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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한말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외모와 기질
    한국을 사랑한 이방인들 2022. 1. 3. 02:15

     

    "한민족은 중국인처럼 상술에 능하지도 못하며 일본인들처럼 무사적인 기질을 가진 민족도 아니다. 기질적인 면에서 보면 그들은 중국인이나 일본인보다 오히려 앵글로 색슨 민족에 가까우며, 극동에 사는 민족 중에서 가장 우호적인 민족이다."

     

    이상은 호머 헐버트의 한국인에 대한 촌평이다. 그리고 심도 있는 관점으로서는 한국민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였던 바, 이에 대해서는 앞서 '헐버트가 꼽은 한국의 위대한 문화유산'에서 피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와 같은 우수한 두뇌와 우호적 기질을 지닌 나라가 정체돼 있는 이유에 대해 관료들의 이기적이며 수구적인 태도와 공공의식 결여를 꼽았다. 이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을 쓴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비숍 여사의 지적과도 상통한다.

     

    "내가 본 조선의 양반들은 극도로 부도덕하였으니 솔선수범의 정신이나 국가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직 자신의 혈족만 끔찍이 위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에게는 남연군묘 도굴사건으로 도꿀군 이미지가 각인돼 있는 인물이지만, (☞ '1868년 덕산사건의 진실ㅡ도굴꾼 선교사 페롱')이지만 서양에서는 인류학자로 알려져 있는 에른스트 오페르트의 평도 헐버트와 거의 동일하다. 그는 조선을 서양에 최초로 알린 책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선인은 우수한 자질과 활달한 성품을 지녔으며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늘 문이 열려 있을 정도로 신뢰가 뒷받침이 된 사회이다. 조선 사람들의 품행은 이웃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좋다. 그들은 대체로 개방적이며 정직하다. 하층민이라 해도 성실하고 낙천적이므로 우호적이며 쾌활한 대인 관계를 형성한다. 그들은 매우 정직하고 서로를 신뢰하는 분위기라서 상대방이 호의를 보이면 외국인인이라도 배척하지 않고 그의 말을 신뢰한다. 그러나 정부와 집권층의 억압적 정치체제와 폐쇄적 국가운영이 민족의 우수성을 좀먹고 있다. 

     

    외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조선 사람의 체구는 일본인에 비해 크고 건장하다. 하지만 대부분 5.5피트를 넘지는 못한다. 조선인들은 지나인과는 다른 종족에서 기원했으며, 일반적으로 몽골족을 연상시키지만, 유럽 코카서스 인종의 특징도 보인다. 조선 사람의 얼굴을 보면 두 종족의 특성이 나타나는데, 이를테면 콧부리가 치솟아있는 반면에 코끝은 다소 처져 있어 그 용모가 코카서스족에 가깝다. 눈의 생김새에서도 유럽인의 특징을 보이는데, 이런 사람들은 광대뼈가 움푹 들어가고 몽골족에서는 볼 수 없는 얼굴 측면의 뚜렷한 선이 나타난다. 그들은 피부 역시 지나인이나 일본인에 비해 하얗다.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에 실린 삽화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을 쓴 영국 외교관 새비지 랜도어 역시 한국인의 외모를 우수하게 평가했는데, 특히 한국 여성에 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인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을 닮았으리라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지배적인 생각이나, 사실 그들은 그 어느 편도 닮지 않았다. 물론 차이점이 백인과 흑인 사이의 특성만큼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선 사람들은 그 종족 중에서도 완전히 특징 있는 지파를 형성하고 있다. 까닭에 인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조선만큼 흥미를 끄는 나라도 없으리라 여겨진다. 아무튼 종합하자면 한국인은 잘생긴 인종임에 틀림없다.  


    일단 아름답게 생긴 한 처녀를 택하기로 하자. 슬픈 듯한 모습의 작은 달걀형의 얼굴을 가진 그를 보라. 그는 아치형의 눈썹과 긴 속눈썹 때문에 타원형의 새까만 눈이 부드러워 보인다. 얼굴은 약간 덜 편평한 편이 나았겠지만 그래도 곧은 코와 달콤한 작은 입을 가지고 있으며 눈처럼 하얀 예쁜 아랫 윗니를 드러내고 있다. 당신이 그를 처음 보게다면, 그의 행동을 상당히 고결하고 침착하게 느끼게 되어 당신은 그를 작은 조각상으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비교하자면 유럽 여인의 아름다움은 한국 여인의 아름다움에 비견할 바가 못된다. 왜냐하면 그는 그렇게 키가 크지도 않고 체형이 빼어나지도 않지만, 한국 여성들은 극동 민족의 여성들 가운데에서 보기 드문 세련된 미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유럽에게 가끔 목격되는 일본 여성의 의상을 예술적으로 보지만, 차려입은 조선의 비너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밝은 살빛과 위에 열거한 특성들을 모두 고려해 볼 때, 조선의 여성은 유럽 여성의 아름다움의 표준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윤복의 '미인도'
    '미인도'의 얼굴 부분

     

    기질에 대한 평가는 헐버트의 묘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대한제국 쇠망사≫에서 한민족을 '개성이 뚜렷하고 독창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주변국과 구별되는 온존히 독립된 민족'으로 구별하고, 다음과 같이 평했다.

     

    첫째, 한민족을 이상과 실용이 알맞게 조화된 합리적인 이상주의자(rationaly ideaistic)로 보았다. 한국인들은 냉정과 열정이 함께 갖추어져 있으며 평온 속에서 격노할 줄 안다.

     

    둘째, 적응력이 뛰어난 민족으로 보았다. 한국인들은 보수적인 관점을 견지하다가도 필요에 따라 재빨리 변신한다는 것이다. 부싯돌과 성냥과의 관계를 예로 들면서 성냥의 편리함을 알고 거의 전 국민이 순식간에 성냥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휴대전화 및 인터넷 보급률에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셋째, 한민족은 인정이 많은 민족이라고 했다. 한국인들을 수전노처럼 인색하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의로운 일에는 과감히 돈을 쓸 줄 안다고 했다. 손님이 오면 주객 간의 의견 대립이 있건 없건, 또는 과거에 서로의 의견대립이 있었던 없었던 건에 손님을 흔연히 대접한다는 점도 들었다.

     

    넷째, 강한 자존심을 지적했다. 체면을 차리는 데 있어서 한국인보다 더 기를 쓰는 민족은 없다고 했다. 해마다 명문가의 후예들이 너무도 자존심이 강한 탓으로 남에게 구걸하거나 돈을 빌려 쓰지 않고 오히려 굶어죽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다섯째, 한국인의 진실성은 동양인의 표준을 이루고 있고, 동양인의 진실성은 그 정도가 높지 않다고 했다. 곤경에 빠지거나 위급한 일에 직면하게 되면, 또 자기가 계획하는 일의 성패 여부가 진실을 어느 정도 왜곡시켜 호전될 수 있으면 한국인들은 거짓말을 망설이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여섯째, 파벌 싸움의 폐해를 지적했다. 조선 초기 200년은 예로부터 내려오던 폐습도 사라지고 새로운 악습도 생겨나지 않은 한국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16세기 중엽에 이르러 당파가 형성된 이후 피비린내 나는 정쟁이 지속되어 한국의 역사는 읽어보기도 끔찍하다고 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선량한 정치인이라 해도 반대파의 모략은 아량을 보임이 없어 파벌의식이 가중된다고 했다. 헐버트는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능한 정치인 중 비명에 죽은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하였던 바, 마치 우리의 피비린내 나는 당파 싸움의 역사를 한눈에 꿰뚫어 보는 듯하다. (※ 헐버트에 관한 부분은 김동진 저 ≪파란 눈의 한국인 헐버트≫에서 발췌).

    작년 말, 그동안 넘사벽으로만 여겨졌던 한국과 일본의 경제가 지난 2017년에 역전되었고, 향후 더욱 격차를 벌릴 것이라는 일본 연구기관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첨단 IT산업과 디지털 생활화의 결과로써, (이를테면 한국은 전자결제가 일반화된 반면 일본은 아직도 결제시 도장을 사용한다) 1965년 한일 경제력 격차가 30대 1이었던 것이 2019년에 이르러 평균임금 38,617달러(일본)와 42,285달러(한국)로 역전됐다.

     

    약 100년 전, 저들의 식민지가 된 적이 있었고 이후로도 계속 경제적 종속관계였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꿈 같은 일이다. 그와 같은 감격 속에, 한국이 세계 초일류 국가로 나아가는 길에 제발 정치인들이 과거처럼 발목을 잡지 않았으면 좋겠는 새해 소망을 담아 본다. 그리고 우리 국민도 그들에 뇌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해 대선이 목전에 이르러 정치판이 과열되고 그 열기가 국민의 이성까지 마비시키는 듯하나, 편을 갈라 뇌동하지 말고 부디 냉정히 평가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선거가(특히 대선이) 온 국민이 열의를 가지고 참여하는 국민축제로 승화되었기는 하나, 그 행태는 아직도 여전히 후진적이다. 

     

    국민이 바뀌면 이들고 바뀌고, 국민이 바뀌지 읺으면 이들도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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