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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자라투스트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1. 9. 2. 06:03

     

    조로아스터교는 우리에게 낯설지만 단어 자체는 낯설지 않으니 바로 페르시아인 자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종교의 영어명이 조로아스터(Zoroaster)인 까닭이다. 읽어본 사람은 드물어도 제목을 모르는 사람 또한 드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알조 슈프라흐 차라투스트라)라는 책의 주인공인 바로 그 사람이다. 페르시아어 원어 발음도 독일어 차라투스트라에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책에서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언급은 없다.

     

    1980년대 대한민국에 잠깐 실존주의(Existentialisme) 열풍이 분 적이 있다. 물론 그 바람의 진원지는 대학가였고, 열풍은 학교 주변 커피숍 찻잔 속에서만 소용돌이치다 사라졌지만, 이후로는 그만한 바람이 분 적 없었으니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와 키르케고르의 실존주의가 부활할 것 같던 20세기의 말엽(이른바 세기말)에도 철학은 고요했다.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 하는 사람은 밥 굶는다는 현실적 인식과 대망의 밀레니엄이라는 진취적 비전에 가린 결과였겠는데, 21세기가 도래했어도 인터넷 게임 외에 획기적으로 바뀐 것은 없었다. 

     

    당시 유행한 대한민국의 실존주의 열풍은 일세를 풍미했던 지구촌 사조(思潮)가 뒤늦게나마 연안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그 물결이 얼마나 거셌는지는 우리가 실존주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도 실존주의 사상가들의 이름쯤은 주워섬기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키르케고르와 니체는 물론이요, 야스퍼스, 샤르트르, 프란츠 보부아르,(마담 보바리) 하이데거의 이름을 대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잘 안 알려진 니체의 사진
    잘 알려진 카뮈와 카프카의 사진 / 이 두 사람도 실존주의자였다.

     

    나아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쓴 것도 누구나 알고 있는데, 실제로 당시에는 그 책을 읽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샤르트르의 <구토>와 더불어 끌리는 제목의 책이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책을 읽은 사람에게 "그래서 차라투스트라가 뭐라든?"하고 물으면 정작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유는 두 가지로, 첫 번 째는 그 시대에 마구 넘쳐난 해적판에, 아무나 제멋대로 번역한 (게다가 영어본이나 일본어본을 중역한) 탓에 읽어도 뭔 소린지를 알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니 제멋대로 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두 번 째는, 책 속에서 조로아스터가 한 말과 니체가 조로아스터의 입을 빌려 한 말을 구별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를테면 "모든 신은 죽었다"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조로아스터가 했을 리 없다. 조로아스터는 아후라 마즈라라는 절대신을 모시는 존재인데 그가 신은 죽었다고 이야기할 턱이 없잖은가?

     

    그런데 그 말이 종교가에게는 별다르게 와닿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라투스트라는 훗날의 유명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나 바르트, 브루너, 불트만, 틸리히와 같은 사람들이 실존철학, 특히 니체가 말한 초인사상(Übermensch 위버멘쉬)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이다.(☞ 바르트와 불트만의 신학에 대해서는 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V)에서 언급한 바 있다)  

     

     

    미켈란젤로 '아테네 학당' 속의 조로아스터 / 하단 오른쪽 인물
    프톨레마이우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테네 학당' 속의 조로아스터
    각 종교의 창시자와 역사적 법률가(동로마 유스타누우스 황제와 같은)의 상을 세운 뉴욕 미국 연방 항소법원(the U.S. Courts of Appeals) 건물
    공자, 모세, 무함마드 등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있는 조로아스터 / 가운데 석상
    뉴욕 미국 연방 항소법원의 조로아스터 상
    파키스탄 조로아스터교 사원인 파르시 불의 사원
    라마수와 합체한 조로아스터 상 / 인도 뭄바이

     

    간단히 말하자면 니체는 자신의 '초인 사상'을 고대의 자라투스트라에 빗대 서술하며 당시 유럽사회를 지배하던 획일적이고 비합리적인 기독교 사상과 기독교 중심의 철학관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앞뒤를 따지자면 조로아스터교는 오래전 이미 유대교와 기독교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출발은 앞서도 말한 바빌론 포수(Babylonian Exile)이다. 즉 기원전 587년 유다왕국이 멸망하면서 시드기야 왕을 비롯한 유대인이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감으로써 시작되었다.

     

    위의 실존주의 사조가 유행할 때 더불어 유행했던 그룹 보니엠의 'Rivers of Babylon'(바빌론 강가에서)은 바빌론 포수 당시, 신 바빌로니아 제국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바빌론 강가에서 두고 온 고향과 자신들의 신 여호와를 그린다는 내용을 레게 풍의 디스코 리듬에 담은 노래였다. 

     

     

    당대에는 파격적이었던 보니 엠의 앨범 쟈켓

    'Rivers of Babylon'

    바빌론 포수 지도

     

    그들 유대인들은 이후 50년 간 바빌로니아에 억류되어 고생 고생하다가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고레스) 대왕에 의해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유대인들을 끌고 갔던 신 바빌로니아 제국이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키루스(고레스) 대왕에게 멸망당하였면서 키루스 대왕에 의한 유대인 노예 해방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앞서 '성서 속의 UFO/여호와라 불린 외계인의 대규모 학살극'에서 말한 바대로 훗날 이스라엘 공화국의 건국(1948년)과 더불어 행정 수도가 된 텔아비브 시는 바빌론 포수 당시의 유대인 포로 거주촌으로서, 과거의 고난을 상기하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정복군주 키루스 대왕 / 팍스 페르시아나의 서막을 연 키루스 2세(재위 BC 559-529)의 조각상이다.
    이란 남부 파사르가다에 있는 키루스의 무덤
    구약 이사야서(45:1)에서는 유대인을 해방시킨 키루스(고레스)가 여호와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로 칭송되어지고 있다. 유대교에 미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때 유대인들은 몸만 돌아오지 않았다. 앞서도 말했지만 당시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에서 묻혀가지고 온 설화나 전설은 구약성서에 배어들어 그 근간을 형성하였고, 조로아스터교 사상 또한 묻어들어와 천지창조 신화에 가세하고, 종말론과 선악사상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선악론은 유대교 기본교리에 영향을 미쳐 유일신 여호와가 절대적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구약의 교리는 최후의 심판과 종말론이 지배한다. 두말할 것 없는 조로아스터교 교리에의 반영이다.

     

    혹자는 유대교의 교리나 경전의 성립은 기원전 6세기에 생성된 조로아스터교에 앞서므로 유대교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하지만, 바빌론 포수 이전 히브리 종교에서는 여호와만 있을 뿐 악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구약에서는 오히려 여호와가 악마적으로 표현되니 이집트, 바빌로니아, 가나안을 통틀어 이렇게 악마다운 신은 존재한 예가 없다.(☞ '악마를 찾아서') 그리고 조로아스터교는 기원전 6세기가 아닌 기원전 18세기에 성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라는 것이 중론이다. 

     

    구약에서의 악마라고 해봐야 <욥기>에 나오는 욥을 괴롭히는 좀스러운 사탄이 전부다. 욥기의 사탄은 하나님을 독실히 믿는 욥을 몹시 증오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허락 하에) 욥의 가축들을 모조리 죽이고 집을 무너뜨리고 심지어 그의 10명의 자식까지 죽인다. 그의 처지를 불행하게 만들어 신에 대한 원망을 만들어낼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욥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변함없자 욥의 몸을 종기에 뒤덮이게 만든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그래도 욥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에 사탄은 제풀에 꺾여 물러나고 하나님은 욥의 종기를 치료해준다. 아울러 더 많은 재산을 내려주고 그의 아내는 더 많은 자식을 생산하는데, 이 식상한 패턴의 스토리를 리처드 도킨스는 다음과 같이 조롱한다. "지금의 우리는 종기의 원인이 세균이라는 것을 알지만 <욥기>의 저자는 몰랐다. 아마도 신과 사탄은 알지 않았을까? 욥은 믿음의 덕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10명의 죽은 아이와, 하나님과의 내기 때문에 죽은 다른 사람만 불쌍하게 된 것이다."(☜ <신, 만들어진 위험>)

     

    그러면서 교회 설교에서 흔히 듣게 되는 믿음에 대한 보상 스토리를 이렇게 비웃는다. "하지만ㅡ사람들이 흔히 말하듯ㅡ달걀을 깨뜨리지 않고는 오믈렛을 만들 수 없다." (※ 악마 루시퍼는 단지 오역의 산물임을 '예수가 말한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진 사탄' -그 거대 집단의 반격'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악마가 빈번히 출현한다. 히브리어 satan이 희랍어로 번역된 satanas는 33번이나 나오고,(마태복음 12:36, 고린도 후서 12:7 등) 또 다른 희랍어 번역 Ho diabolos 역시 33번 나온다. 필시 가나안 토속신 바알(Baal)에서 연유됐을 바알세불(베엘제불, 혹은 밸제붐)은 6번 나오고,(마태복음 10:25, 누가복음 11:15) '적'이란 의미의 Ho ecbtros도 등장한다.(마태복음 13:25, 39, 누가복음 10:19) 조로아스터교의 악마격인 앙그라 마이뉴가 현실에 맞게 구체화된 것이다. 

     

    아울러 사실적 존재로 등장하며 때로는 예수와 직접적인 싸움을 벌이기도 하는 바, 마태복음(4:1-11)에는 그 싸움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그런데 이 내용은 조로아스터교 문헌 <벤디다드>에 나오는 앙그라 마이뉴와 자라투스트라와의 싸움과 거의 똑같다. 거기서 악신 앙그라 마이뉴는 자라투스트라에게 세상의 모든 권세를 너에게 모두 줄 터인즉 종교를 만들지 말라고 회유하고 유혹하지만 자라투스트라는 이를 거부하고, 결국  앙그라 마이뉴는 굴복해 물러난다. 마태복음의 저자가 <벤디다드>를 베꼈다 해도 할 말 없을 내용이다. 

     

    구약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천국과 지옥이 신약에서는 구체화되고 빈번한 것 역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다. 구약에서는 천국이란 단어는 단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으며 지옥은 음부(陰部, 히브리어의 스올)라는 단어로써 억지로 유추될 뿐이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천당과 지옥에 목을 매는 바, 조로아스터교 경전 <아베스타>에 중심적으로 자리 잡은 천당과 지옥으로부터의 차용을 부인하기 힘들다. <아베스타>에 의하면 죽은 자의 영혼은 자신이 생전 행실이 보관된 방에서 미트라 신의 심판을 받으며, 이에 따라 천국과 지옥에의 향배가 결정되어진다.

     

    아울러 결정된 향배는 다시 돌이켜지지 않는데, 이와 같은 영구불변의 심판론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꾸란>에서는 기독교에서와 같이 악마가 어떤 존재인지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으나 그것이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다분히 증거한다. <꾸란>(18. 50)에서 샤이탄(Shaytan)으로 불리는 악마는 정령의 하나로서, 신이 불로부터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알다시피 조로아스터교에서 불은 신성한 존재이다. 그 신성한 존재에서 악마가 나왔다고 하니 패러독스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으나, 조로아스터교에는 물 또한 신성하며, 악신 앙그라 마이뉴도 최고신인 아후라 마즈다에 속한다. 

     

    즉 '자애로운 영' 스팬타 마이뉴와 악령 앙그라 마이뉴는 아후라 마즈다와 한 몸이다.(아후라 마즈다의 자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구도는 신이 존재하면서도 악 또한 상존하는 세상을 종교적으로 설명하기에 오히려 안성맞춤인데, 불행히도 그 종교는 이슬람에 밀려 쇠퇴했다. 알다시피 조로아스터교의 발상지 이란은 지금 시아파 이슬람의 종주국이다. 하지만 종교의 성세가 꼭 합리성으로 설명되지는 않으니, 이스라엘 땅에서 발생한 기독교를 지금의 이스라엘에서는 찾을 수 없고,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를 정작 인도 땅에서는 찾을 길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재 이란 내의 조로아스터교 신도는 25,000명 정도이고, 약 만 명의 신도들이 조로아스터교의 전통적 근거지였던 중앙아시아 지방에 퍼져 있다. 현재의 중심세력은 인도의 파르시로서 30만 명 정도가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조로아스터교의 명백을 이어가고 있다. 쿠르드족 가운데서도 적잖은 신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 2015년 약 10만 명의 쿠르드족이 이라크령 쿠르디스탄에서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한 사실이 이란 언론 <루타우>에 의해 보도되었다. 엄격한 이슬람으로부터의 반동이란 것이 개종의 이유로 설명되었다.

     

    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탈레반 세력에도 조로아스터교 신도가 있다고 한다. 지금의 탈레반은 엄격한 정통 이슬람교도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IS와 다를 바 없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등에 업은 정치세력일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을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만일 그들 중에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세력이 존재한다면 어쩌면 탈레반은 새롭게 태어날지도 모른다. 지금 탈레반의 이념과는 다르게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은 평등을 앞세운 개혁적 이념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는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라면 성별이나 배움, 계급에 관계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고 현실로도 그와 같은 세상을 추구했다. 조로아스터교의 악신 앙그라 마이뉴가 가진 신성(神性) 다에바(거짓의 힘)는 악신으로서의 위력을 발휘하나 결국은 빛과 도덕과 지혜의 신 아후라 마즈다에게 굴복한다. 다시 말하지만 기독교에서 운운하는 사탄과 마귀 등은 조로아스터교의 악신 앙그라 마이뉴의 아류인데, 도덕적 선(善)에 굴복되는 조로아스터의 교리와는 달리 늘 설쳐대며 하나님과 맞짱을 뜨고 다닌다. 적어도 교회 목사님 설교 속의 음란마귀들은 그렇다.

     

     

    그래서 노트르담 성당 위의 악마상은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한 쿠르드족 / 오른쪽 아래 조로아스터의 초상이 보인다.
    은둔의 탈레반 리더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의 사진 / 그의 눈에 자비란 없어 보인다.
    파키스탄의 탈레반 전사 / 언뜻 고독해보인다. 혹시 파르시(인도 파키스탄의 조로아스터 교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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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