대방의 고른 카드를 읽어내는 것 같은.... 최근에는(2011년) 미국 남부의 교회에 잠입해 성령치료 사기를 치는 목사를 혼내주기도 했다. 
    제이미 이언 스미스는 일반 스텐딩 마술에서부터 독심술, 일루전에 이르기까지 모두 능통한 금세기 최고의 마술사로, 때로는 과학 이론을 뛰어넘는 마술을 선보여 '과학 회의론자'(Scientific skeptic)로 불린다.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주특기 분야는 일루전, 그 중에서도 그랜드 일루전(Grand Illusion)으로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 같은 유명 건축물을 없애거나 만리장성을 통과하는 등의 스케일이 큰 마술을 보여주었다.
    사라진 자유의 여신상 

     

    그런데 모든 마술사가 정직하지는 않다. 이른바 초능력으로 숟가락을 구부리고, 그런 다음 똑같은 초능력을 사용해 어느 곳을 파게 되면 되는지 알려줄 수 있다며 광산업자를 꾀어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기꾼이 쉽게 사기를 칠 수 있는 것은 피해자들이 기적을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속임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뻔히 보이기도 한다. 영국에 초능력ㅡ텔레파시 같은 것ㅡ의 '놀라운' 묘기를 선보이는 텔레비젼 쇼가 있었다. 실제로는 평범한 마술사들이 나와 데이비드 프로스트라는 이름의 프로그램 진행자를 속이는 것뿐이었다. 데이비드 프로스트는 정말 속았는지 모르지만, 아마 시청률을 위해 일부러 속는 척했을 것이다. 한번은 이스라엘에서 온 아버지와 아들 콤비가 출연한 적이 있는데, 아들은 아버지의 생각을 텔레파시로 읽는다고 주장했다.

     

    아버지가 비밀 숫자를 보고 무대 건너편에 있는 아들에게 '생각의 파동'을 보내면, 아들은 정확하게 아버지의 생각을 읽었다. 아버지는 엄청나게 집중력을 발휘한 다음 "알아챘니?" 같은 말을 외쳤다. 그러면 아들은 "5!"라고 소리쳤다. 관객은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 속는 척하는 진행자는 열광적인 분위기를 더욱 부추겼다. "놀랍습니다! 섬뜩합니다! 정말 신비롭습니다! 텔레파시가 증명됐습니다!" 

     

    알아챘나? 힌트를 하나 주겠다. 비밀 숫자가 8이었다면 아버지는 "할 수 있겠어?"라고 외쳤을 것이다. 3이라면 "알아들었어?"였을 것이다. 그리고 4였다면 "아직 모르겠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설령 마술사가 (그 아버지하고 아들 콤비와 달리) 실제로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도저히 추측할 수 없다 해도 그건 여전히 속임수라는 것이다. "기적이 틀림없어"라고 말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상 <신, 만들어진 위험> 중에서>

     

    그렇다면 바넘은 이런 속임수도 없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읽었을까? 그 비밀을 알아내는 데 100년이 걸렸다는 것은 바넘의 트릭이 그만큼 완벽했다는 얘기다. 바넘의 놀라운 능력의 비밀을 밝힌 사람은 1940년대 말의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Bertram Forer)였다. 그런데 그 비밀이라는 것이 놀랄 만큼 싱거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넘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심리적 경향을 자신감을 가지고 들이댔다.

     

    훗날 바넘 효과(Barnum Effect/포러의 이름을 빌려 '포러 효과'라고도 함)라고 일컬어진 위의 심리적 경향을 증명한 포러의 테스트는 다음과 같았다. 포러는 어느 날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성격 검사 결과지라는 것을 배포했다. 포러는 그것을 자신이 새로 고안한 테스트 방법에 의거해 만든 결과지라 말하며 마치 개인적 특성이 반영된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은 신문 구석에 실린 점성술 코너의 내용을 살짝 고친 것에 불과했다. 

     

    포러는 학생들이 옆 사람의 결과지를 보지 못하게 한 후, 자기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5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보도록 했다. 0점은 '전혀 맞지 않다'였고, 5점은 '매우 정확하다'였다. 학생들의 점수는 평균 4.26점이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은 검사 결과가 자신의 실제 성격과 매우 일치한다고 판단한 것인데, 몇 차례 반복된 다른 결과지 시험에서도 평균은 언제나 4.2점 정도였다. 그 마지막 테스트가 있던 날, 포러는 한 학생에게 자신의 결과지를 큰 소리로 읽게 했다.

     

    "당신은 타인이 당신을 좋아하길 원하고 타인에게 존경받고 싶어 하고, 또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렇듯 착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 당신의 비판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성격적 약점도 있습니다. 아울러, 겉으로 보기에는 스스로를 잘 통제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또 뛰어난 판단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때때로 옳은 결정을 했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합니다.

     

    당신은 자신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기에 확실한 증거 없이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수용하지 않는 편입니다. 당신은 결단력이 약하다며 고민을 할 정도로 안정 지향형 인간이지만 때로는 변화와 다양성을 즐기며 규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열어 보이는 사회성이 좋은 성격의 소유자로 장래성을 가지고 있으나 당신이 원하는 희망사항의 일부는 현실과 조금 동떨어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자 사방에서 폭소와 함께 기가 막히다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학생들이 받은 결과지는 모두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모두 그 결과지가 자신의 성격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분명 누구나 가지는 보편타당성임에도 그 보편타당성이 자신에게 집중될 때 자신만의 특수한 일로 생각하는 심리, 이것이 바로 100년 전에 초능력자 바넘이 보여준 독심술의 비밀이었다. 

     

     

    히히히. 속았지?/버트럼 포러(1914-2000) 

     

    현대에서 이와 같은 바넘 효과를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은 이른바 '점쟁이'들이다. 사주팔자 풀이를 하며 스스로 명리학자라 부르는 사람들이나, 주역에 통달했다는 역술인들이나, 점성술에 근거해 점을 보는 사람이나, 혹은 접신(接神)했다고 주장하며 귀신의 응답을 전해주는 무당이나 다 똑같다.(하다 못해 단 며칠 배워 써먹는 타로카드 점까지도) 그들이 사람을 속인다는 얘기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믿음에 근거해 그에 대한 보편적 결과를 (이를테면 통합된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한 사주팔자 같은 것) 자신감 있게 설파한다는 것이다. 

     

     

    쨘! / 우와! 어쩜?

     

    예를 들어 새해에 본 토정비결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이 써 있다면 믿지 않을 재간이 없다. "작년에는 뜻하지 않은 일로 힘들었으나 그것으로 액땜을 했으니 올해는 만사형통하리라." 만일 어떤 용한 점쟁이가 당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성격진단을 했다면 그 명쾌한 점괘에 절로 용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좋아하는 일은 열심히 하나 싫어하는 일은 죽어도 못하는 단호하고 확실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시집 못 가 찾아온 노처녀에게는 이런 소리를 한다.(요즘은 세태가 달라져 찾아오는 처녀도 없을 듯하지만) "못된 것! 그동안 남자 보는 눈이 너무 높았어. 눈만 조금 낮추면 올해는 갈 수 있어. 이건 장담해!"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줄 것! 이것은 앞서 언급한 제임스 랜디가 말하는 콜드 리딩의 생기초 같은 것이다.

     

    "어릴 때 홍역 앓았지?"하고 보편성에 근거한 질문을 하는 무속인도 있다. 대부분 홍역을 앓기 때문이나 때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에게는 앓았는데 당신이 모르고 있다고 우기거나, 다시 뻔한 소리로 응대한다. "안 걸렸다고? 사실 그래서 한 고비 넘긴 거야. 당신, 그때 홍역 걸렸으면 죽었어!" 이제껏 홍역에 안 걸린 의뢰인에게는 아직 두 세 고비가 남은 셈이다. 

     

    무당은 자신에게 신이 내렸다고 믿기에 그 신의 말씀을 과감히 행하지만 때로는 믿음이 지나쳐 제 몸을 다치기도 한다. 신 내림의 증거로서 올라서는 작두 타는 무당 이야기다.(작두날이 커터칼날처럼 날카로우면 누구나 예외 없이 다침! 혐오스러워 여기는 안 실었으나 인터넷에서는 지나치게 날을 세운 작두를 타다 발을 다친 박수무당도 볼 수 있음. 요령부득이랄까..... --;;) 

     

     

    무속인의 작두타기는 볼거리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시퍼런 비주얼과 달리 발을 벨 정도는 아니다/ 'CSI 소비자 탐험대'의 용감한 기자 

     

    이런 바탕에 플러스(+)해서 눈치까지 빠른 점쟁이는 이른바 '쪽집게 도사' 소리를 듣는다. 점술가에 관한 소리가 아니라 영국 작가 아더 코난 도일의 소설 <주홍색 연구>에 나오는 셜록 홈즈 이야기다. 홈즈는 룸 메이트로써 소개받은 초대면의 왓슨 박사에게 "최근에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오시지 않았나요?"라고 물어 상대를 놀라게 한다. 왓슨의 군바리스러움과 이 손 사용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보고 팔의 총상을 생각했고, 최근에 전투가 있었던 아프가니스탄 전선을 연관시켰던 것이었다.(왓슨은 군의관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종군한 적이 있다/번외의 얘기지만 지금의 아프간 사태를 만든 원흉이 바로 영국이다) 

     

    성서 <요한복음>에는 예수가 우물가에서 처음 만나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얻으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여인은 비협조적이었으니,  당신은 딱 봐도 유대인인데 왜 나한테 물을 달라는 거냐고 퉁명스레 답한다.(유대와 사마라이는 전통적 원수지간이었다) 그러자 예수는 "네가 내가 누군지 알았다면 내가 물을 줬을 텐데..... 내가 주는 물을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리니"라는 차원 높은 얘기를 하며 "네 남편 좀 데려와 봐라"는 말을 더한다. 이에 그녀는 자신에게 남편이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요한복음 4:16-19)

     

     

    우물가의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 구스타프 도레 1866년 

     

    길을 오래 걸어 목이 말랐던 예수가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한 것은 물을 얻어 마시지 못한 야박한 처사를 여인의 남편에게 따지겠다는 뜻이었다. 의당 남편이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예수에게도 사마리아 사람은 만만한 존재였고 게다가 자신은 제자들이라는 쪽수를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인은 자신에게 남편이 없다고 역시 퉁명스레 내뱉는다. 

     

    그러자 예수는 이 지방의 풍습 등을 고려해 얼른 말을 바꾼다. 네가 여러 남자와 살았고 지금 사는 남자도 정식 남편이 아닌 터라 내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다는 말은 좀 과하게 여겨지기는 하나 어찌 됐든 여러 남자와 살았던 여인으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로 인해 예수를 예언자로 인정하게 된다.(이 하나로써 곧바로 선지자로 인정을 받는 광경 역시 좀 OVER스러우나 선지자의 뜻으로 쓰인 prophet는 당대 예언자의 일반적 호칭이므로 이해는 된다. 그러나 이를 메시아로 해석함은 진짜 OVER다)

     

    말인즉 예수 역시 넘겨짚었다는 것인데,(이외에도 많이 나온다) 이와 같은 해석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며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 해석의 여러 이중 잣대를 지목하며 모순됨을 몰아붙이는 리처드 도킨스는 <신, 만들어진 위험>의 위 내용(마술사의 속임수) 바로 앞 장에서 예수의 거룩한 부활까지 비웃는다.

     

    "이중 잣대의 또 다른 예가 있다. 마태오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바로 그 순간 예루살렘 성전에 쳐져 있던 거대한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기고 땅이 흔들렸으며, 무덤이 열려 죽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걸어 다녔다고 말한다. 그 공식 복음서에 따르면 당시 예수가 부활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예수가 부활하기 불과 사흘 전에 많은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예루살렘 거리를 걸어 다녔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속 보이는 질문도 한다.(괄호 안이 그의 진심이다)

     

    "기독교인은 위 말을 정말로 믿을까? 만일 믿지 않는다면 왜 그럴까? 그것을 믿을 이유는 예수의 부활을 믿을 이유만큼이나 충분하다.(더 정확히 말하면, 둘 다 믿을 이유가 별로 없지만) 신자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중에 어느 것을 믿고 어느 것을 무시할지 무엇으로 판단할까?" 

     

     * 3편, '가스라이팅'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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